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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25화 (25/176)

25.

좌판을 휩쓸다시피 구경한 덕분에 일행의 손과 손에 해괴한 물건들이 가득하였다.

조금 늦은 점심을 먹으러 찾은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식탁 위에 와르르 쏟아 놓고 구경하였다. 여러 노래 중에 제멋대로 한 곡을 정하여 노래 부르는 오르골, 무엇에든 매달릴 수 있는 개구리 모양 집게, 가만히 두면 끊임없이 어디로 굴러가 버리는 공, 포도주 맛이 나는 육포, 밖이 밝을 적에 밝은 빛을 내는 램프⋯.

“도대체 이 램프는 왜 산 거예요, 이반?”

“⋯제가 쓰려고 산 건 아닙니다.”

“그럼?”

“쌍둥이 동생 주려고.”

“아, 그럼 인정.”

만담 같은 대화에 다들 와르르 웃었다.

“그래도 이건 은근히 맛있는데요. 포도주랑 육포를 같이 먹는 맛.”

“이제 곧 음식 나올 테니까 차라리 그걸 먹어요, 우리.”

“아니, 그렇게 질색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와, 표정 뭐예요, 정말.”

제니가 산 것을 뽐내자, 데미안이 곧장 반박했다. 마리앤은 테이블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계속 굴러가는 공을 잡아채어 다시 내려놓으며 손장난을 했는데, 기울어지지 않고 평평한 테이블인데도 자꾸 어디로 굴러가려 하는 것이 쓸모는 없을 것 같지만 신기했다.

쉐이든이 개구리 집게를 마리앤의 머리에 머리핀처럼 꽂자, 마리앤이 훗 웃으며 어여쁜 척을 하였다. 하필이면 그때 트레이 가득 음식들을 들고 종업원이 들어와 서로 민망해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내심 내가 산 병아리 인형이 저 중에 제일 쓸모 있다는 생각도 하였다. 적어도 다른 것보다 말랑거리지 않나⋯ 어릴 적부터 검이나 휘두를 줄 알았지, 이런 수상할 만큼 부드러운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어 유난스럽게도 손이 인형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밥 먹을 때에는 장난감 놓고 와야지, 미카.”

“음.”

“아니, 장난친 거잖아⋯.”

“나도 장난이었는데.”

“⋯.”

내 유모인 척 굴려던 쉐이든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큰 접시에 나온 넓적한 고기를 석석 잘라 각자의 접시에 나누는 것을 도왔다.

나도 인형을 옆자리에 내려놓고 식기를 들었다. 겉에 무엇을 발라 구웠는지 모르지만 겉은 바삭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게 잘 익어 입에 잘 맞았다. 조금만 더 부드러웠으면 동파육인 셈 칠 수도 있었을 터다.

까닭 모를 향수에 아주 조금 아쉬운 기분이 들었다가도, 웃음소리를 쏟아내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며 금세 잊었다.

다 같이 식사를 한 뒤에는, 정말로 야영 수업에 필요한 물건을 사자고 의기투합하였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물건을 파는 곳을 찾겠다며 씩씩하게 앞장선 마리앤이 아는 마법사를 만난 덕분에 꽤 좋은 물건을 좋은 가격으로 구할 수 있었다.

벌레 퇴치제, 재사용이 가능한 땔감 나무, 방한 보온 마법이 걸려 있는 담요 따위의 물건이었다.

쉐이든이 벌레 퇴치제는 저도 꼭 필요하다며 매달리는 통에 남아 있는 재고 다섯 중 세 개는 우리 조 아해들이, 두 개는 쉐이든이 나누어 갖기로 하였다. 그렇게도 벌레를 끔찍하게 여기는 것을 보니, 시어런의 버러지들은 중원의 것보다 독이 많고 독한가 보다 하였다.

쓸모없는 것과 쓸모 있는 것을 다 더하여 한 짐이었다.

땔감 나무 따위의 묵직한 것은 근력이 좋은 내가 들고, 작고 가벼운 것은 아이들이 각자 나누어 들었다. 키만 휘청하게 컸지, 힘도 없는 소년 둘이 저희도 사내라고 짐을 지겠다 나섰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저녁도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 하였으나 길거리에서 군것질을 무척 많이 하여 배에 여유가 남지 않았기에 포기하였다.

그리하여 자, 이제 기숙사로 돌아가자 하였더니 대뜸 마리앤이 내 소매를 잡았다.

