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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10화 (10/176)

10.

수업이 시작되기 전, 나를 뺀 모두가 아이 주먹만 한 둥그런 구슬을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마법학 기초를 위하여 구입한 두꺼운 서책 하나와 필기를 위한 노트, 필기구 따위가 내가 들고 있는 전부였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황망히 앉아 있자 멀찍이서 구슬 하나가 건너 건너와 손에 들어왔다. 나는 그제야 안심했다.

교단에 서 있는 마법학 교사 앤젤라 스팅은 이제 막 이립이 지난 여성으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강의하는 사람이었다.

안 그래도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모두 부드럽고 느릿한 언어를 더욱 속삭이듯 읊조리자 수업이라기보다는 가곡을 부르는 것처럼 들렸다.

앤젤라 스팅의 허리께까지 오는 긴 머리칼의 끝은 자로 잰 듯 반듯했는데, 그 눈과 머리칼이 모두 짙은 남청색이고 흰 윤기가 돌았다. 그는 마나와 오러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나는 대자연에서 끌어오는 멀고 먼 힘이고, 오러는 사람이 빚어내는 가깝고 가까운 힘이라고. 멀리서 닿는 것과 가까이에서 닿는 것이 빚어내는 것은 그 겉모양이 비슷하더라도 본질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한참을 설명했다.

“⋯그리하여 마나는 살랑이는 바람, 싱그러운 풀꽃, 참방이는 샘물, 일렁이는 불꽃에서 묻어나는 빛과 그림자의 사이, 그 다정한 회색에서 받아오는 것이에요. 다들 눈을 감고 싱그러운 풀밭을 떠올려 보세요.”

앤젤라 스팅 교수는 두 팔을 넓게 뻗었다. 팔과 팔 틈새에 하늘을 담을 듯, 춤사위를 닮은 몸짓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너른 풀밭의 클로버, 먼 곳에서 지저귀는 새 소리, 뺨을 간지럽히는 바람과 몸 위로 쏟아지는 햇빛을요. 나를 버리고, 내가 아닌 저 밖에서 오는⋯ 먼 기운의 한 자락을 잡아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쉴 적에는, 그 숨 자락이 내 가슴, 내 품속에 들어오는 거예요. 다시 크게 삼키고⋯ 심장 고동 소리에 맞춰서, 천천히⋯.”

그러나 나는 마나를 느낄 수 없었다.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것은 내게는 운기조식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하단전이 아니라 중단전(*심장을 중심으로 하는 위치의 단전. 보통 하단전-중단전-상단전 순으로 개방한다)에 직접적으로 내공을 쌓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더욱 그랬다.

내게 있어 하단전이 저수지라면 중단전은 물길이고 상단전은 계곡이었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사용했으니, 담아도 담아도 흘러갈 물길에는 내공을 아무리 밀어 넣어도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실눈을 떠 주변을 보았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흩어져 선 마법사들의 가슴께와 발치에 금빛 원이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나는 마법사의 서클이라는 것을 이날 처음 눈으로 확인하여 무척 기분이 들떴다. 그중 어떤 것은 환하게 빛나는 금빛이고, 어떤 것은 온천수에서 솟아나는 흐린 김처럼 뜨겁게 뭉개어졌다.

그 중 어느 서클이 붉은 금빛을 띠었다.

이전 생에 적금(赤金)에 대한 것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황산 심산유곡 깊은 곳에 흰 성성이(*원숭이, 유인원)가 천 일은 붉은 꽃잎으로 물을 들이고, 백 일은 제물로 얻은 피를 먹이고, 십 일은 펄펄 끓는 온천수에 헹궈서 마침내 붉지도 않고 금빛으로 빛나지도 않는 그런 금을 지니고 제 아이처럼 아끼어 끼고 산다는 기묘한 이야기였다.

그런 류의 전설은 어느 산에 용이 살고, 어떤 산에서는 이무기가 고꾸라지고, 또 어떤 하천에서는 다섯의 머리를 가진 현무가 치솟았다는 등의 믿을 수 없는 괴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이 손에 움켜쥘 수도 없고 흩어낼 수도 없는 기기묘묘한 빛을 보고 나는 흰 성성이가 품고 있을 붉은 금덩이를 떠올렸다. 선명한 원이 한 겹을 지나 두 겹, 세 겹, 네 겹으로 거듭나는 동안 내 발치까지도 번졌다. 절로 발끝이 움찔하며 모아들었다.

