74.
잡아 온 물고기의 맛이 무척 좋았다.
야생의 것을 잡아 섭취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흥미가 많았다. 시종들에게 부탁하여 주방에 들어가 물고기를 손질하는 법을 보고 배웠다.
반으로 갈라 내장을 빼내거나 큰 가시를 제거하거나 하는 것은 평범했지만, 날카롭고 얇은 칼을 사용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단도로도 비슷한 일을 할 수 있겠느냐 물었더니, 잘만 사용한다면 할 수 있겠으나 양날이 있는 것보다는 외날이 있는 것이 좀 더 편할 것이라 하였다.
사냥감을 손질할 때 쓰는 용도의 칼이 또 따로 있다기에 나중에 언젠가 구매하겠다 다짐해 두었다.
날것을 한 점 포를 떠 주기에 받아먹었다.
그 살이 신기할 정도로 달았다. 세르벨 별장의 주방장이 내 앞으로 반 접시 분량의 날생선을 내놓으며 오래 배를 탈 적에는 무슨 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날생선을 찾아 먹는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나중에 책을 보면 알 것이었다. 그저 신기한 이야기라 즐겁게 들었다.
조금 늦은 저녁 식탁에는 갖가지 생선 요리가 가득하였다.
찌기도 하고 굽기도 하고 생선 살을 으깨어 만든 경단도 있었다. 하여간 종류를 헤아리는 것이 한 손으로 힘들 지경이었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차려두면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어 말을 꺼냈더니, 양을 넉넉하게 만들어 다른 식솔들의 몫도 충분하다는 말을 듣고서 안심하였다.
하여간 어느 때건 먹을 것으로 사람을 서럽게 하는 것이 제일 나쁜 짓이다.
앞접시에 생선 경단을 덜어와서 그 위로 달짝지근한 소스를 끼얹던 모친이 슬쩍 내 쪽을 향해 웃었다.
아직도 서운한 기색이 다 가시지 않은 부친의 낯빛이 나 또한 신경 쓰이던 중이었기에 혹여 타박을 하면 얌전히 들어야겠다 여겨 자세를 바로 했다.
허나 모친은 나를 타박하는 대신에 눈을 빛내며 노래하듯 물었다.
“도대체 언제 낚시를 해 본 거니, 미카?”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버지께서 잘 가르쳐 주셔서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에른하르트 소백작께서 낚시를 가르치는 데에 소질이 대단하신 모양입니다. 저도 한 수 배워야겠어요.”
“그게 어찌 제가 잘난 덕이겠습니까. 미카엘 녀석이 낚시에 소질이 있던 모양이지요.”
내 대답이 서툰 것을 알고 있었다. 세르벨 소백작이 부친을 추켜세우며 분위기를 풀었다. 부친 또한 더 이상 시무룩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웃는 얼굴로 대꾸하였다.
시어런에 태어난 뒤로 내가 물가에서 노닐지 않았다는 건 양친이 나보다 잘 알았기에 과거에 해 본 적이 있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내가 전생에 마귀를 때려잡은 소드 마스터였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던가.
요즈음 나는 전생의 일을 떠올려도 입에 올리는 일이 적었다.
그립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다.
나는 좋은 것과 어여쁜 것을 볼 적마다, 또는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을 적마다 과거의 어느 순간에서 친지나 동무를 끌어와 떠올리고는 했다.
시어런의 친지들이 믿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가 진중한 말씨로 말하면 이들은 진지하게 맞받아쳐 함께 고민해 줄 것이었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내 욕심이었다. 온전히 이 세계에 속하고 싶어 아등바등하는 늙은 것이 내 마음속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 틈에 끼어 낚시와 승마, 수영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하였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 사이사이로 아이들의 앳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물 위에 아무것도 않고 동동 떠서 누워 있는 것이 참 재미있으니 꼭 함께하고 싶다고 세르벨 가의 막내, 에반 세르벨이 몇 번이나 거듭하여 말하는 것이 참 귀여워서 마음이 흡족했다.
* * *
아이를 따라 물 위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이 놀이를 가르쳐 준 에반 세르벨은 이제 겨우 여덟 살이 된 소년으로, 미하엘보다 한 살이 더 많았다.
