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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32화 (32/176)

32.

흥분이 가신 마리앤은 괜찮은 정보원이 되어 주었다. 마법부 내에서의 뜬소문들은 어디서 다 그렇게 모아 듣고 다니는지, 리틀 키아드리스와 에드윈 키아드리스가 대련을 벌인다는 이야기가 퍼져 마법부가 통째로 들썩인다 하였다.

어쩌다 내 성씨를 강제로 다른 것으로 바꿔 끼우게 된 것인지, 키아드리스보다 에른하르트가 백배는 낫다 여겨 마뜩잖았다.

“대련 일자가 정해졌다고 합니까?”

“아직이요. 키아드리스 영식이 어떤 식으로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공격 마법 제1강당 대여 신청서가 접수되었다는 말만 들었어요. 제1강당은 위험한 공격 마법을 연습하기 위해 마법사 한 명, 그리고 지켜보는 교수님 한 명. 이렇게 둘씩만 들어가는 곳인데, 어떻게 거길 에드윈과 둘이 들어가려고⋯.”

“둘만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데요.”

“⋯네? 그럼요?”

마리앤이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차근차근한 목소리로 설명하였다.

“학교 측으로 대여 신청서를 넣는다면 당연히 참관 교수가 붙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예상대로라면 검술부에서는 마엘로 샌슨 교수가, 마법부에서는 앤젤라 스팅 교수가 참관인 겸 심판으로 따라올 테고, 운이 좋다면 의료진 하나쯤은 더 붙을 수도 있겠죠. 입소문이 좀 더 난다면 오러와 마나의 격돌에 관하여 연구해 보고 싶은 마법사가 몇 더 찾아올 테고.”

“어어, 그렇⋯ 네요? 어⋯? 어어⋯?”

“아카데미 측에 미리 신고한다면 교수들이 필요한 조치를 할 테니, 학생들의 실력이 미숙하여도 위험할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아닙니까. 내가 에른하르트고, 그쪽이 키아드리스인데.”

“그런, 아니, 무슨.”

“한번 싸워 보고 싶었던 것도 맞고, 에드윈이 귀찮은 대련장 신청이니 뭐니 하는 것들을 다 처리해 줄 것 같아서 내가 부탁한 것이니 정말 걱정할 필요 없어요.”

나는 이제 내 이름에 실린 무게를 알았다. 아무리 에드윈 키아드리스가 패악을 떤다고 하더라도, 나는 발렌티아 공작가의 힘을 업은 에른하르트의 직계 장손이었다. 규율 없이 해칠 수는 없을 터였다.

거기까지 설명하니 마리앤은 내 멱살을 잡느라 한껏 힘을 주어 아직도 손바닥이 발간 손을 두어 번 잼잼 하더니,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사과하였다.

나는 사과를 받아주면서 이전에 말한 예법 수업의 부채 언어는 어디에 가져다 두었냐고 물었는데, 예의는 쌍방이 지키는 것인데 내가 모른다 하여 같이 모르기로 작정하였다고 답했다. 과연 옳은 말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 싸움을 말리면서도 무슨 일로 마리앤이 이렇게 날뛰는지 모르던 나머지 셋이 황망한 표정이 되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것이냐 내게 물었다. 적당히 하고 싶은 일은 다 해 보고 졸업할 생각이라고 하였더니 그들 또한 얌전히 수긍하였다.

한바탕 떠들고 나서 이전 수업 시간에 야외에서 따 온 재료들을 모아 놓은 선반을 꺼내 놓고 수업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이미 몇 번 수업하는 동안 세드릭 교수가 자유라 쓰고 방임이라 읽는 형식의 수업을 한다는 것을 배웠기에 여덟 개 조 학생들의 자세가 모두 해이하였다.

학생들이 재료 선반의 물건들을 옮기는 것을 기다려 준 뒤, 세드릭 교수가 단상 위에 서서 지휘봉으로 교탁을 탁탁 소리 내어 두드려 시선을 모았다.

평소 그러지 않던 사람인지라 의아하여 쉽게 조용해졌다.

“자, 자. 집중! 오늘부터는 채집한 재료들을 사용해서 직접 활력 시약을 만들어 볼 거야. 저번 시간에 채취한 재료에 어떤 것들이 있었지? 말해 볼 사람 손~!”

어린아이 어르듯 묻는 것에 몇몇이 손을 들고 하나씩 대답했다.

