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그동안 나한테 처발렸다 보니 안습한 이미지가 강해져서 그렇지 투명은 나름 게임 내에서 컨트롤 좋기로 알려진 유저였다. 그래서일까. 투명이 마을에 돌아다닌다는 소식에 근처에 있던 녀석의 지인들이 채팅을 올리기 시작했다.
[전체/클레오빡돌아: 투명놈ㅋㅋㅋㅋㅋㅋㅋ또 뉴비따라다니냨ㅋㅋㅋㅋ]
[전체/놀줄아는놈인가: 저 새ㅐ기 줠ㄹ라 끈질긴데 개불쌍;]
[전체/놀줄아는놈인가: 뉴비 겁먹고 도망가겠다;]
[전체/투명: 아ㅋ; 니들은 발닦고 잠이나 쳐자셈ㅋ;]
[전체/클레오빡돌아: 님!!!11 도망가요!!!1 저샊히 뉴비변ㄴ태에요!!]
[전체/영험한기운: 뉴비팡인이락우요!!! 도망쳐!!!!!!]
그렇게까지? 술 마시면서 했던 말이 다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 왜, 길드 뉴비가 나한테 PK를 당해서 맞다이 까러 왔었다는 거 말이다. 묘한 눈으로 투명의 캐릭터를 바라보며 채팅을 썼다.
[전체/부적절한닉네임: 알아요]
[전체/클레오빡돌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얼마나 유명하면 뉴비도 아냐]
[전체/투명: 뭐래ㅡㅡ얘 내 친구거든??ㅋ]
[전체/클레오빡돌아: 저번에 술 처먹고]
[전체/클레오빡돌아: 니 대신 곧죽 죽여줄 거라던 그 친구?]
클레오빡돌아의 채팅에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 그걸 또 다른 애들한테 말하고 다녔냐? 환장하겠네. 내 친구지만 진짜 가지가지 하는 새끼가 아닐 수 없다. 곧죽을놈이 난데 어떻게 내가 나를 PK해서 이기냐.
컴퓨터 두 대를 동시에 돌린다 해도 컨트롤 할 수 있는 손이 두 개밖에 없어서 키보드와 마우스를 같이 사용해야 하는 게임을 함께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진짜 이걸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냐.
[전체/클레오빡돌아: 뉴비 언제 커서 곧죽 죽이러감ㅠㅠ]
[전체/놀줄아는놈인가: 친구 잘못 만나서ㅠㅠㅠㅠ]
[전체/놀줄아는놈인가: 얼른 튀어요ㅠㅠㅠㅠㅠ]
나도 그러고 싶다. 이왕이면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리기 전에 도망치고 싶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채팅을 쳤다.
[전체/부적절한닉네임: 그래야 하나.....]
[전체/투명: 헐...]
[전체/투명: 내가 고기도 사줬는데....]
[전체/부적절한닉네임: 뭐래]
[전체/부적절한닉네임: 술 처먹고 뻗어서 내가 냈거든?]
이게 어디서 사 줬다는 말을 하고 있어. 고기 먹으러 가서 술을 주로 마셨기 때문에 고깃값 자체는 얼마 안 나왔다. 문제가 있다면 저 새끼 혼자서 술을 얼마나 마신 건지 술값만 몇만 원이 나왔다는 거다. 인생에 도움이 안 되는 새끼 같으니라고.
[전체/투명: 내가 그랫어...?]
[전체/부적절한닉네임: 그래 이새12끼야]
[전체/투명: 갚을게....]
