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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65화 (65/176)

65.

이틀이 지난 후에는 아침 훈련 시간을 사용하여 에른하르트 소백작가에 머무르는 모든 기사의 실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학기 중에 이 땅의 오러 사용법에 대하여 여러 차례 반복하여 살펴 두어 다행이었다.

이제 나 또한 오러의 모양을 흉내 내거나 살피는 정도는 할 수 있어, 기사들의 검식을 시어런의 방식대로 보아줄 수 있었다.

볕 좋은 낮에는 대련을 하기도 하였다.

모친과 부친을 상석에 모셔 두고 기사들을 상대하였다. 일류와 절정 사이의 기사들이 하나하나 차례로 연무장에 올라올 적마다 박수 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간간이 부러 내게 져 주려 하는 이들의 검을 빼앗아 훈계하기도 하였다. 구경하겠다고 모인 시종, 시녀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했다.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오후에는 여행 날 입을 옷을 짓기 위하여 허수아비마냥 한참을 버티고 서 있었다.

이리저리 돌며 몸의 치수를 재는 것은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으나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에 쟀던 것보다 몇 치(*약 3cm)는 자랐다는 이야기가 위안이 되었다.

여행지는 내가 다섯 살 적부터 얼굴을 익힌 세르벨 백작 가문의 별장으로 정했다.

큰 호수를 옆에 끼고 있어 무척 아름다운 곳이라 하였다.

세르벨 가문 측에서 해마다 양 가문의 아이들이 함께 휴가를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며 서신을 보내왔으나, 매번 나의 거절로 찾아갈 수가 없었다는 것을 이때 뒤늦게 알게 되었다.

세르벨 백작가는 에른하르트 백작가와 나란히 이웃한 영지를 가졌다.

너른 숲을 근거지로 삼아 나무와 짐승을 길렀는데, 우수한 목재와 짐승의 가죽으로 유명하다 하였다.

에른하르트 백작가에서는 곡식과 과실을 기르니 서로에게 없는 것을 더해 줄 수 있는 좋은 동무라 할 수 있겠다.

세르벨 백작가에는 세 아이가 있는데, 그중 첫째는 나도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로건이었다.

어린 시절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나를 위해 나와 눈이 마주치는 모든 소년 소녀들의 이름을 크게 부르거나 내 귀에 속삭여 주고는 했던 눈치 좋은 놈이었던 기억이 있다.

로건 세르벨이 지금의 내 몸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았던가⋯.

그의 동생들 중 하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하나는 나보다 나이가 적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났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어린 녀석 쪽이 나와 아카데미를 함께 다닐 나이가 아니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

현재 시어런 아카데미에 세르벨 백작 가문의 자손이 있었다면 쉐이든이 분명 가까이 여기고 있을 터인데, 미리 물어볼 것을 그랬다 생각하였다.

“그럼 여행지에 가서 세르벨 백작 가문의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까?”

“그럼, 한 달이나 머무를 테니 주인이 있는 집이 좀 더 머무르기에 편하지 않겠니.”

“⋯으음.”

“세르벨 영식, 영애들과 함께 사냥하는 법도 배우고 뱃놀이도 즐기면 무척 재미있을 거야. 물론 우리 가족들끼리의 시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해 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럼 에반 형도 와요?”

“에반 형?”

“세르벨 가문의 셋째 말이구나. 물론 오겠지?”

“와, 신난다!”

미하엘의 옆에 앉아있던 아스델 또한 신난다고 발을 동동거렸다.

세르벨 가문의 셋째는 내 나이 다섯일 적에 태어난 아이였다. 따져 보니 미하엘과 아스델의 또래이긴 하였다.

내가 모르는 아해들의 동무를 상상하지 못하고 있던 것에 잠시 놀라 눈만 끔벅거렸다.

혈족들끼리 끈끈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마음이 없잖아 있어 잠시 서운한 마음을 품었으나 금방 떨쳐냈다.

겨우 사나흘이 아니라 방학 기간의 절반을 쏟아내는 긴 여행이었다.

또 로건 세르벨이 해마다 나를 도와주느라 정성을 쏟은 것을 알면서도 꺼려 하는 것은 사람의 행실이 아니라 여겼다.

나 또한 수긍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꾸리는 대로 바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지금 있는 장원에서 휴양지까지는 마차로 사흘이 걸린다 하였으니, 곧장 출발한다고 해도 시간이 빠듯하였다.

나도 무언가 손을 보탤 일이 있을까 하여 물었더니 다른 것은 없고 기사들과 훈련할 때 진을 덜 빼도록 하라는 말에 그저 웃었다.

* * *

마차를 이용하여 이동하는 것은 시어런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시어런 아카데미에서는 근처 시전에 나갈 때에도 마차를 불러 탔다.

길이 잘 닦여 있는 덕분인지, 내 나이가 어려 먼 길을 걸어가는 것이 보는 이를 불안하게 하는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이동하는 동안에는 당연하게도 따로 수련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시어런 아카데미에서 집으로 올 적에는 간간이 찌뿌둥한 몸을 풀기 위해 쉐이든과 대련을 벌였기에 이렇게까지 몸이 근지럽지는 않았더랬다.

경공 수련은 먼 거리를 직접 뛰어 훈련해야 하는 만큼, 나는 이 기회에 마차 곁에서 달리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였으나 부친과 모친이 격렬하게 반대하여 그만두었다.

내가 말과 같은 속도로 달릴 수 있는지에 대한 건 둘째 치고, 이번에는 가족 여행을 가는 것이므로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는 말에는 이길 재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지금 나는 푹신한 방석을 깔고 마차에 편히 앉았다.

