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합, 하압! 처음에는 조용히 시작했던 수업이었는데, 반 시진(*1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많은 학생들이 비명 소리와 닮은 기합을 내질렀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내어 진이 빠지게 내치는 행위에는 그 시작과 끝이 명확하게 주어져 있지 않았다.
정확한 동작과 힘으로 검의 식을 다듬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진을 빼내려는 수작이었다.
중원에서 맨 처음 검을 수련할 적에도 삼재검법을 익히긴 하지만, 이렇게 무식한 짓은 쉬이 보기 어려웠다. 내공을 사용하지 않고 검을 휘두르려니, 나도 슬슬 진이 빠지기 시작하여 입고 나온 무복의 등짝이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하필 시간도 가장 해가 뜨거울 시간이라, 땡볕 아래에서 헐떡이는 아해들이 입을 다무는 것을 포기하고 거친 숨을 헐떡거렸다.
쐐액!
어디선가 간질간질한 기운이 가까이 다가와,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검으로 휘둘러 베어내고 나니 어안이 벙벙했다.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리자 머스탱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웃고 있었다. 웃으면서⋯ 오러를 실처럼 뽑아내어 학생들의 팔뚝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오러? 마나? 이것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마법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하다 싶었으나, 그 기운은 분명 검의 길에서 갈라진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인지 몰라 우뚝 선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미 오러를 사용할 줄 아는 녀석들은 놀라 멈춰 서 교수를 보거나, 저들처럼 멈춰 선 학생들을 둘러보고 있었으나, 학생들 사이의 간격이 넓어 뭣도 모르는 것들이 계속해서 흐압! 하압! 소리를 내며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고 있었다.
“⋯허어. 저치는 내공으로 실뜨기도 하겠구만⋯.”
절로 입술 새로 감탄성이 튀어나왔다. 기사다, 기사야. 이곳에서 만난 검수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기기묘묘하고 망측한 짓거리들을 부르는 기사(奇事)였다.
전생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일이지만, 현생에서도 이런 식으로 오러를 사용하는 이는 더 없을 것이라 확신하였다.
이기어검이나 허공섭물처럼, 검이나 물건을 공중에 띄우고 받는 것은 그 간합만 제대로 재어본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기운을 멀리 뻗기 위해서는 많은 기운을 쓰면 그만이다. 넓은 면적을 감싸듯 하여 수저로 국을 떠올리듯 잡아채거나, 포승줄마냥 기운을 둘둘 둘러 묶고 흔드는 모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미친놈이 반의반의 반 갑자도 안 되는 내공을 이렇게 도톰하고 뭉툭하게 뽑아내어 남을 간지럽히는 데에 쓴단 말인가! 그것도 눈이 뜨이지 않은 자들에게 오러를 느끼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다니!
한 대 얻어맞은 듯 뒤통수가 얼얼하고, 자꾸만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을 흘리게 되었다.
그렇게 웃고 있자니,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머스탱 교수는 검지를 들어 올려 제 입 앞에 대고 쉿, 하는 포즈를 취했다. 학생들을 오러로 간지럽히는 동안에도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증거였다.
하는 짓이 너무 깜찍하고 우스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제대로 자세를 잡자 의도를 알아챈 교수가 곧장 오러를 내게도 뻗어왔다.
어린 괭이 새끼의 꼬리가 몸을 스치는 것만 같았다.
장님의 손을 잡아끌어 물속에 넣고 이게 물이야, 하고 가르치는 것마냥 조심스럽고 안온한 행실이었다.
지친 몸의 땀을 닦아주려는 양 이마 위를 쿡 찍기도 하고, 등을 투닥이기도 하고, 면적을 넓혀 꾹 누르기도 했다.
그 끝을 좁게 하여 간질간질 간지럽히기도 했다.
다시 입술을 꾹 깨물고 웃음을 삼켰다. 검이 멎었다.
