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58화 (58/88)

#58

[길드/베타: 와 패치님!!!! 일로 오세요!!! 일로!!!!]

아직 제정신 아니네, 이거. 음성 채팅에 들어온 패치노트가 반쯤 꼬여 버린 혀로 느릿하게 말을 흘리자 주변 반응이 가라앉았다.

-어…. 저, 크, 크흠, 잠시…. 정신이 좀 없어서…….

-괜찮으세요? 어… 그냥 들어가서 쉬시는 게….

-그러게요. 아직 술이 덜 깨셨네.

그러게나 말이다. 마음은 고맙지만 저 상태면 그냥 들어가서 자는 게 도와주는 일 같다.

“들어가서 주무세요.”

-아, 아뇨. 괜찮아요… 형. 할, 수 있어요….

못 해요. 못 한다고. 정신이 멀쩡해야 뭘 하지, 반쯤 자는 상태에서 하긴 뭘 해?

-저분 괜찮은 거 맞아요?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어… 저도 저렇게 심한 줄 몰랐어요. 야, 너 그냥 가라! 가서 자라!

-괜, 크흠, 괜찮다고….

멍한 목소리로 삐거덕삐거덕하며 캐릭터를 조종한 패치노트가 다짜고짜 적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광역기를 꼬라박았다. 한 번도 아니고 MP가 떨어질 때까지 순도 100% 광역 스킬만 쏟아붓는 장면은 가관… 아니, 장관이었다.

“진짜… 밸런스 개똥망겜…….”

진짜 게임 할 맛 뚝 떨어지게 만드네. 눈부신 이펙트가 펑펑 터질 때마다 적팀 딜러 라인이 쓸려 나갔다. 하나 튀어나온다 싶으면 넉백 스킬로 뒤로 날려 버린 뒤 다시 광역기를 사용했다. 술 퍼먹어서 시야도 흐릿할 텐데 장판을 피해 달려오는 놈들은 또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다.

-아니, 그, 다른 배메들은 안 저러던데 저 양반은 뭘 했길래 저래요?

-굳이 따지면… 압도적 현질?

-와… 돈을 얼마나 쓴 거야…. 상대적 박탈감 지리는데 속은 시원하네요.

그러게. 속 시원하네. 광역기 자체의 대미지가 좀 덜한 편이라 해도 그게 연달아서 떨어지니까 적팀이 우왕좌왕하는 게 눈에 보였다. 아마 내가 여태까지 현질한 금액을 다 따져도 패치노트의 발끝도 못 따라가지 않을까? 한꺼번에 쌓이는 승점을 확인하며 길드원들을 다독여 본격적으로 공격에 들어갔다. 후위의 딜이 확실하니 전위가 움직이기 한결 편해졌다.

-저… MP… 다 썼어요…….

-그걸 왜 그렇게 아련하게 말해요….

기운이 없다 못해 아련하게까지 들리는 패치노트의 목소리를 들으니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기야, 광역 스킬이 MP를 엄청나게 잡아먹으니 슬슬 MP가 끊길 때가 됐다.

“괜찮아요. 쟤네 지금 전열 흐트러져서 이때 밀어붙이면 돼요.”

대답은 따로 듣지 않았다. 탱커들과 함께 앞장서서 움직이다 적팀 전위가 어느 정도 밀린 것을 확인한 뒤 곧바로 뒤를 돌아 피통이 적은 힐러들을 노렸다. 힐러 라인이 잘리기 시작하자 전위를 맡고 있던 탱커들이 나가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쟤들도 좀… 가지가지 한다고나 할까. 이 정도 격차면 그냥 패배 선언하고 끝내지, 지들이 뭐 좀비라도 되는 양 미친 듯이 달려온다. 죽으면 부활해서 달려오고, 또 죽으면 또 부활해서 달려오고. 같은 놈을 몇 번이나 보는지 모르겠다. 이거 길드전에 의미가 있긴 하냐? 사망 페널티 좀 붙여 줘. 안 그러면 좀비가 돼서 달려오잖아.

