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문영윤과 함께 피시방에 가는 건 처음이다. 보통 만났다 하면 술 먹고 술에 꼴아 버린 녀석을 어딘가에 버리고 집에 갔던지라.
“여기 피시방 천 원에 두 시간이다? 개쩔지?”
“집에서 게임하면 수십 시간에 몇천 원 나온다.”
“피시방 보상은 못 먹잖아.”
“피시방 전용 회선 깔면 쌉가능.”
“고마해라, 집돌아. 기껏 놀러 나왔는데 자꾸 그러기 있기, 없기?”
응, 있기. 붙어 있는 자리를 찾아 피시방 내부를 돌아다닌 끝에 겨우겨우 비어 있는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두 시간에 천 원이라더니,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모양이다.
“던전? 결투장? 뭐부터 할래?”
“일단 너부터 죽이는 거로.”
“왜죠.”
같이 피시방에 온다는 건 PVP를 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던 건가요? 나 저번에 길드 정모에서 피시방 갔을 때 PVP만 주구장창 돌았는데? 그때였나요. 투명과 5연속 매칭이 되어 그를 내내 두들겨 팼던 날이.
[길드/베타: 뭐여 곧죽 은제 들어왔으야]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방금]
[길드/베타: 아따 그라믄 이슼칼ㄱ?]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ㄴㄴ]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투명이랑 결장갈거]
접속하자마자 이스카리아에 가자는 베타 누나의 제안을 거절하고 곧바로 결투장에 들어섰다. 나는 로딩 완료를 기다리며 옆에 있는 문영윤의 허리를 쿡 찔렀다.
“방 만들 테니 들어와. 내가 듀블콤 알려드림.”
“관짝 광전 주제에……”
“네, 다음 관짝 광전한테 발리는 듀블.”
“나빴다, 증말!”
그걸 이제 알았냐? 나 원래 나쁜 사람이야.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문영윤과 본격적인 PVP를 진행했다. 둘 다 근접 직군이라 원거리 싸움이 안 되기 때문에 돌진기로 붙은 뒤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그렇게 짧은 첫판의 승리자는 당연하게도 나였다.
“네가 PVE만 해서 PVP를 잘 모르는 거 같은데, 스킬 세팅부터 바꿔라.”
“…내 스킬이 어때서!”
“일 대 다수도 아니고 일대일 PVP를 도는데 광역기는 왜 들고 다녀? 효율 떨어지게.”
“그야… 못 맞힐 때를 대비해서?”
“그게 문제야. 어? 공격을 맞혀서 조진다는 마음으로 스킬을 써야지, 왜 못 맞힐 걸 대비하는데?”
내가 듀얼 블레이드를 써 본 적은 없지만 처음 해도 너보단 잘하겠다. 문영윤을 옆으로 살짝 치운 후 녀석의 스킬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결투장에서 듀얼 블레이드 유저들이 주로 쓰는 스킬 세팅과 더불어 장비 옵션까지 싹 다 갈아 끼운 후, 콤보도 알려 주었다.
“여기서는 이렇게 스킬을 써서 붙고, 그다음 콤보는 이걸로.”
“이거는?”
“걔는 효율이 별로야. 딜 계수 좀 봐라. 얘는 700인데 네가 고른 건 430이잖아. 그럼 당연히 700짜리를 써야지!”
“마나 쪼들리잖아?”
“야, PVP는 한 방이야. 한 방 훅 날려서 피통 까면 승기를 잡는다고.”
이래서 라이트 유저란! 결투장에 와 봤어야 뭘 알지. 이런 주제에 나한테 PK하자고 날뛰었다니, 참으로 안타깝다. 혀를 차며 투명의 계정으로 PVP를 돌린 후 녀석이 이길 수 있도록 뒤에서 열심히 훈수를 두었다. 틱택을 하나하나 읊으며 원격 조종하는 수준이었다.
처음에는 기존에 쓰던 스킬들과 확연히 달라 버벅거리던 녀석은 그래도 게임 좀 한 짬밥이 있어서인지 어느새 스킬 트리에 익숙해지며 점차 승기를 잡아 갔다. 몇 차례의 패배 이후, 기어코 승리를 따내는 문영윤을 보며 축하의 박수를 날렸다.
“야, 하니까 되잖아! 앞으로도 이렇게 해! 그럼 다 이길 수 있어!”
“확실히 다르긴 하네. 넌 듀블 안 하면서 이런 건 어떻게 알았어?”
“나 결투장 붙박이잖아. PVP 주력으로 하는 듀블들이랑 많이 싸워 봐서 그래.”
이게 다 경험이란다. 코를 쓱 매만지며 문영윤을 응원하던 나는 뒤이어 매칭된 상대를 보고 응원을 접었다.
[전체/패치노트: 안녕하세요 형 ㅎㅎ]
[전체/패치노트: 이렇게 만나네요 ㅎㅎㅎ]
“나… 왜 이렇게 쎄하냐?”
“야, 너도? 야, 나도.”
“이길 수 있을까…?”
“님 양심 어디?”
속성으로 배운 스킬 트리로 패치노트를 어떻게 이겨. 저 양반 컨트롤은 넘사라고. 저번에 캐릭터 여러 개 가지고 있는 거 보니까 웬만한 직업군 스킬은 숙련도도 높은 거 같던데.
