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49화 (49/176)

49.

맷 니코의 자기 자랑 아닌 자기 자랑을 듣고, 마나와 오러 수업을 듣기 위해 더글라스 머스탱을 찾았다.

시험 기간 중에 대련하고, 그다음 수업 시간에는 시험의 결과에 대해 발표하고 설명하고 해설하는 시간을 가졌던 터라 이전과 같은 방식의 수업을 재개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또다시 예민하고 기감이 일찍 트인 아해들은 죽어라 오러를 쏟아내고, 둔하지만 열심히 하는 아해들은 죽어라 검을 휘두르는 일의 반복이었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손님을 맞았다.

일전에 대련 때 잠깐 보았던 마법사들 중 하나가 수업 시간에 가외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더글라스 머스탱 교수가 설명하기를, 자신은 다른 아이들도 돌봐줘야 하기에 내게 시간을 많이 할애할 수 없다고 했다.

하여 수업 시간 중에 나 홀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되니 내게 도움이 될 법한 마법사들을 하나씩 수업 시간에 선보여 주겠다고 했다.

다만 무엇인가를 섣불리 약속하지 말고, 내가 필요한 것만 물어 성장의 밑거름으로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무언가 서명하라 하거든 반드시 저를 불러라 하며 충고하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스승의 은혜가 끝없이 드높았다. 나는 마냥 감사하여 고개만 주억거렸다.

“다시 또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에른하르트 영식! 일전에도 인사드렸던 메이지 볼더입니다. 학생들은 볼더 님, 볼 법사님, 뭐 대충 이렇게 부르는데. 에른하르트 영식도 편하게 부르세요. 야! 메이지! 이런 것만 아니면 됩니다.”

“그, 메이지란 것이 이름이 맞습니까?”

“어어. 아, 검술부 학생이면 모를 수도 있겠군요. 아무래도 일찍이 눈이 트인 아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든 사고를 많이 치는 편이라 마법사의 자질이 보이는 아이들은 마탑에서 일찍이 한데 모아서 키우거든요. 마탑에 입양된 마법사들은 전부 같은 성을 공유하는데 그 성이 ‘메이지’예요. 저는 2마탑 보호원 출신이구요. 메이지라고 부르는 건 따지자면 호칭 같은 거라⋯, 제 이름은 볼더입니다. 둥근 돌이라는 뜻이죠.”

그렇게 소개받게 된 메이지 볼더는 마탑 출신의 마법사로, 마흔 후반에 물경 7서클에 이른 엄청난 대마법사라 하였다. 자기 입으로 엄청난 사람이다, 자랑스럽게 뽐내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멋져 보이기도 하였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게도 어쩐지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름자였다. 인체에 마나를 축적하면 어떻게 되는지 시험한 보고서를 꾸준히 써 왔던 마법사 중 하나였다. 더글라스 머스탱의 교수실에서 들춰 본 보고서들에서 그 이름자를 읽은 기억이 남아 있었다.

일전의 대련 날 나 하는 것을 보고 더글라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린 것들 중 자신이 가장 절실하였다 뽐내는 모습이 수선스러웠다.

나를 건드리지 않을 것을 단단히 약속받고 메이지 볼더가 보는 앞에서 운기조식을 하였다.

소주천과 대주천을 차근차근 올바른 단계로 마치고 나니 메이지 볼더가 손수건을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메이지 볼더는 마나의 사랑을 받아 건강한 편이었으나, 그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얼굴에 묻어나는 위인이었다. 둥근 눈꼬리가 처져 귀염상이긴 하였으나 그렁그렁한 눈으로 손수건을 물어뜯는 행위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다시 한번 이 땅의 인물들이 거침없이 쏟아 내는 감정 표현에 흠칫 놀라는 순간이었다.

“그⋯ 메이지 볼더⋯?”

“으아아아아아! 되네요?! 이게 되는 거였네요!”

벌떡 일어나 끌어안으려 하기에 뒤로 물러서서 피했다.

