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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 (69)화 (69/88)

#69

그새 맥주를 다 마신 나는 맥주 한 잔을 추가 주문했고 분위기는 무르익어 자연스레 게임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번 업데이트 노트 봤어?”

“아, 길드전을 필드쟁에서 공성전으로 바꾼다던 거요? 당연히 봤죠. 진작 공성전으로 내서 참가할 사람만 참가하도록 만들었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왜 굳이 필드쟁으로 만들었는지 모르겠어요.”

“약간 베타 테스트 느낌 아니었을까?”

맥주를 홀짝이며 이번 업데이트에 대한 내 생각을 두서없이 늘어놨다. 이게 맞는지 틀린지는 상관없다. 사석에서 주절거리는 것일 뿐인데 사실 확인이 무어 그리 중요하겠는가.

“애초에 프리지아 자체가 던전이랑 필드 도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필드쟁으로 간 보고 난 다음 공성전 업데이트를 한 거 같은데. 그래야 공성전이 나왔을 때 조명도 더 받을 테고, 필드쟁의 X같음이 널리 알려졌으니 반발이 덜할 거라 생각한 거지.”

“오, 확실히 그쪽이 가능성 크겠네요. 하기야, 업데이트가 5시간짜리이긴 하지만 미리 만들어 둔 맵이 없으면 5시간 안에 끝내기 힘들겠죠.”

“그렇긴 하지.”

맵을 제작하는 데에도 시간이 들고, 그 맵을 서버에 적용하는 데에도 시간이 들 테니 5시간으로는 부족하긴 할 터다. 경영학과라 들었는데 생각보다 이쪽을 잘 아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시원한 맥주잔을 매만지며 눈동자를 굴렸다.

“경영학과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 주나?”

“아, 아뇨. 그냥 제가 게임에 워낙 관심이 많다 보니 찾아봤어요.”

“그래? 아예 이쪽으로 진로 잡아도 잘했을 거 같은데, 좀 아쉽네.”

“네? 뭐가요?”

한도윤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되물어 왔다. 역시, 잘생긴 애가 저러니 잘 어울리네. 얼굴이 최고이긴 해.

“내가 디지털콘텐츠학과거든. 나도 게임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진로를 아예 이쪽으로 잡았지.”

“형이랑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좀 게임 폐인처럼 생겼잖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한도윤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눈깔을 왜 그렇게 떠?

(2)

“왜?”

“…아무것도 아니에요.”

언제 쎄한 얼굴이었냐는 듯 한순간에 환한 미소를 짓는 한도윤을 보며 떨떠름함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내가 댁이 썩은 눈깔 한 걸 다 봤는데 어디서 구라를 깔라고.

“와, 형! 여기 감바스가 되게 맛있네요! 어서 드세요!”

“이 새끼가 말을 이렇게 돌리네.”

“치킨도 맛있네요. 여기 맥주 하나 더 추가요!”

“돌려 돌려 돌림판인 줄.”

“네? 그게 뭐예요?”

고작 5살에 세대 차이를 느껴 버렸다. 아니, 돌려 돌려 돌림판을 모른단 말이야? 그래도 인터넷에서 밈 같은 거로도 많이 쓰지 않나? 혹시라도 모르는 척을 하는 건 아닐까 의심스럽게 쳐다봤으나 저 표정은 정말 찐텐으로 모르는 얼굴이었다.

“세대 차이가 이렇게 나다니. 나 아직… 젊은데…….”

젊다 못해 어린 나이인데…. 뭔가 좀 억울해졌다. 남은 맥주를 원샷 때린 뒤 추가 주문까지 마친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 필요 없으니까 홀리스터 측이랑 얘기가 빨리 끝나서 친선전이나 했으면 좋겠네요. 공성전은 처음이라 흥미로운데.”

“형, 존댓말 썼어요.”

“난 친구들한테도 가끔가다 존댓말 써.”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그냥 습관 같은 거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새로 나온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마음이 편해져서 그런지 괜히 흥이 오르는 기분이다.

“다 먹으면 같이 피시방 갈래? 피시방에서 라면 시켜 놓고 게임 돌리면 꿀잼이잖아.”

“그럴까요? 저는 좋아요!”

“시간 괜찮겠어?”

“저 오늘 널널해요. 널널하지 않아도 널널해야죠!”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이랑 노는 건데. 이어지는 한도윤의 말에 코를 쓱 매만졌다. 이 녀석,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방법을 잘 아는구만? 나중에 사회생활 잘하겠어. 학교 선배랑 직장 상사에게 사랑받겠다.

“빈말이라도 고마워.”

“빈말 아니라 진심이에요.”

“그래, 그래.”

“형, 저 진짜 장난 아니고 진심이에요.”

어, 그래. 잘 들었다. 히죽 웃으며 맥주를 마시자 한도윤 쪽에서 진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할 때 나올 법한 한숨이었다.

“안 믿으시네. 진짠데.”

“어, 알았다니까?”

“어떤 의미로 말한 건지 모르시잖아요.”

“친하게 지내자는 뜻 아닌가?”

“아니에요.”

그럼 친하게 지내기 싫다는 건가?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느낌에 입을 꾹 다물었다. 저번부터 느낀 거지만 이 녀석, 약간 급발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나도 한 급발진 하는 사람이라 이런 건 또 잘 맞추지.

