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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73화 (73/176)

73.

아직도 중원의 삶에서 온전히 헤어 나오지 못한 내게는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더 익숙하였다. 태어난 모든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이겨내야만 했다.

그때의 난 모든 이가 과거의 업을 짊어지고 태어났다고 믿었다.

벌레는 벌레로 태어날 만큼 나쁜 삶을 살았고, 빈자는 빈자로 태어날 만큼의 업을 지었고, 귀인은 귀인으로 태어날 덕을 쌓았다. 그러한 불가의 윤회 사상에 감화되어야만, 그 험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일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르벨 남매의 말을 가만히 들으면 빈자는 각 영지의 주인이 잘못하였을 때 산불처럼 피어나는 것이었다.

없는 것을 퍼서 주는 것이 아니라, 유용한 인력을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이끌어서 생산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니 옳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거푸 말했다.

그들이 배우는 모든 것이 결국 세르벨 영지의 영지민들이 안락한 생활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두 남매는 자신들의 위치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다른 귀족들을 계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 선언하는 것으로 말을 맺었다.

나는 무지한 나를 깨우치기 위하여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굳이 꺼낸 것을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세르벨 남매는 내가 나중에 에른하르트 가를 물려받았을 적에 어찌 행세해야만 하는지를 차분히 많은 시간을 들여 가르쳤다.

내가 나중에 미하엘에게 작위를 물려주기를 원하고 있다느니 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만에 하나라도 내가 가문의 수장 자리에 앉는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서 어떤 정책을 펼쳐야 하는가에 대하여 깊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고민할수록 어려운 일이었다.

저 스스로 생각하는 검이 몇이나 있으랴. 사람으로 행세하기 위해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쉽지 않은 길이 옳은 길이라 여겼다. 나는 내심 아비가 세르벨 가를 가까이 여기고 그들의 자손들과 우리를 자꾸 한데 묶어두는 이유를 깨달았다.

이런 마음을 배우게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가는 이의 마음가짐을 품었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내가 멀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날 밤에는 검을 휘두르는 시간을 좀 더 길게 가졌다.

* * *

날이 좋고 유난히 바람이 고요한 날이었다. 아침부터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것이 보기 좋았다.

아침 식사는 정원에서 했으나, 날이 너무 좋아 점심 식사는 바깥에서 하기로 하였다. 매일 어찌 놀지를 궁리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한참을 이야기한 끝에 두 가족이 모두 함께 나가 낚시를 즐기기로 하였다.

세르벨 가에서 낚싯대를 빌려주었는데, 반드르르하게 옻칠이 되어 있는 낚싯대의 길고 낭창한 태가 아름다웠다.

공중에 대고 한 번 휘둘러보니 휙 하고 바람 가르는 소리가 제법이었다.

그 무게의 묵직한 정도나 휘두를 때 휘어지는 탄성 따위가 무척 좋은 낚싯대였기에, 중원에서라면 누군가가 꼭 무기로 들고 다녔을 법한 귀물이라 생각하였다.

로건 세르벨이 슬쩍 제 아비가 아끼는 낚싯대 중 하나이니 귀히 다뤄달라 부탁하기에 마땅히 그리하겠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리를 고민하다가 부친 옆에 나란히 앉았다.

부친은 내가 아해들 옆에 앉지 않은 것이 의아한 기색이었다. 그러나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어린아이들은 시종과 유모들이 따라붙었고, 로건과 레일라는 함께 낚시를 즐기기에는 너무 말이 많았다.

“왜 아이들이랑 놀지 않고.”

“일전에 낚시 내기를 권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왔습니다.”

“그도 그랬지.”

부친이 어쩐지 뿌듯하게 웃었다.

그가 흘려 말한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기꺼이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솜씨를 자신하고 있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꺼내 보이는 물건들을 보고 감탄할 뿐이었다.

윌리엄 에른하르트가 꺼낸 투명한 상자에는 각종 벌레나 물고기 모양의 작은 모형들이 들어 있었는데, 손으로 만져 보니 말랑한 것도 있고 단단한 것도 있었다.

“⋯이것이 미끼입니까?”

“루어라고 하지. 이걸 네게 보여 줄 날이 벌써 올 줄은 몰랐구나.”

“⋯지렁이나 새우 따위는 쓰지 않고서요.”

“너희랑 함께 오는 낚시에 너무 잔혹한 것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단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충분히 물고기를 낚을 수 있어.”

상자 가까이 얼굴을 대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내가 어부는 아니었으나 수많은 물고기를 낚아 본 적이 있어 생각하건대, 이렇게 약간의 비린내도 나지 않는 가짜 미끼로 진짜 미끼를 대신한다는 것이 영 어렵고 이상하였다.

그러나 내가 모르고 낯설게 여기는 것이 이것 하나는 아니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시어런의 사람들이 내게 거짓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긍하고 낚싯바늘이 주렁주렁 달린 물고기 모형 중 하나를 골라 매달았다.

내가 곧장 낚싯대를 던지지 않고 머뭇거리자 부친이 먼저 시범을 보였다.

휙, 호선을 그리며 깔끔하게 날아간 찌와 낚싯바늘이 호수 한가운데에 퐁, 작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안력을 돋워 자세히 살펴보았다. 저 멀리 찍어다 던져 놓고 살살 줄을 풀었다 당겼다 하며 천천히 줄을 이끄는 것은 과연 내가 알던 낚시 방식은 아니었다.

