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죽어서도 욕을 내뱉는 투명의 파티를 보며 짜게 식은 나는 조용히 퀘스트 아이템을 회수했다. 그러게, 평소 마음을 곱게 썼어야지.
[하늘 방주의 흔적 (1/5)]
[전체/패치노트: 다음으로 넘어갈까요]
[패치노트 님이 나한테명령하지마 님에게 파티를 신청했습니다.]
[파티를 수락합니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님 죽으러온놈님이죠?]
[파티/패치노트: 네]
역시. 죽으러온놈이 아니면 기껏해야 한 번 보고 만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서 도와줄 리가 없지. 설마 했던 게 사실로 드러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근데 스트리머라는 사람이 학살하고 다녀도 되는 건가?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타입인가?
우리는 패치노트가 소환한 마차를 타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맵이 넓어 한 세월 걸릴 것이란 예상과 달리 흔적의 대부분이 근처에 포진해 있어 퀘스트를 쉽게 클리어할 수 있었다. 아마 탈것 속도에 투자를 많이 한 패치노트 덕이 크겠지. 나 혼자였다면 이보다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NPC 헤일리에게로 돌아온 나는 파티를 탈퇴하기 전 짤막한 감사 인사를 남겼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깼어요]
장비 건도 그렇고 이번에 투명 사건도 그렇고, 여러모로 도움받은 게 많아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굳이 안 나서도 괜찮았는데. 사실, 나 PK 활성화를 안 해 둬서 투명이 나 못 때리거든.
[파티/패치노트: 별거 아니었어요]
[파티/패치노트: 아 맞다 이번 레이드 같이 가실래요?]
[파티/패치노트: 본캐로도 아직 클리어는 못해서]
[파티/패치노트: 이걸로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나는 잠시 말을 아꼈다. 저만한 딜러가 함께해 준다면 클리어 확률이 올라가니 환영이었다. 다만 메인 퀘스트를 시작하기 전 다른 길드원들과 함께하기로 했던 것이 걸렸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괜찮을지 모르겠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님이 죽으러온놈님인 거 다른 길드원한테 말해도 돼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아까 길드원들이랑 같이 돌기로 약속잖아요]
[파티/패치노트: 상관없어요]
[파티/패치노트: 아니 그냥 길초주세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네?]
길드에 초대해 달라고? 채팅과 동시에 그의 닉네임 옆에 붙어 있던 길드 이름이 사라졌다. 아니, 우리 길드 들어오겠다고 원래 있던 길드를 그냥 나가 버린 거야? 그래도 돼? 당황스러움에 머뭇거리던 나는 결국 길드 채팅에 물어보기로 결정했다.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죽놈님이 본캐도 우리 길드 가입하고 싶으시다는데]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다들 괜찮으신지]
[길드/베타: ㅁㅓ..? 진자....?]
[길드/퇴사기원: 오 드뎌 죽놈님 본캐 알 수 잇는 거냐구욧!!]
[길드/베타: 우리 곧죽이 사람 꼬셔오는데 도가 텃내ㅎ]
[길드/베타: 누구 초대하면 돼?]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패치노트요]
[길드/뚝배기장인: 머요? 패치노트?]
뚝배기장인은 패치노트라는 닉네임에 화들짝 놀라더니 호들갑을 떨며 채팅을 올렸다. 순식간에 도배된 채팅 창에 두 눈만 끔뻑이던 나는 그가 스트리머로서 유명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요즘 인터넷 방송 보는 사람이 많긴 하구나. 나만 안 보던 거였어?
[길드/뚝배기장인: 왘ㅋㅋㅋㅋ팿놑님이 죽놈님이셧냐구요ㅠㅠ저 방송이랑 공략 겁나 열심히 보는데ㅠㅠ!!]
[길드/뚝배기장인: 진짜 부럽다ㅠㅠㅠㅠㅠㅠ곧죽님 저랑 몸 바꿔요ㅠㅠㅠ]
…그 정도야?