허공에 팔을 휘적인 볼더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허공을 휘휘 휘저었다. 어설픈 주먹질이었으나 환희가 그득 담겨 있어 내공을 실은 주먹보다 깊은 감정을 자아내는 몸짓이었다.

나는 어설피 서서 그 모습을 구경하였다.

어찌 보면 춤사위를 선보이는 것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그저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것도 같은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 일각(*15분)은 소란을 피우기에 나중에는 그저 그런 사람이겠거니 싶었다.

내심 감정 표현이 과하다는 생각은 있었으나 이 땅의 문화에 내가 익숙지 않기 때문인 것도 같아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그가 혼자 경탄하여 내어 뱉는 소리 중 몇 문장은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었고, 또 몇은 모르는 말로 되어 있는 것이었으나 마법사를 상대할 때는 으레 그러하였으니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었다.

나는 볼더가 흘려 낸 말 중에 한 단어를 낚아채어 화두로 삼았다. 그제야 사람의 것과 닮은 말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정제된 마나가 대기의 마나보다 무겁다는 말이 정론입니까?”

“아니요! 마나의 무게는 그 마나를 어떤 방식으로 정제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만, 에른하르트 영식의 정제된 마나가 유난히 무거운 편이라는 말이었어요. 파이어볼은 마나의 사이를 벌려 그 마찰을 이용해서 열기와 불티를 내는 방식으로 수식을 전개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아이스볼은 마나의 사이를 좁혀 그 사이의 마찰을 0에 수렴하도록 하여 열기를 빼앗고 물의 기운을 입히는 것이 일반적이잖아요? 음, 그래, 일단 일반론은 그래요. 서른두 가지 예외 사례가 있긴 한데 에른하르트 영식은 검술부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지금까지 인체나 기타 실험체에 밀어 넣는 마나는 그 밀도를 각기 다르게 해서 실험을 해도 늘! 뻑이 났거든요! 그래서 인체에 적합한 마나 밀도를 찾는 작업이 아주 중요하게 여겨졌어요. 우리가 적당하고 알맞은 수치의 마나 밀도를 만들어 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험이 내내 실패했던 거다 하면서요! 그런데 에른하르트 영식의 마나 밀도가 저희가 실험했던 범위 안에 있더라고요! 그럼 마나 밀도 문제 때문에 실험이 실패하였다는 이론은 완전 나가리가 되는 거죠!”

“음.”

오해였다.

메이지 볼더의 목소리는 여전히 짐승 같았고, 비명 소리를 닮았다.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려 하는 것은 알겠으나 완전히 이해하는 건 어려웠다. 그저 운기조식을 하는 모양새를 보고 무언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었겠거니 하여 그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여 주자 그는 또 여러 가지 짐승 같은 소리를 냈다. 이런 것을 어찌 알았느냐 하기에 일전에 더글라스에게도 말한 것처럼 태어날 때부터 자연히 알아 행했다 대꾸하였다.

잠시간의 토론 끝에 일단 첫 번째 목표는 내가 가지고 있는 창궁대연신공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방안을 알아내는 것으로 정하였다.

메이지 볼더의 말로는 업그레이드라고 부르는 행위라 했다. 기존의 것을 여러 방면으로 실험하고 연구하여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일에 마법사들은 평생을 바친다는 말이 덧붙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방법을 꼭 찾아내겠다 희희낙락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씁쓰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수십,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이 몸으로 펼쳐내는 것에만 몰두하였던 터라 새로운 마음을 갖기로 하였음에도 헛헛하였다.

새 검식을 익히는 것과 갖고 있던 내공심법을 발전시키는 것이 뭐 얼마나 다르다고 청승을 부리는지 나조차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가르치는 이가 무인이 아닌 탓도 있을 터였다.

높은 경지의 은거 기인에게 가르침을 받는 일은 중원에서도 기연 중의 기연으로 여겨지는 일이었다.

같은 사문이 아니더라도 높은 배분을 가진 무인이라면 아래 경지의 무인이 마음에 들 적에 툭, 가르침을 닮은 한 마디를 내려 깨달음을 주는 일이 고릿적부터 있었다는 것은 저잣거리 소문으로도 왕왕 들을 수 있었다.

