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28)
  • 4. 

    "민석이 형..." 

    "오랜만이다." 

    형? 어째서... 

    그런 차가운 표정으로 나를 보는 거야? 

    웃음기라고는 전혀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지? 

    그 때 내가 그렇게 도망가버려서 그런 거야? 

    그치만... 난 그때 무지 놀라서 그냥 뛰어 간거였는데... 

    형은 그거때메 화가 무척 많이 났었나보다... 

    그래서 연락도 끊어버린 거였나? 

    그렇게 우리 둘 사이에 더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한참 서있던 형이 내 앞에 앉았다. 

    "앉자." 

    "응..." 

    조금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올텐데... 

    그치만 차마 형에게 말을 걸 수가 없다... 

    형의 이런 모습 처음이야... 

    나에게는 언제나 친절하고 상냥하게 웃어줬는데... 

    그 때 다른 사람들은... 

    '뭐하는 거야, 저 녀석!!!! 만났으면 한 번 안아주던가, 뽀뽀라도 하던가!!!!' 

    '바보냐, 김운진? 가게안에서 무슨...' 

    '그나저나 민석이 녀석 왜 저렇게 살벌하지? 머리까지 바꾼 주제에...' 

    '수빈이는 민석이 머리 깎은 걸 모르지...' 

    '우리가 알잖아...' 

    '그나저나 왜 저렇게 썰렁하다냐...' 

    '우리가 나갈 때가 된건가?' 

    '민석이 굳은 거 아냐?' 

    '맞어, 긴장한 거 같은데?' 

    '에에에~? 천하의 전민석이?' 

    '아냐, 의외로 저런 애들이 순정파야. 한 번 마음주면 끝까지 간다구.' 

    '보기와는 다르게 수줍음까지 타는 건가?' 

    '지나야, 잘 찍고 있는 거지?' 

    '맡겨두라구. 근데 필름이 좀 모자라겠다. 아무나 가서 필름 좀 사와.' 

    '내가 갈게.' 

    '나도 같이 갈게.' 

    '이제 우리는 슬슬 들어가야 되는 거 아냐?' 

    '차례대로 들어가자. 일단 유빈이부터 들어가고 담에 내가 들어갈게.' 

    '알았어.' 

    "어라? 민석이 왔구나?" 

    "그래..." 

    나를 구원해주는 목소리~~~ 

    유빈이 형, 고마워!!!! 얼마나 뻘쭘했다고.... 

    근데... 둘이 아는 사이???? 

    "용케도 우리 자리 알았네? 아 참, 얘는 첨보지? 여긴 내 사촌이자..." 

    "알아, 한.수.빈." 

    내이름을 한글자씩 끊어서 말하는 민석이 형... 무섭다... 

    "어, 그래?" 

    "어디갔다 이제 와, 형? 다른 형들은?" 

    "아, 뭐 사러갈 게 있다고 해서..." 

    "누나들도 안오고... 근데 형, 샐러드는?" 

    "아, 그게...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 양을 많이 해야 되는데 이녀석들이 딴길로 새는 바람에 혼자 갖고오기 뭐해서..." 

    횡설수설하는 유빈이 형을 사정없이 째려보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 왠지 연출된 것 같단 말야... 

    "어머, 민석이 왔네? 언제 왔어?" 

    "방금..." 

    "미안, 통화가 너무 길어졌지? 

    너무 오래간만인 친구라서 그만...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계속 통화해 버렸네.^^" 

    "괜찮아, 누나." 

    "고마워, 수빈아.^^" 

    생긋 웃는 지나 누나에게 내가 뭐라고 하랴... 

    원래 여자들은 전화하면 시간관념이 없어지긴 하지... 

    내가 누나에게 웃어주자 민석이 형이 갑자기 나와 누나를 째려본다. 

    왜 저러지? 

    설마 형... 지금은 지나 누날 좋아하는 건가? 

    그래서 나랑 누나가 얘기하는 게 싫은가? 

    그치만 지나 누나 애인은 유빈이 형인데... 

    "어라? 테이블 위가 왜 이래? 누가 콜라 엎질렀어?" 

    놀란 목소리의 다빈 누나... 

    그러고보니... 내가 입안에 있던 콜라를 내뿜었지...ㅡㅡ;;; 

    "여기요~~ 테이블 좀 닦아 주시구요, 포크랑 나이프랑 접시 좀 새로 갖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조금... 미안하군...ㅡㅡ;;; 

    "근데 민석이 너 지각이야. 왜 이렇게 늦었어?" 

    "갑자기 불러낸 건 너희들이야." 

    "참, 수빈아. 이쪽은 우리 학교 선도부장 전민석이야. 

    잘보이는 게 좋을 거야. 너 지각 잘하잖아.^^" 

    "언제적 얘길 하고 그래?" 

    "초등학교때였나? 뽀뽀뽀는 꼭 보고 가야 된다고 하면서 맨날 지각했잖아." 

    "과거지사는 꺼내지 마!!!" 

    그렇구나... 민석이 형이 선도부장... 

    에엑? 선도부장? 민석이 형은 중딩때 울학교 짱이었는데... 

    학교 짱이 선.도.부.장.을 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민석아, 여기는 나랑 하빈이 동생인 한수빈이야. 

    귀엽지?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남.자.들.이 줄을 선다니까?" 

    "큰누나!!!!!" 

    "뭐 어때, 사실인데... 내가 이녀석 첫키스 강탈사건 얘기해줄까?" 

