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26화 (26/176)

26.

마리앤이 말하고, 이해하지 못한 내가 되묻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자 대충 얼개가 짜였다.

에드윈은 제 친형인 웨슬리 키아드리스를 아주 싫어하여 그 이름자만 들어도 경기를 한다는 말이 말머리에 가장 먼저 붙었다.

웨슬리 키아드리스는 나이 열여섯에 절정의 경지, 즉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에 올랐다는 소년이다. 지금은 화경의 경지에 이르러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칭호를 받은, 황제 직속의 황궁 기사단의 간판이자 얼굴인 사람이다.

마엘로 샌슨의 아끼는 제자이기도 했다. 그는 이전에 나보다 십육 년을 앞서 그에게 수학한 독종 제자가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마엘로가 웨슬리의 이야기를 할 적에 아주 흐뭇해하는 표정이었기에 괜스레 두터운 사제의 정이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웨슬리와 에드윈은 열세 살 터울인데, 에드윈이 태어나는 그해에 아카데미에 입학한 웨슬리는 졸업과 동시에 제국기사단으로 들어가 황궁에 살 곳을 얻어 숙식을 해결하기에, 에드윈은 자라는 동안 웨슬리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래도 형제인데 어찌 그런가 하였더니, 웨슬리가 현재 연치가 스물아홉인데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경지이니 얼마나 바쁘겠냐 하여 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건 썩 괜찮은 자질을 가지고 있던 에드윈은 태어나자마자 얼굴도 모르는 친형의 그늘에 가려져 가문에서 주눅이 들어 자란 모양이었다. 웨슬리와 에드윈 사이에는 아비 다른 남매 둘이 더 있는데, 그들이 원인일 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돈다 하였다.

가문의 어른이고 또래고 할 것 없이, 혈육이라 있는 것들은 에드윈이 무엇을 해도 웨슬리는 너보다 잘했는데 넌 그만큼도 못 한다, 하는 말을 연신 되뇌어대니 싫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하였다.

그 소리를 들으며 괜히 내 동생들 얼굴이나 보고 싶어 그리운 마음을 품었다.

어쨌든 그러한 연유로, 검술로도 사업 머리로도 제 형을 이길 수 없게 된 에드윈이 마법만은 내 것이오, 내 땅이다, 그렇게 선포하고 위세를 부리려 군다는 말이었다.

접선(*접어 쓰는 동양식 부채)이나 부치고 다닐 듯한 희멀건 얼굴로 무슨 나쁜 짓을 그리 많이 하였나 하고 들어 보니, 몇은 나쁜 짓이었으나 몇은 그게 왜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어 어리둥절하였다.

에드윈은 제 가문의 힘을 사용하여 호가호위하였다. 그것도 그냥 뽐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제 말을 들어주지 않은 상대의 온 가족들이 돈줄이 말라 안달이 나게 한다고 했다.

처음 일학년으로 입학하였을 때 제 말을 들어주지 않는 동기 몇을 콕 찍어 수작질을 하여, 그중 하나는 미안하다고 무릎 꿇고 빌며 엉엉 울었다고 하였다.

그 어린 녀석이 어찌 그럴 수 있느냐 물으니 웨슬리만큼은 아니어도 그 아이도 상재가 썩 좋아 첫 사교계에 데뷔하는 열다섯 살 무렵부터 가문의 작은 사업 몇 개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는데, 그 사업들이 죄다 공작가 이름을 달고 있어 주변의 비호를 받았다 하였다.

특히나 검술부 학생이 마법부 수업을 기웃거리는 것을 그렇게도 독하게 싫어하여 작년에는 마법부 수업을 기웃거리던 검술부 학생들이 모조리 교수님께 사정하여 수업을 포기하였다 한다.

에드윈이 교수님들 앞에서는 어찌나 앙큼하게 새침을 떨어대는지 교수들은 전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말도 붙었다.

제가 싫은 사람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고 말도 거는 일이 없다 하였다. 이 대목에서 매우 분해하길래 네 말을 무시하느냐 슬쩍 물었더니 얼굴이 벌게지며 내가 문제라며 나를 삿대질하였다.

많이 흥분한 것 같아 깊게 캐어묻지는 않았으나 이것이 악독한 짓인지는 여전히 막연하였다.

중원의 악독한 치들은 소매만 스쳐도 팔을 자르려 굴었다. 먼저 말로 경고하고 저 원하는 것을 피력하고 압박하는 에드윈의 방식은 그래도 정파의 방식에 가까웠다.

물론 혈족을 건드린 일은 피를 들끓게 만드는 것이었으나, 그마저도 돈을 좀 빼앗은 정도에 그친 일이었다. 에드윈의 품성이 바르다곤 생각하지 않으나 이리 화낼 일인지도 잘 와닿지 않았다. 에드윈이 다른 학생들의 혈족을 죽이거나 팔을 자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싫은 이와 굳이 친하게 지내야 하는가?

