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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버린 남자의 노예가 되었다-146화 (146/158)

제146화

할리드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팔을 움직이려 하자 쩔그럭,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한 채 그는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떴다.

“생각보다 빨리 일어났군.”

그만한 양을 썼는데도 말이야. 그대, 혹시 짐승인가? 어째서인지 느른하고 날 선 목소리가 그를 반겼다. 할리드는 겨우 고개를 들었다.

아직 부옇게 번지는 시야를 바로 하기 위해 몇 번 눈을 깜빡였다. 펠티온은 그런 그를 기꺼이 기다려 주었다.

“폐, 하….”

깊게 갈라진 할리드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펠티온은 그 목소리에 설핏 웃음이 나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는 녹스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았다.

겨우 시야를 확보한 할리드가 정면을 보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침대 위를 확인한 순간, 푸른 눈동자가 담긴 눈꺼풀이 크게 뜨이고 입술이 벌어졌다.

“폐, 하…!”

덜컹!

의자가 한 번 크게 들썩였다. 단말마의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그를 부르는 소리와 겹쳤다. 펠티온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느긋하게 녹스의 목덜미를 빨아 씹었다.

피멍울이 질 때까지 잘근잘근 씹다 보니 찝찌름한 피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흐윽, 허….”

아직 약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듯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할리드에게 펠티온이 말했다.

“애매하게 정을 뒀어.”

“…….”

내가 네게 말이야. 펠티온이 자조적으로 말했다. 그의 손바닥은 녹스의 맨허리를 쓰다듬다가 이내 허벅지를 안쪽을 더듬었다. 조금도 젖지 못하는 구멍 위를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늘어진 녹스의 몸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후회, 할 짓, 하지 마십시오….”

할리드가 어깨를 뒤틀었다. 쩔그렁, 쩔걱. 쇠사슬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펠티온은 그 말에도 느긋하게 녹스의 가슴 위로 입술을 붙이며 생각했다.

무슨 후회할 짓, 펠티온은 미지근하게 열이 오른 녹스의 가슴 근처 살을 가볍게 깨물었다.

“후회하겠지.”

“근데, 왜…!”

“그 지하 감옥에서 느꼈거든.”

“무엇을 느꼈든….”

할리드의 말을 펠티온이 날카롭게 잘라 냈다.

“그의 가장 어두운 밑바닥에 네가 낸 상처가 있다는 사실이 말이야.”

입술이 사납게 벌어지더니 그는 곧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게 미치도록 질투가 나더라고.”

할리드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할리드가 지독하게 후회하고 있는 일조차 질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녹스가, 그가 지하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힘겨워하다 결국 다시 제게 손을 뻗은 것을 본 펠티온은 저와 같은 짓을 하고 싶은 거다.

녹스 라이네리오에게 혼자로선 도저히 감당 못 할 상처를 남긴 뒤, 그 상처 위를 스스로 핥아 올릴 생각. 할리드는 의자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으나 바닥에 단단히 고정된 의자와 꽉 묶인 사슬 탓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철컹, 절그럭. 절걱. 요란하게 쇠 부딪치는 소리만이 방 안에 가득 울렸다. 할리드가 펠티온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지, 그러지 마십시오.”

“왜.”

“그, 그에겐 아니, 녹스에겐 더 이상 흉터가 남을 자리가 없, 없습니다.”

“그래?”

펠티온이 삐딱하게 웃었다.

“그대가 남긴 상처로 빼곡해서?”

할리드의 입이 절로 다물렸다.

“증오와 사랑은 종이 한 장 차이라지.”

“폐하.”

“그래, 그가 날 원하지 않더라도 나를 증오함으로써 내 꿈을 꾸고 날 하루 종일 떠올리며 살아간다면, 인생의 대부분을 날 증오하는 데 써 준다면….”

펠티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 괜찮을지도. 그의 얼굴은 어딘가에 반쯤 홀린 사람 같기도 했다.

“이런 내 선택을 지독하게 후회하고 나아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지. 아니다.”

“…….”

“반드시 후회할 거야.”

하지만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 대신 그의 안에 할리드 비아라는 존재를 치워 내고 자신을 채워 넣을 순 있을 거다.

어리석은 남자로 살아가도 좋다. 이 확실한 충동을 물릴 생각도 없으니까. 그는 느긋하게, 정신을 잃은 녹스의 몸을 제 몸 아래에 깐 채 그 몸을 끌어안고 숨을 들이마셨다. 절그럭거리는 쇠사슬 소리는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펠티온의 손이 녹스의 허벅지를 터뜨릴 듯 쥐었다. 창백한 피부에 붉은 손자국이 남았다. 손톱 끝이 살을 파고든 것도 같았다. 하지만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녹스는 그저 축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의 다리 사이를 차지하고 앉은 펠티온은 입술을 꾹 깨물며 미소를 어떻게든 참아 내고자 했다. 자신이 그에게 지독하게 새길 상처가 흥분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녹스의 증오 어린 눈이 제게 꽂힐 것을 알았기에 심장이 쿵쾅댔다. 하지만 그것보단 당장 그를 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뇌에 과부하가 오는 것만 같았다. 얼마나 간절히 기다려 왔던 일이던가.

“녹스….”

