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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43화 (43/88)

#43

[한도윤: 네?]

어이쿠, 손이 미끄러졌네. 화는 가라앉았으나 불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불만을 저 양반에게 토로할 자격이 있었다. 한도윤은 다짜고짜 죽고 싶냐는 내 말에 의문을 표하더니 무슨 일 때문인지는 물어보지도 않고 사과를 건넸다.

[한도윤: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한도윤: 그... 제가 어제 기억이 없어서 그런데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무슨 실수요?]

[한도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해요?]

[한도윤: 네....]

그만 놀려야지.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과부터 해 오는 모습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말꼬리를 잡아 버렸다. 이윽고 그가 폐를 끼쳐서 죄송하다며 보상을 하겠다는 말에 식겁해 말을 돌렸다. 뭔 놈의 보상이야. 그런 거 필요 없어.

[지금 접속 가능하세요?]

[한도윤: 들어갈게요]

“진짜 묻지도 따지지도 않네.”

원래 이런 사람인가.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을 겪게 되었다면 뭐 때문에 그러는 거냐고 이유부터 물었을 텐데. 이 양반은 딱히 이유가 궁금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나는 얼결에 기다리게 만든 퇴사기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딜 부족 같아서 딜러 하나 영입했어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곧 온다니까 일단 정비하고 있으면 될 듯요]

[파티/퇴사기원: 아... 죄송해요ㅠ]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님 탓 아니라니까요...]

초행이 그만큼 했으면 됐지 뭘. 연신 죄송하다는 퇴사기원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따지고 보면 공팟 가기 싫다는 이유로 무리일 줄 알면서 강행한 내 탓이 컸다. 아무렴, 남 부럽지 않은 장비를 얻었다고 자신감이 넘쳐서 막무가내식 진행을 하지 않았던가.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제 탓이 한 70퍼 정도 되고]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지금 올 딜러 탓이 30퍼쯤 돼요]

[파티/퇴사기원: 네?]

[길드원 패치노트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저 사람이요]

[길드/패치노트: 안녕하세요]

저 인간도 양반은 못 되는 모양이다. 패치노트를 환영하는 퇴사기원을 보며 짜게 식은 눈으로 그를 초대했다. 파티에 들어온 패치노트가 잘 부탁한다며 채팅을 건네왔다. 왜 저 인간이 30% 정도 잘못했는지가 궁금하다면, 나만 알고 있는 이유를 알려 주는 것이 인지상정. 나는 가볍게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패치노트님이 저한테 톡을 보냈는데]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엄청난 트롤이었죠]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진짜 세기의 트롤이었음]

[파티/패치노트: 네?]

그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현 상황에 딱 맞는 찰떡같은 말이 뭐 없나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적절한 비유 하나가 떠올라 곧바로 채팅을 올렸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리듬게임 풀콤보 중에 문자가 와서 풀콤을 날려버린 그런 상황이었죠]

[파티/퇴사기원: 아...]

[파티/패치노트: 저요..?]

네, 너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덕분에 콤보 삑나갔습니다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톡으로 지랄한 이유가 다 있었답니다. 패치노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임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면 그게 뭐 그리 큰일이냐 하겠지만, 겜창이라면 저게 얼마나 거지 같은 상황인지 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겜창이지.

[파티/패치노트: 죄송합니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빡딜 뽑아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파티/패치노트: 영혼을 갈아 넣어 딜하겠습니다...]

[파티/패치노트: 그래서 그런데 저한테 파장 좀 주시겠어요...?]

그럼 됐다. 잘못은 하드 캐리로 보상해 주세요. 슬슬 준비가 끝났을 거 같아 던전에 입장하려던 찰나, 패치노트의 채팅을 보고 그에게 파티장을 넘겼다. 그러자 곧바로 가장 필요했던 파티의 귀족이 나타났다.

[길드원 연중무휴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연중무휴 님이 파티에 들어오셨습니다.]

[파티/연중무휴: 안녕하세요^^]

[파티/연중무휴: 연락받고 왔습니다^^]

저건 뭔 소리래.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이던 나는 자신이 불렀다는 패치노트의 말에 납득했다. 둘이 친구인 데다 같은 곳에서 눈을 뜬 김에 부른 거구나. 패치노트에게 다시 파티장을 돌려받은 나는 현재 조합을 훑었다. 딜러 셋에 힐러 하나라. 힐러가 많이 갈리겠지만 그의 컨트롤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이제 출발해야지 싶어 던전 입장을 누른 나는 문득 떠오른 일에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저 인간, 제가 술에 취해 개가 되었던 걸 기억하고 있을까? 개새끼라는 말에 정말 개가 되었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육성으로 터졌다. 그거 진짜 웃겼는데. 동영상이라도 찍어 둘걸 그랬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그냥 궁금해서 그런데]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혹시 정모 때 기억 있어요?]