“뭐야. 지들이 무슨 불사의 군단이야? 계속 부활하니까 쫄리는 게 없다 이거지?”

[길드/베타: 불ㅋㅋㅋㅋㅋㅋㅋㅋ사읰ㅋㅋㅋㅋㅋㅋㅋㅋㅋ군ㅋㅋㅋ단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로 하지 채팅은 왜 쳐?”

[길드/베타: 옆집에서 시끄럽다고 달려옴...ㅎ]

아… 그래? 그니까 적당히 좀 하지 그랬어. 측은함이 담긴 눈으로 베타 누나의 채팅을 훑어보는 사이, 폭주기관차의 승점이 1만에 다다르게 되었다. 곧 있으면 이 쓸데없는 길드전이 끝난다.

이윽고 잠시 쉬며 MP를 채운 패치노트가 적팀을 향해 광역기 다발을 쏟아붓는 것으로 길드전이 마무리되었다. 왠지 허무하게 느껴지는 ‘길드전 승리’라는 글자를 보며 흐릿하게 미소 지은 나는 나도 모르게 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었다.

“게임은… 현질이구나.”

저렇게까지 돈을 써 가며 즐기고 싶진 않은데, 다른 게임으로 갈아탈까 진지하게 고민된다.

(3)

일방적인 학살로 길드전이 끝난 후, 베타 누나는 따로 상대 길드장과 얘기를 해 보겠다며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래도 원만하게 끝나서 다행이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이게 원만하게 끝난 거야? 학살이 벌어졌는데?”

-아군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전장의 지배자!

“그런 거 육성으로 내뱉지 마요.”

같이 다니기 쪽팔리니까. 뭐가 어찌 됐든 그래도 하나 끝나기는 했다. 나는 나직이 숨을 내뱉으며 음성 채팅방을 빠져나갔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좀 쉬어야지. 그렇게 나는 던전에 들어갔다.

[길드/뚝배기장인: ?]

[길드/뚝배기장인: 곧죽님 쉬러 간다지 않으셨어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쉬는 중인데요]

[길드/주님한놈갑니다: 겜창...]

왜? 하드 컨텐츠도 아니고 일반 던전 도는 건데 이 정도면 충분히 쉬는 거 아닌가? 보통 다들 그러잖아?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보통 하드컨텐츠 끝나면 일던으로 쉬잖아요]

[길드/뚝배기장인: 아니에요 보통은 컴겜 끄고 폰겜 하면서 쉬어요]

[길드/퇴사기원: 아니죠 다른 일 하다가 잠깐 쉴까? 하고 겜 하는 거죠]

[길드/뚝배기장인: 아앝.....]

다들 비슷비슷하네, 뭐. 나는 두 길드원의 만담을 애써 무시하고 마저 던전을 돌았다. 이 던전에서 소켓 아이템이 자주 떠서 주기적으로 돌아 줘야 한단 말이야. 키보드를 부술 듯 두드리며 같은 던전을 돌고 또 돌았다. 그렇게 몇 판이나 돌았을까.

“왜… 안 뜨지……?”

아무리 돌아도 뜨질 않는다. 원래부터 확률이 낮은 아이템이긴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안 나온다. 판당 대충 10분 정도 걸리는 던전을 3시간 동안 뛰었으니 약 18번을 돌았다는 건데, 하나 겨우 얻었다.

“이런 X팔….”

오늘은 잘 안 붙는 날인가 보다. 어쩔 수 없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잠이나 자려던 나는 어느새 위로 올라온 베타 누나의 채팅에 손을 멈칫했다.

[길드/베타: 궤ㅔㅔㅔ빡쳐ㅓㅓㅓ]

[길드/퇴사기원: 머선129????]

[길드/베타: 점마 끝까지 좋게 끝낼 생각을 안함~~~]

[길드/베타: 그래 사나이 쫀심 잇으니 사과는 바라지도 않는다]

[길드/베타: 횐님덜,,,,아직 다들 안 줌십닉하,,,,? 저희,,,쟁 한번더 하게 생겼으요,,,,^^777]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 문제는 한참 전에 이미 끝난 일이 아니었던 건가?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이번에는 또 왜?]

