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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69화 (69/176)

69.

별장에 도착한 첫날은 에른하르트 가의 사람들끼리 모여 단란한 식사를 하고,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하여 홀로 체술과 보법을 연마하며 시간을 보냈다.

미하엘과 아스델도 따로 저들의 방을 받았는데, 그 방의 꾸밈이 화려하고 아이들의 나이대에 딱 맞는 장난감이 많아 아이들도 무척 좋아했다.

두 번째 날에는 두 가문이 함께하는 오찬이 있었다.

함께 식사하며 별장 주변에 있는 놀잇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다란 호수가 있어 수영이나 낚시, 혹은 뱃놀이를 하여도 좋고, 지대가 높아 여름 들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곳을 구경 가도 좋고, 아예 숲으로 들어가 사냥을 즐겨도 좋고⋯.

할 수 있는 놀이가 끝이 없었다.

이야기하는 이도 듣는 이도 신이 나 있어 덩달아 흥이 났다.

내게 무엇을 먼저 하고 싶냐고 묻기에, 여행을 계획하던 때부터 양친이 물놀이에 흥미를 느낀 듯하여 뱃놀이를 먼저 하고 싶다고 대답하였다.

모친이 민망한 듯 나를 흘겨보았으나, 그 입가에 웃음을 함뿍 머금고 있어 조금도 걱정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말을 타고 이동하기로 하였다.

아이들 몫으로는 당나귀가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 세심함에 놀랐다.

푹신한 쿠션이 덧대어져 있는 데다가 안장에 등받이까지 있어 승마에 서툰 아이들도 쉬이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고, 떨어진다 해도 크게 다칠 염려가 없었다.

당연히 아이들을 품에 안고 말을 탈 생각이었던 내가 당나귀들을 살피고 있자 세르벨 백작이 웃는 낯으로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그는 로건 세르벨의 아비로, 로건보다 머리 색이 좀 더 짙은 편이었다. 성격도 그만큼 더 서글서글하여 사람을 대함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왜요. 동생이 걱정됩니까?”

“아닙니다. 그저 신기하여 그렇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도 말이 한 마리씩 주어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터라.”

“우리 세르벨 가문에서는 아이들이 원하는 건 어떻게든 손에 쥐여주는 편입니다. 많이 가져 보고 또 많이 잃어 봐야 손에 쥔 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배우게 되는 법이니까요.”

“그렇군요.”

“또, 어린 나이에 혼자서 말을 타 본 경험은 아이들에게 아주 특별한 자랑거리가 될 테니까요. 저도 그랬거든요.”

굳이 말하자면 말이 아니라 당나귀였으나 아이들의 눈에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것처럼 다정히 내 어깨를 두드리고 제 말을 찾아가는 세르벨 백작의 등을 바라보았다.

로건이 누구를 닮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키가 작아도 듬직해 보이는 가주의 등이다. 가문을 어떻게 이끌지 이미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나 또한 이번 여행 중에 황위 계승에 대하여 에른하르트 가문에서는 어떤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물어야겠다 하는 마음을 먹었다.

부친과 둘이 될 기회를 기다리며 내 몫으로 주어진 흰 말에 올랐다.

순하고 어여쁘게 생긴 구름처럼 새하얀 말에 짙은 푸른색의 고삐와 안장을 갖춰 둔 것이 오늘의 신선놀음에 걸맞은 외양이었다.

“자, 가자.”

이랴, 고삐를 쥐고 가볍게 내리치자 백마가 천천히 걷기 시작하였다.

당근을 하나씩 받아먹은 당나귀들도 아이들의 서툰 몸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집 큰 말들의 곁에 따라붙어 총총 걷기 시작하였다.

기사들이 부러 멀찍하게 떨어져서 따라와 고즈넉한 풍취를 느낄 수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말을 몰았다.

빠르게 달린 것이 아니라 산책하듯 천천히 말을 이끈 터라 몸에 조금도 무리가 가지 않았다.

