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35화 (35/88)

#35

자고로 미남과 미녀는 많을수록 좋다고, 기다리는 동안 할 일도 없어서 조용히 그들을 곁눈질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카페의 다른 이들 또한 연신 힐끔거리며 그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역시 사람들 생각하는 건 거기서 거기라니까.

진동벨을 손에 든 차가운 인상의 남자가 돌연 핸드폰을 꺼내더니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제스처를 취했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남자는 웃는 낯으로 그것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따로 약속이라도 있었던 걸까.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그들을 몰래 관찰하다 핸드폰 위로 뜨는 알람 메시지에 헛웃음을 흘렸다.

[한도윤: 저희 도착했는데 지금 어디 계세요?]

설마?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의 프로필을 눌렀다. 흑백 사진에 담겨 있는 얼굴은 예의 차가운 인상의 남자와 닮아 있었다. 미친, 연예인 사진 하나 걸어 둔 줄 알았는데 본인이었어? 눈에 띄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답장을 보냈다.

[지금 연중무휴님이랑 같이 들어오셨죠?]

[한도윤: 네]

[이 날씨 코트남 둘?]

[한도윤: ? 네 맞아요 코트 입고 있는데 저희 보이세요?]

[ㅋ미치겠네]

상판 하나로 어그로란 어그로는 다 끌고 다니는 저 두 사람이 패치노트와 연중무휴였다니. 아무리 봐도 게임 폐인으로는 안 보이잖아. 내가 너무 일반화를 하고 있었던 거야?

[임효린: 머야 왜 미치고 그래 어캐 생기셨길래???]

[임효린: 아 개궁그매ㅠㅠㅠ나도 빨리 도착좀ㅠㅠㅠ기사님아 엑셀 밟아!!! 다 쳐버려!!!]

[이세영: 아ㅠㅠㅠ저 더 걸릴 거 같아요ㅠㅠ]

[안전운전 기원...]

[진짜 격하게 아는 척하기 싫은데...]

[일단... 창가 자리에 혼자 앉아있는 흰색 패딩이 저에요]

[김현호: 5분 안에 도착합니다.]

내 채팅이 올라가자마자 그들의 고개가 순식간에 내 쪽으로 돌아갔다. 그 시선들이 너무 날카롭게 느껴져 움찔한 내가 어색하게 손을 들어 올리자 미묘한 표정을 지은 그들이 큰 보폭으로 다가왔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며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자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모르는 사이면 몰라도 아는 사이라고 생각하니, 생긴 게 너무 부담스럽다. 그중 패치노트로 추정되는 남자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는데, 눈깔을 왜 그렇게 뜨냐고 일갈해 주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한 나는 한참 올려다봐야 하는 신장 차이에 얼굴을 미세하게 구겼다. 안 그래도 작은 내 키가 더 X만 해 보인다. 조금 억울해졌다. 한 놈만 큰 게 아니고 두 놈 다 크다니. 자취하기 전에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쌌는데 나는 왜…. 물려받은 유전자는 어쩔 수 없다 이건가? 살면서 작은 키가 불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는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그 패치, 아니… 한도윤 씨, 맞죠?”

“…네.”

“그럼 옆에 계신 분이….”

“연중무휴인 정태원입니다. 이렇게 만나 뵈니 반갑네요!”

“예에… 반갑습니다.”

차가운 인상은 패치노트, 서글서글한 인상은 연중무휴였다. 목소리를 들으니 확신이 선다. 저번에 음성 채팅으로 들었던 목소리들과 똑같았다. 아니, 오히려 마이크를 거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들으니 더 좋은 것 같다. 인생이란 참으로 불공평하구나.

나는 짜게 식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일단 자리에 앉을 것을 권했고 연중무휴, 정태원은 커피를 가져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진동벨을 들고 사라졌다. 차마 내가 대신 갈 테니 여기 있으라고 할 수 없었던 나는 어색하게 뻗은 손을 치웠다. 막상 얼굴을 맞대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패치노트를 힐끗 흘겨보았다. 채팅에서 봤을 때랑 참 많이 다르시네요. 온라인 한정 이중인격이신지?

앞에 앉은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패치노트, 한도윤은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딱딱히 굳은 표정을 풀지 않고 있었다. 꽉 다물린 입매가 시야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서늘하게 생긴 인간이 입까지 다물고 있자 주변 공기가 2도는 더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바로 전설의 쿨워터 향인가요? 입 안에 맴도는 드립을 내뱉지 않기 위해 애쓰자 절로 어색한 미소가 그려졌다.

화가 난 듯한 그의 얼굴을 살피며 나는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게 있었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표정 관리는 X망했지만 그래도 인사도 했고, 게임상에서도 문제 될 만한 행동은… 하긴 했는데 그건 저 양반이 먼저 따라다니면서 선지랄했던 거잖아. 그럼 그냥 저 표정이 디폴트인 건가?

