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24화 (24/88)

#24

패치노트, 연중무휴와 함께 공대를 꾸린 지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비록 새 공대원을 들여오는 건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으나 그동안 연중무휴가 폭주기관차 길드에 들어오게 되었고, 몇 차례 이스카리아를 돌아 다들 파밍을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다사다난한 일주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결투장이나 가 볼까.”

PVP에 랭킹 시스템이 도입되고 난 후 짬 날 때마다 가끔 돌아서 그런지 성적이 지지부진했다. 오늘은 공대도 쉬기로 했으니 랭킹작이나 해야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게임에 접속한 나는 곧바로 결투장으로 향했다.

[길드/베타: 곧죽ㅎㅇ]

[길드/베타: 오늘머할거야?]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핔케요]

[길드/베타: ?]

[길드/주님한놈갑니다: 피케이 안 한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잘못 말했다 피빕이요 랭킹 좀 올리려고]

[길드/베타: 아......... 적으로 만나지 말자.......]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ㅋ]

만나면 죽여야지. 깔끔하게 죽여야지. 슬쩍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결투장에 들어갔다. 주말이긴 해도 아직 아침이라 그런지 매칭이 바로바로 되지는 않았다.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 최소 1분은 기다려야 겨우 상대가 뜬다. 원체 PVP보다 PVE에 집중되어 있는 게임이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로딩이 끝나고 결투장에 들어가게 된 나는 상대방의 닉네임을 확인한 순간 헛웃음을 흘렸다. 이게 이렇게 되네.

[전체/투명: 아 ㅅ12ㅂ]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이게 누구야 투명해서 투명한 나머지 보이지 않는 투명한 투명이 아니냐]

[전체/투명: 이 샊 말하는 싸1가지봐라;]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투명 조1졋죠? 한번 처1발2렸었죠?]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넌 이미 죽어있다]

“아, 만나도 이렇게 만나네. 진짜 웃겨.”

설마 여기서 투명을 이렇게 만날 줄이야. 육성으로 웃음소리를 낸 나는 마우스와 키보드를 부여잡고 PVP에 집중했다. 투명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으려나. 일단 전에 썼던 수를 쓰며 확인이나 해 볼까.

접근하자마자 1평캔을 쓰며 투명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관짝에 들어간 광전사라 저번 사건으로 1평캔에 대해 알려졌어도 패치는 되지 않았다. 타이밍이 중요한 기술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광전사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다른 직업군도 비슷한 게 있으니까.

[전체/투명: 아 이 새12끼 추잡스럽게 또;;;;]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꼬우면 너도 하든가]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아 능지가 투명해서 할 줄 모르나? ㅈㅅ;;]

이죽거리는 말에 투명이 악을 쓰며 공격을 피했다. 그동안 광전사에 대해 연구를 한 모양인지 1평이 날아올 때마다 백스텝을 치며 뒤로 빠진 뒤 다시 진입하는 방식을 쓰고 있었다. 이 녀석, 많이 늘었는걸?

“그래 봤자지.”

목을 긁적이며 투명에게 스턴을 먹인 뒤 연속기를 그대로 꼬라박으며 스킬을 이어 갔다. 종잇장처럼 연약한 투명의 캐릭터가 휘날리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운되었다. 승리 모션을 취하는 캐릭터를 보며 뿌듯하게 웃은 나는 마지막으로 채팅 한 줄을 남겨 투명의 속을 긁었다.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투명, 오늘도 닉값하다!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 그의 실력!]

[전체/투명: ****가 진짜 **** **]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강해져서 돌아와라]

아, 재밌다. 찌르는 족족 반응이 오니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투명이 먹금을 했다면 금방 질렸겠지. 그렇게 보니 새삼 투명이 나를 얼마나 즐겁게 해 주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혼자 낄낄거리며 웃어 재끼던 나는 매칭이 잡히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고, 정말 빵 하고 웃음이 터져 버렸다.

“어학! 으하하하학!”

[전체/투명: 아**]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2연꽁승ㄱㅅ]

좋다. 아주 개꿀이다. 이런 꽁승 좋아요! 그렇게 나는 결투장에서 투명과 5연속 매칭이 되었다. 처음에는 열심히 욕을 날리던 투명은 점차 말수가 줄어들었고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적당히 PVP를 즐기다 사라졌다.

“너무 심했나?”

PVP가 원래 이런 건데 뭘. 내가 전처럼 PK를 한 것도 아니니 괜찮지 않겠어?

(5)

한참 게임하느라 뻐근한 몸을 이끌고 스트레칭을 하는 사이, 핸드폰이 미친 듯이 울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뭐지, 따로 연락 올 곳은 없는데. 의아함에 핸드폰을 확인하자 한 사람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 보였다.