마디가 굵고 두꺼운 손가락이 마른 구멍 위를 문질렀다. 억지로 피를 보아도 상관은 없겠지만 펠티온은 그런 단순한 고통을 주고 싶은 게 아니었다. 협탁에 준비된 향유를 손에 옮겨 온 그는 녹스의 다리 한쪽을 어깨에 얹은 채 자연히 벌어진 틈으로 향유를 흘려 넣었다.

온도가 없는 향유는 금세 미지근한 체온에 데워졌다. 펠티온은 예민한 입구를 비비다가 서서히 드러나는 틈에 손가락을 슬쩍 미끄러뜨렸다. 회음부에 문질러지는 관절의 감각에 잠든 녹스의 몸이 한 번 움찔 튀었다.

그 자그마한 반응에도 펠티온은 몸이 달았다. 결국 적당히 향유에 젖은 손가락 하나를 그의 밀부 안에 쑥 밀어 넣었다. 녹스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펠티온은 손끝이 녹아 버릴 것 같다고 느꼈다. 몸 안은 뜨거웠고 부드러운 내벽은 손가락을 꽉 조여 왔다. 아, 이 안을 억지로 벌리고 들어간다면 그가 무슨 얼굴을 할까.

펠티온은 그가 깨어나길 바라며 검지를 조금 굽혀 안을 슬슬 문질러 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그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지만 그것뿐, 제대로 일어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펠티온은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가져가 혀로 핥으며 두 개째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서인지 고작 두 개임에도 지나치게 빡빡했다. 펠티온은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은 많았다.

자신이 그를 여기 붙잡아 놓는 한. 초조해할 필요가 없었다.

펠티온은 손가락을 가위질하듯 벌렸다. 눈을 감은 녹스는 미약하게 움찔거리기는 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반응은 없었다. 약효 때문에 억지로 선 성기를 한 손으로 살살 문지르며 펠티온은 그의 구멍을 잘게 쑤셔 댔다.

찌걱거리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이어졌다.

할리드는 두 눈을 똑바로 뜨고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위장이라도 게워 내고 싶었다.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다. 할리드는 손목의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손을 뒤틀었지만, 팔뚝까지 칭칭 감아 놓은 쇠사슬을 풀어낼 방법은 없었다.

그는 차라리 녹스가 눈뜨지 않기를 바랐다. 차라리 눈뜨지 않아서 이 상황을 영원히 모르길 바랐다. 하지만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펠티온이 녹스를 그냥 그렇게 눈감은 채 두지 않을 거란 사실을.

펠티온이 몸을 세우고는 자신의 어깨에 얹은 녹스의 종아리에 입을 맞췄다. 할리드는 이를 악물었다. 송곳니에 피부가 찢어져 피 맛이 났지만, 할리드는 짓씹은 입술을 놓을 수 없었다.

“…폐하, 그만하십시오. 여기서 멈추란 말입니다.”

그가 몇 번이고 그렇게 외쳤지만 펠티온의 귀에 할리드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펠티온은 녹스의 종아리에 잇자국을 내고는 이미 욱여넣은 손가락 두 개를 더 깊숙이 넣으려는 듯 구멍 안으로 잘게 밀어 댔다. 치덕 대는 젖은 소리가 쇠사슬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섞여 들었다.

펠티온의 성기는 이미 바짝 열을 받아 크게 부풀어 하의 아래에서 흉흉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내뿜고 있었다. 펠티온은 녹스가 눈을 떴을 때. ‘제대로 느끼고’ 있길 바랐다.

오로지 고통만 있는 관계라면 그는 그것을 그저 단순한 폭력으로 받아들일 테지만 억지로라도 쾌감을 느끼게 한다면 녹스 라이네리오는 이를 그 무엇보다도 깊은, 깊은….

입술이 달싹였다.

펠티온은 녹스가 그 상처를 영원히 끌어안고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자신의 좆이 터질 것 같이 부풀어도 이를 악물고 웃으며 참았다.

세 번째 손가락이 조금은 부드럽게 풀린 구멍 안쪽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두꺼운 손가락 세 개를 머금은 구멍은 쑤셔 댄 보람이 있는지 적당히 손가락을 조이며 안쪽으로 빨아들이듯 젖은 물소리를 냈다.

펠티온은 더운 숨을 내쉬며 손가락 세 개를 굽혀 안쪽을 살살 긁어내리기 시작했다.

벌어진 허벅지 안쪽에 힘이 들어서는 게 보였다. 펠티온은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그는 느긋하게 녹스의 허리를 한 손으로 쥐어 받치면서도 내벽을 뭉근하게 비비며 밀어 올리는 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기억하는, 녹스 그가 느끼는 지점을 정확히 비벼 눌렀다. 퍼뜩 몸이 튀며 크게 흔들렸다.

할리드의 턱으로 피가 뚝 떨어졌다. 그의 혀가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의 푸른 눈이 담긴 눈꺼풀이 크게 뜨였다.

아, 녹스 차라리 눈 뜨지 마. 그렇게 빌었건만 암녹색 속눈썹이 떨리고 이내 천천히 열렸다. 그 사이로 잔뜩 확장된 검은 동공이 보였다.

“아…!”

녹스 라이네리오는 지나치게 강한 자극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젖히며 신음을 내질렀다. 발끝이 곱아들었다.

녹스 라이네리오는 이 감각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듬거리며 손을 아래로 내렸다. 허리를 받치고 있던 펠티온의 손이 녹스의 두 팔목을 가볍게 엇갈려 쥐어 왔다.

“일어났나?”

하나 목소리만큼은 달콤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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