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4화 (4/176)

4.

사흘에 걸친 생일 연회가 끝난 뒤에는 훈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맨몸으로 연무장을 뛰었다. 어린아이의 몸이기 때문에 좀 심하게 내달려도 씻고 푹 자고 일어나면 금방 회복되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알아도 퍽 즐거웠다.

아침 동이 트면 운기조식을 하며 시종이 옷시중을 들어주기를 기다렸다가 연무장에 나가 열다섯 바퀴를 돌았다.

돌아와 씻고 가정교사와 간단한 예법과 역사, 글자 따위를 배운 뒤에 오수(*낮잠)에 들었다.

가장 해가 뜨거울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는 갑옷을 입고 연무장을 다섯 바퀴를 돈 뒤 기마자세(*말 타는 자세. 하체 수련의 기본)와 삼재검법(*가로베기, 세로베기, 찌르기)을 수련하는 데에 한 시진(*2시간) 정도를 사용한 뒤 씻고 저녁 식사를 했다.

그 뒤에 부모님과 실내에서 다과 시간을 가진 뒤 개인 공부를 하거나 글씨 연습을 조금 하고 잠에 들었다.

처음 사흘간은 놀라며 걱정하고, 이후 열흘이 지났을 적에는 의원을 불러 진찰하게 하였으나, 이러한 훈련이 보름을 넘어섰을 때도 꿋꿋하게 지속되자 양친 모두 혀를 내두르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두었다.

남궁세가에 있을 적에는 여러 직계, 방계 또래들과 함께 강연을 들었으나 가정교사를 두어 필요한 것만 그때그때 익히니 몸이 더 편했다.

훈련에 있어 너무 편리한 것은 오히려 독이 되어 경계함이 마땅하지만, 이 몸이 배우는 속도에 맞추어 차근차근 알려주는 가정교사가 곁에 붙어 있으니 여유시간을 내기에 좋았다.

나이가 어릴 적에 과하게 훈련하면 제대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는 탓에 조급하게 굴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백작 가문의 기사들이 덩달아 나를 보고 훈련 시간을 늘렸다는 이야기 또한 귀에 달았다.

원래 기사들은 삼교대로 밤과 낮의 업무와 훈련을 나누어 하는 것이 마땅하나 오전 훈련 시간을 자발적으로 챙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에른하르트 백작가는 무관이 아니라 문관인 모양으로, 기사단의 규율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하루 네 시간을 훈련하는 다섯 살배기 도련님보다 뒤처질 수는 없다는 무인의 호승심이 그들을 성실하게 만들었다. 흐뭇한 일이었다.

“미카엘 도련님은 방패 수련은 따로 안 하십니까?”

“제 몸에 맞는 수련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압니다. 지금 기사들이 사용하는 검법이 제국검법이지요?”

“예, 맞습니다. 전방으로 여덟 방위, 우측으로 두 방위를 노리고 방패를 사용하여 좌측과 후방을 경계하는 검술입니다.”

“영지전을 염두에 둔 검술이겠군요.”

“전쟁을 위한 검술이긴 하지요.”

“상대의 무기를 검으로 막을 수 있다면 이 손에 든 것이 철검이든 목검이든 방패라 부를 수 있겠지요. 저는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기사들의 훈련을 보아주던 목련기사단 단장이 한참을 생각하다가 기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떴다.

내려치기 백 번에 돌입하기 시작했을 즈음, 그가 부기사단장에게 묻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요즘 동화책 용사님들은 방패 없이 검만 들고 다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듣고 나니 궁금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동화책들을 살펴보았더니, 전부 방패와 검을 들고 있었다.

방패마다 가문의 문양을 금장과 은장으로 새겨둔 것이 제법 멋스러웠기 때문에, 방패술을 연마해야 하는지 잠시 고민했으나 남궁의 검이 익숙하여 그만두었다.