제 형과 누나가 아카데미에 간 뒤로 혼자 노는 법을 익혔기에 소란스럽지 않은 놀이를 많이 배웠다고 했다.
에반은 물 위에 눕는 법, 깊게 자맥질을 하였다가 열을 세고 올라오는 법, 꽃 무더기 사이에서 특이한 잎사귀를 찾아내는 법 따위를 아주 잘 알았다.
자맥질을 하거나 수영을 하는 일은 종종 있었으나, 이렇게 넓고 맑은 물 위에서 아무것도 않고 게으르게 누워 쉬는 것도 놀이라는 것은 이번에 배워서 알았다.
정수리를 폭신한 쿠션에 내려놓는 것처럼 물속으로 깊게 밀어 넣으면 양 귀에 먹먹하게 물이 들어차다 말았다.
코와 입은 밖에 내어두고 숨을 편안하게 하면 몸이 자연히 물 위에 떴다.
찰박이는 얕은 물살이 뺨을 쓸었다.
넓은 호수 중에서도 둥근 자갈이 우르르 몰려있는 곳이었다. 마구 자맥질을 해도 흙먼지가 일지 않아 시야가 훤하여 좋았다.
기사들 몇이 경갑옷을 벗고 가벼운 차림을 한 채 멀찍이 서서 아이들 노는 것을 살피고 있었다. 저 멀찍이서 뱃놀이를 하는 어른들의 웃음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온몸의 탁기를 차고 청명한 물로 씻어내는 것 같았다.
작은 소리는 크게 들리고 큰 소리는 작게 들렸다.
노 저어 참방이는 소리가 귓가에 우렁우렁한 동안, 저 멀리 물 위에서 저들끼리 떠들어대는 사용인들의 목소리나 아해들의 웃음소리가 아득하였다.
둥실 떠도는 몸을 떠받친 것이 물이 맞는가, 당연한 것을 의심하게 되었다.
흔히들 고요한 물속에 안락하게 잠겨 있으면 모친의 태에 있던 때가 떠오른다는 말을 관용 어구처럼 쓰는 이가 많았다.
그러나 나는 이 세상, 시어런에 다시 태어난 그 날을 떠올렸다.
어찌나 크게 놀랐던지 눈만 감으면 아직도 그날의 천장 무늬가 어른거렸다.
축 늘어진 사지에 온전히 힘이 실리지 않아 손끝 발끝 꼼지락거리는 것이 천근 바윗돌 들어 올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던 그 날, 쌀알만 한 기운을 억지로 일으켜 전신의 혈도를 훑었던 때의 기억이 여태 선명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한 뼘 남짓할, 갓 태어난 아이의 몸을 하였기에 그렇게 막무가내로 일주천을 할 수 있었던 것이겠지 싶었다.
각 혈도와 혈도 사이의 간격이 짧아 기운을 운용하는 시간이 빠르지 않았더라면 이상을 느낀 시종들의 손에 기혈이 뒤틀렸을 수도 있었을 터였다.
내 정신이 적절한 때에 깨인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미의 태 속에서 정신을 차렸더라면 산고의 고통을 함께 겪어야 했을 것이고, 조금 더 나이가 먹은 다음에 정신을 깨쳤더라면 임독양맥을 타통하는 고통을 한 번 더 겪어야 했을 것이었다.
태어난 직후에 정신을 차린 탓에 흐린 눈을 비벼가며 어찌어찌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
새로 태어난 내가 우렁차게 울음을 터트리는 대신에 콜록거리며 첫 숨을 토해내고 지친 듯 잠이 들었다는 것은 이번에 들어 알았다.
나는 그때 내 정신이 온전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지쳐 기력이 달린다는 생각은 하였으되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한 줄은 몰랐다.
모친과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 위하여 여러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면 평생을 몰랐을 일이었다.
갓 태어난 아이가 한숨 한 번을 쉬고, 반나절을 꼬박 자고 일어나더니 손발을 꼼지락거리고 칭얼거리다가 다시 자고, 또 자는 일을 반복했다는 말은 몇 번을 들어도 신기하였다.
아이가 영 울지를 않아 깨어있을 때마다 젖병을 물리는 것이 일이었다며, 퍽 순한 아이었다 평하는 어미의 말에 내가 웃었던가. 놀랐던가.
그도 아니면 서러웠던가.