손목을 움켜쥔 것도 아니고, 소매 위로 낙낙한 옷자락을 겨우겨우 끄트머리만 겨우 잡은 모양새에 의아하여 까닭을 묻자 큰 결심을 한 표정으로 다른 이들을 둘러보다 겨우 목소리를 냈다.

“⋯그, 미카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할 말이라니, 어떤 거요?”

“⋯마법부 얘기예요.”

무슨 일인지 짐작 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나보다 더 예민하게 마리앤의 하는 행태를 지켜보던 쉐이든이 마법부와 관련된 얘기라는 말에 어, 하고 어물거렸다. 나는 쉐이든이 나서기 전에 몸을 써 그의 앞을 슥 막았다.

“무슨 말인지 일단 들어나 보죠.”

“긴 얘기예요, 마리앤?”

“⋯잘 모르겠어요. 아카데미 안에서는 못 하는 얘기예요.”

“내가 듣겠다잖아.”

본디 그 성정이 씩씩하고 당돌하여 여럿이 함께할 적에 이렇게 말을 먹어 삼킨 적이 없던 마리앤이다. 쉐이든이 보모 취급을 하는 것이야 하루 이틀 일이 아니지만, 이런 일에서도 대리인인 양 굴면 안 된다 생각하여 단호하게 굴었다.

서늘한 기색에 놀란 다른 아해들이 우물쭈물하다가 어, 그럼, 하고 말을 어물거리는 것을, 겁먹지 않도록 다정한 낯을 꾸며내며 말을 이었다.

“이거나 좀 부탁할게.”

“⋯.”

“얘기 끝내고 돌아오면, 나랑 차 한잔하자, 쉐이든.”

들고 있던 짐을 헐어 훌쩍 쉐이든에게 넘겼다. 여우처럼 곱상하게 생긴 놈이어도 검술부의 일원이다. 소드 익스퍼트의 무인이 이 정도 짐을 힘겨워할 리가 없었다.

녀석은 잠시 서운한 듯 미간을 모았다가, 수긍하여 어깨를 늘어트렸다. 내 연치가 이리 어리지 않았다면 술을 권했을 터였으나 지금은 차 약속으로 족했다.

소년 소녀들이 다 같이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오늘 정말 즐거웠다, 다음에 다시 나오자며 분위기를 누그러트리려고 아양을 부려대는 꼴을 다 받아주었다. 그러는 중에도 마법 수업을 성실히 들은 기억뿐이라 짚이는 것이 조금도 없어 마음 한켠이 심란하였다.

* * *

마리앤과 나란히 걷는 길은 큰 길이 아니라 뒷길이었다. 검 든 무인을 끌고 뒷길로 가는 것이, 나를 퍽 믿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큰길과 화려한 시전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던, 꼬질꼬질한 옷을 입고 납작한 모자를 눌러 쓴 청년들이 궐련을 입에 물고 저들끼리 떠들어대는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한참을 굽이굽이 꺾어 들어가, 나잇살 먹은 주인장이 차만 내주고 방으로 쓱 들어가 버리는 작은 찻집에 들어서서야 안심한 기색으로 양손을 꼭 모아쥐어 무릎에 덧대는 아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할 말이 있어 불렀다 하였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리되면 입을 열겠지 싶어 아무 말도 않고 기다렸다.

녀석은 곧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자그마하게 웅얼거렸다.

“먼저, 수업 시간에 모른 척해서 미안해요, 미카엘.”

“음?”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다. 의아하여 눈이 둥글어졌다.

아니, 그녀가 날 모르는 체했던가? 기억에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마냥 어리둥절하였더니 그녀도 어, 하고 얼떨떨한 낯을 했다. 그러더니 다탁을 쾅 치며 벌떡 일어나는 행태가 아주 당돌하다.

이제야 그녀다웠다.

“뭐야, 설마 몰랐어요?!”

“눈인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건 그냥 본 거잖아요! 문이 열렸으니까!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봤잖아요!”

“이번 주 수업 얘기 맞아요? 기억이 안 나는데.”

“저번 주요! 아니, 첫 주부터 계속이요!”

“아니, 일단 좀 앉아서 얘기해요.”

숫제 발을 구를 것 같은 기세에 앉으라 손짓하며 긴장한 몸을 늦추어 의자에 기댔다. 작은 다루(*찻집)에 걸맞게 오래된 소파는 앉는 자리가 꺼져있어 조금 불편하였다.