[문영놈: 야]

[문영놈: 야]

[문영놈: 야]

진동이 하도 울려서 전화가 왔나 했는데, 알고 보니 개인 톡이었다. ‘문영놈’, 문영윤이라는 이름의 대학 동기였다. 서로 자취방이 근처이기도 하고 얘가 워낙 오지랖이 넓은 놈인지라 어쩌다 보니 친해진 사이였다. 나는 문영윤의 과격한 연락에 고개를 기울이며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Y]

[문영놈: 왤게 늦게 답장함]

[문영놈: 나 고민있단 말이야ㅠ]

[ㅇㅉㄹㄱ]

[문영놈: 개새끼]

상대하기 귀찮은데 어쩌란 말이냐. 나 밥 먹고 게임해야 한다고. 성격 같아서는 그냥 무시해 버리고 싶은데, 나름 친한 녀석이라 무작정 엿 날리기도 좀 그렇다. 말 그대로 몇 안 되는 대학 친구다 보니, 격렬하게 귀찮고 배고파서 밥이나 먹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딱 한 번만 물어봤다.

[뭔데]

[문영놈: 나... 게임 접을까봐...]

[ㅇㅉㄹㄱ]

[문영놈: 개새끼]

시답잖은 내용에 톡방을 나가고 핸드폰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톡이 아니라 전화가 걸려 오기 시작했다. 무슨 고민이길래 이렇게 끈질기냐. 이게 사람 새끼야 거머리 새끼야.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고 무시하기를 여섯 번. 백기를 든 건 내 쪽이었다. 핸드폰 전원을 끄면 찾아올 놈이야, 이건.

“20자 이내로 간결하게 말해.”

-백수면서 뭐 그리 바쁘다고 그러냐. 술 먹게 나와.

“대낮부터 무슨 놈의 술이냐. 안 가. 네 주정 감당하기 싫어.”

-우리 우정이 그거밖에 안 되냐?! 그리고 지금 오후 6시다, 이놈아!

“어.”

핸드폰을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녀석의 수다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나는 평소 말이 많은 편도 아닌데 왜 내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이 많냐. 따발총도 이것보다 쉬엄쉬엄 쏘겠다. 그렇게 침대에 엎어진 채 턱을 괴던 나는 예상치 못한 단어에 턱을 삐끗했다.

-내가 프리지아라는 게임을 하거든? 좀 고인물이야.

“…뭔 게임?”

-프리지아. 망겜인데 들어 봤어?

들어만 봤겠어. 내가 그 망겜 고인물인데. 문영윤과 나누는 대화들은 주로 과제 얘기였기에 서로 게임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정확히 무슨 게임을 하는지는 몰랐다. 현실에서 만났으면 됐지 굳이 게임에서도 만나야 하냐는 이유 때문이었다. 참고로 내가 먼저 같이 게임하자는 말만은 하지 말라고 했다. 열에 아홉은 강의 끝나자마자 피시방 가자고 할 게 뻔해서. 난 조용히 즐기고 싶단 말이야.

“프리지아가 왜?”

-궁금해? 궁금하면 나와.

“나보고 네 주정을 들으라고? 그냥 죽여라.”

-그러게 누가 안 취하래? 네가 진작 취했으면! 어? 그럴 일도 없는데! 어? 카악! 퉤!

“으, 더러워. 끊는다.”

-형, 내가 삼겹살 쏠 테니까 제발 나와 줘요. 역 앞 삼거리에 있는 삼겹살집! 20분 안에 안 오면 너네 집에 쳐들어간다!

으, 그건 더 싫어. 나는 통화 끊긴 핸드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패딩을 걸쳤다. 날도 추운데 굳이 밖에서 보자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슬쩍 창문을 열자 함박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눈 때문에 땅 질척이겠네. 이런 날씨면 집에서 음성 채팅 켜 놓고 랜선으로 술 까면 안 되나. 굳이 나가야 해?

문영윤은 생긴 것과 달리 본인이 한 말은 착실하게 지키는 타입이라 20분 내로 안 가면 정말 쳐들어올 것이다. 그리고 문영윤이 쳐들어오면 그날로 집 안이 뒤집어진다. 비유가 아니고 정말 난장판이 된다. 이 좁은 방 안에 돌아다닐 데가 어딨다고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어지르는데, 녀석이 한번 왔다 하면 그 자리에서 대청소를 해야 할 정도였다. 밖에 나가는 것보다 집 안 청소가 더 귀찮다.

“어! 여기!”

“…집에서 랜선 음주하면 안 돼?”

“마, 사람이 바깥바람도 좀 쐬고 그래야지! 네가 그러니까 허여멀건 거야! 비타민 D 부족이라고!”

어차피 지금 구름 때문에 햇볕 없잖아. 우중충 어두컴컴하잖아. 커튼 친 내 방이랑 구름 낀 밖이랑 다를 게 뭐야. 녀석의 헛소리를 들을수록 표정이 구겨졌지만, 문영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강제로 나를 이끌고 삼겹살집 안에 들어갔다. 추운 밖과 달리 따뜻한 내부에 살이 간지러웠다. 슬쩍 허벅지를 긁으려는데 문영윤이 내 손등을 찰싹 치며 눈깔을 부라렸다. 눈깔을 왜 그렇게 떠.

유독 난로의 따뜻한 바람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주문을 마친 녀석은 먼저 나온 소주를 까며 어울리지 않는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심각한 얘기를 하려고 한숨씩이나 쉬고 그러냐. 게임 얘기 하려던 거 아니었나. 문영윤은 잔에 소주를 따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PVP에서 자꾸 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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