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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세가 무사님은 로판에서 환생했다-3화 (3/176)

3.

연무장 사용은 만으로 다섯 살이 되는 날 이후로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수련에 앞서 생일 연회를 먼저 치러야만 했다.

이 세상에서도 어린 아해들은 쉽게 죽기 때문에 다섯 살 이전에는 저택 밖으로 잘 내돌리지도 않고, 생일 연회를 크게 치르는 일도 많지 않다고 했다.

또 다른 말로는 연회를 여는 것은 대개 그 집의 안주인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이를 해산한 지 얼마 안 되어 거사를 맡다가 건강이 상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그리한다는 말도 있었다.

둘 다 일리가 있어 참 옳은 말이다 하였다.

나, 미카엘 에른하르트는 현재 외동으로 태어났지만, 아직 작위를 받지는 못하였다.

친조부는 백작 작위를 가지고 있고, 외조부는 공작 작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부친이 백작 작위를 물려받을 소백작이고, 모친의 오라비가 공작 작위를 물려받을 소공작이기 때문에 나는 친조부의 사후에 부친의 뒤를 이어 소백작의 칭호를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친가와 외가를 가리지 않고 조부모 모두가 나를 어여삐 여기는 편이기 때문에, 생일 연회를 열기 전에도 이미 여러 차례 맞이한 적이 있어 대하기 어렵진 않았다.

“오셨습니까.”

“그래, 우리 강아지. 이 할아비가 보고 싶진 않던?”

“물론 다시 뵙고 싶었지요. 그간 강녕하셨어요?”

하지만 연치가 어리다고 하여 마주할 때마다 볼을 꼬집는 친조부의 행태는 웃으며 보아주기 어렵다.

너무 싫은 내색을 보이면 서로 민망스러울 것이 뻔하여 괜히 아픈 척하며 고개를 내저었더니 그제야 놓아주며 커다란 선물을 내 품에 안겼다.

대개 시종을 시켜 한 자리에 쌓아 두는 것이 법도라고 들었으나, 제 손으로 손주에게 선물을 안겨 주고 싶었던 것이 빤히 보여,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

생각보다 무게가 있어 몸이 크게 휘청했다.

선물 보따리와 나를 한 번에 품에 꼭 안았다가 놓은 조모의 부푼 드레스가 까슬까슬하였으나, 내색하지 않고 잘 참았다.

“미카는 언제 봐도 참 어른스럽구나. 가정교사는 들였니?”

“예. 이제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다 배웠으니, 오늘이 지나면 예법을 배우기로 했습니다.”

“이미 이렇게 똘똘하니 뭐든 잘할 게다. 선물이 무엇인지 궁금하진 않아?”

“부피가 커서 인형일 것이라 여겼으나⋯ 제 생각보다 무겁습니다. 열어봐도 됩니까?”

“그럼, 네 것인데. 얼른 풀어보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것인가.

어린아이를 위한 연회이기 때문에 주변의 분위기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몇몇 어른들이 내 또래의 아이들을 이끌고 가까이 다가와 인사하는 동안, 단단히 매여있는 꾸러미를 풀어내느라 약간의 고생을 했다.

모친이 가까이 와, 다른 선물들이 쌓여 있는 곳 근처로 나를 이끌었다. 마침내 포장을 전부 풀어내었을 때 나는 크게 감탄했다.

“이건⋯ 이건, 갑옷이 아닙니까?”

“우리 에른하르트 가의 장손이 어릴 적부터 기사가 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 검은 아비에게 받고, 나중에 커서 입을 갑옷은 직접 맞추더라도 지금 몸에 맞는 갑옷은 굳이 맞추지 않을 것 같아 준비했단다.”

아직 뼈가 다 자라지 않아 모래주머니나 철편을 차고 달리기에는 걱정이 되었는데, 이것을 입으면 큰 걱정 없이 전신에 무게를 고루 분포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너무 기뻐 반색한 표정을 가리지 않고 갑옷을 끌어안았다.

