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아, 나중에 놀이동산 가야지.”
[갑자기??]
[갑분놀이공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 형 어떡게된 의식의 흐름이얔ㅋㅋㅋㅋㅋㅋㅋ]
[어떡게x 어떻게o]
[맞춤법 빌런은 어디에나 있네;;]
귀신의 집 가는 김에 겸사겸사 놀이 기구도 타면 좋잖아. 나는 뭐… 대부분 무표정인 상태로 타긴 하지만, 억지웃음 정도는 지어 줄 수 있어. 멍한 눈으로 주변을 뒤져 가며 몇몇 개의 흔적들을 찾은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춘 뒤 얻은 흔적을 확인했다.
“아…. 이거 뭔 소리야?”
문제는 그 흔적들을 가지고 추리를 해야 하는데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거다. 오랜만에 문제 같은 걸 보니까 머리가 다 아프네. 이거 뭐 어쩌라는 건데? 남은 흔적을 더 모아야 하는 건가? 짜증스럽게 흔적 창을 닫은 나는 그 순간 튀어나오는 귀신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소리 개 시끄러워. 그래야 놀라는 건 알겠지만 진짜 미친 듯이 시끄럽네.”
[와씨뭐임;;;]
[형 진짜 왜 안쫄아,,,? 방금 안 무서웠어??? 나만 무서웠어???????]
[아ㅠㅠㅠㅠㅠㅠㅠㅠ창 내리자마자 귀신 있는 거 실화냐고ㅠㅠㅠㅠㅠ]
그냥 걷다가 귀신을 만나 죽는 것보다 이쪽이 더 무섭게 느껴지긴 하겠다. 적당한 곳에 주차해서 템창을 확인하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튀어나와 PK를 해 버린 상황이 아닌가. 잠시 이어폰을 뺀 뒤 귓구멍을 후벼 판 나는 다시 진행을 시작했다.
“그래도 모은 흔적들이 안 사라져서 다행이네. 이거 사라졌으면 진짜 샷건 쳤다….”
어떻게 모은 건데 이걸 날려.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귀신에게 얻어맞아 사망 판정을 받음과 동시에 우측 상단에 떠 있던 목숨을 나타내는 다섯 개의 하트 모양 UI 중 하나가 회색으로 바뀌었다. 아마 저 네 번 안에 이번 스테이지를 끝내지 못하면 가진 흔적을 모두 잃게 되는 모양이다.
[형 뇌에 힘줘~~]
[ㅁㅈㅁㅈ 네 번더 죽으면 흔적이랑 안녕하는거야]
[안녕해 안녕~~~]
“아…. 닥쳐 봐요. 그래서 안 죽으려고 이 지랄을 하는 중이잖아.”
[어디한번해보시지ㅋ]
내가 지금부터 한 번도 안 걸리고 깨는 모습 꼭 보여 준다. 열 받아서라도 그냥은 못 넘기겠네, 진짜. 두 눈을 부릅뜨며 전보다 본격적으로 흔적을 찾았다. 저런 소리를 들어 놓고 대충 하면 그게 겜창이냐. 절대 아니지. 그때, 누군가가 후원을 보낸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아주 크게.
[패치노트 님의 10000원 후원]
[형 화이팅]
“와씨… 귀신이 아니라 도네에 더 놀랐어…. 너 근데 거기서 뭐 하냐?”
[패치노트 님의 10000원 후원]
[방송 구경 중]
“뭔….”
아니,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보는 중이었냐고. 잠시 게임을 멈춘 나는 한도윤의 방송 페이지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내 방송을 켜 놓은 채 지켜보고 있는 장면이 내 시야에 잡혔다.
“야, 안 꺼? 혼난다?”
[패치노트 님의 10000원 후원]
[싫어요 형이 마음대로 하라면서요]
“그건 그런데 쪽팔리잖아…. 그냥 좀 꺼주면 안 되겠니?”
[패치노트 님의 10000원 후원]
[ㄴㄴㄴ]
미치겠네. 나야 시청자가 몇 없는 하꼬라 상관없는데 쟤는 아니란 말이야. 오히려 군대 갔다 오고 난 후에 시청자가 더 늘었어…. 이마를 감싸 쥐며 길게 한숨을 내쉰 나는 일단 게임을 마저 진행했다. 이번 스테이지만 깨고 방송 꺼야지. 뇌에 힘주고 길목이랑 이런 거 다 찾아서 어떻게든 빡종한다.
“…왜지? 왜 흔적이 없지? 나만 못 찾는 건가?”
[곧죽 불운썰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저렇게 못 찾기도 힘든뎈ㅋㅋㅋㅋ이걸 곧죽이가 해냅니닼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형 힘내 나는 형 편이야]
“아, 어쩌라고! 하나만 더 찾으면 되거든?!”
빠드득 이를 갈며 어떻게든 흔적을 찾기 위해 이리 뒤지고 저리 뒤지던 나는 마지막 흔적이 어디에 있는지 문득 튀어나온 시청자 한 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흔적 목숨 하나남았을때나옴ㅋㅋㅋㅋㅋㅋ무조건 네 번 죽어야함]
“…그래요? 구라면 어떡할 건데?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알려줘도 뭐라네;; 검색해보든가]
“누가 게임하는데 공략을 찾아보냐? 닥돌해서 깨야 재밌지.”