그냥 다 필요 없으니까 누군가가 어서 와 줬으면 좋겠다. 정태원이라든가, 베타 누나라든가. 분위기 띄우는 사람들 말이다. 어색함에 맨틀을 뚫고 들어갈 지경이라 초조하게 다리를 떠는데 한도윤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그… 식사는 잘하시고 다니시는 거예요…?”

“…네?”

“그냥 좀… 너무… 마르신 거 같아서….”

“…뭐요?”

심지어 그는 내게 안쓰럽다는 듯한 눈빛까지 보내왔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흘렀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구 놀리나?

“푸흡!”

웃어? 열이 뻗친 내가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고 있자, 어느새 돌아와 이 일련의 사건을 보고 있던 모양인지 정태원이 큰 소리로 웃으면서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다가 커피 다 쏟겠다.

“그런 팔로 어떻게 키보드를… 그렇게….”

“…허.”

아슬아슬하게 보이던 정태원을 돕고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뒤이어 흘러나온 말에 어이가 없어졌다. 욕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이거 지금 시비 거는 거지? 싸움 거는 거 맞지? 입 안에 장전해 뒀던 욕설을 굴리며 걸어온 싸움을 어떻게 받을까 고민하는데 정태원이 테이블 위로 커피를 내려놓으며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하, 얘가, 큽, 이래 보여도 악의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에요. 흡….”

“예… 그러시구나….”

허파에 바람구멍 난 채로 말하니까 신뢰성이 많이 떨어지네요.

“푸흡… 너도 뭐라고 좀… 끄윽… 말해 봐라…. 오해 생겼잖아….”

“뭐…를…?”

아련하게 흘러나온 한도윤의 목소리에 정태원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진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다물어 주지 않을래? 기계적인 미소를 지은 나는 마른세수를 하며 한시라도 빨리 다른 사람들이 오기를 기도했다. 이 이상 여기 있다가는 열불 터져서 화병으로 죽을 것 같았다.

“거참… 재능이 있으시네요…. 사람을… 빡치게 하는 재능….”

“푸하하!”

그만 좀 쪼개, 이 새끼야.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최대한 미소 짓던 나는 파르르 떨리는 안면 근육을 매만졌다. 있는 힘껏 끌어당긴 입꼬리가 욱신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멀었나. 슬쩍 핸드폰을 꺼내 톡방을 확인하니 다들 곧 도착한다는 말만 하고 있다. 말만 하지 말고 얼른 와 줘. 날 여기서 탈출시켜 달라고. 뚫어져라 핸드폰 액정을 노려보는데 돌연 정태원이 말을 걸어왔다.

“그렇게 어색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예, 뭐…. 제 또래로 보이시긴 하네요.”

“정말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또래를 만나 반갑다는 둥 넉살 좋은 말을 흘리던 정태원이 한도윤의 옆구리를 찔렀다. 뭐냐는 눈으로 정태원을 노려보는 한도윤의 모습은, 뭐라고 할까. 눈으로 욕하는 게 뭔지 몸소 보여 주는 느낌이었다. 그는 서늘하기 짝에 없는 한도윤의 시선에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돌렸다.

“하하, 곧죽을놈 님은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곧죽… 후우….”

정태원은 아무렇지 않게 닉네임을 입에 담았지만 쪽팔림을 참지 못한 나는 패딩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썼다. 보통 모르면 이름부터 물어보지 않나. 밖에서 닉네임을 부른다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뒤통수를 거하게 처맞은 기분이 들었다. 원래 다 저러나?

정모가 처음이었던 나는 이 인간이 나를 멕이려고 저러는 건지 아니면 원래 다들 이러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웃는 거 보면 멕이는 거 같은데 가만히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아까 인사했을 때 이름도 말할 걸 그랬다. 정태원이 톡방에 초대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잊은 게 후회됐다.

“밖이니까 닉네임 말고… 이름으로 부르죠.”

“아, 그러고 보니 성함이….”

“박정우입니다.”

“정우 씨였구나. 저는 정태원이에요.”

“예에….”

방긋 미소 짓는 낯짝에 순간 이 둘이 나를 멕이기 위해 정모에 참석한 것은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 정도면 합리적 의심 아니냐. 한 놈은 보자마자 왜 이렇게 비쩍 골았냐 그러고 한 놈은 닉네임을 큰 소리로 불렀잖아. 대놓고 멕이려고 하는 게 아닌 이상 이렇게 다채로운 개소리를 할 리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었고, 의심은 점점 확신이 되어 갔다.

(3)

의심의 눈초리를 가늘게 뜨던 찰나 딸랑 하고 종소리가 울렸다. 혹시 길드원이 온 건 아닐까 싶어 고개를 돌린 나는 나를 따라 고개를 트는 한도윤과 정태원의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건 좀 웃겼다.

“와….”

정태원의 감탄사였다. 방금 들어온 사람은 남자 한 명이었는데, 감탄이 나올 만한 사람이었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두꺼운 외투 때문인진 몰라도 정말 대단한 덩치였다. 흔히 말하는 헬창의 냄새가 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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