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내 콤보를 회피기를 사용해 피하며 거리를 벌리려는 죽으러온놈에게 최대한 바짝 붙었다. 멀어지는 순간 두들겨 맞는 건 내가 될 터다. 중거리만 되어도 광전사인 나는 거너에게 유효타를 먹일 만한 스킬이 없기 때문이다.
[파티/죽으러온놈: 1평 안 쓰시네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님한테1평을왜씀?]
어차피 파훼할 텐데. 1평으로 농락할 수 있는 건 광전사에 익숙하지 않은 유저들이지, 죽으러온놈 같은 고인물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크게 대미지도 안 나오는 1평만 쓸 바에는 몇 번 못 때려도 굵직한 스킬을 맞히는 편이 이득이었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그러는님은]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제대로 한다며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안하시네?]
지근거리에서 콤보 스킬을 연속적으로 꼬라박자 죽으러온놈의 HP가 빠르게 줄어들었다. 내 장비 맞춰 주겠다고 자기 장비는 신경도 안 쓰더니. 나직이 혀를 차며 재차 스킬을 쓰려는 찰나, 내 캐릭터가 죽으러온놈의 스킬을 맞고 뒤로 밀려났다.
[파티/죽으러온놈: 제대로 하고 있는 거예요]
[파티/죽으러온놈: 거너로 PVP는 아직 안 익숙해서 그래요]
[파티/죽으러온놈: 이제 제대로 갈게요]
“아.”
맞다. 이 양반 저거 부캐였지? 잠시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내뱉었다. 어쩐지 웃고 있는 것 같은 죽으러온놈의 채팅이 끝난 후, 나는 단 한 번도 그의 캐릭터와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게임을 시작하고 처음 겪는 완패였다.
(4)
“후…….”
PVP가 끝나고,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숨을 내쉬었다. 처음이었다. 이렇게 빡센 PVP는 정말 처음이었다. 차라리 레이드를 뛰는 쪽이 더 속 시원할 것 같았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님 개잘하시네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닉변하셔야할듯]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죽으러온놈X 죽이러온놈O]
내가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이 죽으러온놈은 근처에 왔을 땐 총검술이라는 근거리 스킬을, 거리가 떨어졌다 싶으면 원거리 총탄 스킬을 미친 듯이 난사하며 나를 아주 가지고 놀았다. 처참하게 졌다는 패배감보다 그의 컨트롤에 대한 감탄이 더 컸다.
나중에 광전사 스킬도 익혀서 가르쳐 달라고 할까. 죽으러온놈이 광전사를 잡게 된다면 나보다 더 잘할 것 같다. 본직도 아니고 부직으로 이만큼 하는 사람이면 처음 하는 직업도 파헤쳐서 완벽한 트리를 구사할 수 있지 않을까?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나중에 저랑 또 결장 가요 재밌네]
[파티/죽으러온놈: 저야 좋죠]
[파티/죽으러온놈: 잘하는 분이랑 하는 PVP는 환영이에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뭐래]
초반에만 강세를 유지했지 중반부터는 처발렸구만. 머쓱함에 콧잔등을 긁적이며 말을 돌렸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슬슬 파밍하러 갈까요]
[파티/죽으러온놈: 좋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곧바로 파티 모집을 통해 던전에 들어갔다. 파티원 중 한둘이 트롤 짓을 펼쳤으나 그것을 완벽하게 커버하는 죽으러온놈에게 가슴 깊이 감탄을 표하며 아가리를 털었다. 내가 컨이 님보다 쪼들려서 그렇지 아가리 터는 건 밀리지 않아요. 나만 믿어요.
***
[업데이트 노트] #10 영원의 종결자 업데이트
<공식 트레일러 영상 보기>
* 열 번째 메인 시나리오 [영원의 종결자]
※ 페란트 마을 -오래된 고목나무(X10.27 Y7.4)에 위치한 NPC ‘아우엘리카’로부터 신규 메인 퀘스트 [빛바랜 추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신규 레이드 추가
※ [이스카리아의 절망]
-디 톨레아 지역 하늘에 존재한다는 절망의 유령선, [이스카리아의 절망]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메인 퀘스트 [사라진 주민들]을 클리어한 후, 디 톨레아(X:19.2 Y25) NPC ‘헤일리’에게 받을 수 있는 메인 퀘스트 [절망의 방주]를 진행하여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입장 조건
└ 전투 클래스 레벨 100
└ 1~8인 파티 권장
└ 제한 시간: 120분
* 신규 콘텐츠 추가
※ PVP 랭킹 시스템이 추가되었습니다.
-각 마을의 결투장에 있는 게시판 및 홈페이지의 랭킹 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랭킹은 1:1 데스매치의 결과가 반영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관련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 길드전이 추가되었습니다.
-타 길드에 전쟁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전쟁 선포 시 길드 하우스를 제외한 지역은 PVP 가능 상태가 되며, 마을 내의 PVP의 경우 상황에 따라 불이익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길드전에서 승리한 길드는 길드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관련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
“미친 거 아냐?”
