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21화 (21/88)

#21

[파티/연중무휴: 안녕하세요~ 힐러입니다~]

[파티/뚝배기장인: 어서오세요!!!]

[파티/주님한놈갑니다: 힐러님 믿습니다.]

[파티/연중무휴: ㅋㅋㅋㅋㅋㅋㅋㅋㅋ탱이시구나 이번에 탱커 장작 된다던데 열심히 살려보겠습니다]

[파티/패치노트: 혹시 다들 보이스톡 하시나요?]

음성 채팅을 말하는 건가. 나는 조금 난색을 표했다. 확실히 정보도 적고 처음 가는 레이드인 만큼 음성 채팅을 사용하면 편하긴 하겠지만…. 넷상의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들려 준다는 것에 약간 거부감이 들었다. 하나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원활한 리딩을 위해 음성 채팅을 반기고 있었다.

[파티/주님한놈갑니다: 보톡하면 좋긴 하죠. 특히 탱힐들은 보톡해야 조율되는 부분도 있어서.]

[파티/패치노트: 제가 방 하나 팔테니 들어오시겠어요?]

[파티/베타: 네네 저도 보톡있는 게 편해서ㅎㅎ 방 만들면 말씀해주세요~~!]

“아….”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전 별로...]

[길드/베타: 아 맞다 곧죽이 보톡 안하지...ㅠ 그냥 들어와서 듣기만 하는 건 어때?]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그래도 돼?]

[길드/베타: 듣톡하다가 이건 말해야겠다 싶을 때 잠깐 켜도 되고 ㅇㅇ]

[길드/베타: 넘 걱정하지 않아도대]

베타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패치노트가 음성 채팅방을 만들어 왔다. 잠시 뜸을 들이던 나는 듣기만 해도 된다는 베타 누나의 말을 떠올리며 채팅방에 들어갔다. 적당히 아이디를 만들고 들어가자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연중무휴입니다.

-안녕하세요! 뚝배기장인입니다!

-힐러 베타예요! 와, 장인님… 여자분이셨어요…?

-네! 조금 의외였나요?

[파티/곧죽을놈: 전 마이크를 안 써서 듣톡만 할게요]

재잘거리는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리며 채팅을 쳤다. 예전에 공대를 할 때도 생각한 거지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니 집중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래서 되도록 음성 채팅을 안 했던 건데. 깊게 숨을 내쉬며 장비를 점검하고 있을 때, 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이크 설정이 이상해서… 안녕하세요, 죽으러온놈 겸 패치노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크흠….”

듣기 좋은 중저음에 괜히 귓가를 긁적였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진짜 목소리 하나는 끝내주네. 제 소개를 마친 사람들은 하나같이 준비 끝났다며 어서 레이드에 들어가자고 성화였다. 나 또한 하염없이 장비 창이나 보고 있었던 터라 곧바로 레이드 입장을 눌렀다.

몽환적인 분위기의 BGM이 흘러나오고, 시점 카메라가 어둡고 음습한 배경을 훑는다.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고 있는 보스 몬스터가 하늘에서 내려오며 낫 모양의 무기를 휘두르는 것으로 짧은 영상이 끝났다. 확실히 캐릭터 디자인이며 배경에 공을 들인 티가 났다. 발할라는 파라오의 분노 짝퉁이었으면서 말이다. 심드렁하게 전투 태세에 들어가는데 패치노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2)

-시작하자마자 보스가 광역 딜 사용할 겁니다. 힐러 분들은 뎀감 및 힐업에 주의해 주시고요, 광역 딜 끝나고 보스 스킬 시전 바 하나 올라갈 텐데 그거 탱버입니다. 화상 디버프 받으시면 뒤쪽에 늪 보이시죠? 거기 들어갔다 나오시면 됩니다. 보스는 기본적으로 중앙 주차라 중앙에서 이동할 때는 특정 스킬 사용할 때밖에 없어요.

-와… 한판하고 오셨나요?

-아뇨. 직접 해 보지는 못했고 어떤 스트리머분께서 생방하시길래 잠깐 보고 왔습니다.

저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될 터다. 딜러들이야, 뭐…. 대충 감 잡을 때까지 일단 빡딜하고 보는 수밖에.

레이드가 시작되자, 메인 탱커인 한놈 님이 앞으로 달려 나가며 보스의 어그로를 끌었다. 동시에 돌진기를 사용해 보스에게 붙은 나는 오프닝 스킬을 사용하며 콤보 연계를 이어 나갔다. 뒤쪽에서 화려한 이펙트와 함께 패치노트의 스킬이 날아왔다. 그러나 방어력이 높은 건지 아니면 피통이 큰 건지, 보스의 체력 바는 미묘하게 줄어들기만 했다.

첫 번째 광역 딜이 들어오고 힐러들이 빠르게 힐업을 함과 동시에 낫을 들고 있지 않은 보스의 손이 붉게 빛나더니 스킬 시전 바가 올라왔다. ‘지옥의 겁화’라는 이름의 탱버였다. 보스가 붉은빛의 손을 들어 올렸다 아래로 내리찍자 한놈 님의 HP가 순식간에 까였다.

미리 보호막을 걸어 뒀음에도 한 번에 80%는 까인 것 같다. 힐러의 힐업이 계속되고, 시작 전에 들은 대로 한놈 님이 늪에 들어가자 화상 디버프가 사라지며 도트딜로 인해 줄어들던 HP가 원상 복구되었다.

-와, 진짜 되네요? 탱커 보고 장작이라고 하신 분 어디 가셨죠? 이래도 제가 장작입니까?

