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길드/연중무휴: 뭔데요??? 저도 설명좀!]
아직도 정확한 상황을 듣지 못해 어리둥절한 연중무휴에게 대충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거란 예상과 달리, 이럴 게 아니라 패치노트를 끌고 와 제대로 한 방 먹여야 한다며 전화하고 오겠다고 달려갔다. 어… 근데 그 양반 지금 술에 꼴아서 잘 텐데….
[길드/연중무휴: 아 새12끼 술 먹고 꼴아서 전화도 안 받네요 이래서 알쓰는 안 된다니까!!!]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그렇게 많이 마시진 않았는데,,,]
[길드/연중무휴: 알쓰가 괜히 알쓰겠어요?]
[길드/연중무휴: 어휴 저래서 누가 데려가려나 몰라!!!]
어딜 데려가는데? 무슨 뜻인진 잘 모르겠지만 모르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에 대충 흘려넘겼다.
[길드/연중무휴: 곧죽님 우편 한번만 확인해주세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네?]
[길드/연중무휴: 저거 싀ㅣㅣ바 다 조사버립시다!!!!]
[길드/연중무휴: 제가 힐 낭낭하게 넣어드릴게요!!!!!]
[길드/연중무휴: 오늘 좀비물 찍자!!!]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아 예,,,]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베타 누나와 연중무휴의 힐이면 좀비인 양 아무도 안 죽고 계속 살아남으며 딜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후위에서 저 둘을 보호할 사람을 몇 박아 두면 딱 맞겠네.
“아, 우편 확인하랬지.”
뭔데 싸움박질 직전에 우편을 보래. 강화석 선물해 주셨나? 내심 기대를 하며 우편을 확인한 나는 입을 떡 벌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헐…….”
악세 풀 파츠… 전부 15강…….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님저한테왜이러시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손떨려요;]
[길드/연중무휴: 저것덜 다 주겨버릴라믄]
[길드/연중무휴: 님이 강해져야해요]
[길드/연중무휴: 그걸 위한 선물입니다]
“이런 착한 사람!”
술 마시면 개 된다고 욕해서 미안하다! 얼른 악세사리를 착용하자 스탯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다. 와… 진짜 감동이다. 이게 내 캐릭터의 스탯이라니. 패치노트의 캐릭터랑 맞다이를 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패치노트가 게임을 기깔나게 잘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스탯빨은 무시 못 하지 않겠는가. 나중에 장비 비교해 보고 비벼 볼 만하다 싶으면 결투장 가자고 해야지! 복수의 시간이 돌아왔다!
[길드/연중무휴: 사실 패치노트놈이 대신 좀 전해달라고 부탁함ㅋㅋㅋㅋㅋㅋ]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감히 제게 이런 선물을 주신 분께 무슨 망발을 하려고 했던 건지. 후회되네요.
[길드/베타: 나 준비끝]
[길드/베타: 야 쳐!!!!!!1 다 죽여!!!!]
[길드/퇴사기원: 아주 그냥 가죽을 뜯어버려!!!!]
[길드/베타: 가죽만 뜯으면 쓰냐 머리통을 360도 돌려버려!!!!]
[길드/주님한놈갑니다: 주님 한 번에 여럿 보냅니다.]
[길드/주님한놈갑니다: 덤으로 길드원들의 인성도 같이 보냅니다.]
[길드/연중무휴: 제 인성도 보탤게요! 가즈아ㅏㅏㅏ!!!]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인성은 같이 보내면 안 되지, 이 사람들아. 적당히 하자고, 적당히. 어차피 그래도 이길 테니 말이다.
(2)
음성 채팅을 하자는 사람들의 말에 홀린 듯 음성 채팅방에 들어가자 귀가 아플 정도로 요란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저거, 저거, 아주 그냥 다 죽여야 해
-맞아! 죽여야 해!
-허리를 반대로 접어 버려!
-맞아! 접어 버려!
‘그만해, 이 인간들아….’
과하게 흥분한 베타 누나와 퇴사기원을 보니 괜히 착잡해졌다. 저 호응이 뚝배기장인이 아니라 퇴사기원인 게 마음이 아프다. 본격적인 전쟁의 스타트를 내가 끊어서 그런지 미약한 죄책감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슬슬 들어갑시다. 각자 길드원 위치 수시로 확인하고 백업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확인이요.
-확인.
-마을 PK도 가능하지만 되도록 지양하는 쪽으로 가죠. 만약 쟤네가 던전에 들어가려는 찰나다! 그러면 그냥 받아 버려. 책임은 내가 진다.
와아…. 멋있다…. 베타 누나의 외침에 영혼 없는 박수를 쳤다. 그러나 별다른 느낌을 받지 못한 나와 달리 길드원들이 크게 호응하기 시작했다. 조금 과하게 말이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저 새끼들 뚝배기를 다 깨서 닉값이 뭔지 보여 드리겠습니다!
-쳐 죽여! 다 죽여!
-우와아아아아!
-가자! 저 새끼들 싹 다 저승 보내서 염라대왕님이랑 일대일 면접하게 해 주자!
육성으로 저럴 줄은 몰랐는데. 대충 길드원들의 외침을 못 들은 척하며 필드를 샅샅이 뒤져 상대 길드원을 찾아 헤맸다. 그러고 보니 길드 이름이 뭐더라. 뭔 빛이었던 거 같은데.
“쟤네 길드 이름이 뭐랬죠?”
-한빛 길드예요.
-아니!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백승이랬는데! 왜 적을 몰라!
“뭐래. 도움 감사. 여기 한 놈 발견했습니다. 바로 죽일게요.”