자다가 일어나 이리저리 뻗친 머리를 긁적이며 업데이트 내용을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새로 캐릭터를 키우며 이제 겨우 장비 세팅을 끝냈기에 갑작스럽게 나온 업데이트 소식이 영 달갑지가 않았다.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시점 중 지금에서야 나온 거야. 아무리 끝물인 레이드라도 그렇지. 나처럼 이제 겨우 장비를 다 맞춘 유저들한테 엿을 날려도 아주 빅 엿을 날리는 업데이트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그렇게 추가해 달라고 할 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랭킹전이 생긴 것도 모자라 길드전까지 동시에 추가되었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몰아서 업데이트하냐. 한 번에 하나씩 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친다던? 이래서야 메인 퀘스트를 밀어 레이드를 먼저 뛰어야 할지 아니면 PVP 랭킹을 신경 써야 할지 알 수 없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신규 추가된 콘텐츠의 링크를 타고 들어간 나는 나직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개인 랭킹은 생겼는데 길드 랭킹은 아직이었다. 길드 랭킹도 없는데 길드전을 넣었다는 건 테스트용이라는 건가. 진짜 가지가지 한다. 잠깐의 패치가 끝나고 게임에 접속하자 업데이트를 보고 온 길드원들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길드원 나한테명령하지마 님이 접속하였습니다.]
[길드/베타: 미ㅊ쳣다 장비 터져서 발할라도 아직인뎈ㅋㅋㅋ벌써 신규 레이드를 내냐고 영자 능지 수준?????]
[길드/주님한놈갑니다: 진짜 짜증 나는 건 그게 아니에요. 이번 레이드에 들어가려면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해서 레이드 루트를 뚫어야 한다는 겁니다.]
[길드/주님한놈갑니다: 심지어 메인 퀘스트 중에 이스카리아를 클리어해야 하는 것도 있어요. 이스카리아를 못 깨면 메인 퀘스트 진행이 중간에 막혀버리는 거예요.]
[길드/주님한놈갑니다: 뉴비는 물론이고 라이트 유저 배려도 없어요. 이제 막 나온 레이드라 공략도 없어서 헤딩해야 하는데.]
[길드/뚝배기장인: 공팟 물 드럽겠네욬ㅋㅋㅋㅋㅋㅋㅋ개나 소나 멘퀘 민다고 쳐들어가서;]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업뎃참,... 가지가지...]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이따 이스카리아 함께 가실 분 구합니다...]
[길드/베타: 나ㅠㅠㅠㅠ데려가ㅠㅠㅠㅠㅠㅠㅠ]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그래... 일단 퀘스ㅡ트 하러 가자.....]
의욕이 뚝 떨어진다. 얼마 전에 죽으러온놈에게 받은 무기가 번쩍이는 이펙트를 뽐내는 것을 보며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제대로 써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장비를 갈 때가 왔다. 이번 레이드 난이도는 얼마나 지랄맞으려나. 공팟은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는 메인 퀘스트 NPC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바글바글하게 몰려 있는 유저들로 인해 잔렉이 걸린다. 저딴 거 업데이트할 시간에 서버나 고치지…. 적당히 뚫고 들어가 퀘스트를 받은 나는 속에서 우러나오는 한숨을 내쉬며 퀘스트를 진행해 갔다. 초반은 예상대로 이 마을 저 마을을 옮겨 다니며 NPC와 스토리에 필요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알타니아가 나오는 것도 아닌데 굳이 스토리를 볼 필요가 있을까. 적당히 스킵을 누르는데 돌연 알타니아의 이름이 보였다.
[판토: 자네라면 믿고 알타니아에 대해 알려 줄 수 있겠어. 그녀가 신뢰했던 영웅이니.]
알타니아와 관련된 스토리가 나오는 건가? 그렇다면 당연히 봐야지! 스킵해야겠다는 생각은 저 멀리 날아간 지 오래였다. 나는 판토라는 NPC의 텍스트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판토: 알타니아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판토: 그녀의 이름은 율리아나. 알타니아는 10년 전에 실종된 제 동생을 찾고 싶어 했어.]
[판토: 율리아나가 살아 있는지만이라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만약 그녀의 생사를 확인한다면 죽은 알타니아도 기뻐할 거야.]
“아니, 죽은 알타니아라고 하지 마! 내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고!”
책상을 쾅 내리치며 눈물을 삼켰다. 왜 남의 최애를 죽이고 지랄이야. 알타니아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데! 본사에 폭탄 던져 버리고 싶다. 그냥 폭탄 말고 핵폭탄. 눈물을 삼키며 퀘스트를 받았다. 이 새끼들 분명 알타니아 죽이고 욕 처먹어서 쌍둥이 캐릭 만들었다에 올인할 수 있다. 그러게 왜 죽여서 이 사달을 내냐.
퀘스트를 완료하고 빠르게 디 톨레아 지역으로 이동했다. 퀘스트 때문에 유저들이 몰려서 그런가 로딩이 길었다. 로딩이 끝나고 나온 맵은 탈것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하는 유저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컴퓨터 상태가 안 좋은 사람의 경우 여기서 튕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른 유저들을 따라 탈것을 꺼낸 나는 지정 NPC를 향해 날아갔다. 인산인해를 이루는 유저들의 모습은 한 무리의 개미 떼 같았다. NPC 앞에 도착하고 탈것을 역소환한 뒤 퀘스트를 클리어했다. 이번에도 알타니아와 관련된 내용이 나올까. 조금 기대된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