허나 직위 있는 자가 그런 행실을 하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랫사람인지라 결국엔 수긍하는 흉내를 내었다.

마리앤이 생각하기에 그중 가장 악독한 짓은 이번 수정 구슬 사건이라 하였다.

“그래도 그간은 피를 말리기는 하여도, 사람을 패거나 해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진짜 미친 것 같아요. 마법식 중간에 자기 마나를 끼워 넣어 몸속에서 회로 폭발을 일으키다니,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할 수가 있어요?”

“뭐, 나흘이면 낫는걸.”

“아프잖아요! 피가 났잖아요! 막, 막 죽을 것처럼 토하고!”

낫지 못할 병도 아닌데 그게 아프면 또 얼마나 아프다고 싶어 허허 웃자, 새초롬한 것도 아니고 밤길에 보면 놀랄 만치 눈을 희번덕이며 마리앤이 빼액, 아팠잖아요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알았다 알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손사래를 쳐 소리 지르는 것을 말렸다.

“그런 짓까지 해 놓고서도 미카엘한테 사과하기는커녕 아는 척도 안 했잖아요. 분명 무서우면 알아서 달아나라, 뭐 그런 의미였을 거예요.”

“허어.”

“그래서 두 번째 수업 시간에 아무도 미카엘에게 인사를 못 했어요. 미카엘은 마법부 수업을 안 들어도 되지만, 우리는 아니니까. 어떻게 앤젤라 스팅 교수님의 수업을 포기할 수 있겠어요⋯?”

“옳지. 그건 맞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마법부 학생이었다고 하더라도 앤젤라 스팅 교수의 수업을 포기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그런 높은 경지의 인물을 스승으로 섬길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는 것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랬는데, 그다음 주에 미카엘이 멀쩡한 얼굴로 와서는 그렇게 끈적하고 다정하고 오묘하고 간지럽고 아련하고 이상한 눈으로 에드윈을 보고 있으니까⋯. 그 주 수요일엔가, 2학년 선배 중 하나가 에드윈 보고, 혹시 이제 에른하르트 영식이랑 친하냐고 물어봤다가 뺨도 맞았어요. 그 이야기도 못 들었어요?”

“어어⋯. 그건 못 들었는데.”

“아, 진짜. 마법부는 그날 완전 뒤집어졌어요. 이번 주에는 아예 대놓고 미카엘 보면 아예 없는 사람인 척하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월요일 수업 내내 다들 숨도 제대로 못 쉬었는데.”

끈적한 눈이라니, 이미 죽어 없는 옛 친우를 떠올리며 그의 장례식이나 되새긴 것이었는데. 유난이 심하다 여겨져 어처구니가 없었다. 눈앞의 아해가 나를 위하여 분통을 내며 씩씩거리는 것이 귀엽기만 했지, 분이 날 일은 아니라 탓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

게다가 금주의 일이라는 것도 우스웠다.

두 번째 수업에서 뒤통수가 따갑도록 나를 노려보던 녀석이 갑자기 금주에는 그러지 않기에 분이 다 풀려 괜찮아졌는가 하였지, 저를 무시하려는 행동인 줄은 전혀 몰랐다.

애초에 누굴 바라보지 않는 것이 공격이 된다는 것이 제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말랑말랑한 감성인 터였다.

중원의 꼬마들은 맘에 안 드는 또래를 괴롭힐 적에 배를 걷어찼다.

팔다리를 걷어차면 혹시 똑 부러질 수가 있으니까, 그러면 일을 시킬 수 없어 어른들에게 혼이 나니까 밥을 못 먹게 속이나 상하라는 악독한 짓이었다.

흠씬 얻어맞으면 배를 곯고 일만 하여 한 달은 골골거려야 했다.

남궁의 핏줄을 옅게나마 타고난 덕에 그런 짓을 한 적도, 당한 적도 없으나 서슬 퍼런 기세가 무서워 말리지 못하고 침묵한 어린 시절이 제게도 있었다. 꼭 지금의 마리앤처럼.

이야기를 찬찬히 듣고 생각해 보니 악동은 악동이되, 아직 크게 후회할 짓은 하지 않은 놈이었다. 또 높은 귀족 가문 정실에게서 난 직계이기에 받는 압박도 꽤 있었겠구나, 그치의 부모들이 혀에 무슨 칼을 품었기에 이 꼴로 자랐는가 하여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어 물었다.

“그런데 왜 내게만 그렇게 악독하게 구는 것이냐?”

“지금까지 말해줬잖아요! 아, 진짜 답답해! 어이없어! 다행이야! 짜증 나!”

“다행이고 짜증 나는 건 또 무어야.”

“미카엘이 안 괴로웠던 건 다행인데, 진짜 하나도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로 그렇게 웃고 있으니까 짜증 나요. 아니, 지금 에드윈 키아드리스가 열여섯 살이고요, 웨슬리 키아드리스가 스물아홉 살이라고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웨슬리는 십육 년 전에 아카데미에 입학을 했다고요!”