-장작은 맞잖아요. 화르륵! 화르르륵! 파르르르르륵!

처음 하는 레이드고 처음 손발을 맞추는 조합이었으나 생각보다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아차 싶을 때마다 들어오는 패치노트의 리딩이 훌륭했다.

-올라오는 스킬 시전 바 보니까 광딜 올 거 같은데요. 힐러님들 힐업 주의해 주세요.

-시전 바만 보고 어떻게 알아요?

-지옥의 겁화가 탱버였으니까 지옥의 염화는 광딜이겠죠, 뭐.

“푸핫.”

어이없는 소리였지만 그의 말은 맞아떨어졌다. ‘지옥의 염화’는 파티원 전원에게 대미지를 주며 화상 디버프를 남기는 기술이었다. 디버프를 받은 이들이 늪을 향해 우르르 달려가는 걸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개떼가 따로 없네요. 양치기 소년 하나 있었으면 양 떼였을 듯.

-주님, 오늘도 어린양 하나가 주님에게 갑니다.

-한놈 님 기독교인이세요?

-아뇨, 불교인데요. 나무아미타불.

불교인데 왜 주님을 찾아. 부처님을 찾아야지. 끅끅거리면서 웃다가 스킬 쓸 타이밍을 놓칠 뻔했다. 가장 폭딜이 나오는 마지막 콤보기라 여기서 삑나면 DPS가 훅 떨어진다. 순간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지. 내 사전에 탱밑딜 힐밑딜은 있을 수 없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장난ㄴ]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콤끊ㅎ기면]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책임지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아니, 이분 진짜 이 정도면 찐사 아닙니까? 두 분 언제 연애 시작하셨어요?

-큽….

패치노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호언장담하자 길드원들의 농담 섞인 반응이 돌아왔다. 웃음소리도 들린 것 같은데. 워낙 짧고 작게 들린 터라 잘못 들었나 싶어진 나는 오로지 딜에만 집중했다. 뭐, 대화가 웃겨서 웃을 수도 있지. 나도 바로 방금 전에 웃었으니까.

레이드는 어느새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보스의 HP가 50% 밑으로 떨어지자 언데드 계절의 쫄들이 소환되었다. 당연하게 부탱 역할을 할 것으로 여겼던 내가 어그로를 잡으려는데 패치노트가 온갖 스킬을 쫄에게 쏟아부으며 말했다.

-쫄 제가 가져갈게요. 보스 딜 해 주세요.

내가 가져가는 게 더 낫지 않나. 아무래도 법사 계열보다는 투사 계열인 내 쪽이 방어력도 높고 체력도 높다. 그리고 관짝에 들어간 광전사보다는 장비도 좋고 딜도 잘 나오는 배틀 메이지가 보스를 치는 게 이득일 것이다.

나는 입을 꾹 다물며 고민했다. 아무리 조율을 위해서라 한들, 현 상황에서 채팅을 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채팅을 치는 사이 콤보가 끊기며 딜 로스가 날 것이 자명하니까. 무엇보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입 뻥끗하며 말하는 게 더 빠르다. 짧게 혀를 찬 나는 음성 채팅 창을 올려 마이크를 켰다.

“제가 가져가는 게 더 낫지 않나요?”

-네? 누구….

“곧죽을놈이요. 제가 쫄 가져가고 패치노트 님이 보스 때리는 게 낫지 않나요? 광전사가 관짝에 들어갔어도 투사 계열이니까 배메보다는 부탱 역할 하기 좋을 텐데요. 발할라에서도 저한테 부탱 시키셨잖아요.”

-아… 고, 곧죽을놈 님이셨군요….

“네? 네. 제가 쫄 가져갈까요?”

-아이고, 잠시만요. 잠시만요. 따릉따릉 지나갑니다. 저 새끼 버퍼링 걸려서 제가 리딩해 드릴게요! 여기 쫄은 쟤가 가져가는 게 맞아요. 이번 보스는 딜컷이 거지 같아서 쫄페 때는 딜컷을 해 줘야 하거든요? 그런데 딜러들이 아무도 보스를 안 치면 임계점 관리가 안 되니까 딜 잘 나오는 놈을 쫄한테 던져 줘야 해요.

여기가 괜히 지랄 맞다고 욕먹는 게 아니에요. 경쾌하게 들려온 연중무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특정 페이즈에 딜컷이 있을 줄은 몰랐다. 정말 지랄 맞은 레이드로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이라도 좋으니 공략을 더 찾아볼 걸 그랬다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이야, 내가 곧죽이를 몇 년 알고 지냈는데 보톡하는 거 처음 봐.

-그러게요. 곧죽을놈 님 보톡 안 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아까도 듣톡만 하신다고 했던 거 같은데.

“원래 듣톡만 하려고 했어요. 근데 당장 말할 게 있는데 못 하니까 답답하더라고요.”

다음에는 안 할 거예요. 단호하게 뒷말을 마치고 다시 보스를 때리는 데에 집중했다. 연속기가 터지며 크리티컬 히트가 들어갔다. 모니터 오른쪽에 떠 있는 보스의 임계점을 확인하니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런데 막 새 콤보기를 넣으려던 그때, 갑자기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더니 보스가 하늘 위로 올라갔다.

-뭐야? 쟤 왜 올라가?

-아, 이런….

-이놈 좀 보게? 넋 놓고 꼴딜 하니까 이 지라… 아니, 이 지경이 되는 거예요. 아직 안 늦었으니까 네가 커버 치세요.

“뭔데요? 무슨 일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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