* * *

세월은 쏜살같이 흘렀다. 매일같이 이어진 훈련에 몸이 부쩍 자랐다.

나는 연배가 비슷한 몇 명의 소년 소녀들과 말을 편히 하게 되었으며, 여름에는 뱃놀이를 하고 겨울에는 사냥을 하는 삶에 익숙해졌다.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과 여덟 살 터울의 여동생도 생겼다.

열 살 생일에 선물 받은 작은 망아지는 그 이듬해에는 훌륭한 준마로 자라나 나를 기쁘게 했다.

자라는 것에 맞추어 꼬박꼬박 그 무게와 길이를 늘인 철검은 내 나이 열세 살이 되었을 적에 드디어 날을 세우는 것을 허락받았다.

좁쌀만 하던 단전이 새알만 하게 늘어난 것이 열두 살의 일이다.

영약 하나 없이 반 갑자(*30년) 내공을 쌓은 것이다. 이전에 한 번 가 본 길이었고, 임독양맥이 모두 트여있는 순정한 몸으로 시작되었기에 가능한 업적이었다.

그 즈음해서 나는 가문의 기사들과 주에 한 번은 대련을 하였고, 지는 일이 없었다.

이전 생의 기억들은 수시로 범람했다.

지난 생에서도 열세 살에 처음 진검을 잡았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어깨가 널찍하여 많은 칭찬을 받았다.

나이 스물이 되면 협객행을 나가는 것이 세가의 전통이자 관례였기 때문에, 나이 열다섯에 세가로 끌려 온 산적을 무릎 꿇려 첫 살인을 했다.

실전에서 처음 살인을 경험하고 겁을 먹어 큰일을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미리 악독한 놈으로 세가의 어른들이 구해 온 치들이었다.

이곳, 제국에서는 이웃 왕국과 전쟁이 일어난 지 마흔 해가 넘었다고 했다.

이곳의 기사들은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를 주로 죽였다. 총 오십여 명 중 살인을 겪어보지 않은 기사가 스물이 넘었다.

에른하르트 영지는 풍족하고 안전한 곳이기 때문에, 나는 아직 실제로 몬스터를 본 적이 없었다.

난쟁이만큼 조그마한 괴물부터 삼층 누각을 훌쩍 넘어서는 키를 가진 흉흉한 놈들도 있다고 하였으나, 일류에서 절정에 이르는 무인들이라면 무리와 동떨어지지 않는 이상 무사히 해치울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하였다.

산적의 목을 치지 않느냐 물었더니, 산적이 많지 않고, 악랄한 살인마라도 관청에 끌어와 판결하기 전에는 살려두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였다.

이즈음 해서 나는 나의 검술에 경탄하는 이들을 상대로 꿈에서 검술을 배웠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종종 하여 터무니없는 신뢰를 받고 있었다.

내가 이전 생을 너무 치열하게 살아 이렇게 포근한 곳으로 환생한 것인가, 읊조렸더니 내게 이런저런 것을 일러주던 기사가 소리 내어 웃었다.

“도련님은 전생에 아주 무시무시한 곳에서 사셨나 봅니다.”

“그럼. 오만이 넘는 기사들이 죽어 산처럼 쌓였지. 악마는 십만 대군을 이끈다 하였으나, 실감하기에는 백만은 넘는 무리로 보였지. 새까맣게 몰려드는 것은 전부 적군이오, 하얗게 부서지는 것이 전부 아군인 것처럼⋯ 시신이 산처럼 쌓이고 흐르는 피가 꼭 바다 같았어⋯.”

“저희 영지 인구가 팔십만 가량인 건 알고 계시죠, 도련님?”

“물론이지.”

“⋯늘 영준하신 도련님을 모실 수 있어 기쁩니다.”

이쯤 되었을 때에 나는 무슨 말을 해도 그저 웃으며 나를 귀여워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구체적인 명칭만 아니면 과거의 흔적을 뚝뚝 흘리고 다녔다.

