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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34화 (34/176)

34.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고, 무인은 대장간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

나 또한 중원에서 수많은 대장간을 보고 들렀기에 머릿속으로 대강 시어런의 대장간도 이렇겠거니 그리던 그림이 있었다.

그러나 수도의 무기 상점은 내가 생각했던 그림 중 그 어느 것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나는 거대한 건물을 보자마자 압도당했다.

눈이 부시도록 흰 벽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하얀 건물이 여러 채 이어져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날개를 둥글게 펼치고 앉은 새의 형상을 보는 듯했다.

대강 훑어보아도 들어가는 입구가 열 개가 넘었다.

건물의 키가 커 이 층 건물인 줄 알았는데, 찬찬히 걸어 한쪽 끝으로 들어서서 확인해 보니 단층 건물이었다. 천장의 층고만큼 높이 위치한 긴 창을 통해 상점 안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떼지어 진열된 수백의 검신이 빛을 머금어 반짝반짝하였다.

“여긴 언제 와도 두근거린다니까.”

“일단 검부터 주문하고 구경 좀 할까요.”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엄청난 풍경을 익숙한 듯 걷는 두 소년이었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여 그들의 뒤를 따라 걸으며 주변을 살폈다. 왼쪽 벽면에는 수십 자루 장검들이 검병과 검신의 색에 따라 정연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나열된 검은 모두 기름칠이 잘 되어 있어 날이 맑은 색을 띠었으며, 칼날이 예리해 손끝만 대어도 베일 것 같았다.

오른쪽 벽면의 것들은 또 어떠한가. 손바닥의 반만 한 단도에서부터 내 키를 훌쩍 넘는 대도까지를 크기순으로 나열하여 벽에 장식해 두었다.

이렇게 세밀한 크기로 구분할 수 있다는 것보다, 각각의 검에 이름이 붙어있다는 것이 더욱 놀라웠다.

유리로 그 위가 덮여 있는 장식장에도 검이 들었고, 색 짙은 나무로 잘 짜인 선반 위에도 검이 있었다. 왜 여긴 검뿐인가 슬쩍 물으니, 동무들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였다.

“여긴 제1동이라서 그래. 1동에서 3동까지는 모두 검이야. 아무래도 여기 수도에서는 검이 제일 잘 나가는 편이니까 당연한 얘기겠지만. 장검, 중검, 단검. 그리고 방패, 활, 메이스, 경갑, 중갑, 로브, 아티팩트 등이 각각 한 동씩 차지해서 총 10동이거든.”

“종업원에게 웃돈을 주면, 기숙사 방문 앞까지 배송해주기도 합니다. 에른하르트 영식도 쓸만한 것이 있으면 몇 개 사 두어도 좋을 겁니다.”

내 표정을 보더니, 벤자민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한 번에 너무 많이 사면 검신을 관리하기 어려워지니, 필요할 때마다 그때그때 주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값이 저렴한 것도 아니니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하세요.”

“음.”

갑작스럽게 외숙부에 대한 애정이 치솟았다. 이후 들어가는 길에 편지 한 통을 더 부쳐야겠다 생각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원에서 살 적에, 비도를 날리는 것은 대부분 살수의 무공이라 천하다 여겨졌다.

검과 검을 맞대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각에서 기를 담아 날리는 비도는 강력한 수단이었으나, 기감이 예민한 고수에게는 대부분 하잘것없이 막히고야 말았다.

사천당가의 우모침(*소의 털처럼 가느다란 침)이나 만천화우(*수백 수천의 암기 혹은 비수를 전방위로 난사하는 사천당가의 비기) 정도가 아닌 이상은 경시당하는 일이 잦았다.

나 또한 남궁의 도포를 걸치고 다니는 죄로 그들을 경시하여야 했으나, 손바닥만 한 칼날이 요요하게 빛나는 것이 여염집 아낙네의 노리개처럼 눈에 들어오는 구석이 있어 탐이 났다.

때문에 혹시 모를 일이라 변명하며 늘 단도 하나를 품에 챙겨 다니곤 했다. 지금에서야 그때의 욕심이 새록새록 싹을 틔웠다.

내 옆을 따라오던 종업원은 내 외숙부, 오스카 발렌티아의 이름으로 외상을 달아두고 무기를 구입하려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입이 귀에 닿을 듯 방긋방긋 웃으며 내가 말하는 것들을 모두 적었다.

간지러울 만치 친절한 점원의 태도에 흐뭇하였다.

“그렇게 많이 살 필요가 있을까, 미카⋯? 아니, 너 단도술도 해?”