이래 봬도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 이거야.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겉으로는 시청자와 말다툼을 하는 척, 몰래 브라우저를 켜 저 말이 사실인지 진위 여부 확인에 들어갔다. 그리고 시청자의 말은 진실로 판명이 났다. 진짜 목숨 하나가 남아야 얻을 수 있는 거야? 게임이 미쳤네?
“…일단 말해 준 대로 한번 해 볼게요.”
모르쇠로 일관하며 네 번을 강제로 죽자, 다시 태어난 플레이어 캐릭터의 머리 위로 마지막 흔적이 떠올랐다. 진짜 허탈하네. 내가 안 죽었으면 못 얻었을 거란 얘기잖아.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게임 잘하는 사람은 이거 어떻게 찾으라고? 마지막 목숨 남았을 때 어쩐지 데자뷔를 느꼈다면서 흔적이 뜨네?”
[거봐 내가 맞댓잖아]
“어어, 그래. X나 고오맙다.”
제작자 새끼 진짜 악랄하네. 귀신 튀어나오는 연출에 힘줬으니까 많이 봐 달라고 그런 거 아냐. 이게 귀신한테 잡히면 그냥 튀어나오고 끝인 게 아니라, 갑툭튀를 하고 난 다음의 모션도 붙어 있었다.
심지어 연출의 종류도 다양했다. 어떨 때는 목을 꺾어 죽이고, 어떨 때는 칼 같은 거로 같은 부위를 연달아 찔러 죽이고, 또 어떨 때는 입을 크게 벌려 잡아먹기도 했다. 여기서 이 게임이 왜 청소년 플레이 불가 게임인지 깨달았다. 이거, 미성년자가 보기엔 잔혹성이 짙어도 너무 짙었다.
“흔적 먹고 난 다음에는 뭐 해야 해? 그냥 또 닥돌 해?”
[추리를 해야죠...]
[겜 날로 먹을라 하네]
날로 먹으려는 게 아니고 게임 공략을 모르니까 이러는 거 아냐! 흔적만 주야장천 모았지 그 뒤는 모른다고!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올리며 모은 흔적의 퍼즐을 풀어 보았다. 그나마 스타트 지역에서는 사망하지 않으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아까 전과 같은 꼴을 당했을 거다.
처음에는 난해한 줄로만 알았던 흔적들은 모두 모아 순서를 맞게 이어 주니 하나의 문양을 이루었다. 그 문양이 이번 스테이지의 힌트였다. 그러나 문양을 맞췄어도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건지 모르겠기에 또 한참 동안 머리를 싸매야만 했다.
“아, 그래서 뭐…… 아! 다시 보니까 이거 어디서 본 문양인데? 그 문양이 있는 데로 가면 되는 건가? 그럼 문이 열리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다급히 귀신을 피해 문양을 봤던 곳으로 열심히 내달렸다. 중간에 한 번 귀신에게 들켜 고난을 치를 뻔했으나 다행스럽게도 회피하는 데에 성공해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그렇게 중간 세이브 지점이 나오고, 스테이지 1을 클리어했다는 문구를 확인한 뒤 나는 그대로 게임을 종료했다.
[?????]
[뭐임? 왜 꺼??]
[팅긴건가?]
“아니. 나 방종하려고.”
[뭐임 하나깨고 방종이 어디있어]
“나 내일 데이트하러 가야 해. 그러니까 너희도 그러고만 있지 말고 발 닦고 잠이나 자세요. 그래야 애인이 생기겠죠?”
[야 죽창 어딨냐]
[죽창!! 죽창을 가져와라!!!!]
[적군이다!!! 사격하라!!!]
“뭐래. 너희도 잘 자요. 나는 잘 거야.”
기만자라며 무어라 폭언을 내뱉는 이들을 내버려 둔 채 방송을 종료한 나는 계속 앉아 있어 뻐근한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도윤이 아직 방송 중인지 확인하고 그에게 개인 톡을 남겨 뒀다.
[내일 놀이공원가자 귀신의집 가게]
[겸사겸사 놀이기구도 타고]
[한도윤: 어... 보통 반대 아니에요?]
[싫어?]
질문을 보내는 순간 한도윤이 방송을 종료하고 나오며 울상을 지었다. 혹시나 하고 생각했던 게 진짜였던 모양이다.
“형…. 저 무서운 거 싫은데…….”
“너는 진짜 생긴 거랑 따로 노는구나.”
“저라고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알지. 걱정하지 마. 그런 거로 내가 너한테 뭐라 하겠어? 네가 싫어하는 건 안 해.”
너한테 미움받기 싫은걸. 내 말에 한도윤의 표정이 풀리며 나를 제 품에 끌어안았다. 내 키가 조금만 더 컸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내가 반대로 한도윤을 안아 줄 수도 있을 거 아냐. 키가 작다는 이유로 불만을 가지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진짜… 어떻게 만나면 만날수록 처음인 게 계속 늘어나냐? 알다가도 모르겠네.
“형, 왜 웃어요?”
“그냥. 역시 너랑 있으면 즐거워서.”
“…저도요. 형이랑 있는 게 제일 좋아요.”
함께하기를 몇 년, 그동안 다 말하지 못할 만큼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이 다를 바 없다. 일부러 초심을 되찾으려고 애쓰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놀이공원 갈 거야?”
“…조금만 생각해 봐도 돼요?”
“이번이 안 되면 너 가고 싶을 때 가면 되니까 천천히 생각해.”
“네에….”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