다른 가문의 사람들은 절대로 입에 올리는 일이 없었지만, 에른하르트 백작저의 사용인과 기사들, 그리고 내 부모는 내가 나 자신을 전생에 악마를 물리치고 세상을 구한 소드 마스터라고 믿는 게 분명하다고 여겼다.

이들에게 천마신교나 천마, 중원의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일일이 설명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또 내가 과거에 대단한 소드 마스터나 영웅이 아니라 일개 무림인이었다는 사실을 구태여 피력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열심히 꿈꾸고 자신을 갈고닦는 기사 꿈나무 정도로 보인다면 충분했다.

대련이 끝나면, 날이 반들반들하게 선 검을 휙 떨쳐냈다.

이것도 이전 생의 버릇이다. 검신에 묻은 피를 떨쳐내야 이다음에 검을 휘두를 적에 미끄러지는 일이 적었다.

불필요한 동작은 없애는 것이 마땅하지만, 몬스터의 피는 인간의 피보다 더 진득하다는 이야기를 들어 고치지 않은 습관이었다.

“나이 열셋에 오러를 깨우치다니, 확실히 우리 도련님이 천재긴 한 모양이에요. 최연소 소드 마스터로 유명한 키아드리스 공자님도 열여섯이나 되어야 오러를 깨우쳤는데.”

“그분도 다섯 살 때부터 연무장을 돌지는 않았을걸.”

“그야 그렇지만요.”

왁자하게 웃으며 다음 대련을 준비하다 말고, 기사들이 같은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연무장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걸음은 무척 가벼웠으나 시끄러웠다.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았다.

나는 땀을 닦던 수건을 시종에게 넘기고 다른 곳보다 지대가 조금 낮은 대련장에서 벗어나 새 손님을 맞았다.

“미하엘! 조금 천천히 걸으렴. 그러다가 넘어지겠어.”

“형! 형! 형한테 편지가 왔어!”

내가 전생에 세상을 구해낸 영웅이라는 말을 가장 충실하게 믿고 따르는 남동생, 미하엘 에른하르트였다.

이제 일곱 살 난 소년은 이제 막 글을 떠듬떠듬 읽을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얼마 전 새로운 단어를 배워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나는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어린 소년을 폭 안았다.

녀석이 한 손으로 쥐어흔드는 편지 봉투는 이미 뜯어진 흔적이 있었고, 꼭 쥐고 달린 탓에 반쯤 구겨져 있었다.

그 내용을 가늠하는 데에는 굳이 그 고사리손에서 내용물을 꺼내 볼 필요도 없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네가 들고 있는 것이 시어런 제국 아카데미 조기 입학 허가 서류겠구나.”

“조기 입학! 제국 최연소 천재! 천재 만재!”

“그럼, 네 형은 천재 만재 제국 최연소 소드 마스터가 될 거란다.”

익숙하게 아이를 어르자 기사들 사이에서 와, 하고 다시 웃음이 터졌다.

“미카엘 도련님이 아카데미에 가시면 지금처럼 매일매일 미하엘 도련님이랑 놀아주지 못하는데도 그렇게 좋아요?”

“괜히 아이를 울리지 마, 벤터스 경.”

“괜찮아! 나도 아카데미에 갈 거니까! 시간은 빨리 가는 법이야.”

“씩씩하기도 하지. 그럼 아카데미에 먼저 가서 기다릴게, 미하엘.”

누구를 닮았는지 빤한 말투였다. 어린 미하엘의 머리칼을 흩트리며 녀석의 이마에 몇 번이나 입술을 눌렀다.

어린 아해가 조로록 잘 따르는 것이 동생이라기보다는 꼭 손주같이 귀여워, 시간 날 때마다 물고 빨고 한 보람이 있었다.

아카데미는 3년제이기 때문에 미하엘이 입학할 즈음 나는 졸업을 하고도 몇 년이 지났을 것이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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