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 (83)화 (83/88)

#83

15. 에필로그 2

(1)

[한도윤: 형 저 곧 서울 도착해요]

이번에 한도윤이 정기 휴가를 받고 잠시 서울로 올라올 수 있게 되었다. 녀석의 집에서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처음 받는 휴가이니만큼 이왕이면 서울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반기고 싶다는 생각에 역 앞으로 마중을 나갔다.

오랜만에 볼 얼굴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들뜨는 기분을 감출 수가 없다. 한도윤이 톡으로 보낸 곧이 언제쯤일까. 5분? 10분? 아니면 30분? 근처 벤치에 앉아 핸드폰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어서 녀석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렸다. 내가 이번에 제대로 반겨 주려고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했다 이거야!

“형! 많이 기다렸어요?”

“어? 어어, 아니. 얼마 안 기다렸어.”

멀리서 나를 부르며 달려오는 한도윤을 보며 나 또한 환한 미소와 함께 녀석을 반겼다. 못 본 사이 조금 탄 피부와 봐도 봐도 익숙하지 않은 까까머리를 쓰다듬으며 함께 녀석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진짜 오랜만이네. 군대 생활은 좀 어때? 적응할 만해?”

“생각보다 극한은 아니어서 괜찮았어요. 나름 편하던데요?”

예쁘게 웃는 한도윤의 머리를 재차 쓰다듬었다. 자식새끼를 키운다면 딱 이런 느낌일까. 물론 한도윤은 연인이지 자식은 아니었으나 어쩐지 딱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내가 맛있는 거 해 놨어. 가서 같이 먹자.”

“…해 놨다고요?”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는 녀석을 보며 씨익,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었다. 뭐, 내가 요리를 좀 못하긴 했지. 그래도 한도윤이 자리를 비운 4개월 동안 나름대로 요리 실력을 많이 올려 뒀다. 엄청 맛있는 건 아니라도 전처럼 차마 못 먹겠다는 말도 못 한 채 꾸역꾸역 먹을 수준의 실력은 아니다 이거야!

“야, 전처럼 그 정도는 아니야. 너 군대 가 있는 동안 실력 엄청 늘었거든? 밥 챙겨 먹을 겸 레시피 같은 거 챙겨 보면서 계속 만들었더니 실력이 늘더라고.”

“…정말요?”

“약속했으니까.”

끼니 잘 챙겨 먹기로 말이다. 내 덤덤한 목소리에 한도윤은 가느스름했던 눈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놓은 뒤 배시시, 귀여운 미소를 지었다. 이게 진짜 연애하는 맛인가. 이번에 휴가가 끝나면 또 한동안 혼자 있을 걸 생각하니 조금 쓸쓸해지는 기분이다.

“…빨리 제대했으면 좋겠네.”

“저도요.”

한도윤의 집으로 향하는 내내 우리는 그동안 못 해 왔던 이야기를 나눴다. 병영 생활만 하는 한도윤은 별다른 에피소드가 없어 이야기를 주도하는 건 주로 내 쪽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4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여러 일이 있었던 탓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한도윤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내 말의 진위 여부를 물었다.

“진짜 베타 님이랑 한놈 님 결혼하신대요?”

“어. 근데 이왕이면 모두한테 축하받고 싶다고 너 제대한 후에 식 올릴 거래.”

“그렇게까지…. 제가 길드 하나는 잘 만났네요.”

“그렇지?”

그동안 일어났던 수많은 일 중 가장 먼저 알려 주고 싶었던 게 이거였다. 한도윤을 처음 만났을 때 당시 베타 누나가 저 사람 마음에 드니 길드 초대하는 건 어떻겠느냐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아마 거기서 한도윤과 관계는 끝났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등 공신이지.

“내가 네 얘기만 하면 문영윤이 배 아프다고 지랄을 하더라. 자기도 무조건 연애할 거라고 이를 가는데, 연애를 뭐 혼자 하나. 상대가 있어야 하는 건데.”

“나중에 제가 소개라도 시켜 드려야겠네요. 저 그래도 아는 사람 많거든요.”

“내가 그 소리를 안 해 봤을 거 같니? 걔 징징거리는 소리 듣기 싫어서 소개해 준다니까 자기는 자만추라 그런 거 싫다고 악을 쓰더라고.”

“와…. 머릿속에 영윤이 형 목소리가 재생되는 거 같아요….”

나도 아직까지 그 고함이 귓가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여름 방학 시작했을 때 잠깐 같이 술자리를 즐겼는데 그때 소개해 주겠다는 소리 한번 했다가 가게가 떠나가라 욕을 들었다. 솔직히 소개해 준다 하면 걔 쪽이 개이득 아니냐? 나는 상대방한테 손절 당할 거 각오하고 얘를 소개해 주겠다고 마음먹은 거였는데. 아직 덜 외로운 게지.

“그래서 그 사람은 다른 사람한테 소개해 줬고, 둘은 연인이 되었답니다. 짜잔.”

“진짜요?! 아니, 아니 영윤이 형은…….”

“몰라. 요즘 뭐, 그래도 관심 가는 사람 하나 생긴 거 같긴 한데 어찌 되고 있는진 나야 모르지. 물어봐도 그런 거 없다면서 말을 돌리더라고.”

그래도 내가 남의 연애 방해는 안 하는 사람인데 말이야. 어깨를 으쓱이며 그렇게 말하자 한도윤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휴가 나온 김에 문영윤과 만나고 싶다는 얘기를 꺼냈다. 걔랑 만나서 뭘 하겠나 싶지만, 그래도 이왕 고생하고 쉬러 나왔으니 재밌게 놀게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이따 문영윤한테 연락해 봐야지.