“⋯자아, 이제 다시 내뱉은 숨을 삼킬 거예요. 나를 중심으로 펼쳤던 서클이 입과 코로 들어와서, 가슴에 닿았다가, 멀리 보내줄게요. 더 이상 내게는 필요 없는 것, 멀리 가는 바람을 상상해요. 눈에 보이지 않아 상상하기 어렵다면 작은 조각구름을 떠올려요.”

아이들이 설명을 따라 흡 숨을 들이켜고 길게 내쉬었다. 교수가 눈을 반개하고 말을 이었다.

“하늘을 보지 말고 바닥을 보면서⋯ 구름의 그림자가 점점 멀어지는 것이 보여요. 조금 더, 좀 더⋯. 이제 더 이상 손에 닿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천천히 눈을 뜰 거예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이⋯.”

그때, 나는 앤젤라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이미 내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던 것을 알았다. 난처한 듯 깜박이는 눈꼬리에서 약간의 실망과 질책을 읽고 나서야 후다닥 정신이 들었다.

“검술부 학생에게는 쉽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대개 기사들은 마법사와 달리 몸속에 서클을 두지 않죠. 특히 시어런 제국 검술에서의 오러는 갑옷이고 무기일 뿐이기 때문에, 끌어오는 모든 마나를 반창고처럼 덧대어 발라요.”

교수의 손짓에 속이 투명한 인간 형상이 교탁 위에 둥실 떠올랐다. 나는 그것을 무슨 마법으로 빚어냈는지도 알 수 없었으나, 몇몇 학생들이 소리 내어 경탄하는 것을 보고 대단한 일이구나 하였다.

인간 형상은 푸른색이었고, 바깥에서 끌어온 녹색 빛이 형상의 손에 들린 막대기나 가슴팍, 무릎 등의 주요 부위에 층층이 쌓였다.

“이렇게 마나를 담은 무기에서 빛이 나는 것을 오러라고 불러요. 혹은 이렇게 사용할 수도 있지요.”

녹색 빛은 형상의 발바닥의 용천혈로 들어가 장골까지 길게 파고들었다. 근육 세맥에 스며들고, 형상은 높이 뛰어오르거나 앞으로 내달리는 시늉을 하고 멈추었다.

“신체 강화 마법은 3클래스의 마법사가 사용할 수 있어요. 마나를 실처럼 가늘게 뽑아내어 인체 각 부분에 온전히 스며들 수 있도록 작용해야 하기 때문이죠. 기사들은 늘 관조하고 이해하고 있는 자신의 몸에만 오러를 사용하기 때문에 마나 컨트롤에서는 좀 더 자유롭지만, 대신에 실수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어요. 조심해야겠죠.”

나는 문득 의아해졌다. 마법사의 마나와 검사의 오러, 그리고 내가 다루는 내공의 차이를 분명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빛을 띠고 있었으나, 지금 하는 것을 보니 서클 모두가 각자의 색을 지니고 있어 어떤 사람도 같은 서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중단전에 쌓은 마나는 흐르는 길답게 여러 바퀴를 돌고 아스라이 흩어졌다. 그러나 나의 내공은 단단하고 무겁게 뭉쳐 가라앉아 있었다. 운기조식을 해야만 정해진 길을 따라 전신을 돌고, 힘을 내었다가, 다시 제집으로 돌아오는 말 잘 듣는 개와 같은 형국이었다.

무언가 질문하고 싶어 입이 벙긋하였으나, 내가 마엘로 샌슨을 대할 때와 같이 눈을 빛내며 열정적인 질문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입을 떼기가 저어하였다.

그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마법 그 자체를 익혀 배우는 것보다 제갈가의 일원만큼 현명하고 섬세한 마법사 친우를 구하기 위함이 아니던가. 정히 궁금하면 이후에 있을 오러와 마나 시간에 질문하면 될 터였다.

대강 헤아려도 열이 넘는 어린 마법사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해 준 앤젤라 스팅은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동그란 구체를 꺼내 들었다.

나도 내 손에 쥔 것을 들여다보았다.

겉이 투명한 수정구슬은 그 안쪽에 몇 개의 철선이 기기묘묘한 모양새로 꼬여있고, 맞닿는 어느 점과 어느 점은 끊어져 멀어져 있었다. 구체의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 둘, 셋, 넷의 붉은 점이 찍혀있는 것이, 중원에 가져가면 신물이라 여기며 섬기는 이도 생길 것만 같았다.