“모른다. 이제 배워보려고.”

“검술부 교양 수업 중에 관련 교습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합니다.”

“혹시 교수님 이름도 알고 있습니까?”

“아뇨. 그래도 아카데미 수첩에 나와 있을 테니까 나중에 같이 찾아보죠.”

그래, 언제 한 번 그 교수도 찾아가 봐야만 하겠다.

얇고 가벼운 단검과 아예 손잡이와 검신이 나뉘지 않아 암기를 닮은 것에 가죽끈을 한 번 동여맨 것을 양손으로 쥐어 무게를 가늠하며 고민하다가 둘 다 사기로 했다.

두 놈 모두 저들 살 것은 이미 주문을 마쳐 내 뒤를 쫓아왔는데, 하나는 간간이 한숨을 쉬고 하나는 간간이 웃음을 터트렸으나 어쨌든 나를 더 타박하진 않았다.

손으로 들고 다녀야 하는 검이야 하나면 족하였다.

하지만 단검은 본래 잃어버리기 쉬운 무기였다. 거기다 그 재주를 연습하기 위해 날리고 던지다 보면 많은 단검이 깨어지고 부서질 것이 분명하였다.

그때마다 밖으로 나오는 것보다야 한 달 동안 사용할 분량을 미리 주문해 두는 것이 옳았다.

내 살림이 가난했다면 좀 더 고민했겠으나, 외숙부가 물려받을 작위에 따르는 재산이 얼마나 많은지 이미 알았다.

그가 자신의 여동생, 즉 내 어미에게 갖는 사랑의 크기도 알게 되었고, 그 내리사랑이 내게까지 닿아 있다는 것 또한 알았으니 고민할 것이 없었다.

가족의 일을 아카데미에서 배워 안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퍽 요상하였으나 내겐 이편이 더 나았다.

무엇을 궁금해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물어보고 배울 터인데, 난 그들의 사정이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들의 행실이 바르고 그들의 사귐이 정답고 도탑기만 하면 족했다.

귀족 연감을 가르치는 칼립스 아그리젠트 교수의 가르침이 없었으면 여태 내 뿌리가 얼마나 단단한지 모르고 매일매일을 불안에 떨며 살았을 터였다.

어떤 것을 궁금해하면 되고, 어떤 것을 알면 되고, 어떤 것은 알 필요가 없는지. 정해 준 것을 외우는 행위는 처음엔 갑갑하였으나 이제는 흥미진진하여 다음을 기다리게 되었다.

두 손으로 헤아리지 못할 만큼 단검을 사고, 벤자민에게 갚을 장검도 서너 자루 더 골랐다. 내 지갑이 얇아지는 것이 아니라 인심을 넉넉히 썼다.

아이가 거절하지 않고 냉큼 받는 모습이 못내 귀여웠다.

종업원이 들고 있던 수첩을 두 장째 사용하였을 적에, 더 살 것이 없어 기숙사로 배송할 것을 부탁하며 주문서에 오스카 발렌티아 외숙의 이름과 내 이름을 나란히 적었다.

주말에는 배달하지 않아 월요일 오후까지 보내드리겠다 하는 것에 동의했다.

내가 아직 이 건물에 흥미가 그득한 것을 보고, 쉐이든이 다른 곳도 구경하자 하여 걸음을 옮겼다.

구경이 끝난 제3동에서부터 순차적으로 거닐었다.

4동에 있는 방패들은 각 가문의 문장을 얼마나 세밀하게 새길 수 있는지를 자랑하는 예술 경연이라도 치르는 것 같았다.

그중에 어떤 가문의 용머리 장식 방패가 울룩불룩하여 상대의 공격을 마음대로 미끄러트릴 수 없을 것처럼 생긴 것이 신경 쓰여 이야기했더니, 벤자민이 저 요철을 사용해서 상대의 무기를 빼앗아 바닥에 떨구기 위한 것이라 설명해주어 깜짝 놀랐다.

다시 살펴보니 장식에 부러 철을 통째로 써 단단히 박아둔 것에 적잖이 감탄하게 되었다.

활만 모아둔 동을 구경하면서 내가 알고 있던 통짜 활 말고도 수십 종류의 활이 있다는 것을 배웠다.

활 중에서 유독 꾸밈이 아름다운 것들이 많아 관심을 보였더니, 이곳의 귀족들은 십오 세가 되면 사냥 놀이라는 것을 하는데 그때 쓰는 물건이란 설명을 들었다.

