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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 (71)화 (71/88)

#71

이렇게 아픈 건 오랜만이라 더 힘든 것 같다. 그래도 작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느리게 눈을 감았다. 사람이 아프면 감정적으로 변한다고 하던가. 코끝이 시큰거리고 열이 오르는 눈가에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눈가에 고인 물기를 닦으며 침대 위로 올라가 이불을 덮고 누웠다.

“진짜…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기 싫다.”

내가 원래부터 귀찮음이 심하긴 했지. 가끔가다 습관처럼 숨 쉬는 것도 귀찮다고 하다가 문영윤이 내 뒤통수를 후려친 적도 있다. 장난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말라고 말이다. 그때를 떠올리며 작게 웃은 나는 열이 떨어지지 않아 무거운 몸에 눈을 감았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비록 밥은커녕 약도 안 먹었으나, 하루 이틀 아파 본 것도 아니고 거의 연례행사이지 않은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혼란한 일들이 많아 전과 달리 미리 대비하지 못하긴 했으나 이 정도야 별일 아니었다. 정말로.

***

“으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린 나는 여전히 열 때문에 멍한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어둑해진 것을 보니 어느새 밤이 된 모양이다. 축축 늘어지는 몸을 일으키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으며 핸드폰을 찾았다. 그 짧은 시간 사이에 어찌나 연락이 많이 왔는지. 한 글자 한 글자마다 걱정이 한가득해 흐릿하게 웃으며 내용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문영놈: 야 너 아프다며]

[문영놈: 나 지금 본가 내려와서 병문안 못갈 거 같아]

[문영놈: 미안하다]

뭐 그런 거로 미안해하고 그러냐. 내가 언제 아플 거 같으니까 무조건 병문안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러나 이어진 녀석의 톡을 확인한 순간 나는 웃던 낯을 딱딱하게 굳혔다.

[문영놈: 그래서 도윤이한테 너네 집 위치 알려줬어]

[문영놈: 나 대신 병문안 좀 가라고 했거든]

“뭐?”

톡 옆에 뜬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한 시간 전에 온 연락이었다. 만약 문영윤이 저 톡을 보내기도 전에 한도윤에게 우리 집을 알려 주었다면…. 등골이 서늘해져 다급하게 문영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발, 빨리 좀 받아라. 진짜 알려 준 건 아니지? 아니, 지가 뭔데 남의 집 위치를 함부로 알려 주고 지랄이야?!

-어, 너 괜찮아?

“야, 이, 미친놈아!”

-어휴, 목소리 들으니까 멀쩡한가 보네.

“지랄하지 말고! 콜록…. 진짜 알려 줬어? 아니지?”

-어어…. 곧 도착하지 않을까?

진짜 미친 새끼가! 왜 부탁하지도 않은 짓을…! 나는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뜯으며 문영윤을 채근했다. 다시 돌아가라고 대신 연락해 달라는 내 요구에 녀석은 아무렇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왜? 걔도 너 엄청 걱정하는 거 같던데.

“뭔…….”

-너 다른 사람들한테는 답장했으면서 도윤이한테는 답장 안 했다며. 왜 그랬어?

“…네가 알아서 뭐 하게.”

-내가 그랬잖냐. 남의 연애가 원래 재밌는 법이라고.

낄낄거리며 웃는 꼬락서니가 참으로 아니꼽다. PK해 버릴 거야. 현실 말고 게임에서 주야장천 PK해 버릴 거라고! 빠드득, 내 이 가는 소리에 문영윤이 헛기침을 흘리며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어 버렸다. 깊이 빡쳐서 다시 전화를 거니 핸드폰이 꺼져 있다는 자동 응답이 떴다.

이런 개트롤 새끼. 아픈 상태에서 열을 받으니 머리가 다 어지러웠다. 혼미한 정신을 애써 붙잡고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다급하게 화장실로 향했다. 물론, 몸이 하도 무거워 제대로 일어나지 못해 기어서 갔지만.

땀과 개기름이라도 없애기 위해 찬물로 세안을 하고 밖으로 나와 옷가지를 뒤졌다. 안 그래도 그동안 너무 못난 모습만 보여서 심장이 쫄깃한데, 이 이상으로 퀭한 꼬락서니를 보여 줄 수는 없단 말이야!

그러나 가진 옷 중 멀쩡한 것이 별로 없어 적당히 반팔 티에 추리닝 바지를 입었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에 쌓일 대로 쌓여 버린 울분은 모두 문영윤에게로 넘어갔다. 누가 불러 달라고 했냐고. 얼굴 보기 힘들어 죽겠을 때에 이딴 짓을 벌인 저의를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다.

그거 조금 움직였다고 지쳐 버린 몸뚱이에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찰나,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 너머로 익숙하고도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들린다.

-형, 안에 계세요? 저 도윤이예요. 한도윤.

아, X발. 진짜로 왔네. 아파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 쿵쿵거리는 심장을 움켜쥐며 힘겹게 일어나 현관문을 향해 걸었다. 자꾸만 휘청거리는 몸뚱이는 몇 걸음 걷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기운이 쭉 빠져 그 자리에서 넘어져 버렸다.

와장창! 넘어지면서 근처에 있던 빨래 건조대를 건드리는 바람에 건조대 또한 뒤로 넘어가며 큰 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밖에서 나를 기다리던 한도윤이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무슨 일이냐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형! 형, 괜찮으세요?! 형!”