“아, 겸사겸사 태원이도 부를까?”

“태…원이요?”

“어. 내가 이거 말 안 했구나. 나 너 하던 거 생각나서 인터넷 방송 하고 있어. 시작할 때 태원이가 많이 도와줬지.”

“네?! 걔가요?”

“엄청 잘 도와주던데? 그러면서 너 잘 부탁한다는 소리도 좀 듣고.”

한도윤의 표정이 아까보다 더 미묘해졌다. 정확히는 내가 요리를 해 놨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미묘하고 기묘한 표정이었다. 둘이 불알친구인 건 알지만 이렇게 반응할 일인가 싶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녀석이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며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그… 되게 친해졌나 보네요.”

“말했잖아. 시작할 때 태원이가 많이 도와줬다고. 생각보다 재밌더라. 내가 욕을 많이 해서 이게 진짜 방송을 타도 되는 건가 싶었는데, 막상 욕을 안 하면 왜 욕 안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어서 요즘은 편하게 하고 있어.”

“…잘 맞아서 다행이에요. 시청자들 반응 보면서 하면 재밌긴 하죠.”

아, 표정 풀렸다. 한순간에 바뀌는 표정 변화가 웃겨서 녀석의 볼을 콕콕 찌르자 왜 그러냐는 눈빛을 보내는데, 그것조차도 귀엽게 느껴지는 걸 보니 내가 아무래도 제대로 콩깍지가 쓰인 모양이다.

베타 누나가 연애할 때 너무 쉽게 보이면 안 된다고 그랬는데. 근데 막상 생각해 보니 표정이 티가 안 나는 나보다 한도윤 쪽이 훨씬 쉬워 보여서 딱히 상관없지 않나 싶다. 그런 것도 서로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것을 전제하고 고민하는 거잖아.

다시금 한도윤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배시시 웃는 녀석의 얼굴을 확인하고 ‘아, 나는 그런 고민 안 해도 되겠는데?’라고 자신할 수 있게 되었다. 쉽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 자체가 지금으로서는 사치야. 오랜만에 봤는데 그런 데에 정신 팔려야 하냐고.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한도윤의 자취방에 도착했다. 혼자 마중을 나갈 땐 멀다고 생각했던 거리가 함께 대화하며 오니 금방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똑같은 시간이 걸렸는데도 말이다.

“손 씻고 와. 나는 그동안 밥상 차려놓을게.”

“…네. 뽀득뽀득 씻고 올게요.”

녀석, 아직 내 실력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구나? 하기야, 그 전이 워낙 쓰레기였어야지. 한도윤의 반응을 이해하는 한편으로 조금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오늘 한 요리에 보일 반응을 생각하니 섭섭했던 기분이 싹 사라졌다. 어디 한번 맛보라우.

“이거 진짜 형이 한 거예요? 전부 다?”

“당연하지. 남의 도움… 어……. 인터넷에 검색해서 나온 레시피의 도움은 받았지만 내가 만든 거 맞아.”

“와…. 진짜 맛있어요!”

오늘 한 요리는 돼지갈비찜에 고추장찌개, 그리고 잡채와 기타 반찬들이었다. 참고로 반찬도 김치 빼고는 전부 내가 직접 했다.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밥상을 차린 건 처음이다. 우리 부모님한테도 안 해 줬는데 이걸 애인한테 해 주네.

“김치 빼고는 다 내가 만들었어. 괜찮아?”

“형 방송하신다고 했으니까 나중에 쿡방 같은 거 해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아니면 먹방이라든가. 진짜 맛있어요!”

“쿡방은 네가 해야지. 너 요리 잘하잖아.”

예전에 한도윤이 해 줬던 요리들을 내가 직접 레시피를 찾아 만들어 보았으나 이상하게도 그때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왜 안 되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이야. 그때 먹었던 그 맛을 재현하고 싶었는데.

“다음에는 제가 해 드릴게요.”

“그래 주면 나야 좋지. 솔직히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귀찮단 말이야.”

“대신 사 먹는 것보다 훨씬 싸고 몸에 좋잖아요.”

“그건 그래. 그래서 내가 그동안 5kg은 찐 거 같아.”

“진짜요?!”

뭐지, 내 요리에 대한 맛 평가보다 저 행복해 보이는 저 얼굴은. 밥을 먹다 말고 한도윤이 집 안 구석에 박혀 있던 체중계를 꺼내 와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며 내 앞에 내려놓았다. 아니, X발 이게 뭐야. 말 한번 잘못했다가 몸무게 검사를 당하네.

“와! 진짜 63kg!”

“이게 뭐라고 저렇게 좋아하지?”

“어어… 솔직히 별거 아니긴 한데, 형은 너무 말랐으니까 좀 걱정이 돼서…….”

앞으로는 이런 짓 안 하겠다며 조심스레 눈치를 보는 모습에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지가 생각하기에도 이상하게 느껴지니까 안 하겠다는 거지. 안 해 주면 나야 고맙다. 안 그래도 바빠 뒈지겠는데 몸무게까지 신경 쓰고 싶진 않단 말이야.

“대신… 운동 조금만 하는 건 어때요? 지금부터 근력 운동하면 딱 효율이 좋을 텐데….”

“하는데? 운동.”

“네? 진짜요?”

“응. 한놈 님이랑 같이 헬스장 가…. 가기 싫어도 끌려가….”

한놈 님의 그 거대한 등빨을 떠올리며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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