팔짱을 끼고 앉아 기감을 펼쳐 물속을 훑어 살폈다.

낚싯바늘에 얽매여 있는 물고기 모형이 살살 흔들렸다. 몇몇 물고기가 의아한 듯 기웃거리다가 톡, 입으로 모형을 슬쩍 쪼았다.

낚싯대가 정처 없이 흐물흐물 흔들리며 좀 더 가까운 쪽으로 고기를 유인했다.

톡, 톡. 덥석 그것을 잡아 물자마자 날쌔게 낚아채는 손짓에 바늘에 꿰인 물고기가 수면 위로 끌려왔다.

나는 부친이 그렇게 뿌듯해하는 얼굴을 난생처음 보았다.

“자, 이렇게 하는 거란다.”

“예. 알겠습니다.”

나도 낚싯대를 들어 올려 아비가 했던 것처럼 휙 내쳤다.

부친의 것보다 더 큰 물고기를 낚아야겠다는 욕심이 들어 좀 더 멀리 던졌다. 핏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을 가른 줄이 끝없이 풀어져, 먼 곳에서 작은 마찰음과 함께 물속에 떨어졌다.

나는 기감을 돋구었다. 낚싯줄을 따라 먼 곳을 관조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오러를 풀라고 한다면 이렇게 멀리까지 나갈 수 없었겠지만, 얇은 낚싯줄이 내 손끝에 걸려 있어 나 하는 것을 도왔다.

유연하게 움직이는 낚싯줄을 멍하니 보고 있는 부친의 얼굴을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내가 알고 있는 물고기를 흉내 내었다.

곧장 홀린 물고기 몇이 가까이 다가왔으나 아슬아슬한 깊이로 그들을 따돌리며 피했다.

약 오른 것들이 더 난폭한 기세로 덤벼들 적에는 충분히 가까워진 낚싯대를 가볍게 잡아채었다.

그 바늘에 한 번에 물고기 둘이 꿰어 올라왔다.

부친이 잠시 멈칫한 사이에 꿰인 바늘을 풀어낸 물고기를 내 옆에 놓인 어망에 넣었다.

중원에서의 낚시는 그물이나 작살을 사용하여 당장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한 어업의 일종이기도 했으나, 나와 같은 무인들에게는 시간을 버리고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다.

굳이 기를 사용하여 미물을 유혹하는 삿된 짓을 해 본 적은 없었다. 미끼를 던지고 멍하니 물 흐르는 것을 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나 하려고 하면 못 할 것은 아니었다. 물속이 보이지 않는 부친보다야 안법이 깨어 물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내가 더 유리한 것이 사실이었다.

부친은 의아한 기색이었으나 굳이 무언가 질문하지는 않았다.

조용히 낚싯줄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부친도 나도 헛손질을 몇 번 했다. 연이어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많은 물고기를 낚았으니, 아무리 미물이라고 해도 눈치를 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 부려 놓은 짐을 다시 싸서 자리를 옮기기도 번거로웠다.

“이미 충분히 많이 낚은 것 같은데, 이만 얼마나 잡았는지 헤아려볼까요.”

“⋯.”

부친이 대답하지 않아 하늘을 올려다보아 시간을 가늠했다.

아직 시계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자주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그림자를 살피는 것으로 하루를 가늠해 보고는 하였다.

점심나절에 나와 저녁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이미 낚시에 질린 사람들은 물가에 피크닉 매트를 깔아 두고 간식을 먹거나, 저들끼리 눕거나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몇 시간이 넘도록 낚시에 열중한 것은 나와 부친뿐으로 둘의 어망이 이미 묵직하였다.

“아버지?”

“⋯그래, 그러자.”

어망에 있던 것을 옆에 놓인 얼음 상자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내가 잡은 것이 마흔세 마리고, 아비가 잡은 것이 열일곱 마리였다. 그 크기가 자잘한 것들은 바로바로 호수로 돌려보내 주었다고 하더라도 일개 낚시꾼이 하루에 잡을 만한 분량은 아니었다.

그래도 워낙에 함께 나누어 먹을 식솔이 많았다.

이 정도면 그래도 식솔 모두가 한 사람 앞에 한 마리는 못 되어도 반 마리 정도씩은 맛을 볼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하여 뿌듯해하고 있는데 옆에서 낚싯줄을 풀어 정리하던 부친이 문득 억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낚시할 때 혹시 오러를 사용한 게냐?”

“예? 그렇습니다.”

“⋯아니이, 왜? 나는 그러니까, 오러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민간인이고⋯.”

“예?”

“⋯그, 대체. 내기 상품으로 무엇을 걸 생각이기에?”

“아, 그건.”

“그건?”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내기에 대해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

비도술과 마찬가지로 천잠사(*특수한 영기를 가진 누에에게서 뽑아낸 실)를 사용하여 펼쳐내는 무공은 살수의 무공이었다.

새로이 배운 낚시의 묘리가 그와 흡사하지 않은가 하여 좀 더 천변만화의 변화막측한 모양새를 담아 흉내 내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여 잠시 생각한 끝에 차분한 어조로 대답하였다.

“다음에 조용한 곳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친은 돌아오는 내내 아무 말도 않았다.

어쩐지 불안한 기색을 보이기에 그를 달래고 싶었으나, 어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고민하다가 별장에 도착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앞으로 부친의 뜻에 반하는 일이 생애 한 번은 꼭 있을 것 같아, 그 언젠가에 써먹을 작정으로 말을 덧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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