    "큰누나!!!!!!!!!!" 

    쪽팔리게 이렇게 사람많은 데서 엄청 큰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그리고 시선집중... 

    얼굴이 빨개진다... ㅠ.ㅠ 

    우에에~~~~ 큰누나 미오~~~~ㅠ.ㅠ 

    고개를 푹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근데 분위기가 왠지 더 살벌해진 듯한... 

    살짝 고개를 들었는데 내 앞에 앉은 민석이 형과 눈이 마주쳤다. 

    그래서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언뜻 본 민석이 형의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오늘 살인나는 거 아냐? ㅠ.ㅠ 

    "어? 민석이 왔네? 근데 분위기가 왜 이래?" 

    새로운 구세주 운진이 형... 

    저사람이 반갑게 될 줄이야... 

    "전민석, 너 왜 일케 늦었냐? 그리고 여기 왜 이렇게 살벌해? 

    수빈이 넌 고개 푹 숙이고 뭐해? 설마 우는 거야?" 

    "울긴 누가 운다고..." 

    주르륵 

    그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수, 수빈아 왜 울어?" 

    작은누나가 당황해하며 내게 손수건을 내민다. 

    "아, 아무것도 아냐... 나 그냥 집에 갈래..." 

    "수, 수빈아!!!!" 

    "잠깐만 기다려!!!" 

    나를 부르는 누나들과 형들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두다다다 뛰었다... 

    흑... 이게 무슨 개망신이람... 

    저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이게 다 민석이 형 때문이야!!! 

    괜히 나타나서 무게잡고... 무서운 얼굴하고... 

    그러면 누가 겁낼 줄 알아!!!! 

    한참을 뛰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내 팔을 잡아당겼다. 

    "으아앗~~~" 

    깜짝 놀라 내가 들어도 바보같은 소리를 냈다... ㅡㅡ;; 

    "미, 민석이 형?" 

    내 팔을 잡은 건 숨을 몰아쉬는 민석이 형... 

    설마 여기까지 같이 뛰어온거야? 

    "하아하아... 수빈아... 갑자기 왜..." 

    갑자기 왜 나갔냐고 묻는 거겠지... 

    2년만에 만나는 형이 너무 낯설어서... 형의 그 표정이 너무 무서워서 그랬다고 하면 형은 뭐라고 할까? 

    비웃을까? 아니면 무시할까? 여전히 겁이 많다고 놀려댈까? 

    "그, 그냥 몸이 안 좋아진 것뿐이야..." 

    "거짓말!" 

    그렇게 단정지을 필요는 없잖아!!! 

    "거짓말 아냐!! 몸도 안 좋아지고 기분도 나빠져서..." 

    "나 때문에?" 

    그렇게 말하면 대답할 수 없잖아!!!! 

    "너... 내가 그렇게 싫은거냐..." 

    "무, 무슨 소리야, 형?" 

    "다른 애들한테는 그렇게 웃어주면서 왜 나한테는 그렇게 겁먹은 표정만 보여주는 거야?" 

    "!!!!!!!" 

    "만약 2년전의 그 일 때문이라면... 신경쓰지마라... 난 이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대답할 수 없다... 

    이제 형은 날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구나... 

    "그럼 옛날처럼 그렇게 지내줄 수 있어?" 

    "........그래........" 

    "나 아무런 부담없이 형 만나도 되는 거지? 친형처럼..." 

    "........그래........" 

    "뭐하는 거야!!!! 지금이야말로 재회의 입맞춤이라도 해야지!!! 

    전민석!!! 그러고도 네가 남자야???" 

    "김운진, 도대체 네 머릿속엔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하다. 

    언젠가 날잡아서 진짜 해부를 해보던가 해야지..." 

    "내 머릿속? 내 머릿속은 오로지 우리 달링의 생각으로 꽉 차있지♡" 

    "네 달링이 누군데?" 

    "몰라서 물어? 앙~~ 유지노~~~ 자기 넘 섭섭해~~~♡" 

    "징그러, 이 자식아!!!!" 

    "쑥스러워 하는거야? /////" 

    "그만 해라, 좀... 공이 그러니까 징그럽다. 꽃수도 아니면서..." 

    "왜? 공은 애교떨면 안 돼?" 

    "그게 애교냐?" 

    "지나야, 저것도 찍었어?" 

    "응.. 앗, 필름 다 됐다!!! 필름 좀 갈아봐!!!" 

    "알았어." 

    이 사람들이 정녕 엘리트중의 엘리트라는 명성고(明星高)의 학생회 임원들이 맞는건지... ㅡㅡ;;;;; 

    민석이 형이 우리집앞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때까지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럼 들어가서 푹 쉬어라... 입학식한다고 피곤했을텐데..." 

    "응... 형도 조심해서 들어가..." 

    "그래..." 

    집앞에서야 겨우 말문이 트인 우리... 

    그것도 형식적인 작별인사... 

    풀썩~ 

    푹신푹신한 침대에 폭 파묻히듯 쓰러졌다... 

    정말 복잡한 하루다...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난 하루... 

    그 중에서도 압권이었던 사건은... 

    민석이 형과의 재회... 

    한수빈... 너는 여전히 내가 싫어? 

    그렇게... 도망쳐버릴만큼... 

    내가... 혐오스러운거야? 

    나는 아직도 널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너만 보면 아직도 심장이 이렇게나 마구 쿵쾅이는데... 

    넌... 여전히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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