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30화 (30/88)

#30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뭘요?]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강화요 제가 운이 좀 따라주는 편이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주 장비 강화를 맡기라고? 마우스를 쥐고 있는 손이 멈칫했다. 지금 있는 강화석을 모두 써도 10강은 무리지 않을까. 무엇보다 이 강화석을 빌려준 건 패치노트니까…. 나는 강화를 취소하고 패치노트에게 거래를 신청해 무기를 비롯한 장비와 남은 강화석을 모두 올렸다.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많이는 안 바라구요... 딱 10강만....]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아니 8강이라도....]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무기는 이미 10강이긴 한데... 할 수 있다면 딱 11강 까지만....]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네 ㅎㅎ]

양손을 모은 채 기도했다. 많이 바라지 않습니다. 강화석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전 장비 8강이라도 가게 해 주세요. 10강이면 더 좋고요. 제가 실패 시 장비 파괴 옵션이 붙는 11강을 바라는 것도 아니잖아요? 급기야 의자 위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최대한 경건한 자세로 빌면 될 것이라 믿었다. 만약 패치노트 덕분에 10강을 찍을 수 있게 된다면 그를 받들어 모시리라.

대장간에 주저앉은 패치노트가 본격적으로 강화를 시작했다. 심장이 쫄깃하다. 번쩍이는 강화 이펙트를 보다 못한 나는 눈을 감았다. 헤드셋도 내려놓았다. 눈과 귀를 막고 있어야 안 될 것도 될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슬슬 눈을 떠도 되나 싶어 힐끔 실눈을 떴다. 모니터에는 거래를 신청한 패치노트가 날 부르는 것이 떠 있었다. 거래를 걸었다는 건, 된 건가? 쿵쿵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장비 옵션을 확인했다. 10강이 아니라 13강이었다.

“어와아아악!”

미친 게 분명하다. 남의 무기를 가지고 이런 도박을 하다니. 그것도 성공을 하다니! 이 예쁜 것! 첫판에서 자템이 나왔을 때보다 더 기뻤다.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펄쩍 뛴 나는 얼마 안 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골드를 거래 창에 올린 뒤 패치노트가 무어라 반응하기 전에 거래를 마쳤다. 한동안 텔레포트도 못 하겠지만 뭐 어때. 날 잡아서 앵벌이 뛰면 된다. 세상에, 현 장비가 13강이라니. 압도적인 옵션에 흥분해 책상을 내리쳤다. 너무 세게 내리쳐서 손이 아려 왔다.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발닦개가 되겠습니다]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제가 막노동을 참 잘하는데 말이죠]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마음껏부려먺어주세요]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골드 가져가세요ㅠ]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골드필요하시다구요? 잠만요 앵벌ㄹ이뛰고올게요]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아뇨ㅠ 도로 가져가세요ㅠㅠ]

“진짜 계좌 번호 알려 줬음 좋겠다….”

아니면 기프티콘이라도 보내게 연락처를 물어볼까. 좀 이상한 생각이지만 내가 호의적인 그라면 바로 알려 줄 것 같았다.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님 전번 점 주실수있나요]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아니 이상한 거 아니고 걍 넘 감사해서 뭐라도 드리고 싶거든요]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치킨 좋아하세요?]

곧바로 답이 올 거란 예상과 달리 패치노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번은 좀 그랬나. 집적거린다고 오해하는 건 아니겠지? 괜한 짓을 한 것 같아 콧잔등을 긁적였다. 연락처 없이 기프티콘을 보낼 수 있나 한번 알아봐야겠다.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치킨 말고]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다른 것도 돼요?]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먼데요?]

금손님께서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니, 당근 빠따 해 드려야죠. 장기를 팔아야 하거나 원양 어선을 타야 하는 종류의 불법 루트만 아니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저번에 들어보니까]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베타님께서 정모 여시려는 모양이던데]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같이 가실래요?]

정모? 느리게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기울였다. 베타 누나가 정모 얘기를 꺼냈다고? 난 들은 게 없는데?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베타누나]

[길드/베타: ?]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정모 열거임?]