머리가 세모나게 생긴 무슨 무슨 풀꽃, 덤불 안쪽에서 둥그렇게 맺혔던 빨간 열매, 푸른 껍질을 가진 열매의 씨앗 따위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그래, 거기에 바로 이것. 마석 가루를 함께 개어 넣으면 활력 시약을 만들 수 있어. 각 재료 모두가 독성이 없고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큼 효력이 약하기 때문에 재생과 같은 대단한 효과는 없지만, 비율을 실수해도 맛이 역겨워지는 것 외에는 큰 단점이 없기 때문에 연금술 첫 도전으로 아주ㅡ 적절하지! 만들자마자 직접 나눠 먹을 거니까 성실한 태도로 임하도록!”

이걸 먹는다고?

눈앞에 놓인 재료들은 아무리 보아도 알록달록한 것이 소꿉놀이 장난감처럼만 보였다. 아이들이 저마다 야영 배낭에서 플라스크니 시험 도구니 하는 것을 꺼내었다. 나누어주는 작은 손절구를 조마다 하나씩 받았다.

이런 것에는 영 손재주가 서툴러 적당히 뒷짐 지고 서 있었더니 곧 우리 조 팀장인 데미안이 차근차근 설명서를 읽어가며 아이들을 부렸다.

빻고, 으깨고, 양을 가늠하고, 순서를 맞추어 섞다가 콩콩 찧었다가, 물을 조금 섞고, 다시 콩콩 찧었다. 그럴 적마다 색이 변하고, 단단해졌다가 흐물흐물해지는 것이 신기하였지만 먹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마지막 순번으로 만들어진 것을 물에 타 휘저었다. 그 색도 기괴한 늪 이끼를 닮은 질퍽한 것이 나왔다. 아무리 보아도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에, 모두 크게 괴로워하였다.

우리 조뿐만 아니라 다른 조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세드릭은 재료가 아까우니 전부 마시라 하며 그 느끼하고 질척한 것을 학생 전원이 한 모금씩 먹도록 유도했다.

탐탁지 않아 하며 마신 시약은 구역질이 나는 맛이었다.

세드릭은 학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깔깔 소름 끼치게 웃었다.

“연금술이 왜 요리나 조합이 아니라 연금이라고 불리는 걸까? 내가 여러분의 각 팀에 마법사를 왜 넣어두었겠어? 마석 가루를 넣는데 마나를 불어넣어 활용할 생각을 않다니!”

“욱, 교수님, 하지만 설명서에⋯!”

“의심해야지! 연금술은 의심이야, 우리 귀여운 꼬마 친구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만 해서는 안 돼! 늘 생각하고, 고민하고, 의심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발명의 길! 그것을 우리는 연금이라고 부른단다! 과거의 답습은 언제나 퇴보를 부르는 법이야. 알겠니?”

세드릭 교수의 성정이 빤히 보였다. 그러니까 일부러 실패하게 내버려 두고 그 실패작을 먹였다는 말이었다. 나는 혀를 내둘렀다.

관리 감독하에 아해들에게 실패를 경험해 보게 하는 것은 괜찮은 가르침이었으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괴롭기 짝이 없었다.

확실히 이 가르침은 평생토록 잊지 못할 터였다.

⋯그리하여 두 번째로 완성된 약은 반짝이는 가루가 둥실둥실 떠다니는, 어여쁜 보랏빛 액체였다.

같은 재료를 같은 순서로 사용하였는데 마나를 끌어다 불어 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색과 모양이 달라진다는 것이 아주 신기하였다.

제대로 완성된 활력의 비약은 상큼하고 달짝지근하면서 어딘가 목 안이 화해지는 맛이 났다. 세드릭 교수가 시험 기간에 활력의 비약이 필요하면 마석 가루를 조금씩은 나누어 줄 테니 재료를 구해오라며 뒤늦은 친절을 보였다.

입 안에 역겹고 미끈한 맛이 돌아 전혀 기쁘지 않았다.

* * *

요즈음 고급 검술 시간에 루베르와 눈이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둘 다 기감이 예민한 탓에 그의 시선이 느껴지는 그 즉시 내 시선도 그쪽을 향하는 탓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귀찮아 무시하였더니 뺨이 간질간질해질 정도로 바라보기에, 오늘 눈이 마주쳤을 땐 입 모양으로 왜. 하고 물었다.

반말을 한 것에 기분이 상한 것인지 놀란 것인지 오늘은 더 이상 바라보지 않아 마음 놓고 수업을 들었다.

그러다 더글라스 머스탱 교수의 수업에 이르러서는 어안이 벙벙하였다.

요사이 하루하루가 지나치게 빨리 지나가고 있기는 하였지마는 벌써 한 주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탓이었다.