열린 창문 너머로 다그닥다그닥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양옆에 어린 아해 둘을 끼고 앉아, 맞은 편에 앉은 부친과 모친의 말 상대를 하였다.

아주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손이 심심하여 자꾸만 얌전히 앉아 있는 미하엘과 아스델을 양손으로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양팔의 근력을 기르기 위함이었다. 아해들을 무게추 취급하는 것에 부친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해들은 마냥 좋다고 까르륵 웃어 내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우리 첫째는 마차 여행의 운치를 즐길 줄 모르는구나.”

“어머니께서는 본디 마차 여행을 즐기는 편이셨습니까?”

“나? 나는⋯ 사실 집 밖을 떠나서 멀리 갈 일이 많지는 않았어서⋯. 어딜 간다 하더라도 늘 신이 나서 마차 창문 밖을 내다보면서 이런저런 사색을 하는 편이었어.”

“아버지께서는 그러면.”

“⋯나는 멀미를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였고⋯. 보통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사업차 가는 일이 많아서 마차 안에 집무실을 꾸려 서류 정비를 하였지.”

“음⋯.”

“아니, 이번에는 일을 마치고 왔으니 괜찮아. 진짜야.”

내가 아비를 어떤 눈으로 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당황하여 안달복달하기에 그냥 웃어 주었다.

내가 장난친 것을 알아차린 아비도 멋쩍은 표정으로 헛기침을 하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어미가 꺄르르 소리 내어 웃으며 아비의 어깨를 툭 두드렸다.

“얼마나 일만 했으면 아이가 이런 걱정을 해요?”

“⋯사실 미카엘은 나를 닮은 걸까요? 검술을 수련하는 모습이 아무래도⋯.”

“어머. 그렇지만 미카엘의 다정한 부분은 역시 절 닮은걸요.”

나의 양친은 요사이 나의 성정이 그들 중 누구를 닮았느냐에 대해서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세상의 어미와 아비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윌리엄과 세이른은 내 머리털과 눈의 색은 어미를 닮았으되 눈매는 아비를 닮았다거나 손발톱의 모양은 어미를 닮았다 하여 수선을 부리고는 하였다.

외양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하던 것이, 이제 성격과 성품에 대한 것으로 옮겨 왔다.

내 성정은 중원에서부터 죽 일정하여 크게 바뀐 것이 없었으나, 그들이 속살거리며 즐거운 소리를 하는 것이 좋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중간중간, 맞는 말입니다. 하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만으로도 효를 다 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었다.

“나는? 나는 누구 닮았어?”

“우리 아스델은 완전 엄마를 닮았지~! 이렇게 예쁜 분홍 구름 같은 머리칼을 가지고 있잖니! 게다가 웃는 얼굴이 엄마랑 똑 닮았어. 그러면서도 눈 색은 아빠를 닮아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따뜻한 기분이 든단다.”

“나도! 나도 해 주세요!”

“미하엘은 아빠를 닮았지. 결 좋은 검은 머리도, 책을 좋아하는 것도, 잠잘 때 꼭 옆으로 누워 자는 것도.”

“제가 옆으로 자요?”

“네, 당신이요.”

부친이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다가, 무언가 깨달은 듯 만면에 미소를 흠뻑 머금었다.

시어런의 다정한 부부는 침실을 같이 쓴다 하였다. 부친이 모친에게 등을 돌리고 잘 리가 없었다. 그들이 서로 은애하는 마음이 크고 깊은 것을 이렇게 은연중에 드러나 나 또한 짧게 웃었다.

미하엘이 옆으로 누워 자던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말 그러했다.

어릴 적부터 하도 내가 옆에 끼고 잠을 청한 탓인가 싶었다. 이제 나이가 들어 홀로 자는 밤이 늘었는데도 삐딱하게 잠을 청하면 다음 날 몸이 찌뿌둥할 것을 알아 걱정이 일었다.

“옆으로 자면 불편하지는 않아?”

“으응, 난 몰랐어. 어머니는 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옆으로 자는 거.”

“그야 내가 우리 아들을 아주 사랑하고 있으니까 알지?”

이리저리 아이를 골리던 모친이 모두가 잠든 새벽에 방문을 열어 보곤 한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이는 깨어서 어미에게 응석 부리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나는 아비와 어미가 나란히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확인했을 모습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그들의 정이 깊고 따뜻할수록 가문이 평온할 터였다.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다 보니 별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양친이 다녀왔던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들이 왜 그렇게 여행을 가고 싶어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양친 모두 성인이 되기 전에는 가문의 일이 바쁘고 어른들이 엄하여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하였고, 이른 결혼을 한 이후에는 곧장 내가 태어나 아이를 돌보느라 소백작저에 묶여 있었다 하였다.

나는 새삼스럽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 겨울 방학에도 다 같이 가족 여행을 하자고 이야기했다. 온 가족의 박수와 환호를 받았다. 아주 멋쩍었다.

아스델은 어젯밤 꿈에서 본 커다란 짐승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어찌나 이야기를 실감 나게 하는지 모두가 잔뜩 집중하여 들었다. 그다음에는 미하엘이 제가 꾼 악몽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눈물을 보여 가족들의 위로를 받았다.

한참을 그러던 중에 열린 마차의 창문으로 말을 탄 기사 하나가 슬쩍 고개를 가까이 했다.

이번 여행을 호위하게 된 벤터스 경은 잠시 쉬면서 식사하기에 좋은, 고른 땅을 찾았다고 알렸다. 부친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고, 곧 마차가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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