[파티/연중무휴: 저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둘다요]

[파티/연중무휴: 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 뭐 했나요.....?]

기억 안 나는구나. 님 완전 개 됐는데. 그래, 당사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기억 못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나는 진심을 담아 채팅을 쳤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님들은 어디 가서 술 먹지 마세요]

그게 본인에게도 타인에게도 이로운 일이니까. 갑작스러운 내 말에 연중무휴는 제가 무슨 짓을 했느냐며 닦달하듯 물어 왔고, 패치노트 또한 무슨 실수를 했냐며 걱정스럽게 채팅을 올렸다. 알면 있던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물어보고 그러냐.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궁금해하지 마라. 그러다가 다친다.

나는 그런 그들의 질문을 무시하고 클리어에 필요한 부분을 조율한 다음 곧바로 보스를 향해 돌진했다. 폭딜이 가능한 딜러에 확실하게 커버 쳐 줄 수 있는 힐러도 있으니 이번에는 클리어할 수 있겠지. 보스에게 콤보를 꽂아 넣으며 눈동자를 굴려 다른 이들을 흘겨보았다.

[파티/연중무휴: 저 진짜 뭐 했는데요?]

[파티/퇴사기원: 저도!! 저도 궁금해요!!!]

[파티/퇴사기원: 회사만 아니었으면 정모 가는 건데ㅠㅠ]

[파티/패치노트: 죄송합니다...]

저러다 실수해서 판 터트리지. 딜을 넣으면서 틈틈이 정모 때의 일을 물어보는 이들을 보며 혀를 찬 나는 콤보가 끊기지 않게 타이밍 맞춰 채팅을 날렸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원트클하면 알려줄게요]

목표가 생긴 겜창이란, 참으로 무서운 존재였다. 별거 아닌 말이 시발점이 되어 빡딜, 빡힐을 한 그들은 진정한 클린 게임이 무엇인지 보여 주며 단 하나의 실수도 없이,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깔끔하게 판을 끝냈다. 저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하냐.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야.

(5)

나는 완벽 그 자체인 플레이를 보여 준 파티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살다 살다 이렇게 클린한 게임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파티/퇴사기원: 이제 썰 좀 풀어주시죠]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상처뿐인 썰일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파티/퇴사기원: 제 일이 아니니까요 ㅎ]

그것도 그렇네. 뭐부터 풀어 줘야 할까. 술에 취해 개가 된 길드원들이 어떤 또라이 짓을 했는지 알려 주면 되나?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떠올리며 하나씩 얘기를 풀었다. 정신 줄 놓고 술을 퍼마시던 뚝배기장인과 연중무휴, 술김에 친구 먹은 베타 누나와 한놈 님. 그리고 서글프게 울면서 내 닉네임을 부르짖던 패치노트까지. 내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패치노트와 연중무휴의 채팅이 점점 줄어들었다. 쪽팔리나.

[파티/퇴사기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요? 육성으롴ㅋㅋㅋㅋㅋㅋ으르렁ㅋㅋㅋ컹컹ㅋㅋㅋㅋ진짜????]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네 패치노트님이 개새끼 하니까 육성으로 개소리를 내셨어요]

[파티/퇴사기원: ㅋㅋㅋㅋ아 나도 거기 갔어야 했는데!!!!!!]

어지간히도 웃겼는지 퇴사기원이 쉼 없이 자음을 남발했다. 그는 다음에 또 정모를 했으면 좋겠다며, 그때는 자신도 참여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난 빠질 건데. 뒤처리를 다 내가 해야 했단 말이야. 한편 진상의 끝을 보여 준 패치노트와 연중무휴의 채팅은 멈췄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파티/연중무휴: ㅋㅋ... 저 눈 떴을 때 웬 모텔에 있던데 그건 혹시...?]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아 그거]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길거리에 버릴 수는 없어서]

친절한 알바생의 도움을 받아 처넣었죠. 성별이 다르거나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다면 다른 방에 넣었겠지만 동성에 실친이라고 하니 한곳에 몰아넣었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다른 사람들은 제군들이여! 나를 따르라! 하면서 2차 갔어요]

[파티/퇴사기원: ㅋㅋㅋㅋ나를ㅋㅋㅋ따르랔ㅋㅋㅋ누가요?ㅋㅋㅋㅋ]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뚝배기장인님이었나]

자유의 여신상인 양 술병을 들어 올리며 외치던 그녀의 모습은 정말 남달랐다. 그때는 정말이지, 길드 이름을 잘못 지었다고 생각했다. 폭주기관차가 아니라 총체적 난국으로 지었어야 했어. 그래도 스트레스성 위염 때문에 배가 아팠다는 걸 빼면 나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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