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 기연이 많아도 내 것은 없다 여겼다.
사는 내내 기묘한 절벽이나 동굴에 비급(*귀한 무공서) 하나 떨어져 있는 것을 보지 못했고, 그 유명한 소림의 대환단(*소림의 영약)이나 자소단(*화산파의 영약)은 소문만 들었다.
십년하수오 백년하수오(*각각 십 년과 백 년을 묵은 귀한 뿌리 영약)는 약재당에서나 본가 직계들에게 줄 것이라며 소중히 싸 둔 것을 흘깃 보았을 뿐이다.
대 남궁세가의 방계로 태어나 벌모세수는 받지 못하였지만, 나이 다섯을 헤아릴 적부터 손에 검을 쥐었다.
남궁의 이름을 달고 창천무애검을 익히고 꼬박꼬박 비단옷을 입고 굶을 걱정 없이 수련만 한 것이 그나마 거지꼴을 하고 돌아다니는 고아들보다는 낫다 여겼다.
삼 년에 한 번 열리는 무림맹 용봉지회(*후기지수들이 실력을 겨루는 정파무림대회)에서 우승을 거둬 본 적은 없어도 말석이나마 꼬박꼬박 차지한 것도 그러한 조기교육의 성과일 터였다.
내 나이 약관(*20세)을 조금 넘어섰을 적에 일류무인의 이름을 달고 강호를 전전하며 녹림과 사파에 맞서 협객행을 하였다.
대개의 세가 직계들이 일찍이 혼약을 하고 자식을 낳아 세가의 훗날을 대비하는 반면에, 방계들은 혼약을 늦게 하는 것이 근래의 추세였다. 물려줄 재산과 전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출나게 일인전승해야 할 비전무예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꾸준히 내공을 갈고 닦은 탓에 나이 이립(*30세)이 넘어서도 약관처럼 보이고, 불혹(*40세)이 넘어도 약관처럼 보이는 것에 감사하며 간간이 세가의 일을 거들고 강호를 떠돌며 살았다.
간신히 초절정에 입문하였던 마흔하고도 두 살이 되던 해, 마교가 발호하였다.
구파일방 중에서는 공동파와 청성파가 제일 먼저 봉문(*무협 방파와 세가 따위가 큰일을 당하여 외부 활동을 스스로 금하고 자숙하는 일)했다.
종남파와 화산파가 서안을 두고 긴 전선을 세웠다. 수백 수천의 무인들이 모닥불에 뛰어드는 나방마냥 뛰어들어 죽어갔다. 무림인들의 싸움에 얽혀 죽어가는 민초도 많았다.
산이 불타고 물이 말랐다.
오대세가와 그에 미치지 않는 수많은 세가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았다. 무당제일검 장무현이 천마와 생사결을 벌이기 위하여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의 뒤를 수만의 무인이 뒤따랐다. 나도 그곳에 있었다. 살이 베이고 뼈가 터지는 그 전장에서 나는 죽었다.
그리고 다시 살아났다.
처음 눈을 떴을 때에는 온몸에 기력이 돌지 않아 험한 전투에 단전(*내공과 기운을 모아두는 곳. 대개 배꼽 어림의 아랫배에 있다고 여겨진다)이 깨지고야 말았구나, 싶었다.
허나 자연스럽게 운기(*내공을 모으는 행위. 운기조식 중에 타인의 손이 닿으면 내상을 입을 수 있다)했을 적에 쌀알만 한 기운이 혈도를 익숙하게 타고 흘러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또한 수족의 운신이 자유롭지 않은데 정신이 또렷한 것이 꼭 마교의 괴이한 술법에 당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이는 내 눈앞에 휘적이는 손에 희멀건 색의 면포가 감겨 있는 것을 보고 아니란 것을 알았다.
세상에 이런 괴이쩍은 일이 있단 말인가.
온몸에 힘을 주어도 몸을 뒤채기는커녕 말을 듣지 않는 팔다리를 버둥거리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칠 주야가 걸렸다.
그간 내 주변을 맴돌며 말을 건네는 것은 모두 다 색목인(*머리 색과 눈 색이 다채로운 사람. 외국인)이었다.
북해빙궁(*중원 북쪽에 있다고 여겨지는 무림 세력)에서 온 고수들이 은빛 머리에 푸른 눈을 한 것도 어색하다 여겼던 나다.
이곳에서 말을 거는 사내와 여인들이 금빛 적빛 청빛도 모자라 자색이나 아주 옅은 푸른빛을 띠고 있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어찌 사람의 터럭이 저런 빛을 띨 수 있단 말인가.
불교의 육도윤회가 이런 모습일까.
곰곰이 생각하여도 답이 나오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정신이 없어 이런저런 것을 물어보려 입을 열었으되, 당연하게도 서로의 말이 통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새처럼 지저귀고 시를 읊조리는 것처럼 달큰한 어조로 대화를 나누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이 몸이 말문이 트이기 전의 어린 아해의 모습이었던 탓에 혀가 어눌하여 이런저런 것을 묻지 않은 것이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갓 태어난 아이가 여기는 어디요, 나는 누구요, 하고 이것저것 따져 물었다면 마귀라도 씌지 않았는가 의심을 받을 수도 있을 터였다.
연자색 머리칼에 청안의 여인이 내 어미라고 하였고, 검은 머리칼에 적색 눈동자를 지닌 사내가 내 아비라 하였다.
부부의 사이가 좋지 않아 아비는 밖으로 나돌았고, 어미는 심약하여 늘 기운이 없었다.
어미는 사흘에 한 번쯤 내 얼굴을 구경하러 찾아왔고, 아비는 달포나 되어야 서늘한 바람을 몰고 와 아기 요람의 곁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때문에 나를 돌보는 이는 대부분 갈색 머리칼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유모였다.
불혹이 넘어 남이 뒤를 닦게 하는 일은 매병(*치매)에라도 걸린 듯 치욕스러운 일이었으나, 젖 대신 수상하게 질긴 병에 담긴 우유를 먹는 것은 다행스러웠다.
먹고, 자고, 남는 시간에는 심법을 수련하였다. 임독양맥(*태어날 때에는 열려있으나 나이가 들면 절로 막히게 되는 중요한 혈도)이 뚫려있는 덕분에 잃은 내공을 되찾는 것은 생각보다 손쉬웠다.
동공(*움직이면서 수련하는 내공심법)을 따로 익힌 적이 없어 유모가 건드리지 않을 깊은 밤에나 운기했다.
그렇게 나는 남궁정연이 아닌 미카엘 에른하르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