부러 작거나 큰 짐승들을 숲에 풀어 두고 말을 타고 들어가 짐승을 잡아 오는 놀이라 하였다. 사치스러운 행태지만, 숲에 돌아다니는 조막만 한 사냥감을 활로 쏘아 죽이는 것은 경탄스러운 기예라 꾸준히 익히면 무예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신기하게 생긴 무기들을 만져보기도 하고, 들어보기도 하고, 모르는 게 없는 벤자민의 설명을 듣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동에 닿았다.

바로 전, 마법사의 로브 동은 나름대로 다양한 색과 질감의 로브를 갖춰두긴 했지만, 대부분이 검고 도톰하여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전생에도 포목점 구경에 흥미를 붙인 일은 없던 나였다.

그렇기에 마지막 동에 기대가 컸다. 얼마나 다양한 아티팩트를 팔겠다고 늘어놓았을지 궁금해하며 문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알고 있는 얼굴을 만난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제국의 계보 수업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제국 귀족 연감 편집감사팀 고문인 칼립스 아그리젠트가 미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발터 오르겐이 칼립스 교수의 성마른 어깨에 한쪽 팔을 걸치고 친근하게 기대어 서 있었다.

발터는 칼립스의 귓가에 입술을 대고 무어라 이야기를 속삭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손을 떼고 바로 서며 방긋 웃었다.

“이런 데서 만나네. 반가워, 후배님들.”

“안녕하세요, 선배.”

고급 검술 수업을 같이 듣는 발터 오르겐은 서글서글한 성격에 단단한 체구를 한 졸업 유예생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발터 오르겐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그는 늘 긴 머리를 두피가 당길 정도로 바짝 땋아 뒷머리에 올려붙인 채로 수업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땋은 머리를 풀어도 늘 구불구불하여 곱슬인 줄로만 알았지, 이렇게 곧은 직모였을 줄은 몰랐다.

수업이 끝나면 머리를 풀어 헤치며 크고 맑은 소리로 웃으며 오늘도 수고했다느니, 멋졌다느니, 하고 입에 단 소리를 늘어놓고는 하는 그 청년은 나와도 이미 대결을 한 적이 있고, 가장 최근에는 루베르 황자와 대결하여 극적으로 이긴 전적도 있었다.

그의 왼쪽 어깨 위에 휘장처럼 둘린 망토가 제법 멋스러워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의아해졌다.

검술부의 일류검사와 제국의 계보 교수가 어째서 휴일에 함께 나와 있는 거지?

나만 의아한 건 아니었는지 쉐이든도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이내 웃으며 싹싹하게 칼립스 교수에게 말을 붙였다. 그는 벤자민이나 내가 이런 데에서 손을 거들어 주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밖에서 뵙게 되니까 더 반갑습니다, 교수님. 선배님.”

“⋯그래요. 아티팩트를 구매하러 온 거라면 기능 설명표에 연두색 표시가 있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인 마법사가 만들었다는 표식이거든요. 이미 다들 알고 있겠지만.”

“헉, 아뇨! 전혀 몰랐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우린 이만 가 보겠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예, 교수님! 아카데미에서 뵙겠습니다!”

쉐이든이 꾸벅 인사하기에 나와 벤자민도 따라서 고개를 숙여 인사하였다.

칼립스 아그리젠트의 뒤를 따라 나가던 발터 오르겐이 늘 그렇듯 웃는 낯으로 우리를 돌아보며 맵시 좋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갑작스레 교수를 만나 당황하긴 하였으되, 교수가 휴일에 수도를 돌아다니는 것이 못 할 일이 아니라 인상 깊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는 조금 전까지 아그리젠트가 구경하던 쪽으로 가 들여다보았다.

섬세한 무늬로 세공되어있는 브로치의 설명패에는 보온, 방어, 회복 세 가지의 술식이 걸려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 작은 것에 어찌 술식을 새겨 넣었을지, 그리고 그 위에 보석을 덮음으로써 얼마나 더 값이 나가게 되었을지 등을 생각하며 벤자민과 내가 신기해하자, 쉐이든이 물었다.

“얘들아, 나만 놀랐어?”

“음? 아니, 나도 신기하긴 해. 어떻게 이렇게 작게 술식을 새길 수 있지? 단추인가?”

“이건 그냥 단추가 아니라 커프스 버튼입니다. 갖고 싶긴 합니다만, 마석 값이 많이 들겠네요⋯.”

쉐이든이 어쩐지 억울한 표정을 하고 입을 닫았다. 잠시 후 신기한 것을 찾아 보여 주자 금방 기분이 풀린 것 같기에 더 신경 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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