5. 나왔노라, 얻었노라, 득했노라.
(1)
내가 멍하니 뚝배기장인의 주접을 바라보는 사이, 패치노트의 채팅이 올라왔다.
[파티/패치노트: 저 근데 방송 켤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거 괜찮으실까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한번 물어볼게요]
아 씨, 이거 진짜 어쩌냐. 머리를 벅벅 긁으며 길드원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환영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다들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데 나만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길드/뚝배기장인: 저 자ㅏㅁ만요 퀘스트 얼마 안남음 저도 데려가요ㅠㅠ]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방송 하신다는데 괜찮아요?]
[길드/뚝배기장인: ㅁ ㅓ..?영광이라고좀 전해주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
[길드/주님한놈갑니다: 저도 데려가요...]
뚝배기장인은 패치노트가 방송을 켰다 하면 하던 일도 제쳐 두고 보러 간다고 한다. 열혈 팬이라나 뭐라나. 탱커 하나에 힐러 하나, 그리고 딜러 셋. 힐러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다들 괜찮대요 그리고 저희 길드원 중 한 분이 영광이라고 전해달래요]
[파티/패치노트: 다행이네요 ㅎㅎ]
[파티/패치노트: 아는 힐러가 하나 있는데 데려와도 괜찮을까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당연하죠 안 그래도 힐러 하나 더 있었으면 했는데 다행이네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날 잡아서 가실래요 아니면 퀘스트 끝내자마자 가실래요]
[파티/패치노트: 음... 제가 지금 당장은 좀 어려워서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실까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저녁에 가자는데 시간들 괜찮으십니까]
[길드/베타: 당근빳따죠]
[길드/뚝배기장인: 당근빳따2222]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저녁에 뵙겠습니다]
[패치노트 님이 폭주기관차 길드에 가입했습니다.]
[길드/베타: 죽으러온놈님의 본체 패치노트님께서 가입하셔씁니다!!!츢하츢하!!!!]
[길드/뚝배기장인: 완저뉴ㅠㅠㅠㅠ영상 잘보고 있어여ㅠㅠㅠㅠㅠ]
[길드/패치노트: 감사합니다 ㅎ]
파티를 탈퇴한 나는 이어서 퀘스트를 진행했다. 이번 퀘스트가 마지막 퀘스트였던 모양인지 이스카리아의 절망이 열리는 ‘절망의 방주’ 퀘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레이드 입장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확인한 나는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 엎어졌다.
***
[자유게시판] 이스카리아의 절망 후기
작성자: 도돌이도돌이표
이야 일단 배경이 예뻤습니다 화려하고 몽환적인 분위기에요
게다가 보스 모델링도 잘 되어 있어서
게임 할 맛이 났습니닿ㅎㅎㅎ
임계점이라는 게 새롭게 생겨났더라고요 보스 분노 게이지 같은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임계점 넘어가면 전멸이에요ㅎㅎ
냐옹이처럼 귀여운 언데드 쫄들이 나와서 어그로 끄는데 진짜 좃같았습니닿
시작하자마자 광딜치고 탱버부터 꼴아박는데욯ㅎㅎ
발화 스킬이에요 탱커를 활활 불태웁니다 디버프는 덤ㅎㅎㅎ
(댓글 42)
- 세로드립ㅋㅋㅋㅋㅋㅋㅋㅋ이게 게임이냐 X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탱커 발화 무엇ㅋㅋㅋㅋㅋㅋㅋㅋX나 장작 던져주고 싶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퐈이어어어ㅓㅓ어어!!!!
- 방금 하고 왔는데 X나 깨라고 만들어둔 던전이 맞는지 궁금 제작자들 이거 플레이 해보기는 했냐?
