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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 (72)화 (72/88)

#72

(4)

다시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보인 것은 낯선 천장…이 아니라, 이마 위에 올려져 있는 미지근한 수건이었다. 설마 내가 잠들고 나서도 계속 간호해 준 건가? 여전히 무거운 몸을 일으키자 침대 한쪽에 엎드려 잠들어 있는 한도윤이 보였다.

“잘 자네.”

불편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참 곤히 잠들어 있다. 눈을 감고 있는 탓일까, 평소보다 속눈썹이 길어 보였다. 그것을 빤히 응시하던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가 이내 자는 사람을 상대로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 다시금 손을 뒤로 물렸다.

잠들어 있어서 다행이다. 손 뻗은 타이밍에 맞춰 그가 일어났으면… 그냥 미친놈인 양 죽은 척을 해 버렸을 텐데. 기지개를 켜며 뻐근한 몸을 풀자 관절 여기저기에서 뚜두둑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크흠…. 그래도 아까보다는 한결 낫네.”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약을 먹고 잤기 때문인지 잠들기 전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괜찮아졌다. 적어도 바닥을 기어 다니지는 않아도 되겠다며 스스로의 상태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얘는 어쩌지. 자세가 좀… 불편해 보이는데. 침대 양보해 줄 테니 여기서 자라고 곤히 자는 사람을 깨우기는 조금 그렇다. 나는 침대 벽 쪽에 쭈그려 앉아 세상모르고 잠든 한도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기야,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나를 간호하겠다고 잠을 제대로 못 잤을 테니 피곤하긴 할 터다.

“참 잘났네.”

슬쩍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짓자 건조한 입술이 찢어지며 비릿한 피 맛이 났다. 미약한 통증에 혀로 상처 부위를 쓸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물이라도 마시며 목을 축여야 할 것 같다.

아직 잠들어 있는 한도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자, 루트를 확인해 보자. 침대 다리 부분으로 기어간 다음 바닥에 내려가는 순간부터는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 침대가 흔들리는 것만 조심하자고.

“…형? 뭐 해요?”

“아, X발, 깜, 짝이야….”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나직하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왔다. 화들짝 놀라 다시금 벽 쪽으로 몸을 붙인 나는 한 손으로 귀를 틀어막으며 고개를 무릎 사이에 묻었다. 미친 거 아냐? 일어났으면 일어났다고 말부터 해야지! 사람 간 떨어지게!

“그, 그냥 물 먹으러 가려고…. 내가 깨웠어?”

“아뇨. 그냥 문득 눈이 떠져서…. 제가 가져올 테니까 누워 계세요.”

“…예?”

죄송하지만 여기 내 집인데요. 뭔가 집주인이 바뀐 거 같지 않냐? 이것이 바로 현대판 주객전도인가 싶어 멍한 눈으로 한도윤을 바라보았다.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더니 순간적으로 몸을 휘청거렸다.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그를 붙잡으려던 나는 이어지는 목소리에 손을 내려야 했다.

“다리 저려….”

그야… 그렇겠지. 다리가 눌린 상태로 자다가 일어났으니까. 꽤 장기간 눌렸으니 저리긴 하겠다. 그렇게 비틀비틀 부엌으로 가 물 한 컵을 따라 온 한도윤이 아직 잠에서 덜 깬 얼굴로 나른하게 웃으며 물잔을 건넸다. 조금 얼떨떨한 심정으로 그가 건네주는 컵을 받은 나는 한도윤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고마워….”

“별말씀을요.”

내 감사 인사에 곱게 웃은 한도윤이 다시금 침대 앞에 쭈그려 앉았다. 침대 위에 팔을 괴고 고개를 기울이며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헛기침이 절로 나왔다. 평소 혼자만 있던 집에 누군가 들어와 나만 쳐다보고 있으니 미친 듯이 신경 쓰인다. 물론 여기가 우리 집이고 내가 집주인이니 나한테 시선을 주는 게 당연하긴 하다만, 그래도 부담스러운 건 부담스러운 거다.

“빨리 나아요. 아프지 말고.”

“…그럴게.”

몸살에 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뜸 달려와 간호해 준 건 무척 고맙지만… 이제 그만 돌아가 줬으면 하는걸. 다른 것보다 짧은 시간 동안 못 볼 꼴을 너무 많이 보여 준 게 제일 걸렸다. 나 지금… 땀내는 안 나겠지? 냄새를 맡고 싶어도 나만 바라보고 있는 커다란 댕댕이 한 마리 때문에 차마 킁킁거릴 수는 없었다.

이미 말아먹은 이미지라도 최대한 좋은 모습만 보여 주고 싶었는데. 역시 사람 일은 마음대로 안 된다는 생각에 괜히 코끝이 시큰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면 이게 안 좋다니까. 머리에 열이 조금만 올라도 눈가가 같이 뜨거워진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아요? 아직도 많이 아파요?”

“아니… 안 아파.”

몸보다는 정신이 아픈 것 같아. 눈동자를 굴려 한도윤을 흘겨보자 그는 여전히 걱정이 가득한 낯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팔을 뻗어 내 이마에 손을 올렸다. 서늘한 손이 이마에 닿자 감촉이 시원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와, 진짜 시원해. 기분 좋아.