도저히 우스워서 검을 휘두를 수가 없었다. 개안을 하여 오러를 볼 수 있는 아해들은 다 나와 같은 꼴이었고, 오러를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아해들은 어리둥절하여 검을 내려치는 중간중간에 멈칫거렸다.
그리고 둔한 것들, 그 귀여운 것들은 힘이 쪽 빠져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감이 멍해져 육감이 예민해진 즈음에서야 어? 하며 미간을 좁히고 더욱더 집중하는 것이었다.
알껍데기를 틔우지 못하는 어린 병아리를 위하여 달걀 껍데기를 조심조심 부수어내는 어미 닭 꼴이다. 한 번으로 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짓을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정말로 강제로 오러를 깨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중원에서 기감이 약한 무인들은 강호 곳곳의 명소를 찾아다니고는 하였다.
산세가 웅장하거나, 크고 너른 호수가 있거나, 계곡이 깊거나 하여 기가 모이기는 하되 빠져나가지 못하는 장소를 영기가 모이는 못이라 하여 영소라고 칭했다.
그런 곳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닷새고 한 달이고 자연의 기운을 몸에 받기 위하여 운기조식을 하는 것이 방법이었다. 무식한 일이지만, 벽을 깨고 싶을 적에는 다들 그렇게 하니 그런가 보다 하였다.
고급 검술 수업을 들을 적에, 어찌하여 이렇게 많은 어린 것들이 이렇게 일찍이 기감을 깨쳤는가 하여 어느 정도는 감탄하고, 어느 정도는 질시하였는데, 그 원인이 바로 이 선생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마엘로 샌슨 만큼은 아니더라도 대단하고 엄청난 자였다. 스스로의 무학보다 남을 돋우는 것을 더 잘하는 이들이 따로 있다는 말이야 들어서 알았으나, 이렇게 난데없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은 두 번의 생을 통틀어 처음 보았다.
“자, 여기까지. 뭔가 간지러운 것을 느낀 학생 있으면 손 한번 들어보세요.”
“⋯어어, 저요!”
“저도⋯ 느낀 것 같습니다!”
“그래, 느낌이 어떻던가요?”
“⋯그, 원래 오러가 뺨으로 먼저 느껴지는 건가요?”
크흑, 참지 못하고 손등으로 입술을 틀어막았다.
이미 아는 것들은 웃음 참느라 바빠 손을 들지 않았고, 모르는 치들의 어리둥절한 모습이 너무나도 유쾌하고 우스웠다. 마음 같아서는 개방 거지 놈들처럼 낄낄거리며 발을 동동 구르고 싶은 지경이었다.
더글라스 머스탱은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글쎄요, 저는 안 그랬는데. 학생은 그랬나요?”
“어어⋯ 아닌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다음 수업 시간까지는 아무 생각 말고 푹 쉬는 걸로 하죠. 오늘은 수업 첫날이니까 여기까지만 할게요. 다들 수고하셨어요.”
사실은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하고 일러주고 싶었으나 스스로 깨치게 하는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섬주섬 땀을 닦고 무복을 정리하여 몸가짐을 가지런히 한 학생들이 꾸벅꾸벅 교수에게 인사하고 어리둥절한, 혹은 킥킥거리는 얼굴로 자리를 떴다.
마지막까지 자리에 남아 있던 나는 슬쩍 눈치를 보며 교수에게 다가섰다. 날 기다리는 것처럼 서 있던 벤자민도 의아한 듯 따라와 가까이 섰다. 그러나 모두에게 떠들어 댈 생각이 없을 뿐이지, 가까이 두고 지내는 아해들에게까지 숨길 일은 아니어서 그냥 두고 입을 열었다.
“교수님,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그래요, 무엇이 그리 궁금한가요?”
수업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지만, 시커멓고 커다란 외양과는 달리 말하는 투가 놀랍도록 나긋나긋했다. 몸이 훌쩍 크고 어깨와 흉통이 넓어 울리는 소리가 저렁저렁할 만도 한데, 낮은 목소리를 하고 속살거리며 묻는 것이 영 간지러웠다.