내공심법의 전수에 대하여 골몰하지 않게 되니 이제 이 땅의 오러 사용법이 궁금해졌다. 머스탱 교수에게 허락을 받고 자리 잡고 앉아 다른 학생들이 오러를 어떤 방식으로 몸에 두르는지를 안력을 돋워 살펴보았다.

한 시진을 꼬박 앉아 눈이 아프도록 보고만 있자니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알쏭달쏭한 기분이었다.

이는 시어런에서 사람의 머리터럭을 처음으로 보았을 적에 보라색과 분홍색을 구분하지 못하고, 파란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여 헤맸던 것과 흡사했다.

분명 뭔가 다르긴 한데 익숙지 않아 눈으로 살피기 어려웠다.

이 또한 알게 되겠지.

아카데미에 다니기 시작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되었는데 그간 배운 것과 얻은 것이 수없이 많았다. 아직 소화하지 못한 것도 많았다. 이를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하였다.

점점 마음공부가 되는 것 같아 흡족하였다.

수업이 끝나 돌아가려는 찰나에 더글라스 머스탱 교수가 나를 불러 에드윈 키아드리스와의 대련에 참관해도 되겠느냐며 허락을 구했다.

나는 기꺼이 응하며, 그 말고 다른 교수들이나 혹은 마법사들도 궁금할 터이니 대련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초대해도 된다고 이야기하였다.

더글라스 머스탱이 함박 웃으면서 그러마, 고맙다 대답하다가 문득 걱정스러운 낯으로 물었다.

“하지만 에드윈 키아드리스 영식은 싫어하지 않겠어요?”

“안 된다고 하면, 키아드리스 영식이 질 것 같아 겁이 나냐고 물으면 허락해 줄 겁니다.”

“⋯아, 아니, 저는 그런 말은⋯.”

“제가 그렇게 말할 테니 괜찮습니다, 교수님.”

“⋯으, 으응. 부탁할게요, 에른하르트 영식⋯.”

나는 에드윈 키아드리스의 자존심을 짓밟지 않는 것과 호기심 사이에서 결국에 호기심에 진 더글라스 머스탱의 모습에 흡족하게 웃었다.

그에게는 참 많은 도움을 받았고, 앞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할 예정이니 좀 챙겨 줄 생각이었다.

더글라스 머스탱이 누군가. 제가 보고 싶다 한마디 하였다고 마탑에 가서 관련된 연구 정보를 우르르 끌어다가 내놓은 사내 아닌가.

시어런에 와서 신기한 것이 어디 한둘이었겠느냐마는 아직도 제일 신기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 마법이었다.

하늘을 가를 듯 높은 첨탑을 만들어 낸 것도 마법의 힘이요, 가뭄이 일 때 너른 밭에 심어진 보리 싹과 밀 싹에 고루 물을 흩뿌리는 것 또한 마법의 힘이다.

풍요롭고 낙낙한 삶의 근원이 바로 그것인 것만 같아 쉽게 손닿을 거리에 두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머스탱은 오러와 마나를 기가 막히게 잘 다루기 때문에 저와도 쉽게 친해질 수 있고, 마법사와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좋은 인재였다.

머스탱의 소개로 대련 구경을 올 마법사는 분명 저들 나름의 경지를 이룬 노련한 이들일 터였다. 건너 건너 소개라도 받거나, 못해도 대화 한 마디 정도 나눠 볼 수 있다면 이득이라 여겼다.

그러한 내 속내를 알지 못하는 머스탱 교수는 잠시간 스스로의 욕망에 져 선배를 도발하는 후배의 건방진 행태를 방조한 것에 대하여 괴로워하는 듯했다.

그는 몇 번이나 수긍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또 괴로워하기를 반복하였다.

그의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릴 겸, 일전에 궁금했던 이야기를 문득 꺼내어 내밀었다.

“그런데 교수님.”

“네⋯?”

“일전에 얘기했던 중에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일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빵집을 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아이가 얼마나 있을까요. 현실적인 타협에 의한 게 아니라, 그냥 본인이 하고 싶어서 그런 직업을 원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대개의 아이들은 기사나 마법사가 되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제가 아는 점소이⋯ 아니, 식당 종업원들은 대부분 자기 일을 안 좋아했었거든요.”

“글쎄요⋯. 그야 내 가게가 아니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요? 식당 주인이라면 자기 식당에 자부심을 갖고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빵 가게가 갖고 싶다거나, 아이스크림 가게가 갖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 다들 하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주인, 주인이라⋯.”

무언가를 가지는 것이 꿈이라면 그나마 이해할 만했다.

당장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거나 선호하는 일을 꿈으로 가질 수 있을 아이들을 상상해보았다. 아직까지는 마냥 아득하기만 하여 떠올리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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