내 욕심 같아서야 오랜만에 타 보는 말을 이끌고 저 멀리까지 달려갔다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아이들을 태운 당나귀가 덩달아 흥분할까 봐 겁이 나 얌전히 일행을 따랐다.

그러는 중에 저 앞쪽에서 탄성이 일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수풀 사이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설핏 보였다가 사라졌다.

말을 몰아 야트막한 언덕을 넘자마자 황홀하게 빛나는 호수가 두 눈 가득 들어왔다.

날 좋은 하늘을 고스란히 담아 푸른빛이었고, 쏟아지는 햇빛을 고스란히 품어 은빛이었다.

호수의 앞쪽으로는 건조한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어 놀기에 더욱 좋았고, 뒤쪽으로는 풍성한 수풀이 빙 둘러 신비로운 맛을 더했다.

사박사박, 말발굽 소리 또한 보드랍게 났다.

몇 걸음을 걷다가 세르벨 가 인물들이 말에서 내리기에 나 또한 그렇게 했다.

호위 기사들이 아이들을 당나귀에서 내려 주는 것을 보고 고삐를 쥔 채 앞으로 걸었다.

“맑은 물이니까 말들은 이 앞에다가 풀어두어 물도 좀 마시고 쉬게 합시다. 놀이 배는 저쪽에 묶어 두었어요.”

“이쪽은 얕은 물이라 수영하고 놀기에 좋지만, 배 밑바닥이 자꾸 닿아서 노를 젓기에 불편하기에 멀리 묶어 두었지요. 배는 투명한 것과 하얀 것, 두 종류가 있답니다. 어떤 게 더 좋아요?”

세르벨 백작 내외가 흥이 실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들은 이 별장에 손님을 자주 초대하는지, 사람들이 원하는 선택지를 내어주는 데에 아주 능숙했다.

나와 동생들은 배가 투명하다는 말이 신기하여 투명한 것을 골랐고, 양친은 모친이 투명한 배는 무섭다고 하여 흰 배를 타기로 하였다.

배를 모는 데에 능숙한 세르벨 가의 인물들이 우리를 도와주기로 하였다.

모친과 부친은 세르벨 백작 내외와 같은 배를 타게 되었고, 나와 두 동생이 탈 배에는 로건 세르벨이 함께 타서 내게 노 젓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하였다.

로건의 두 동생들은 호위 기사들과 함께 배를 타도 괜찮다며 어른스럽게 가족을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쪽으로 몰래 눈웃음을 보내는 것을 보니 크게 아쉽지 않은 모양이라 참 다행이었다.

놀이 배는 길쭉하고 밑바닥이 좁았다.

배 내부에는 네 개의 볼록 솟은 단이 있었는데, 그것이 의자의 역할을 한다 하였다. 한켠에 마석이 몇 박혀 있었다. 물어보니 투명화 마법 수식을 새겨 두었단다. 허어,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운데의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는 것이 정석이라 하여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보게 된 미하엘과 아스델이 뭐가 그리 재밌는지 저들끼리 킥킥거렸다.

나와 로건은 키보다도 훌쩍 큰 노를 두 개씩 받았다.

놀이 배의 양켠에 노를 걸 수 있는 지지대가 있어, 그곳에 노를 끼워두고 박자에 맞춰 내저으면 되는 간단한 방식이었다.

작은 배였으나 잔잔한 호수에 띄워 놓고 놀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로건이 먼저 배에 타, 내가 아이들을 들어 건네는 것을 받아 자리에 앉혔다.

마지막으로 내가 탔을 때 배가 잠시 휘청하였으나 도와주는 시종이 있어 안정적으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 하나 하면 당기고 둘 하면 미는 거야.”

“그래.”

“하나, 둘. 하나, 둘⋯.”

뭍에서 로건이 노를 어떻게 움직이면 되는지 시범을 보여 준 덕분에 능숙하게 노를 저을 수 있었다. 불쑥불쑥 배가 앞으로 나아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속도가 빨라 재미있었다.

