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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58화 (58/176)

58.

새로운 주의 시작에는 늘 검술 수련과 함께 마법 수식에 대한 가르침이 있었다.

바로 지난주에 처음으로 빙결 마법식을 만들어 내는 데에 성공한 나는 이번 수업을 무척 기대하고 있었다.

마법과 수식 원리 기초 수업에 참여하기 위하여 아카데미를 가로지르는 걸음에 흥이 실렸다.

마나를 중단전으로 끌어왔다가 내보내는 연습도 이제는 그저 지루하기만 한 헛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얌전히 기다리면 앤젤라 스팅 교수가 봐주는 앞에서 빙결 마법식을 사용하는 법을 반복해서 연습할 수 있으니 그 재미가 각별하였다.

그래서 기분 좋게 수업을 끝마쳤을 때, 제 앞길을 막아선 에드윈 키아드리스는 예상외의 존재였다.

그래도 고개 까닥여 인사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선배 대접은 해 줄 생각이었다. 잠깐 얘기 좀 하자며 나를 데리고 나가려는 행동에 의아하였으나 순순히 뒤를 따랐다.

있는 줄도 몰랐던 마법부 휴게실 소파에 앉게 되었다.

벽면에 신기한 문양을 새긴 태피스트리를 여기저기 걸어 둔 것이 눈에 띄었다. 가만히 소년이 꺼낼 말을 기다렸다.

에드윈은 언제나처럼 곱게 머리를 빗어 내리고 단정히 교복을 차려입은 차림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이전처럼 바로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망설였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곧 졸업할 선배를 소개해 주려고 하니 걸리는 부분이 많아서.”

“예?”

“네가 굳이 마법부의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겠어. 영지 경영에 도움을 원하는 거라면 지역 마탑의 선배를, 연구에 흥미가 있는 거라면 연구소 출신의 선배를, 그저 친분이 넓은 사람을 원하는 거라면 그에 마땅한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나는 그제야 에드윈과의 마법 대련에 걸었던 내기의 내용이 기억났다.

에드윈 키아드리스의 눈치를 보느라 내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것을 두려워하던 마법부의 소년, 소녀들이 대수롭잖게 내게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되었고, 더글라스 머스탱의 소개로 고위 마법사인 메이지 볼더 등과 안면을 트게 된 덕분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입을 꾹 닫고 있기에 모른 척 넘어가려는 줄로만 알았다. 지금까지 내내 골몰하고 있었을 소년의 서툰 마음에 웃음이 났다. 혀를 차면 서러워할 것이 뻔하여 입을 꾹 닫고 고민하였다.

진중한 대답을 돌려주고 싶었으나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그래서 솔직히 답하기로 하였다.

“이유가 필요합니까?”

“⋯뭐?”

“그냥 친한 마법사가 생기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마법은 신기한 것이니까,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싶기도 하고. 또 보통 책에서 보면 검사와 마법사와 연금술사가 함께 다니기에 저도 그런 좋은 동무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지금 진심으로 얘기하는 거야? 책에서 마법사와 검사가 함께 다녔다고?”

“예. 별 이유 없었습니다.”

“하⋯.”

에드윈 키아드리스의 적금빛의 눈동자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새초롬한 눈매가 사납게 치켜 올라가는 것을 멀뚱히 구경하고 있자, 에드윈이 제 구겨진 미간을 손을 사용해 꾹꾹 눌렀다. 그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더니 다시 툭 물었다.

“⋯모험 파티라도 꾸려서, 어디 여행이라도 떠날 생각이야?”

“그럴 리가요.”

“그럼.”

“그냥 문득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나 보려고.”

“그런 거면 나로 해, 그냥.”

“예?”

“누구 소개받고 말고 해서 괜히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나한테 물어보라고.”

“선배는 절 싫어하시잖습니까.”

“⋯뭐?”

“제가 웨슬리 키아드리스를 닮아서.”

녀석의 목덜미에서부터 붉게 꽃물이 올라왔다.

그가 나를 싫어하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인데 새삼스럽게 왜 저런 반응을 보이나 의아하였다.

머리끝까지 새빨개진 에드윈은 몇 번 입을 빠끔거리다 닫았다. 뭍으로 끌려 나온 붕어처럼 입만 뻐끔대는 모양새가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아도 내가 못 할 말을 한 것은 아닌 듯하였다.

사람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싫어하고, 또 어떠한 까닭 없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었다. 나름의 이유가 붙는다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싫은 이를 곁에 오래 두고 있으면 미움받는 이도, 미워하는 이도 마음이 상하고 힘든 법이다.

나 힘든 것이야 참아 넘길 수 있지만, 괜히 끙끙 앓을 놈을 곁에 두고 구경하는 취미는 없었다.

앉은 자리가 편안하였고 급한 일이 없으니 침묵이 길어진다 하여 재촉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소년은 시선을 내리깔고 제 눈가를 손으로 짚어 가렸다. 꿩도 아니고 제 머리만 숨기면 온몸을 숨긴 줄 아는 것인지.

“⋯내가.”

한마디하고 한참을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목소리가 젖어 들어 있는 것을 눈치챘다. 어른이 되어 서툰 어린 아해를 가지고 노는 기분이 들어 괜스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달래는 것이 아니어도 타이르기는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내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음이 상하지는 않았습니다. 애초에 괴롭히려 군 것인 줄도 모르고 있었고.”

“⋯.”

“스스로 부끄러운 일을 하였다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더 탓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저 싫은 생각을 계속 떠올리게 하는 것이 저어하여 곁에 머무를 생각이 없을 뿐입니다.”

“⋯.”