“아직 열이 있네요. 오늘은 밥 먹고 약 먹고 그다음 푹 쉬세요. 게임하겠다고 컴퓨터 켜면 안 돼요.”

“…안 아프다니까? 나 멀쩡해.”

“원래 아픈 사람은 자기 아픈 걸 인정 안 하더라고요. 형이 딱 그래요.”

…그게 국룰이긴 하지. 근데 나 그렇게 티가 많이 났나? 나름 심각하게 내 뺨을 매만지며 표정이 눈에 보이나 고민하고 있으니 한도윤이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습관처럼 그를 따라가는 시선에 한도윤이 제 겉옷을 챙기는 게 눈에 보였다.

“이제 가려고?”

“슬슬 가긴 해야죠. 형도 제가 계속 있으면 불편해하실 거잖아요.”

차마 눈은 마주치지 못했다. 침대 옆에 있는 작은 수납장 위에 물컵을 내려놓으며 입 안에서 혀를 굴렸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되물어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전혀 아니라고 하면 되는 걸까.

…솔직한 심정으로 말하자면, 계속 있어 줬으면 했다. 못난 모습만 보여 주게 된다 해도 옆에 있었으면 한다. 호감…을 넘어서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 쪽이 더 좋지 않겠는가. 아픈 상태든, 아니든. 물론 입 밖으로 그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내뱉고 나면 되돌릴 수 없잖아. 스스로에게 확신이 서기 전에는 말하지 않을 거다. 아마도.

“딱히… 그렇지는 않은데…….”

“가족도 아니고 타인이 환자 집에 오래 있는 건 좀 그렇잖아요. 원래 쉴 때는 혼자 있어야 푹 쉴 수도 있고요. 남이 옆에 붙어 있으면 신경에 거슬릴 거 아녜요.”

타인과 남. 말 그대로 나라는 주체와 엮이지 않는 단어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그렇지, 남이지. 관계라고 해 봤자 게임 친구에 불과한 타인이긴 하지. 괜히 입 안이 쓰다. 나와 그 사이에 명확한 선이 그어져 있는 것만 같아서.

“그럼 저는 가 볼게요. 나중에라도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바로 달려올게요.”

고개를 들어 한도윤의 표정을 두 눈에 담았다. 부드러이 웃고 있지만, 어쩐지 기운 없어 보이는 미소였다. 입술을 달싹이며 무어라 대답하려던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적어도 배웅은 제대로 해 주자는 생각이었다.

“엇…….”

아직 기운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인지 바닥에 발을 디디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힘없이 휘청거리는 몸에 놀라 중심을 잡으려는 찰나, 바로 앞에 있던 한도윤이 내 허리를 감싸며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어지간히 놀랐는지 심장이 거칠게 뛰어 나직이 심호흡하며 한도윤의 몸을 살짝 밀었다.

“고, 고마워. 와…. 진짜 넘어지는 줄 알았네.”

“……”

“저기…?”

딱히 힘을 주어서 민 것은 아니었다만, 양팔로 나를 품에 가둔 채로 가만히 서 있는 그의 행동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뭐지. 왜 안 놔주지. 그 생각은 깊게 흘러가지 않았다. 나를 내려다보는 한도윤과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평소와 달리… 아니, 내게는 보여 준 적 없는 서늘하기 짝이 없는 눈빛이었다. 순간적으로 내가 그에게 실수를 저질렀나 고민했을 정도로. 무어라 말을 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던 한도윤은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해요.”

“어? 뭐가?”

“아니에요. 저 진짜 가 볼게요.”

순식간에 바뀐 표정에 속이 쓰려 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거야. 그렇게 그는 마지막으로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남긴 뒤 사라졌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붙잡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붙잡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어서, 그저 그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철컥,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멍하니 그 앞에 서 있었다.

“왜지.”

왜 그런 표정을 지었지. 왜 그렇게 서늘한 표정을 지었지. 동시에 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었지. 사람의 표정을 잘 읽는 편은 아니었으나 짧은 시간 사이에 지나간 그 표정은 꼭,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슨 고민이었을까. 나와 관련된 고민일까.

“헷갈리기도 해라.”

모르겠다. 일단 다시 침대로 가서 잠이나 자야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몸을 돌린 나는 따뜻한 공기가 맴도는 방 안에 잠시 보일러를 끄고 창문을 열었다. 환기를 시키기 위해서, 라기보다는 그냥 서늘한 공기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멍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며 앞머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이어서 이마에 손을 얹어 보았다. 이마와 손의 체온이 비슷한지 별다른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도윤의 손은 시원해서 좋았는데. 그 때문에 평소와 달리 창문을 열 생각을 한 건가.

“중증이네.”

차가운 겨울바람을 느끼며 눈을 감은 나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중증이긴 해도 썩 나쁜 느낌은 아니다. 오히려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아 좋은 느낌이라고 할까.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을 경험해 본 적도 없는데, 어쩐지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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