흐뭇한 표정을 한 친조부와 친조모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외조모와 외조부가 반색하며 저들이 준비한 선물을 내밀었다. 나는 그것도 얼른 뜯었다.

내 몸의 상체를 가릴만한 방패와 손에 맞는 철검이다. 날이 서 있진 않았지만, 그 장식이 화려하여 빛이 번쩍였다.

“이건⋯! 제국기사단식 방패입니까!”

“그래, 미래에 에른하르트 경은 제국에서 가장 우수한 기사단에 들어갈 터이니 제국기사단의 문양을 빌리는 것을 허락받았단다.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닌데 갑옷과 한 세트처럼 보이는구나. 멋진 용사님 같은걸.”

“단추를 누르면 검에 오러가 서린 것처럼 보인단다. 마음에 드니?”

“무척 마음에 듭니다!”

제국기사단은 중원에서 황제와 황궁, 그리고 국경을 지키며 행세하던 황궁기사단과 비슷한 것이다.

이 땅에서는 고수들이 산간벽지에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랏일을 하는 데에 뜻을 모으는 일이 많다고 했다.

내 전해 듣기로 이미 제국기사단에는 화경에 이른 기사가 둘이나 있다 하니 내 뜻이 제국기사단에 닿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방패를 들어 휘두르니 주변에서 구경하던 또래 아이들이 와아, 하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제 부모들이 시켜서 하는 칭찬인 것이 빤히 보이지만,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즐거웠다.

이전 생이야 가주가 아닌 이상은 생일연회를 크게 열지 않았고, 하늘을 천장 삼고 땅을 침상 삼아 야숙하는 일이 잦았으니 내 생일을 이렇게 챙겨 본 적이 많지 않았다.

말을 떼기 시작할 무렵부터 검을 배우고 싶다 옹알거렸으니 가까운 친인척들이 내 꿈을 모두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건만, 울컥하여 가슴이 수런거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지금은 멋지게 단장하였으니 이따가 연회가 끝날 무렵에 한번 입어 보자꾸나. 이 갑옷과 무기들은 개인 투왈렛에 넣어두어도 되겠니?”

“물론입니다. 혹시 이따 연회장에 저 검도 들고 들어와도 될까요, 어머니?”

“원래는 안 되는 일이지만⋯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허락해 주마.”

정다운 목소리와 함께 이마에 다정한 입술이 닿았다.

중원에서보다 친밀한 애정 표현이 많은 이곳의 문화에 익숙해진 지 오래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부끄러울 일도 아니었다. 나는 웃으며 어머니의 뺨에 입맞춤을 돌려주었다.

이후 수십의 인사들이 아이들을 앞세워 인사를 하러 왔으나, 나는 내내 웃는 낯으로 손님을 맞았다.

꾸준히 수련한 내공으로 또래들보다 체력이 좋은 편이기도 했으나, 사방에 웃음이 가득하니 웃지 않을 일도 없었다.

다만 곤란한 것은 새로이 인사하는 어린 아해들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었다.

근 사십여 년을 서너 글자 이름만 보았고, 상대의 이름을 모르면 그의 연치에 따라 소협, 대협 하고 부르면 되던 옛날과 달리 모두의 이름자가 너무 길었다. 이름자가 짧을 적에는 또 그 성이 너무 길었다.

소년은 영식, 소녀는 영애 정도로 적당히 부르려고 해도 그 성씨를 꼭 붙여야 예법에 맞다 익히 들었던 탓에 말 한마디를 먼저 거는 것이 저어했다.

그 모습이 혹여 수줍어 보인 탓일까. 이쪽을 의식하여 부러 말을 걸어주려 노력하는 소년 소녀들이 기특하고 귀여웠다.

다행스럽게도 나보다 네 살이 많아 종종 집에 놀러 오곤 하던 세르벨 백작가의 장손, 로건 세르벨이 아이들의 이름을 이미 다 알고 있어 하나씩 끌어와 함께 놀이를 할 것을 권했다.