“괘, 괜찮으니까… 조용히…….”

“…형!”

힘겹게 일어나 문을 열자 한도윤이 앞으로 넘어가려는 나를 붙잡았다.

“무슨 열이…. 약은 드셨어요?”

“아니….”

“그, 일단 안으로 들어가요. 잠시 실례할게요.”

정신이 아찔해 한도윤이 무어라 말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내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흔히들 말하는 공주님 안기로 말이다.

“무, 어, 억?!”

“많이 안 좋으신 거 같은데 움직이지 마세요.”

“아, 아니…. 나 걸을 수 있는데요…?”

“거짓말.”

한도윤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내 말에 반박했다. 미치겠네. 엄습하는 쪽팔림에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겨울의 찬 바람이 들어오는 문을 닫으며 집 안으로 들어선 한도윤이 긴 다리로 넘어진 빨래 건조대를 피해 나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어질러질 대로 어질러진 방 안이 창피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진짜, 이런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진 않았는데.

제 잠바를 벗어 한구석에 내려놓은 그는 팔을 걷어붙이더니 본격적으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넘어진 건조대를 다시 세우고, 널브러진 빨래들을 곱게 갠 뒤, 방 안의 텁텁한 공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창문까지 열어젖히고는 구석에 있던 청소기를 꺼내 바닥을 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해?”

“청소요.”

그니까 청소를 왜?

“바닥에 먼지 봐. 이러니까 몸살이 나죠.”

“…예?”

“먼지 날아다니는 거 안 보여요? 방 청소를 잘해야 몸살이 안 나는 거예요. 저 가고 나서도 청소는 잘하셔야 해요. 그래야 몸이 안 상하지.”

갑작스러운 청소 시간에 얼떨떨한 눈으로 한도윤을 바라보자 그는 곱게 눈웃음을 그리며 잠시 누워 있으라고 나를 다독였다. 아니, 내가 애도 아니고…. 와중에 말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 엄마가 매번 나한테 했던 말들이다. 평소 청소를 자주 하긴 하는 듯,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청소를 끝낸 한도윤은 어디선가 꺼낸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네었다.

“아직 환기가 다 안 됐으니까 창문은 이따가 닫을게요. 그러니까 추워도 조금만 참으세요.”

“그… 이건…?”

“죽이에요. 제가 해 드리고 싶긴 한데, 시간이 너무 걸릴 거 같아서 사 왔어요.”

내용물을 하나하나 꺼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그동안 했던 고민들이 싹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진짜 뭐다냐. 하다 하다 내 손에 숟가락까지 쥐여 준 그는 내가 죽을 먹기 전엔 나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었다.

“입맛 없는데….”

“그래도 먹어야 해요. 아플 땐 잘 먹는 것도 중요하다고요.”

단호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꾸역꾸역 죽을 먹었다. 아, 이거 소고기죽이네. 나 소고기죽 좋아하는데. 알고 사 온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몇 입 깨작이고 나니 벌써 배가 부르다. 식욕이 없어서 그런가. 더는 먹고 싶지 않아 수저를 내려놓으려던 나는 내 손을 붙잡는 손길에 흠칫, 몸을 떨었다.

“다 먹었….”

“고작 몇 입 먹고 다 먹었다는 소리를 하시려는 건 아니죠?”

한도윤이 환하게 웃으며 설마 그러겠냐는 어투로 말했다. 진짜 입맛 없어서 먹기 싫은데…. 결국, 울상을 지으며 깨작깨작 남은 죽을 다 먹은 나는 흡족하게 웃으며 정리하는 한도윤을 흘겨보았다. 왜 보면 볼수록 사람이 점점 바뀌는 거 같냐. 나만 그렇게 생각해?

“그, 와 준 건 고맙지만 ….”

“자, 여기 약이요.”

이 새끼 봐라. 집에 가라 하니까 이런 식으로 말을 끊네? 어색하게 웃으며 한도윤이 건넨 약까지 먹은 나는 몰려오는 피곤함과 졸음에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진짜… 집에 가도 되는데…….”

“형 괜찮아지는 것만 보고 갈게요.”

“너무… 민, 폐…….”

“제가 민폐에요?”

“아니……….”

네가 아니라 내가 이러는 게 민폐 같다고. 벽이 있는 방향으로 기울어지려는 내 몸을 붙잡으며 제 쪽으로 이끄는 한도윤의 손길에 힘없이 끌려갔다. 방금까지만 해도 더웠는데, 아직 창문을 열어 뒀기 때문인지 피부에 닿는 서늘한 감촉이 기분 좋다.

“형. 괜찮아요?”

“으응… 괜찮아….”

“그럼……. 나 싫어요?”

저번에 분명 아니라고 말했는데, 얼마나 먹었다고 필름까지 끊긴 거람. 나는 무거운 눈꺼풀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

“그럼요?”

“어어….”

좋지. 너무 좋아서 탈이지. 몽롱한 정신에 입만 벙긋거리던 나는 느린 속도로 눈을 감았다. 머리 위쪽에서 한도윤이 무어라 말하는 것이 들렸다. 다만, 그의 목소리가 들렸을 뿐 내용까지는 귓가에 닿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하지는 못했다.

“좋은 꿈 꾸세요.”

잠에서 깨어났을 때,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한번 말해 줬으면 좋겠다.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냥 그 순간이 좋을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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