└ 했을 거 같음?ㅋㅋㅋㅋㅋㅋ쪼대로 만들어놓고 나중에 밸런스 패치한다에 올ㄹ인;;;
- 근데 배경도 보스 모델링도 예쁘긴 함 ㅇㅇ 그건 ㅇㅈ 난이도는 개욕나옴
- 임계점은 뭐임?
└ 임계점이라고 보스 분노 게이지 같은 건데 임계점 돌파하기 전에 클리어 못하면 그 자리에서 전멸ㅋㅋㅋㅋㅋㅋㅋㅋㅋ임계점 넘어가잖아? 대미지 99999999 들어 오면서 상황 종료 된다??ㅋㅋㅋㅋㅋㅋㅋㅋ
└ 야 이거 버티라곸ㅋㅋ만들었냨ㅋㅋㅋㅋㅋㅋㅋㅋ탱커 피통이 많아야 30만인데 저따구로 들ㅇㅓ오면 어쩌자는겈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시ㅣ발 나 이거 빡추 하나 만나서 12트하고 못깸;;; 이거 깬 사람 있긴 함??ㅋㅋㅋ
└ 화랑 방송한 거 보셈 걔 존ㄴㅏ 아슬하게 깼더라 두번은 못할 짓이라던뎈
(더보기)
***
[길드/뚝배기장인: 저ㅓㅓ 이제 준비 완료호우!]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파티 드릴게요]
길드원들의 준비가 모두 끝이 났다. 다른 이들이 퀘스트를 깨는 사이 나는 손도 풀 겸 결투장을 돌며 PVP 랭킹을 올리고 있었다. 본래라면 서브 장비를 강화했겠지만 신규 레이드가 나온 이상 발할라 장비는 이제 의미가 없었다. 이스카리아를 깨고 얻은 장비를 써야 하니까 말이다.
레이드 시작 직전에 이스카리아를 경험하고 온 유저들이 올려 놓은 게시글을 확인한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딜컷도 빡세고 들어오는 대미지도 장난 아닌 모양이다. 탱힐들은 죽어 나가겠구나. 딜하랴, 목숨 부지하랴, 힐하랴, 기믹 처리하랴. 손이 한 8개는 있어야 할 듯.
[길드/베타: ㅋㅋㅋㅋㅋㅋㅋㅋㅋ탱커 장작이냐 왜 불타오름?]
[길드/주님한놈갑니다: 혼자 있고 싶으니까 모두 로그아웃해주세요...]
[길드/베타: 아ㅋㅋㅋㅋㅋ한놈님 어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베타: 화상 디버프 끄는 법이 안 나와잇더라 걍 깡힐로 살려야 하나봄ㅎ 좃댓자너ㅎ]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파이팅]
[길드/주님한놈갑니다: 곧죽을놈님이 부탱 역할 해주겠죠? 믿습니다.]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딜러한테 부탱 시키는 건 에바아닌가요 님 혼자 맞으세요]
[길드/주님한놈갑니다: 주님.. 주님의 어린양 하나가 주님 곁에 갑니다... 불타서 갑니다...]
[친구 패치노트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원 패치노트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패치노트의 접속을 확인하자마자 그에게 파티 초대를 보냈다.
[패치노트 님이 파티에 들어오셨습니다.]
[파티/뚝배기장인: 헉 대ㅐ박...어서오세요..!!!!!!!!!]
[길드/뚝배기장인: 대바규ㅠㅠㅠㅠㅠ개쩐다ㅠㅠㅠㅠㅠㅠ]
[파티/베타: 와와ㅏ!! 환영합니다[email protected]!!1]
[파티/패치노트: 안녕하세요]
[파티/패치노트: 연중무휴<<< 파티초대 해주실 수 있나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네]
멀쩡한 사람도 절로 불쌍하게 만드는 닉네임이다. 혹시 틀렸을까 꼼꼼하게 닉네임을 확인하고 파티 초대를 보내자 빠르게 수락이 들어왔다.
[연중무휴 님이 파티에 들어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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