[길드/베타: 어캐 알앗지? 너 없을 때 잠깐 얘기햇던 건데]

[길드/베타: 이번 길쟁 끝나면 크리스마스 겸 정모 할라구 햇지]

베타 누나의 대답에 손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빠졌다. 길드 정모라…. 꽤 오래 게임을 해 왔지만, 정모를 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뭐, 큰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밖에 나가기 귀찮아서…. 무엇보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겜창이 만나서 할 얘기는 게임 얘기밖에 없지 않은가. 게임 내에서 얘기하면 되지.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일단 전번 좀 주세요]

[귓속말/패치노트>나한테명령하지마: 오실 거에요?]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패치노트: 누나랑 얘기 좀 나눠보고요]

내 대답에 패치노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내 전화번호를 알려 주었다. 곧바로 핸드폰을 꺼낸 나는 연락처에 그의 번호를 저장한 뒤 톡 설정에 들어가 친구 목록을 동기화했다. 메인 화면에 뜨는 낯선 프로필을 누르자 인상이 차가운 남자의 흑백 사진이 떠오른다. 연예인인가? 잘생겼네.

[박정우 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패치노트: ?]

[패치노트: 곧죽님이세요?]

[네]

[패치노트: 아...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ㅎㅎ]

게임에서 만난 사람이랑 톡을 하니 기분이 묘했다. 닉네임으로 저장해서 그런가.

[이름 뭐로 저장할까요? 일단 님 닉넴으로 저장해뒀는데]

[패치노트: 한도윤이에요]

연락처로 들어가 이름을 바꿨다. 이름이 제대로 바뀌었는지 확인하고 톡을 보냈다. 가만 생각하니 주접부리다가 제대로 된 감사 인사를 못 했다.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덕분에 고강 장비도 얻고 길드전도 쉽게 풀어갔어요]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주세요]

[그리고 지금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결장 한 번만 돌아주실 수 있나요]

[낼 뜨기 전에 손 좀 풀고 싶은데]

[한도윤: 아 신화 길마 직업이 뭐였죠?]

[홀리나이트요]

패치노트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톡을 남기고 사라졌다. 톡에서만 사라진 게 아니라 게임에서 접속을 종료했다. 기다리라고 하는 걸 보니 홀리 나이트로 재접속할 생각인가. 도대체 부캐가 몇 개나 되는 거야.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저 사람도 어지간히도 겜창인 모양이다.

제 자리에 서서 패치노트가 오기를 기다렸다. 닉네임이 다를 텐데 어떻게 알아보지, 라는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무려 ‘신규업데이트’라는 닉네임의 유저가 텔레포트로 나타난 것이다. 딱 봐도 패치노트네.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닉넴]

[전체/신규업데이트: 제가 방 팔게요]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장비 머 끼고 있어요?]

[전체/신규업데이트: 아 장비 발할라 풀셋이요]

엄청 단단하겠네. 하다 하다 부캐한테 발할라 풀셋을 맞춰 주냐. 나는 작게 침음을 흘리며 신규업데이트와 데스매치에 들어갔다.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나는 데스매치인지라 시간제한은 없었다. 광전사의 대검만큼은 아니지만 큼직한 검을 들고 있는 홀리 나이트를 보며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패치노트는 스킬 운용이 홀리 나이트와 정반대인 배틀 메이지가 본캐이니 상대적으로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10초의 대기 시간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데스매치가 시작됐다. 나는 돌진을 사용해 앞으로 달려 나가 콤보기를 사용했다. 스킬의 이펙트가 터지고, 곧바로 패치노트가 카운터를 날렸다. 짧은 시간 사이에 수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나는 진심으로 놀랐다. 그가 게임을 잘한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부캐를 가지고 저만한 컨트롤을 보여 줄 줄은 몰랐다.

“사기 캐릭터네.”

게임도 잘하고, 운도 좋고, 돈은… 많나? 강화석을 뭉텅이로 줘 놓고도 아까워하는 기색이 없었으니 아마 많을 것이다. 세상 혼자 사는 사람이로구나. 예상을 웃도는 컨트롤에 당황했으나 이어진 공방에서 승리한 것은 나였다. 데스매치 방을 유지하기 위해 적정 HP를 유지하며 전투를 끝냈다. 뭐, 본캐와 부캐의 차이인 거겠지. 아마 장비 차이도 있을 것이다. 상대가 발할라 풀셋을 들고 있다 한들, 지금 내 장비는 그가 뽑아 준 13강짜리 이스카리아 장비였으니 말이다.

[전체/신규업데이트: 홀리나이트 약점 알고 계세요?]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걔가 약점이 있어요?]

[전체/신규업데이트: 얘가 밸런스 좋은 탱커라 사람들이 많이 쓰는데 좀 큰 약점이 있어요]

[전체/신규업데이트: 거의 버그급이라서 옛날에 문의넣었는데 안 고쳐주더라구요]

[전체/신규업데이트: 아마 지금도 있을 거예요 제가 알려드리는대로 한번 공격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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