“오른손 엄지를 일 번에, 오른손 소지를 삼 번에 둘게요. 오른손으로 구슬을 떠받치듯 들어요⋯ 손에 힘이 없어 구슬이 무거운 것 같으면, 테이블 위에 오른손을 내려놓아도 좋아요. 감싸듯이, 상냥하게⋯ 왼손바닥을 둘에 놓을게요. 왼손의 중지 끝이 넷에 닿아요.”

시키는 대로 구슬을 감쌌다.

“그 상태로 다시 한번 서클을 열어요. 이제 아까 멀리 보내주었던 구름을 오른손에 부르고, 얇게 조형해서⋯ 구슬을 통과해서 왼쪽으로 보낼 거예요. 실처럼 가느다랗게⋯ 천천히, 일 번에서 이 번으로, 이 번에서 삼 번, 사 번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길을 따라서⋯ 급하지 않아요. 천천히⋯.”

덜 자라 자그마한 손에 딱 맞는 크기의 수정구슬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폈다. 하나둘씩 반쯤 열린 입에서 탄성이 흘렀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거지? 궁금하여 다시 교수의 입술에 시선을 두었다.

“왼손 중지 끝이 간질간질하죠. 어디선가 꽃향기가 나고 있어요. 몸속에서, 번지는 속삭임을 들어요. 이게 바로 <정화>술식이예요. 마나의 길과 흐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눈을 감아도 좋고, 눈을 떠도 좋아요. 귀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귀로 들어요. 반복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자연스러워질 테니까⋯.”

궁금증이 더해졌다.

모두 안온한 낯을 하고 있으니, 어쩐지 괜찮지 않을까 여겼다. 조금 전 교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단전의 내공을 끌어올려 소주천(*약식으로 진행하는 운기조식법. 끌어올린 기운이 전신의 세맥을 통하지 않고 상체의 주요 혈도만을 한 바퀴 돌아 운기한다)했다.

독맥(*척추선을 따라 정수리 백회혈에 이르는 혈)까지 닿지 않고, 중단전으로 바로 이끄는 길이다. 저 바깥 대양에서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도, 저수지에서 퍼 올린 물도 흐르는 물길인 것은 같지 않은가 여겼다.

내공을 이렇게 얇게 저며본 적은 처음이었다. 오른손에서 시작된 내공이 수정구슬을 통했다. 천천히, 일 번에서 이 번으로, 그리고 이 번에서⋯.

콰직, 무언가 으깨어지는 소리가 났다.

헉, 순간 비릿한 내음이 울컥 올라왔다. 구역질이 일었다. 참지 못하고 수정을 내던졌다.

책상 아래에서 챙그랑, 깨어지는 소리에 교수가 놀라 무언가 술식을 감았다. 우욱, 치솟는 핏물을 뱉자 내장이 진탕되었다. 점심으로 먹었던 것들이 모조리 목을 타고 치솟았다. 입 안에 든 것을 고스란히 뱉었다.

소장부터 위장까지를, 아니, 제 온몸을 작신작신 조여 쥐어짜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란스럽게 책상을 끌어 피하는 소리가 났다.

“ㅡ리커버리⋯!”

아득하니 어지러운 머리 위부터 시원한 기운이 감싸고 돌았다. 헐떡이는 심장에, 덜덜 떨리는 손발에 다정한 녹색 기운이 스며들었다.

웨엑, 웩. 구역질을 해대며 씨근대는 어깨를 진정시키는 동안 공중에서 물 한 컵을 만들어 낸 교수가 그것을 건네기에 벌건 눈을 하고 받아 마셨다. 앤젤라 스팅 교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그러나 차갑고 단호하게 지적했다.

“검술과 마법은 분명히 달라요. 정제되지 않은 마나를 무조건 밀어 넣으면 이렇게 기혈이 뒤틀릴 수 있어요⋯. 저나 다른 담당 교수님들 앞에서는 이렇게 곧바로 치료받을 수 있겠지만, 절대로 혼자 있을 때 미완성의 마법을 억지로 시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 테니, 곧장 의료실로 가 치료를 받는 게 좋겠어요⋯.”

입 안에 시큰한 기운이 남아 헛구역질이 나와 고개만 겨우 주억거렸다. 주화입마라기에는 약해도, 어린 몸이 상하기엔 충분한 충격이었다. 절정에 다다른 무인의 안력은, 분명히 보았다. 수정구 한가운데를 비스듬하게 꿰어 길을 헝클어뜨린 적금빛의 마나를.

깨어진 수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그 수정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에드윈 키아드리스. 최연소 그랜드 소드 마스터 웨슬리 키아드리스의 동복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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