“다만 이 일을 교훈 삼아, 스스로 부끄러울 일을 앞으로 하지 않겠다 마음을 먹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새빨갛던 얼굴이 다시 희게 질렸다. 이쯤 되니 자리를 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의 섬세한 감정 변화를 따라갈 수 없기도 했고, 만약 울기라도 하면 달랠 길이 막막하였기 때문이었다.

앉아 있던 소파의 손잡이를 느리게 훑으며 이제 일어나겠다 말할 만한 적당한 때를 가늠하고 있자니 에드윈이 똑바로 고개를 쳐들어 이켠을 보았다.

“미안해, 미카엘 에른하르트.”

“⋯.”

“가장 먼저 이 말부터 해야 했는데 늦었다는 걸 지금 알았어. 내가 유치하게 굴었어. 이런저런 이유를 덧붙인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게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 네가 원하지 않을 것도 알지만.”

“음.”

“네게 도움이 필요할 때, 조건 없이 도와줄 수 있는 마법사가 필요하다면 날 불러.”

작게 감탄했다.

아무리 유약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맹수의 새끼임이 분명하였다. 갸름한 눈이 울음기 없이 나를 올곧게 보고 있었다.

일전에 대련이 끝나고 난 뒤에 마리앤과 제니가 저들끼리 속닥이던 내기가 또 생각났다. 이번에는 제니가 은전을 줘야겠다.

“조건 없이?”

“맨입으로 사과하는 건 키아드리스의 방식이 아니야. 피해를 줬으면 보상을 해야지.”

“몇 번이나?”

“⋯계약서라도 쓰자는 거야?”

“아뇨, 그냥 제가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그럼 알았습니다. 제 이름은 미카엘 에른하르트입니다.”

“⋯? 알아. 갑자기 무슨⋯.”

“새로 소개받은 선배인 셈 치겠습니다.”

“⋯!”

에드윈 키아드리스. 제 이름을 읊조리며 내미는 소년의 손을 잡았다.

악수를 나누며 살펴보니, 검지와 중지의 펜을 쥐는 자리에만 못이 박힌 부드러운 손이었다. 이 손이 그렇게 굳세고 사나운 마법을 자아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간단한 인사만 나누고 서로 민망하고 서먹하여 자리를 파했다.

* * *

화요일 고급 검술 시간에 벤자민과 루베르에게 에드윈과 화해한 이야기를 알렸다.

벤자민은 참 잘된 일이라며 무던하게 대답하였으나, 루베르는 어쩐지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그 까닭을 물으니 별것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 하여 알겠다고 대꾸하고 말았다.

그러나 혼자 생각하기에, 나중에 루베르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 적에 세력이 큰 공작가와 내가 가까우면 황권에 위협이 될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 웨슬리와 대마법사의 자질이 보이는 에드윈이 있는 키아드리스 공작가였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목표로 정진하는 내가 그들과 힘을 합치면 꽤 거대한 무력 집단으로 행세할 수 있을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지금의 웨슬리가 그러하듯이 나와 에드윈도 장차 성장하면 각자의 세력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의 마음이 심란한 것도 이해가 됐다.

내게 이 따스하고 온건한 세상을 뒤흔들고 싶은 욕심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

쉐이든도 꽤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와 에드윈의 화해를 축하해 주었다. 쉐이든 로제에게서는 충분히 떨떠름해하던 이유를 들을 수 있었기에 이해가 쉬웠다.

쉐이든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조건 없는 도움을 베풀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키아드리스 공작가로부터 백지 수표를 받은 격인 내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고 하였다.

나는 즉답하였다.

“그럼 네가 도와주면 되지 않아.”

“⋯내가?”

“그럼. 모름지기 친구라면 서로 도와줘야지. 내 생각에 에드윈은 쉐이든 너와 성격이 꽤 잘 맞을 것 같다.”

쉐이든은 어쩐지 욕을 들어 먹은 기분이라며 고운 얼굴을 일그러트렸으나 내 생각은 여전하였다. 둘 다 차분하고, 생각이 깊고,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읽기를 숨 쉬듯 하였다.

그 둘을 붙여 두면 서로 눈빛만 봐도 알고 통하는 지음이 되지 않겠는가 여겼다.

그러나 교양 세계사 수업과 제국의 계보 수업을 듣는 오후 내내 쉐이든 로제의 심기가 불편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내가 잘못 말했다 사과하여 용서를 받았다.

저녁 훈련이 끝난 뒤에 우연히 마리앤을 만나 이 일에 대하여 조언을 구했다.

마리앤은 원래 닮은 사람들끼리는 서로를 싫어할 수 있다는 고언을 전해 주었는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옳았다.

겸사겸사 마리앤에게도 에드윈 키아드리스와 화해한 것을 알리게 되었는데, 소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예전에 한 번 내게 물었던 것을 다시 물었다.

“성격 나쁜 놈이랑 가까이 지낼 필요 없다면서요⋯?”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용서하지 못할 이유 또한 없어서요.”

“와⋯. 근데 진짜 화가 안 나요? 정말로? 왜?”

“별로 심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어린애가 얼마나 속상했으면 그럴까 싶기도 했고⋯?”

“⋯에드윈 선배님이 어려서 봐준 거라고요?”

너무 솔직하게 대답한 모양이었다. 마리앤이 괴상한 것을 보듯 나를 돌아보기에 땀에 젖은 머리나 쓸어 넘기며 대강 실수로 아무 말이나 하였다 대꾸하여 넘겼다. 한참을 옆에서 재재거리는 것을 어르다가 문득 나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제니에게 2실버 돌려받을 겁니까?”

“당연하죠. 이자까지 쳐서 받아 올 거예요.”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여간 귀여운 아해들과 함께 어울리니 매일매일이 웃을 일로 가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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