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 (73)화 (73/88)

#73

-흐아암…. 아침부터 무슨 일?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엉? 뭐를?

아직 잠에서 덜 깬 문영윤의 목소리를 들으며 책상에 몸을 기대었다. 그러게, 내가 뭘 물어야 하지? 왠지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무작정 전화를 걸었지만, 아직 내 머릿속은 명확하게 정리된 상태가 아니었다. 좀 생각해 보자. 나는 왜 문영윤에게 전화를 걸었지? 문영윤…. 그래, 문영윤이 한도윤을 우리 집으로 보냈지. 나는 일단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너 한도윤이랑 어떻게 친해졌냐?”

-댓바람부터 이건 또 뭔 소리래?

“우리 집 주소를 알려 줬을 정도로 친하잖아. 어떻게 친해졌냐고. 알고 지낸 지도 얼마 안 됐고, 너희 서로에 대한 첫인상도 별로여서 저번에 봤을 땐 으르렁거렸잖아.”

얼마나 지났다고 그걸 잊었겠어. 나름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자 술자리를 만들었다가 파국이 일어난 걸 똑똑히 기억한다고. 내 질문에 문영윤이 앓는 소리를 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이에 네가 껴 있으니까 친해진 거지. 친구의 친구랑 친해지는 게 뭐가 나쁜 일이라고.

“그래? 그냥 그런 이유야?”

-…그 외에 뭐가 또 있는데?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없어? 하나도?”

문영윤이 아무 이유 없이 기껏해야 한 번 본 사람한테 우리 집 주소를 알려 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저 녀석이 생각 없이 사는 것처럼 보여도 누구보다 생각이 많은 놈이다. 뭐, 대부분 깊은 생각보다는 잡생각 같은 거지만.

-없는데?

“구라 치지 마. 내가 널 몇 년 봤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목소리 톤만 들어도 숨기는 게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바로 파악되거든? 사실대로 말해. 너 뭐 숨기고 있냐.”

오래 알고 지낸 친구란 이런 거 아니겠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에 대해 알 수 있는, 그런 사이. 조곤조곤한 내 목소리에 문영윤이 머리를 벅벅 긁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이 새끼 또 머리 굴리려고 하네.

“머리 굴리지 마라. 네가 하는 거짓말은 나한테 안 통해.”

-으…. 나중에 말해 주면 안 돼?

“어. 안 돼.”

이게 어디서 거짓말하려고 빌드업을 쌓냐. 이런 놈한테는 생각할 시간 자체를 주면 안 된다.

-…나중에 진짜 제대로 알려 줄게. 지금 말하기는 좀 그래.

“왜?”

-너한테 나쁜 건 아니야. 오히려 좋은 거야. 그래서…으음…….

수화기 너머에서 문영윤이 이럴 줄 알았으면 사이에 끼는 게 아니었다며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만으로도 녀석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것도.

“됐어. 안 알려 줘도 돼.”

-어?

“다시 자라.”

전화를 끊은 나는 침대 위에 대자로 엎어져 누웠다. 몸살 기운 때문에 몸이 나른한데도 불구하고 머릿속은 맑다 못해 깨끗하다. 조금만 자고 일어나서 게임해야지. 뭐 좀 업데이트됐으면 좋겠다. 똑같은 것만 반복하니까 재미없단 말이야.

(5)

금방 완쾌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열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아 며칠의 시간이 더 걸려 버렸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몸살이 심하게 들린 탓이었다. 아직 나른한 몸을 풀며 늘어지게 하품을 한 나는 연락이 쌓여 있는 톡 사이로 조용한 한도윤의 이름을 손으로 쓸었다.

저번에 간호하러 온 이후로 그에게서 온 연락은 하나도 없었다. 톡도, 문자도, 전화도. 그 무엇도 말이다. 길드 단톡을 확인해 보니 전과 달리 게임조차 접속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거의 24시간 접속해 있는 길드원들에게 들은 속보이니 확실하겠지.

더 황당한 건 그래도 틈틈이 하는 듯싶었던 인터넷 방송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한동안 방송을 하지 않겠다는 공지 하나만 덜렁 올라가 있었다. 몸살에 걸린 상태라 게임 하기엔 기력이 부족해 방송이라도 볼까 하고 그의 채널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흐음…….”

내가 먼저 톡 보내 볼까? 원체 선톡을 안 하는 편이다 보니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고민이 되었다. 핸드폰 액정만 매만지며 고민에 휩싸이던 나는 이내 그의 개인 톡에 들어가 몇 마디를 적었다 지우길 반복했다. 갑자기 말 걸었다고 뭐라 할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뭐 해?]

[바빠?]

“와…. 내가 썼지만 이거 딱… 새벽 2시에 연락하는 전남친 모먼트 아니냐?”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내 자신이라 해도 먼저 연락한 적도 없는 놈이 뭐 하냐고 띡 보내 놓은 꼬락서니 자체가 별로였다. 친구들한테 이런 연락이 오면 이 새끼가 낮술 했나 하고 씹어 먹을 정도로 구닥다리 멘트다. 그렇지만 막상 보내려고 하니 다른 말은 생각이 안 나는걸….