[전체/패치노트: 형 게임 잘하시니까]
[전체/패치노트: 저도 진심으로 할게요]
[전체/투명: 아닉그러지는ㄴ말고]
[전체/패치노트: 에이 겸손하시긴ㅎㅎ]
[전체/투명: 제ㅔ발]
“잘 죽어.”
“바로 손절 때리는 거 실화냐?”
“나도 못 이기는데 네가 어떻게 이겨? 포기하면 마음 편해.”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문영윤의 화면에서 시선을 뗀 나는 내 캐릭터나 굴렸다. 와아, 패치노트가 투명한테 붙어 있어서 그런가, 질 일이 없어서 승률 한번 쭉쭉 오르네. 투명이랑 자주 게임해야겠는걸? 그렇게 내가 열심히 결투장을 돌아 승률과 랭킹을 올리는 사이, 옆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후… 이겼다.”
“뭐요?”
이겼다고? 누구를? 패치노트를?
진심으로 놀라 녀석의 화면을 확인하자 뚜렷하게 쓰여 있는 ‘WIN’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아니…. 어떻게 이긴 거지?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인가?
“어떻게 이겼어? 저쪽에서 봐준 거 아냐?”
“후후, 이 형님의 실력을 보았느냐?”
“개소리하지 마라. 저 겜잘알이 이렇게 질 리 없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 투명 이 새끼! 뭔가 수를 쓴 게 분명해!
(5)
두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투명의 진의를 확인했다. 집중하느라 열이 올랐는지 흐르는 땀방울 하며 지쳐 보이는 모습은 마치 빡센 레이드를 뛰고 나온 모습과도 같았다. 이렇게만 보면 수작 없이 이긴 것 같다만, 패치노트가 실력으로 졌다는 건 믿을 수 없다.
“내가 저 양반이랑 PVP 돌면서 지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너한테 졌다는 게 말이 돼?”
“왜 말이 안 돼? 운이 따라 줬을 수도 있잖아.”
“운으로 커버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거든? 솔직히 말해라. 너 뭔 짓 했냐?”
분명 개수작을 부렸을 것이다. 그간 보여 주었던 패치노트의 실력과 문영윤을 오래 알고 지낸 사람으로서의 감이 교차했다. 이건 분명 문영윤의 개수작에 넘어간 패치노트가 그냥 때리라고 손 놓고 있었을 거라고. 예상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진짠데? 실력과 운으로 이긴 건데?”
“지랄 마라. 나한테 처발리는 놈이 어떻게 패치노트를 이겨. 주둥이 뚫렸다고 다 말인 줄 아나.”
“어이구야, 무서워라! 영윤이는 폭력 시로시로!”
“으!”
문영윤의 혀 짧은 소리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녀석에게서 멀어졌다. 아니, 얘 나 모르는 사이에 술을 더 처먹었나?
“한 번만 더 혀 짧은 소리 내면 버리고 갈 거야.”
“퉷….”
패치노트가 랭킹까지 걸린 PVP를 봐줄 정도였다니, 이 자식이 분명 허세 가득한 헛소리를 해 댔을 거다. 무슨 얘기를 한 건지는 짐작도 안 되지만…. 솔직히 블러핑이 개수작이지 다른 게 개수작이겠는가. 어쩐지 짜증 나는 기분이 들어 불편한 표정으로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불쾌해할 일은 아니었으나, 답답한 속 때문에 이 상황이 고깝게만 느껴졌다.
“야, 너 얼굴이 왜 그러냐?”
“지는.”
“왜. 도윤이가 내 블러핑에 넘어간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뭔…….”
딱 붙어 버린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아니라고 하면 끝나는 것을,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속이 답답하다 못해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이게 뭐라고. 내가 소개시켜 준 두 사람이 친하게 지내면 사이에 낀 나도 편하고 좋은 건데. 분명 그런데.
“몰라. 그냥 기분 나빠.”
“언제쯤 네가 네 마음을 이해하려나.”
“…지랄 좀 그만해. 슬슬 짜증 나려고 하니까.”
“어라? 아까보다 반응이 느리다?”
낄낄거리며 쪼개는 문영윤을 보니 기분이 더 더러워졌다. 어쩔 수 없지. 이 방법은 되도록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좋냐?]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네?]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무슨 소리 들었어요?]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문영윤이 뭐라했길래]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피빕에서 봐줬어요?]
블러핑을 친 당사자가 안 알려 준다면 당한 사람한테 물어보는 되는 일. 두 눈을 부릅뜨며 패치노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나, 돌아온 그의 대답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실력으로 졌어요]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투명형 게임 잘하시잖아요]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개소리 ㄴ]
내가 두 사람 실력을 다 아는데 어디서 이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술이 완전히 된 건 아니라 해도 어느 정도 마시긴 한 탓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과하게 급발진하는 성격을 지닌 탓일까. 별것도 아닌 일로 머리에 열이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분노의 채팅을 쳤다.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앞으로 저한테 말걸지 마세요]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네?]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잠ㅁ시만요]
[패치노트 님을 차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