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 (75)화 (75/88)

#75

14. 에필로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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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노트] #11 잊혀진 영웅의 진혼곡 업데이트

<공식 트레일러 영상 보기>

* 열한 번째 메인 시나리오 [잊혀진 영웅의 진혼곡]

※ 리오렌 마을 – 무지개다리(X8.4 Y12.55)에 위치한 NPC ‘젠’으로부터 신규 메인 퀘스트 [존재 이유]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신규 레이드 추가

※ [환상곡]

-무지개다리 너머 환상으로만 존재한다는 도시, 판타지아 [환상곡]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메인 퀘스트 [빛바랜 추억, 그리고 기억]을 클리어한 후, 무지개다리(X8.4 Y12.55) NPC ‘젠’에게 받을 수 있는 메인 퀘스트 [구름 너머의 환상]을 진행하여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입장 조건

└ 전투 클래스 레벨 120

└ 1~8인 파티 권장

└ 제한 시간: 120분

* 신규 콘텐츠 추가

※ <영혼의 서약> 시스템이 추가되었습니다.

-고목나무의 숲 지역에 위치한 첫눈이 내리는 나무(X32.37, Y5.2)에 있는 서약 NPC에게 퀘스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함께 영혼의 서약을 할 2인 파티로 진행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관련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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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드/패치노트: 말도 없이 잠수타서 죄송합니다]

[길드/패치노트: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거예요]

[길드/뚝배기장인: 그건 괜찮은데 혹시 안 좋은 일 있으셨던 건 아니죠??ㅠㅠㅠ]

[길드/퇴사기원: ㅁㅈㅁㅈ 다들 걱정 엄청했어요ㅠ]

패치노트가 등장하자마자 그를 반겨 주는 길드원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물을 마시던 나는 이어진 패치노트의 채팅에 먹던 물을 뿜을 뻔했다.

[길드/패치노트: 별건 아니고요]

[길드/패치노트: 그냥 입영통지서가 날아와서 멘탈이 좀 갈렸나봐요]

[길드/주님한놈갑니다: 세상에 그런 일이...]

[길드/주님한놈갑니다: 주님, 어린양 하나가 제 발로 그리 간다고 합니다.]

[길드/주님한놈갑니다: 마음씨 고운 어린양이니 부디 잘 부탁드립니다.]

[길드/베타: 뭐래]

여러 의미로 대단한 발언이었다. 다짜고짜 입대 얘기를 꺼낸 패치노트도 그렇고, 입대 얘기에 주님을 부르짖는 불교 신자 한놈 님의 발언도 참 주옥같았다.

[길드/베타: 걱정마세요!! 팿놑님 제대할때까지 섭종 안한다면 저희는 계속 이 자리에 있을 거예요!!]

[길드/베타: 그러니까 마음 편히 다녀오세요!]

[길드/주님한놈갑니다: ?]

[길드/주님한놈갑니다: 지금 바로 입대하는 건 아닐 텐데, 벌써 그런 말을 하실 줄이야.]

[길드/패치노트: 네 4월 입대예요]

[길드/베타: 뭐임]

[길드/뚝배기장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스12바 저거 왤케 웃기지]

[길드/패치노트: ???]

잘들 논다. 물을 홀짝이며 대충 채팅을 흘겨본 나는 여전히 떠들고 있는 이들을 뒤로하고 던전에 들어갔다. 트롤의 탈을 쓴 뉴비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클린하게 끝나는 판에 확실히 요즘 유저들 장비 수준이 올라갔구나 싶어졌다.

조만간 신규 업데이트가 하나 더 추가된다고 하던데, 끝물은 끝물이구나. 다들 이스카리아 장비에 강화를 적게는 5강, 많게는 12강까지 박아서 딜이 술술 박혔다. 그래서일까. 신규 레이드가 나오기 전에는 던전이 영 재미없을 것 같다. 좀 빡센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형 오늘 뭐할거예요?]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아까 던전 가셨던데 저랑 갈래요?]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결장갈 것]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저도 들어갈게요]

안 돼, 오지 마. 너랑 매칭되면 내가 이길 수가 없잖아. 겨우 올려 놓은 승률을 다시 떨굴 수 없단 말이야. 그러나 미처 귓속말을 보내기도 전에 매칭이 시작되어, 나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결투장에 들어갔다. 제발 패치노트만 아니기를!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와우]

[전체/투명: 왜째서]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투명 ㅎㅇ]

[전체/투명: ㅗ]

저 새끼는 인사해도 지랄이네. 속이 꼬여도 너무 꼬인 거 아니야? 한쪽 입꼬리를 비죽 끌어올리며 폭딜로 투명을 녹여 버리려던 나는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일에 키보드에서 손을 놓았다. 그러자 현란한 무빙으로 나를 죽이려던 투명이 멈칫하며 채팅을 올렸다.