[길드/베타: 몰러 싀12벌 한빛길장 친군지 나발인지가 딴 길드 길장인데 쟁 걸거랜다]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뭐야; 길드전도 대리 맡기는 수준;;;;]

[길드/주님한놈갑니다: 그럼 또 싸웁니까? 무슨 지들이 전투민족이랍니까.]

[길드/베타: 개짜증나ㅜ]

책상을 손끝으로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우리 길드원들은 전체가 성인인 데다 회사원인 사람들이 많아서 새벽까지 접속해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들 주말이 아닌 이상 아침 일찍 출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있다고 해 봤자 나나 베타 누나 정도? 저 누나는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게임하더라고. 더불어 우리 길드 최대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패치노트는 길드전이 끝나자마자 곯아떨어졌는지 아까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은 채 잠수 중이었다. 연중무휴도 자리 비움 상태고.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쪽수 쪼들리는데? 쟁 언제 한대?]

[길드/베타: 몰라,,,,지들이 걸고 싶을 때 걸겠지,,,,]

[길드/베타: 부럽내,,,한빛길장,,,,칭구한테 달려가서 징징거릴수도 잇구,,,,^^]

[길드/베타: 눅우는,,,,친구업서서,,,,살겟나,,,,^^]

순간 키보드를 두드리던 손끝이 멈칫했다. 친구라, 친구…. 친구한테 도움을 청한다라….

“문영윤한테 부탁해 볼까.”

홀리스터 길드까지는 못 끌어들여도 문영윤이랑 최영수 정도는 데려올 수 있지 않을까? 슬쩍 핸드폰을 꺼내 문영윤과 최영수, 그 밖의 다른 동기들이 다 함께 있는 단톡방에 톡을 보냈다.

[문영놈]

[문영놈: Y]

거, 갠톡도 아니고 단톡인데 답장 한번 빠르네. 그래도 그렇지, 딸랑 저거 하나 보내냐. 타자 치는 게 그렇게 귀찮냐고. 나직이 혀를 찬 나는 그래도 나름 답장이 빨랐다는 것에 위안 삼기로 했다.

[우리 길드 길드전 터졌는데 헬퍼 가능하신지]

[문영놈: ?]

[문영놈: 헬퍼를어캐함?]

[최영수: 핔케활성화 말하는 거 아닌지]

[문영놈: 먼솔?]

[최영수: 이게 뭐냐면]

최영수가 알려 준 것은 프리지아를 하면서 처음으로 들어 보는 버그였다. 헛웃음을 흘리며 녀석에게 재차 확인해 보았으나 친선전에서 사용한 적이 있다는 답을 들었다. 즉, 최영수가 말한 버그는 실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좆망겜…….”

버그가 뭐 이리 많아? 길드전이야 최근에 생겼다지만, 초창기 버그들은 지금이라도 고쳐 줘라. 투덜거리는 한편으로는 두 사람에게서 긍정의 대답이 나올 때까지 헬퍼를 요청한 결과, 차후 시간이 될 때 길드전을 진행하게 되면 도와주겠다는 확답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인 좀 만들고 살걸. 아싸인 게 이렇게 걸리네. 여전히 잠수 상태인 패치노트의 캐릭터를 보자 아쉬움이 밀려왔다. 패치노트가 맨정신으로 깨어 있었다면 그의 어그로에 힘 얻어 자게 공론화부터 때리자고 했을 텐데…. 그럼 쟤들이 이런 식으로 남한테 손 벌리면서까지 2차 쟁을 벌이진 않았을 거 아냐.

“그냥 내가 한번 해 봐?”

지금껏 그가 써 왔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다. 전에 핵 사용으로 의심받았을 때보다 진지하게 쓴다면… 아니, 아예 패치노트가 쓰듯이 글을 작성한다면 반응이 좋을 거 같은데. 그렇게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게시글 작성을 시작했다. 까짓거 한번 해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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