퐁당퐁당, 자맥질하는 것들의 작은 손발이 내는 소리가 먹먹한 귓전에 닿았다 멀어졌다.
갓 태어난 어린놈이기에 신체의 나이가 정신을 따라가지 못하여 그리도 많이 잤던 것이었겠지 싶었다.
마음 한켠에서는 전생의 내가 꽤 곤하였던 모양이지, 하고 나 자신을 딱하게 여기기도 했다.
귀하고 좋은 것도 먹어본 이가 먹을 줄을 아는 법이다. 이전 생에서 쉬어본 적이 없는 나는 쉬는 것을 몰랐다.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지고 말을 익히고 손발의 운용을 능숙하게 하는 것들 모두가 내게 숨 가쁘게 급한 일들이었음을 이제는 알았다.
힘 빠진 몸이 둥실둥실 물살을 따라 흔들거렸다.
스스로를 관조하는 일은 익숙하였다.
물건을 잡기 위해서 손을 뻗는 것처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내공을 일으키며 마흔 해를 살았던 기억이 나를 빚었다.
편안히 이완된 손끝을 적시는 물살이 몸 안쪽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듯하였다.
“형.”
내공을 운용할 적에는 하단전을 주로 사용하였다. 창궁대연신공을 익힐 적에 그렇게 배운 탓이었다.
남궁의 심법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무인들이 단전을 옳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심신을 갈고 닦았다.
때문에 내가 일으키는 기운은 대부분 배꼽 어림에서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몸 바깥 저 먼 곳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기운은 시어런의 마나를 닮았다.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질의 기운은 차기도 하고 덥기도 했으나, 아주 차거나 아주 덥지 않았다.
서재에 놓인 구름 같은 시어런의 의자나, 몸이 폭 묻히는 시어런의 두툼한 요처럼 온유한 성질의 마나가 차근차근 중단전으로 제 뿌리를 뻗었다.
“형아!”
훅, 손목을 휘감는 어린 손이 있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입 안에 물 몇 모금이 들어온 것은 기침하여 뱉는 대신에 그대로 삼켰다.
한껏 울상을 한 미하엘이 내 손목을 움켜쥔 채였다.
겁을 집어먹은 에반이 그 옆에서 참방참방 물살을 일으키며 내 낯을 들여다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물 위에 조용히 떠 있었는지 깨달았다.
어린 아해들이 겁을 먹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웃으며 팔을 뻗어 미하엘을 끌어안았다. 그 작은 심장이 놀라 팔딱대는 소리가 젖은 몸에 선명하게 전해졌다.
깨달음의 순간을 방해받는 것이 더 이상 짜증스럽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시어런 아카데미에서 몇 번이나 겪은 일이었다. 아해에게 화내지 않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새삼 이 순간 마엘로 샌슨에게 감사해하며 아해의 관자놀이에 입술을 꾹 눌렀다 떼었다.
“물 위에서 자면 안 돼. 위험하단 말이야.”
“응, 내가 미안하다. 너무 편안하고 좋아서 너와 노는 것을 잊었어. 이제 혼자서도 여기까지 수영해서 들어올 수 있는 거야?”
“에반 형이 가르쳐 줬어. 계속 불렀는데, 형은 아무것도 안 하고 여기서 쿨쿨 잠이나 자고.”
“미안하다, 미안해. 응? 내일은 꼭 하루 종일 너와 놀아줄 테니까.”
“정말? 뭐 하고?”
“뭐든.”
뜨끈한 아이를 품에 안고서야 내 사지가 차게 식은 것을 알았다.
한 팔로 헤엄쳐서 물 밖으로 나가는 동안,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켠을 유심히 보고 있던 기사들과 눈이 마주쳤다.
내 호흡의 일정함과 오러의 움직임을 읽었을 벤터스 경이 애매한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내가 깨달음을 방해받은 것을 눈치챈 것이 분명하였다. 난 고개를 내저으며 웃었다.
괜찮았다.
정말로, 신기할 정도로, 아주 괜찮았다.
나는 뭍에 올라서서도 미하엘을 품에서 내려놓지 않았다. 새로운 땅에서 얻은 새 혈족과의 유대가 내 뿌리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언젠가 내가 필연적으로 얻게 될 경지 따위는 해치지 못할 아주 단단한 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