몸을 슬쩍 뒤채자, 마리앤도 허, 허어 한숨을 폭폭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어쩐지 분한 기색이라 쉐이든에게 넘기지 않고 들고 온 병아리 인형을 건네주었더니, 인형을 양 볼이 납작하게 눌리도록 꾹꾹 누르는 모양새가 퍽 우스웠다.

“난, 난 얼마나 미안했는데⋯ 얼굴 볼 때마다 막.”

“아니, 그래. 그렇다고 칩시다. 그런데 왜 그랬어요?”

“⋯무서워서요.”

“무엇이?”

“에드윈 키아드리스요. 설마 이 사람도 모른다고 하는 건 아니죠? 사람이 그렇게 착하게 살면 안 돼요. 진짜 안 돼요.”

“아⋯ 이름은 압니다. 그, 머리 잘 빗고 다니는.”

“아니, 아니, 아니이이⋯.”

그게 아니라고 동동거리는 것만 같아, 알고 있는 말을 한마디 덧붙였다.

“웨슬리 키아드리스 동생?”

“우워억!”

난데없이 괴성을 지르는 것에 이번엔 정말 놀랐다.

잠시 진정하기 위하여 내 앞의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모친이 어릴 적부터 가르쳤던 대로, 한 모금 마신 뒤에 차 받침에 소리 없이 찻잔을 내려놓고 가만히 녀석을 보았다.

마리앤은 부끄러운 듯 제 얼굴을 양손으로 폭 가리며 안 돼요, 하고 웅얼거렸다. 뭐가 안 된다는 것인지. 여기까지 끌고 온 것부터 지금 꺼낸 말까지 영 낯설고 어색한 일투성이라 천천히 말하라 달래었다.

마법과 수식 원리 기초 첫 번째 수업 시간에 내가 받았던, 정화 수식이 새겨진 구슬에 관한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 구슬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에드윈 키아드리스가 수작을 부려놓은 구슬이기에 검술부의 학생인 내가 아니라 일반적인 마법사가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피를 토했을 것이라 설명한 마리앤이 다시 한번 괴로운 낯으로 고개를 숙였다.

약하게 칭얼거리는 소리를 낸 마리앤이 알려 준 바에 따르면, 내가 첫날 오염된 정화 수식이 새겨진 수정 구슬을 받은 것부터가 마법부 전체가 검술부 학생인 나를 따돌린 행동이었다고 하였다.

내가 수업에 들어오기 직전에 에드윈 키아드리스가 구슬에 악독한 짓을 하였기 때문에, 모두가 내가 다칠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어도 아무도 내게 그 구슬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이 큰 잘못이라 하였다.

마리앤은 특히나 에드윈과 내 자리 사이에 있던 학생들이 뻔뻔한 낯으로 구슬을 전달해 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울분에 찬 목소리를 내었다.

만약 자신이었다면, 눈썰미 좋은 내가 알아채도록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면서 수정 구슬을 건넸을 거란 말이었다.

그건 또 우스워서, 건네지 않는 선택지는 없냐 물었더니 없다 하였다. 까닭을 물으니 또 한참을 묵묵하다가 똑같은 말을 하였다.

“⋯무서워서.”

그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너무 딱한 꼴이라 절로 혀를 차게 되었다.

“뭐가 그리도 무서워서요.”

“공작가잖아요. 에드윈이 자기 아빠한테 가서 필로덴도르 남작가 차녀가 싸가지가 없더라, 하면 그날로 가문 조지는 거예요. 그쪽에서는 새끼손가락만 까딱해도 저 바로 돈 없어서 학교 못 나온단 말이에요. 같은 마법부라 얼굴도 자주 보는데⋯.”

“허어, 그냥 신분 때문에?”

“그리고, 걔가 싸가지가 많이 없어요.”

일전에 쉐이든이 일러 준 말이 생각났다. 무슨 목줄이 세 개인 개라고 했던 것 같은데, 실제로 마주한 에드윈이 생각보다 얌전한 놈이었기에 그냥저냥 괜찮은 놈이구나 생각하였던 것이 멋쩍었다.

그 녀석 닮은 모용공자는 호승심이 강한 것뿐, 싸가지는 있는 놈이었는데. 어찌 그리 닮았을까⋯.

마리앤은 제 앞의 찻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는, 긴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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