“아하. 그래서?”

“웨슬리도 미카엘처럼 열세 살에 검술부에 들었으니까요! 요즘 미카엘이 전교에서 리틀 키아드리스 소리 듣는 건 알아요?”

“아, 그건 알아. 많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상한 걸 몰랐어요?”

“몰랐다.”

으으으응, 하고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 것처럼 어깨를 들썩거리는 모습이 우습고 재미있어 결국에는 참아 내지 못하고 소리 내어 하하 웃었다.

내가 그렇게 웃고 있자니, 녀석은 한참 화를 내던 것을 감추고 또 처음처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냈다.

“어쨌든, 그래서 내내 미안했어요. 이건 미카엘이 상처받지 않은 거랑 별개예요. 나는 미카엘이랑 친하면서도 변호할 생각도 못 했고, 앞으로도 마법부 수업 내에서 편들어주기도 어려울 건데, 이유도 모르고 계속 당하고만 있으면 너무 불쌍하고 힘든 일이니까⋯.”

“내가 불쌍했어?”

“네! 불쌍했어요! 그런데 왜 아까부터 계속 반말이에요?”

“아.”

“너무 자연스러운 것도 짜증 나! 저도 아카데미 졸업하면 작위 받으니까, 그냥 남작 영애가 아니라구요! 미카엘이 백작가 영식이라고 날 막 대하는 거 같잖아요! 에드윈 그 새끼처럼!”

“아⋯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어요. 그건 미안해요.”

“에른하르트 백작가는 예법 강의에서 부채 언어와 귀족 언어, 작위와 직급에 따른 경어 체계 뭐 이런 거 안 배워요? 배울 텐데! 배워야 할 텐데?”

“뭔가 하라고는 했었는데, 하지 않겠다 하니 그래도 된다기에.”

“아니, 아니⋯. 미카엘은 진짜 이상한 사람이에요. 그것도 알아요?”

“압니다. 마리앤이 착한 것도 알고. 걱정하지 말아요. 내 보기엔 별일 아닌 것 같으니.”

달래듯 어르듯 말하자, 한참을 혼자 성을 내고, 혼자 울 것처럼 안달했다가, 또 소리를 질러대며 소란을 피워댄 녀석이 흐으으윽, 또 괴상한 소리를 내며 어깨에 바짝 들어간 힘을 빼고 축 늘어졌다. 진이 쪽 빠진 것을 보니 돌아가는 길이 걱정이었다.

나는 이때 두 가지를 다행으로 여겼다.

첫째로 다른 손님이 없는 곳에서 이런 짓을 벌여 남우세스럽지 않았으니 다행이고, 둘째로 쉐이든을 안 데려와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를 데리고 왔으면 시끄러운 놈이 둘이 되었을 것 아닌가. 저들끼리 쿵짝이 맞아 뒷말을 떠들어대면 얻는 것도 없이 피곤하기만 하였을 것이다.

“정말로⋯ 정말로 별일 아니에요?”

“예. 뭐, 에드윈이 저를 계속 신경 안 써도 괜찮고⋯ 신경 써서 뭘 한다고 해도 재미가 좋을 것 같아 걱정되진 않습니다.”

“예? 재미요? 무슨 재미요?”

“아 그게⋯. 저는 지금껏 에드윈 그 친구가 저와 마법 대련을 하고 싶어 하는 줄로만 알고, 그 수정 구슬에 나온 정화 마법식을 잘 쓰는 법을 골몰하고 있었거든요. 그치랑 나랑 칼로 싸우자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니까.”

“걔가 마법으로 싸우자 하는 건 말이 돼요?!”

“그야 내가 듣는 수업이 마법 수업이니까.”

마리앤은 한 번 더, 미카엘 진짜 이상한 사람이에요. 하고 찡얼거렸고 나는 그래그래 적당히 달래며 일어서자 청하였다. 제가 잘못하였으니 이번 찻값은 자신이 낼 것이라며 콧대를 세우는 녀석의 세상은 내가 아는 것과 달랐지만 그 또한 너른 세상의 부분일 터였다.

나오는 길에는 시간이 늦어 어둑어둑하였다.

뒷길 장정들이 약간의 시비를 걸어 약간의 혼을 내주었다. 마리앤이 옆에 있어 심하게 굴지 않고 그저 오러 한 번 보여주고 말았다. 새끼손가락만큼 각혈한 것으로 이렇게 앓는 말랑한 어린애 앞에서 피를 보기가 저어하였던 탓이었다.

그나저나, 에드윈은 앞으로 어찌한다. 내 품 안의 어린 것이야 내가 돌본다지만, 굳이 남의 손에 쥐어진 녀석까지도 꼬집어 고칠 필요는 없는 것이라 마냥 막연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