[전체/부적절한닉네임: 됐어]
[전체/투명: 역시ㅋ 친구 좋다는게 뭐냐ㅋ]
[전체/클레오빡돌아: 빢돌아 디ㅣ지겠는데 누가 저 새12끼 키보드에서 ㅋ 좀 떼줘라]
내 말이. 나중에 문영윤 집에 찾아가서 키보드에서 키읔을 뽑아야 하나. 나름 진심을 담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이, 투명의 파티 초대가 날아왔다. 한숨을 푹 내쉬며 파티를 받은 나는 투명 외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파티/부적절한닉네임: 안녕하세요]
[파티/부적절한닉네임: 다른분이 계셨네]
[파티/영혼탈곡: 안녕하세요]
이 사람, 닉네임이 대단한걸? 영혼탈곡이라니. 본인 영혼이 탈곡됐다는 걸까, 아니면 남의 영혼을 탈곡시켜 버리겠다는 걸까? 범상치 않은 닉네임에 감탄사를 흘림과 동시에 투명의 채팅을 보게 된 나는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그러니까, 뭐라고?
[파티/투명: 이분이 내가 말했던 곧죽을놈한테 핔케당한 길드 뉴비임ㅋ;]
[파티/투명: 지금은 렙업 좀 해서 90이신데 그때는 10렙도 안됐음ㅋ;]
[파티/부적절한닉네임:어.... 그래.........]
저런 닉네임은 기억이 없는데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PK를 하고 다닌 기간 자체는 짧았으나 그때 당시 신직업으로 나온 거너를 하는 유저들이 많아 죽인 수만 두 자릿수를 넘기기도 했고, 굳이 죽인 놈 닉네임을 기억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다. 뉴비인데 미안하게 됐네요.
[파티/영혼탈곡: 괜찮아요ㅎㅎ]
[파티/영혼탈곡: 그사람이 저 뉴비라니까 백만골 주고 죽였거든요]
내가 죽인 거 맞나 보네. 부캐면 아묻따 죽여 버리고 뉴비면 골드를 쥐여 준 다음 죽였다. 뉴비라 돈이 없을 테니 그걸로 깎인 장비 내구도나 복구시키라고 말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웃긴 상황인데 이어진 영혼탈곡의 채팅은 더욱 가관이었다.
[파티/영혼탈곡: 차곡차곡 모아서 장비 맞추고 제가 죽이러 가면 돼요]
[파티/부적절한닉네임: 떡잎부터 남다른 사람일세]
나는 그의 담담하고도 뼈를 때리는 채팅에 감탄했다. 보통 저런 식으로 생각하나? 그냥 똥 밟았다 생각하고 넘기지 않아? 내가 이상한 거야, 쟤가 이상한 거야? 그는 거너여서 PK를 당했기 때문에 곧죽을놈이 싫어한다는 거너로 놈을 죽이고 싶다고 말했다. 정말 여러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파티/투명: 이제 던전가죠ㅋ]
[파티/투명: 적절이는 렙이 어느 정도 되나?ㅋ]
[파티/부적절한닉네임: 적절이는 개뿔;; ㅋ좀 안 붙이면 안돼냐 죽이고 싶다 진짜]
[파티/투명: 왜ㅋ좋은데ㅋ]
하하, 새끼. 지랄도. 현실에는 자판이 없어서 다행이다. 저 꼬락서니를 현실에서 봤다면 그날로… 내가 죽겠지. 힘이 딸리니까.
[파티/투명: 근데 렙이 좀 있네?ㅋ 32?]
[파티/투명: 오늘 시작한 거 아니었어?ㅋ]
투명의 채팅에 손끝이 잘게 떨렸다. 뭐라고 답을 해야 하나. 광전사가 극한의 너프를 먹은 후, 하도 빡치길래 성능 좋다는 배틀 메이지를 잠깐 해 봤었다. 내 손에는 영 안 맞아서 금방 접었지만. 그렇게 올린 레벨이 32레벨. 초보자가 하루 만에 올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레벨이나, 중간에 접었던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파티/부적절한닉네임: 전에 한번 해봤다고 했잖아]
[파티/투명: 헐ㅋ]
[파티/투명: 나 왜 기억 안나지ㅋ;]
[파티/투명: 렙링할 때 나 부르지ㅋ 그럼 버스 태워줬을 텐데ㅋ]
[파티/부적절한닉네임: 프리지아한다는 말 안했잖아]
[파티/영혼탈곡: 저 님 본적 있어요]
[파티/부적절한닉네임: 저요?]