뒤따라오던 베타 누나에게 버프를 받자마자 달려가서 스킬을 박아 넣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필드 사냥을 하던 놈이 우왕좌왕하며 반격을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연중무휴가 준 아이템으로 스펙 업을 한 내가 놈을 죽이는 것이 더 빨랐다. 연속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놈의 캐릭터가 사망 판정을 받았다.
“하나 컷 했습니다. 나머지 쓸러 가죠.”
-마을에 단체로 모여 있는 거 발견했습니다. 외치기로 파티 구하는 거 보니까 던전에 들어가려는 모양이네요. 길드원 하나 잘린 건 모르는 것 같아요.
-둘 발견했습니다. 저희 쪽 인원은 셋, 바로 자르러 갈게요.
-이쪽 지원 필요할 것 같습니다. 좌표 찍을 테니 딜러 한 분만 백업 와 주세요.
“제가 갈게요.”
곧바로 텔레포트를 타 이동한 뒤 앞에서 전투 중인 이들의 백업에 들어갔다. 뒤에서 든든하게 받쳐 주는 후위 덕에 별다른 컨트롤을 발휘할 필요도 없었다. 대미지를 입었다 하면 HP 상황에 맞춰 힐이 들어왔고 딱 필요한 타이밍에 딱 필요한 버프가 꽂힌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스펙에서 차이가 나 버리니 쉬워도 너무 쉽다.
“여기 네 명 컷. 그쪽은 어때요? 백업 필요하면 바로 말해 주세요.”
-한번 확인해 볼게요.
-부활한 애들이 파티 꾸리고 있어요. 페란트 마을, 현재 6명 모였습니다.
-아예 길드원을 싹 끌어모아서 덤빌 모양이네요.
“다 모이기 전에 다시 자르러 가죠. 못 모이게 각개격파합시다.”
나는 다시 텔레포트를 사용해 장소를 이동한 후 곧바로 전투에 들어갔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연약한 친구들을 보니 광역 딜이 말린다. 이럴 때 패치노트가 있었으면 한 방에 다 쓸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며 스킬을 사용했다.
“탱커 쪽 백업 필요. 힐 집중 좀요.”
-뒤돌아 오는 애들 발견했습니다. 인원은 총 셋.
-광역 버프 넣었습니다. 곧죽 님 후위 좀 도와주세요. 뒤에 근딜이 없어요.
“바로 갈게요. 한 명 무너지면 다 쓸리니까 조심.”
-아, 저 새끼들 X나 얍삽하게 구네. 광딜 있으신 분 좌표 찍는 데다가 좀 쏴 주세요.
-확인했어요. 캐스팅 시간 좀 있습니다. 버텨 주세요.
“와… 쟤네 길드 원래 저렇게 인원이 많아요? 뭐 저리 떼로 몰려오냐.”
-실력이랑 스펙으로 안 되니까 쪽수로 밀어붙이려나 봐요. 퉷!
그렇다고 침 뱉지는 말고. 나는 뒤로 돌아오는 근딜들을 썰어 버리며 전황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우리 쪽이 우세했지만 역시 쪽수를 이기기는 힘든지 슬슬 밀릴 타이밍이 되었다. 이거 좀 곤란한데. 나직이 혀를 차며 타다닥, 키보드를 두드렸다.
“엿 같네. 연중 님, 패치 님 연락 안 왔죠?”
-자나 봐요….
많이 처마시긴 했지. 적당히 마시라고 일부러 조절해서 줬는데도 멈추지 않고 퍼마시더라. 알코올 쓰레기가 뭐 그렇게 술 욕심이 많은지 모르겠다.
“일단 뒤로 빠져서 전열 갖추죠. 확실히 쪽수가 많으니까 힘드네. 빼면서 틈틈이 도트딜 넣읍시다.”
-오케이. 확인이요.
-적당히 게릴라전으로 치고 빠지면서 승점만 먹읍시다.
길드전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총 두 개. 하나는 한쪽에서 패배를 시인하고 끝내는 것, 다른 하나는 1만 승점 포인트를 찍는 것이다. 현재 폭주기관차가 먹은 승점은 약 3천 점 정도. 나머지 7천 점을 모아야 한다.
-쟤들 쪽수는 많은데 속 빈 강정이라 승점은 빠르게 먹을 듯요.
-소수 정예가 훨씬 낫네. 쟤들한테만 안 죽으면 승점 안 뜯기잖아요. 죽을 때 죽더라도 몹한테 죽어야지.
“뭐라는 거야. 죽을 생각 하지 말고 죽일 생각을 하세요.”
-크으, 말하는 거 봐. 화타가 와도 쟤 인성은 못 살린다.
-우리 곧죽 님 인성 쩔어 준다! 죽기 전에 죽여라! 이거 아닙니까!
-화타가 와도 못 살린다는 인성을 지닌 곧죽 님의 설계만 믿겠습니다!
“지랄도….”
얼굴을 와락 구기며 시답잖은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힐을 낭낭하게 준다던 힐러 어디 갔나요. 힐 대신 개소리를 낭낭하게 하시는데, 혹시 힐러에서 딜러로 직업 전환하셨는지?
[친구 패치노트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원 패치노트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어.”
뭐야. 어떻게 이렇게 빨리 회복했지? 미처 생각지도 못한 패치노트의 회복력에 놀라기도 잠시, 길드 채팅 창에 올라오는 글을 확인한 순간 그럼 그렇지 하는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길드/패치노트: 연ㄴ락밪고왔습니다]
[길드/패치노트: 봍톡은 어디ㅅㅓ 하나ㅇ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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