어쩐지 뒤 내용을 들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남은 맥주를 한 번에 쭉 들이켜고 탁 소리 나게 잔을 내려놓았다. 나만 어색한 건가. 괜히 얼굴에 열기가 올랐다. 부디 붉어진 낯이 눈에 띄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맥주 마신다더니, 안 마시네? 그러다 미지근해지면 맛없는데.”

“할 말 다 하면 마실 거예요.”

“아직도 할 말이 남아 있어? 게임 얘기인가?”

“…그건 아니고요. 지금은 때가 아닌 거 같으니까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뭔 말이길래 때까지 기다려야 해? 묘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에 헛기침하며 또다시 새 맥주를 주문했다. 이걸로 몇 잔째더라. 한… 넉 잔인가? 아무렇지 않게 다른 곳을 흘기다 한도윤이 선물이라고 준 장미 꽃다발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오로라 장미인지 나발인지랬지, 아마?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먹고 있어.”

“다녀오세요.”

사르르 곱게 웃는 한도윤의 얼굴을 보며 작게 헛기침을 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걸어갔다. 1인용인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자 세면대 위에 붙어 있는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말이다.

턱 끝까지 내려온 다크서클, 밖에 자주 나가지 않아 빛을 받지 못해 창백하기 그지없는 낯짝까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흔하디흔한 방구석 폐인이라 할 법한 모습이다. 새삼스럽지만, 나라도 이런 얼굴에 호감을 느끼진 않을 것 같다.

“…옷이라도 차려입고 다녀야 하나.”

그럼 이 폐인 티가 조금이나마 떨어져 나갈까. 찬물로 세수를 하며 정신을 일깨웠다. 자존심은 하늘을 뚫고 올라가는 주제에 자존감은 반대로 바닥을 뚫어 버리네. 화장실을 나와 자리로 돌아가는 와중, 주변인들 사이에서 홀로 빛나는 외모를 지닌 한도윤을 보자 내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오셨어요?”

“응.”

자리에 앉으며 손톱을 물어뜯었다. 한도윤한테 호감을 사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살면서 이런 유의 고민을 해 본 적 없다 보니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정확히는 타인에게 호감을 사고 싶어 한 적이 없었다. 보통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타입이라.

힐끗 눈동자를 굴려 한도윤을 흘겼다. 아무것도 모른 채 치킨을 뜯는 모습을 보니 배알이 다 꼴렸다. 날 때부터 이렇게 생겨 먹었으니 얼굴로 호감을 사기는 어려울 것 같고. 역시 겜창답게 게임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하나. 근데 쟤가 게임 더 잘하는데, 그런 거로 넘어오긴 할까?

“형, 괜찮으세요?”

“응? 어어. 괜찮아요.”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세요?”

어떻게 해야 너한테 잘 보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요.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할 고민이라 흐린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치킨을 집었다. 와, 식었는데도 맛있네. 역시 치느님이야.

“별거 아니야.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런…가요…?”

서늘해 보이는 한도윤의 눈에 작은 이슬이 맺혔다.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을 확인한 순간 그대로 굳어 버린 나는 눈동자를 굴려 가게 카운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깐, 얘 지금 술을 얼마나 마신 거지?

“역시… 제가 못 미더우신 거죠……?”

“이 새끼 언제 술 처먹은 거지?”

“아까……?”

뭐 저리 아련하게 말하냐.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술을 처먹은 것 같다. 분명 아까까지 꽉 차 있던 잔이 비어 있는 데다, 심지어 알바생이 치우는 걸 까먹었는지 한도윤 앞에 있는 잔이 두 개였다. 즉, 녀석의 주량이나 다름없는 맥주 500cc 두 잔을 이미 비웠다는 거다.

거기에 화장실 가기 직전에 주문했던 내 잔까지 비어 있으니, 이건 내 술도 쟤가 마셨다고 보는 게 맞다. 안 그래도 술 못하는 녀석이 맥주 세 잔을 순식간에 해치웠으니 골로 가는 거야 정해진 수순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또 개가 되겠구나 싶어 얼른 녀석을 돌려보내려는 찰나, 한도윤이 아련하게 나를 불렀다.

“형…….”

“이제 슬슬 집에 가자. 너 많이 먹었다.”

“형은… 제가 싫, 어요……?”

“집부터 가자. 너 뭐 타고 왔니? 택시 타고 왔니?”

“차 타고… 왔는데……. 주차장에 차 있는데….”

아, 맞다. 얘 자차 타고 다니지. 대리 불러야 하는 거냐고. 미치겠네. 잠깐만… 그전에 차가 어디 있는지 찾고 난 다음에 불러야 하는 건가? 나야 버스, 메트로, 워킹의 BMW를 타고 다니는지라 대리를 불러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거기 주차장 어딘데? 차 어디에 뒀어?”

“안 알려 줄 거예요….”

“미쳤습니까, 휴먼? 안 알려 줄 게 따로 있지, 뭐 그런 걸 안 알려 줘?”

“형이… 형이 제대로 답해 주면… 알려 줄게요…….”

나는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며 투덜거리는 한도윤의 뒤통수를 X나 세게 때렸다. 질문이 없는데 대답하긴 뭘 대답하라는 거야? 너도 문영윤처럼 전봇대 앞 쓰레기 더미 위를 집으로 삼고 싶어? 나는 꽐라 된 놈들을 가감 없이 길바닥에 버리고 가는 사람이라고.

“버리고 가기 전에 주차장 위치 불어라.”

“아픈데…….”

“맞았으니까 아프죠. 더 처맞을래요?”

“싫어요…. 저 형네 집에서 재워 주면 안 돼요? 집 가기 싫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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