나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답장을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답장이 느린 사람이었으면 그냥 그러려니 할 텐데, 톡을 보내자마자 답장하던 양반이 두 시간이 지나도록 조용하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었다.

“…진짜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사고라도 났나? 그래서 여태 연락도 없고 게임도 안 들어왔던 건가. 한동안 방송 안 한다는 공지도 그래서 올렸다든가? 내 딴에는 괜히 심각해져 핸드폰을 노려보다, 결국 씹힐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무릅쓰고 한도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길게 이어지는 수신음을 들으며 새삼 과거 내 행동을 되돌아보았다. 너는 어떻게 된 놈이 백날 전화해도 콜백이 안 되냐고 징징거렸던 애들이 딱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새삼 깨닫게 되어 이제부터라도 연락을 제때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게 길게 갈 것도 없이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한도윤의 톡을 읽지도 않았던 이력이 이미 있지 않은가. 이럴 줄 알았으면 답장은 꼬박꼬박 할걸. 괜히 혼자 머리 싸맨다고 지랄하다가 엿 됐네.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는 도중, 수신음이 끊기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어, 그… 그으…….”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실로 꿰매 막아 버린 듯, 입이 열리지 않았다. 생각을 정리한 다음 전화했어야 했나. 이렇게 한 턴에 받을 줄은 예상 못 해서…. 머릿속에 맴도는 말을 입 안에 굴리고만 있을 때, 평소보다 낮게 들리는 한도윤의 목소리에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제가 뭐 좀 하고 있어서 그런데, 급한 용건이 아니라면 나중에 연락드려도 될까요.

“어, 어? 아냐. 그냥 아까 톡 보냈는데 답이 없길래… 무슨 일 있나 하고 연락해 봤어. 많이 바쁜가 보네.”

-아…. 요즘 좀 할 게 많아서 미처 핸드폰을 확인 못 했네요. 죄송해요.

“아냐. 나야말로 바쁜데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해.”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생각보다 길게 이어지는 대화는 대부분 영양가 없는 것뿐이었다. 그동안 뭐 했냐부터 시작해서, 몸은 좀 괜찮아졌냐는 질문까지. 소소하게 일상을 물어보는 목소리에 괜히 볼이 상기되는 게 느껴졌다. 아까까진 기분이 별로였는데, 고작 이런 거로 풀릴 수도 있구나.

-아, 저 지금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나중에 제가 연락드릴게요.

“어어, 그래. 힘내고.”

-네. 형도 건강 챙기세요. 다음에 봐요.

전화가 끊긴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참았던 숨을 터트렸다. 오만 정이 다 떨어져서 씹힌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난 또. 저번에 우리 집에 오고 나서부터 조용하길래 폐인 꼴을 보고 정나미가 떨어진 줄 알았지. 아니어서 다행이다. …진짜로.

나는 나중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한도윤의 말을 믿고 마음 편히 게임에 접속했다. 그 뒤는 별일 없었다. 던전을 돌고, 남은 시간엔 결투장에 들어가 PVP를 즐기다가 길드원들이 같이 놀자고 부르면 쪼르르 따라가 같이 놀았다. 마음 편하게 말이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다면, 금방 연락할 것 같았던 한도윤이 대충 한 사흘 동안 조용했다는 거려나?

[길드/베타: 곧죽이 팿놑님 언제 온대?]

[길드/베타: 많이 바쁘시대?]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봄?]

[길드/베타: 들이 젤 친하잖아]

그건 아니죠. 명색이 불알친구인 연중무휴가 있는데요. 물론 그 연중무휴조차 접속을 안 하고 있지만.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ㅁㄹ]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나한테물어보지마]

[길드/베타: 닉값오졌다]

알면 물어보지 마. 나도 몰라, 모른다고! 까득, 어금니를 꽉 깨물며 앞머리를 쓸어 올린 나는 그 자리에서 컴퓨터를 종료했다. 오늘은 영 게임할 기분이 아니다. 아니, 그보다는 최근 들어 게임이 재미없었다.

나름 길드원들이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게임을 즐겼다고는 하나, 평소와 비교하면 재미가 없었다. 원래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었는데… 한도윤, 패치노트가 접속하지 않으면서부터 모든 게 지루하게 느껴졌다.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나는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그래서 왜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건데.”

금방 연락해 줄 것처럼 굴어 놓고. 가슴 한구석이 묵직한 느낌에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그냥 기다리면 되는 건데도 신경 쓰인다고. 별것도 아닌 일을 자꾸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최대한 좋게 생각해 보려 해도 쉽지 않았다.

“아, 진짜 짜증 나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 나는 최대한 차가운 물을 틀어 그 아래로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여름에 더울 때만 하던 짓을 한겨울에 하게 될 줄이야. 차갑다 못해 서릿발 같은 물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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