우와아! 소리를 내며 양켠의 손잡이를 작은 손으로 꼭 잡고 감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여웠다.

“자, 잠깐! 미카엘! 너무 빨라!”

“음?”

“천천히, 천천히 가야지! 경주하는 게 아니잖아⋯.”

“음.”

팔을 너무 열심히 움직인 모양이었다. 가벼운 묵례로 사과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투명한 바닥과 잔잔한 물결을 번갈아 바라보던 아스델이 문득 히야, 하고 귀여운 탄성을 내뱉었다.

“오빠, 여기 물고기 있어. 막 막 지나가.”

“어디? 어디 있어, 물고기?”

“여기.”

아스델과 미하엘이 고개 숙여 바라보는 것을 같이 보기 위해 잠시 손을 멈추었다.

그 아래에 있는 생물들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무척 신기하였다. 나 또한 홀린듯 붉고 노란 물고기들을 들여다보았다.

“관상어를 미리 풀어 두었나?”

“그럴 리가. 여기 원래 살던 물고기들이야. 오히려 관상어를 섣불리 들였다간 기존에 살던 물고기들이 상할까 봐 가끔 먹이만 주고 있어.”

“먹이로는 무엇을 주기에?”

“그냥, 실지렁이나⋯ 곡식을 빻아 뭉친 물고기 밥 같은 거.”

거의 놀이 배의 바닥에 엎드려 붙어 있는 아이들의 어깨를 쥐어 바로 앉게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새 호수의 한가운데였다. 양친과 세르벨 백작 내외가 탄 배는 호숫가를 느긋하게 도는 중이었다. 내가 배를 빨리 몰긴 하였구나 하는 생각에 멋쩍어졌다.

“이제 좀 느긋하게 즐기자, 우리도. 여기에 노 걸어서 고정해 두면 돼.”

“음. 이렇게?”

“맞아, 그렇게. 배에서 일어서면 뒤집힐 수 있으니까 절대 일어서면 안 돼. 알았지?”

“네에!”

“네!”

이미 뭍에서도 몇 번은 들은 안내를 반복하여 알리는 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일 터였다.

미하엘과 아스델이 곧잘 대답하며 화사하게 웃고 다시 고개를 숙여 호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들끼리 손가락질도 하고 까르르 웃기도 하는 모양새에 마음 한켠이 뿌듯하였다.

아이들을 사이에 두고 로건과 마주 앉아 있으려니 묻고 싶은 것을 묻기도 멋쩍고, 아무 소리도 않기도 민망했다. 잠시 할 수 있는 말을 고르다가 결국 입을 묵묵히 닫은 채로 있으려니 로건이 괜찮은 화제를 꺼냈다.

“너랑 이렇게 뱃놀이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보다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서 기쁘다.”

“음, 나도.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물은 좋아했다. 너른 호수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호연지기가 그득 솟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중원에서도 동정호를 좋아했다. 큼직한 호수에 세상의 모든 희노애락이 고인 것을 보고 있자면 서운한 것도 서운하지 않게 되었고, 슬픈 것도 슬프지 않게 되었다.

친우를 잃고 쓸쓸할 적에도 큰 강가에 앉아 시간을 죽이고는 했다. 사흘이고 나흘이고 낚싯대를 드리운 채 있다가 물고기가 잡히면 잡은 고기를 도로 강에 던지고, 던지고 하였다.

끊이지 않고 흐르고, 막힘 없이 지나가는 물을 보면 잃어버린 이의 시간도 계속하여 흐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좋았다.

그러나 그 물의 속내를 들여다볼 일이 언제 있었겠는가.

그간 물의 겉을 훑을 줄만 알았지, 수초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물고기가 어떻게 떼를 지어 헤엄치는지를 찬찬히 살펴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날을 기회로 삼아 실컷 눈요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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