역시 동기가 있으니 어린아이들끼리 뭘 하고 놀면 되는지 잘 알았다. 기특하고 대견했다.

연회를 위해 갖가지 치장을 한 아이들이 가장 큰 응접실에 모이자, 시종들이 얼른 소파와 테이블 따위를 벽 가까이 옮겨 치워 두었다.

으레 거대한 세가의 잔치에 놀러 온 아해들이 그러하듯이 다들 귀한 옷을 입고 앉아 점잖은 척을 하였다.

그렇게 모인 아해들의 머리터럭이 붉기도 하고 푸르기도 하여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눈앞이 번쩍번쩍 빛이 돌았다.

다섯 살부터 열네 살까지의 아이들이 와글와글 저들 또래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인형을 꺼내기도 하고, 시종들이 꺼내주는 체스판이나 카드 따위의 놀잇감과 나무 블록 따위를 손에 쥐기도 했다.

오늘 연회의 주인공인 탓에 이쪽에도, 저쪽에도 기웃거려야 하는 것은 퍽 피곤한 일이었다.

그러나 주인 행세는 해야만 하겠기에 즐거이 웃는 얼굴을 꾸며내고 이리저리 참견을 했다.

나이 많은 무리 사이에 끼어 체스말 하나를 집었다. 부친에게 익히 배운 바로는 중원의 장기와 크게 다를 바 없어서, 나 개인에게는 바둑보다는 좀 더 쉬운 놀잇감이었다.

“에른하르트 공자는 벌써 체스를 두는 법을 배우셨나요?”

“대단치 않은 실력입니다. 부친과 놀이 삼아 몇 수 두어 본 것이 전부입니다.”

그래도 어린 아해들과 소꿉놀이를 하는 것보다는 덜 민망할 것 같아 냉큼 대꾸하자,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 일인지 알 수 없으나, 어린 아해들이 웃음이 많은 것은 좋은 일이라 함께 웃었다.

중원에서 세가의 어린아이들은 매번 땀에 찌든 무복을 하고 저들끼리 칼싸움을 하거나, 돌팔매질을 하며 몰려다니는 것이 놀이였다.

시중의 어린아이들이 한다는 공깃돌 놀이나 땅따먹기 따위의 놀이는 몸을 웅크려 앉아야 해서 대남궁세가의 드높은 기상에 맞지 않는다 하여 세가 내에서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첫판을 이겼을 적에는 다들 놀란 기색이다가, 두 번째 판을 이기자 상대한 영식이 난처해하는 기색이라 세 번째에는 더 조심스럽게 수를 놓아 아슬아슬하게 졌다.

그 뒤로도 몇 명의 영애와 영식을 상대하는 동안에는 좀 더 천진한 수를 두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미 부친과의 체스에 익숙해져 있어 못 하는 척을 하는 것을 그만 들키고야 말았다.

어린 아해들의 눈썰미가 생각보다 좋아 민망스러웠다.

하긴, 이전 생애에는 어린아이라고는 먼발치에서 구경이나 해 봤지, 열다섯 이후로는 삼 장(*10m 내외. 1장은 약 3m) 가까이 들여본 적이 없었다.

이 정도 나이의 아이들이 얼마나 영리하고 똑똑한지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재미있게 놀고 다 함께 연회에 가서 낮은 테이블에 놓인 음식들을 구경하고, 접시를 들고 뒤따르는 시종을 시켜 원하는 음식을 담게 한 뒤에 다들 모여 먹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양껏 먹을 수 있는 것도, 화려한 음식이 산처럼 쌓여 있는 것도, 팔을 멀리 뻗지 않아도 내 앞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이 다 담겨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에른하르트 가의 풍요로움이 한눈에 보여 참 좋은 방식이라고 이야기하니 나잇살 먹은 치들이 또다시 와르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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