[전체/투명: 뭐함?]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너한텐 빚이 있으니까 함만 봐드림]

[전체/투명: 개1샊희]

저번에 한도윤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 그로부터 문영윤이 한도윤에게 나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며 어떻게든 둘을 엮겠다고 개난리를 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뭐…. 그걸 곧이곧대로 들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을, 내 반응을 보고 영 아니다 싶었던 한도윤이 냅다 입대 신청을 해 버렸다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전체/투명: 내가 그런다고 고마워할줄아냐?]

[전체/투명: 존12나 고마워요 형]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으; 형소리 ㄴㄴ; 극혐;;;]

[전체/투명: 도윤이가 아니면 싫다 이거지]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투명하게 만들어주랴?]

[전체/투명: ㅋㅋㅈㅅ;]

곧바로 꼬리를 내린 투명은 가만히 있는 나를 상대로 열심히 무빙과 콤보기를 넣으며 승리를 가져갔다. 처음에는 옳다구나 하고 받아먹었어도, 시간이 지난 후 이렇게까지 해서 이겼어야 했나 하는 자괴감에 몸을 비틀 녀석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매칭 저랑 안 됐네요...]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저 지금 대기중...]

제발 그러지 좀 말아 줄래? 흐릿하게 웃으며 패치노트에게 귓속말을 하나 꽂았다.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헤어져]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네?]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형ㅇ잠시만요]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왜요??]

다급하게 폭풍 채팅을 보내는 패치노트를 보니 내가 조금 심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헤어지겠다는 뜻은 아니었는데…. 나도 연애를 주변인들이 하는 거 보면서 배운 거라 다들 이러는 줄 알았다. 내 친구들은 뭐만 하면 싸운 뒤 헤어지고 다시 사귀고 그 지랄을 했거든. 그런데 아무래도… 이거 역시 내가 좀 심한 게 맞지…?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그거 아니야]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아니죠...?]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아닌 거 맞죠...???]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내가 잘못했다]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그러니까 이제 귓말 그만]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진짜 헤러ㅓ지는 거 아니죠?]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어어 아니야 내가 잘못했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마음고생을 기가 막히게 한 사람다운 반응이었다. 미안하다, 이거 하려고 어그로 끌었…, 이 아니고.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진짜로 헤어지려고 그런 거 아니야]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2년 기다려준다고 했잖아]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네!!]

새삼 나도 많이 바뀌었지 싶다. 예전 같았으면 뭐라고 지껄이든 말든 다 씹고 내 할 일만 했을 텐데, 확실히 눈치도 늘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한결 편해졌다. 괜히 머쓱해 코끝만 매만졌다. 이래서 어른들이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노래를 불렀나 봐. 그럼 나는 사람을 잘 만난 케이스인가.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 가장 큰 습관 중 하나였던 손톱 물어뜯기가 사라졌다. 나중 가서 또 뜯을 수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도윤과 만나기로 한 뒤부터 손톱을 물어뜯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지금은 거의 뜯지 않는다. 대신 코끝을 매만지게 되더라. 이유는 나도 모름.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오늘은 여기까지]

[길드/베타: 곧죽 잘가~~]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ㅂ2]

게임을 종료하고 가볍게 씻은 뒤 옷을 차려입으며 천천히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품이 넉넉하다 못해 큼직한 흰색 맨투맨에 옅은 하늘색의 청바지가 오늘의 착장이었다. 며칠 전에 미리 사 뒀던 깔끔한 새 옷을 입으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내 취향도 어느 정도 들어가 있지만 나보다는 한도윤의 취향이 반영된 옷이었다.

‘형, 이거는 어때요? 잘 어울릴 거 같은데.’

‘…너무 큰데?’

‘잘 어울려요.’

그놈의 얼굴만 아니었더라면! 얼굴에 홀려서 알겠다고 구매한 옷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컸다. 그나마 무지 티셔츠라서 다행이지. 프린팅이 되어 있는 옷이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안 샀을 거다.

“슬슬 나가야 하네.”

시계를 확인하니 약속 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반 남짓. 지금 나가서 지하철을 타야 정확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팩에 가져갈 것을 쑤셔 넣은 뒤 집 밖으로 나선 나는 여전히 차가운 공기에 입김을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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