어디서? 이 캐릭터는 얼마 사용하지도 않고 바로 버린 캐릭터다. 던전 기믹도 다 꿰고 있어서 파티 플레이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만날 일이 없었을 텐데?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영혼탈곡의 채팅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설마, 내가 곧죽을놈인 걸 알고 있나?
[파티/영혼탈곡: 며칠 전에 던전 돌지 않았어요?]
[파티/영혼탈곡: 랜덤매칭]
[파티/부적절한닉네임: ?]
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파티/부적절한닉네임: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신 거 같은데요]
[파티/부적절한닉네임: 저 몇 달간 안 하다가 오랜만에 들어온거라 절 알 리가 없는데?]
[파티/영혼탈곡: 아]
애초에 몇 달 전에 잠깐 하고 접은 캐릭터를 봤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영혼탈곡은 내가 한창 거너 PK하고 돌아다녔을 때 뉴비였다고 하니, 게임 시작한 지 기껏해야 한 달 남짓 된 사람이지 않은가. 조금 떨떠름한 마음을 끌어안고 키보드를 매만졌다. 본능이 여기서 벗어나라고 외친다.
[파티/부적절한닉네임: 일단]
[파티/부적절한닉네임: 렙차가 너무 나서 같이 게임하는 건 조금 어려울 거 같네요]
[파티/부적절한닉네임: 나중에 레벨 좀 올리고 나서 해요]
[파티/영혼탈곡: 전 괜찮아요ㅎㅎㅎ]
[파티/투명: 에이 그냥 같이하지 내가 캐리해줄텐데ㅋ]
어, 필요 없어. 투명의 캐리를 받아 레벨 업을 해야 한다니 그런 치욕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나 혼자서 던전 조지는 것보다 느릴 것 같은데. 나와 투명이 말씨름을 하며 투덕거리는 사이, 영혼탈곡이 다음에 또 보자는 채팅을 남기고 그대로 파티를 탈퇴했다. 나는 둘만 남은 파티창을 바라보며 투명에게 물었다.
[파티/부적절한닉네임: 저 사람 진짜 뉴비야?]
[파티/투명: 응ㅋ 왜?ㅋ]
[파티/부적절한닉네임: 뉴비같지가 않아서]
왜 낯선 뉴비에게서 익숙한 고인물의 향기가 느껴지는 걸까. 가만히 영혼탈곡과 나눴던 채팅을 눈에 담던 나는 이내 그에 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뭐, 내 알 바 아니니까. 투명이 알아서 하겠지.
(3)
멍하니 넋을 놓았다. 시선은 모니터 화면을 향해 있으나 머릿속은 텅 비어 버린 상태다. 타다다닥,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며 거슬리는 소음을 내었으나 헤드폰을 끼고 있는 내 귓가에는 들리지 않았다.
“X발… 내가 왜 이 지랄을 해야 하지?”
문영윤을 적당히 만족시키고 보내기 위해 이제는 본캐나 다름없는 나한테명령하지마를 두고 쪼렙을 또 키워야 한다는 게 짜증 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곧죽을놈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한들, 대학교 동기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 녀석이 정말 나를 죽이려 들까? 게임에서 처발렸다는 이유 하나로?
“너무 가능성 있어서 할 말이 없네.”
그 녀석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뭐, 진짜로 죽인다는 건 아니고 멱살 잡고 짤짤 흔들어 대지 않을까? 그냥 흔들리고 마는 게 낫지. 코딱지만 한 딜을 뽑아내는 부적절한닉네임을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문 나는 느리게 눈을 감았다. 진짜 못 해 먹겠다.
나는 기본적으로 지루한 걸 싫어한다. 게임에 빠져 있는 이유도 게임은 이것저것 새로운 업데이트가 나오면서 새로운 컨텐츠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눈을 뜬 나는 핸드폰을 꺼내 문영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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