이는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친분 있는 지인의 제자 따위에게 신경을 써 주는 천하고수들은 유명한 후기지수들의 실력이 쑥쑥 오르는 데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문의 내공심법을 명의에게 보여 이것과 이것을 고쳐달라 내보이는 이는 없었다.

내공을 수발하는 법은 사문과 세가를 아울러 대대로 이어지는 비기였다.

일인전승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니더라도, 심법을 유출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중죄와 다름없게 여겨졌다.

만약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기사멸조(*스승을 속이고 사문의 이름에 먹칠을 함)의 죄를 범했다 하여 징벌동(*죄를 지은 이를 가두는 동굴)에 들어가도록 하여도 할 말이 없을 터였다.

새로이 태어난 삶을 완전히 내 것으로 하여 살아가겠다 하는 결심과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 이전 생에 다 버리고 오지 못한 미련과 내 마음에 얽힌 규율들 사이에서 어느 것이 더 옳고 어떤 것이 그른지를 단언하여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속내가 읽히고야 말았는지 메이지 볼더가 슬며시 눈치를 보며 물었다.

“아, 혹시 인체실험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서 같은 게 필요한가요?”

“음. ⋯예, 뭐, 그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잘못 짚은 것이 분명하였으나 수상한 마법사의 잘못된 실험 운운하는 동화를 몇 번 읽었던 탓에 나쁜 말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정신이 번뜩 들었다.

당장 내 심법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내 편에 서서 더 꼼꼼하게 고민해 줄 이가 있었다.

“그리고, 역시 더글라스 머스탱 교수님께 허락을 받고 이야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당장 이것저것 바꾸기에는 제가 지금껏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하나의 심법을 사용하여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아, 그렇죠! 그래요. 그럴 수 있죠. 근데 제가 에른하르트 영식이 막 잘못되길 바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에요. 그냥 발전 가능성이 충분해 보이는 마나 연공법을 가지고 있고, 그런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 세상의 발전을 위해서 좀 더 노력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고ㅡ.”

“교수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으응, 네에⋯.”

그제야 마음이 후련하였다.

과연 더글라스 머스탱 교수는 그 자리에서 바로 허락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을 사용하여 창궁대연신공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서면으로 보고서를 받아본 뒤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계약서에 꼭 들어가야 할 항목으로는 나 미카엘 에른하르트가 거부하거나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오러를 수발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임을 명시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세 시간이 넘게 머스탱 교수의 교수실에 앉아 그들의 열띤 토론을 들었다.

그쯤 되자 내가 처음 저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 나의 내공의 원류를 잊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육감이 열심히 일한 탓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 괜히 멋쩍어졌다.

온전히 내 편을 들어 주는 머스탱 교수가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 하며 그 얌전한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장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내가 호랑이 아가리에 고개를 집어넣었다 뺀 것이 분명하다 여기게 되었다.

해당 건에 대해서는 머스탱 교수가 좀 더 많은 마법사와 상의를 해 보고 보고서와 계약서를 받아 본 뒤에 내게 알려주겠다 하기에 깍듯하게 감사를 표하고 나왔다.

* * *

금요일, 초급 검술 수업 시간이 끝나고 나서는 루베르 황자와 루실라 황녀가 나란히 찾아와 함께 점심을 먹고 비도 수련을 하자 하였다.

이번 점심시간에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 당황하였으나, 쉐이든이 미리 언질 받은 것처럼 능숙하게 이들을 상대하였기에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 가만히 따랐다.

벤자민과 루베르, 그리고 내가 말이 없다 보니 대부분의 대화는 루실라 황녀와 쉐이든이 이끌었다.

나는 이때 또다시 신기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우아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식사를 하는 것은 단계별로 요리가 나올 때나 할 수 있는 기예라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쉐이든은 평소보다 좀 더 꾸며 낸, 격식 있는 자세로 식사를 하였는데, 예법을 공들여 배우지 않은 내 눈에도 그 자태가 귀해 보여 황녀의 예법과 비견할 만한 것이 참으로 신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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