아까 하던 오러 실타래 놀이를 보니 그 성정이 적잖이 짐작 가는 바였다.
“제가 익힌 오러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입학하고 보니 아카데미의 기사 수련생들은 몸 밖의 기운을 끌어다가 신체 전부에 담아 강화⋯ 하는 식으로 수련을 하던 것 같은데요.”
“으음, 보통 그렇죠⋯?”
“저는 제 몸에다가 기운을 저장해서 꺼내어 쓰거든요. 여기, 배꼽 어림에 가상의 공간을 상정하여 오러를 정제하여 저장해 두고, 필요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꺼내어서⋯.”
“어어⋯?”
말로 설명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하여 직접 운기하여 검 위에 뽀얗고 흐린 기운을 쌓았다.
아직 경지가 미흡하여 선명한 검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었으나, 머스탱 교수의 안법이라면 충분히 어떤 방식인지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는 내 하단전과 중단전, 팔로 이어지는 흐름을 유심히 살폈다.
검을 휘두르느라 지친 몸 탓에 이 엉성한 오러를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잠시간 보여 주고 난 뒤 내공을 흩어내고 다시 검을 허리에 찼다.
“아까 하시는 것을 보니 교수님께서도 대기의 기운을 그대로 붙잡아서, 교수님의 몸이 아닌 어느 한 지점에 고정시켜 둔 오러를 사용하지 않으셨습니까? 사람의 몸에 마나를 쌓는 것이 교수님 보기에는 어떻게 보일는지가 궁금합니다.”
“허, 그걸 자세히도 봤네요. 웃느라 정신 못 차리는 줄 알았는데.”
아니, 그렇게 말하니까 또 우스웠다. 그러나 교수를 코앞에 두고 실실 웃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입술을 꾹 물고 참아 넘겼다. 옆에 서 있는 놈이 참지 못하고 푸흐, 웃음소리를 흩어내는 것을 듣고 더 필사적으로 참았다. 머스탱은 진지하게 대답을 이었다.
“인류의 대부분은 마나를 느끼지 못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비물질계에 접촉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요. 보통 정령사들이 그렇고, 일부의 마법사나 검사들도 그런 모습을 보이죠. 어린아이들이 신기한 것을 보면 입 안에 가지고 가듯이, 비물질계와 가까운 사람들은 마나를 품어보려고 한두 번은 시도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부분은 곧장 포기해요.”
“왜 그렇습니까?”
“아프거든요. 오러는 자연의 기운인데, 충분한 노력과 사고 없이 멋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정전기에 호되게 닿은 아이가 버석한 옷감에 손을 대지 않으려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예요. 대개는 통각이 존재하지 않는 마법 식물들이나 자신의 체내에 마나를 쌓아 올릴 수 있어요. 이것도 흔한 일은 아니죠.”
“⋯신체 내부에 오러를 쌓으려는 시도를 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왜 없었겠어요. 신체 부위의 어딘가에 오러를 쌓아보겠다, 하는 사람들은 괴짜 취급을 좀 받긴 했어도 대대로 많았죠. 팔에만 오러를 쌓거나, 피부 위에 오러를 쌓거나 해서 강화하려는 정도가 제일 보편적인 행동이지만 보통은 해당 부위의 생체조직이 견뎌내지 못하고 괴사해서 치료받고 그만두었어요. 마나를 심장에 쌓는 생물은 제가 알기로는 하나 있는데⋯.”
“⋯있는데⋯?”
“혹시, 이건 정말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말이에요.”
어쩐지 익숙한 흐름이다. 나는 더글라스 머스탱이 이상한 소리를 할 것을 알았다.
“미카엘 에른하르트 영식, 혹시 드래곤인가요?”
끔찍한 우문(愚問)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