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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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할라의 플레이트 메일’ +1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발할라의 플레이트 메일’ +2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발할라의 플레이트 메일’ +3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발할라의 플레이트 메일’ +3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발할라의 플레이트 메일’ +3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X발….”
연달아 실패하는 강화를 보며 아랫입술을 잘근 깨문 나는 다시 강화를 진행했고 이내 플레이트 메일의 10강에 성공할 수 있었다. 화려한 이펙트를 뽐내며 빛나는 장비를 보니 만족스러운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강화 다 하면 소켓도 박아야 하는데 돈이 받쳐 줄지 모르겠네. 앵벌이라도 뛰어야 하나?
[귓속말/죽으러온놈>나한테명령하지마: 강화 끝나면 시간 괜찮으실까요?]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죽으러온놈: 안됨]
[귓속말/죽으러온놈>나한테명령하지마: 왜요?ㅠ]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죽으러온놈: 소켓 박아야함]
할 일도 없는 모양인지 어느새 내가 있는 곳에 온 죽으러온놈이 내 캐릭터 옆에 앉으며 내 강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진짜 할 일이 없나. 내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싶어 강화를 다시 진행했다. 두 파츠의 강화가 끝나고 남은 강화석은 200여 개. 생각보다 실패 확률이 높은 나머지 강화석이 부족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직 세 파츠는 더 강화해야 하는데, 미치겠네.
[귓속말/죽으러온놈>나한테명령하지마: 잠깐 일어나주시면 안될까요?]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죽으러온놈: 말로 하면 안돼요?]
[귓속말/죽으러온놈>나한테명령하지마: 그럼 재미없어서 ㅎㅎ]
“사람 복장 터지게 할 일 있나. 여기서 재미를 찾네.”
강화 중에 안 건드리는 건 국룰 아닌가요? 꼴받네? 짜증을 꾹 참고 나한테명령하지마를 일으켜 세우자 죽으러온놈으로부터 거래 신청이 들어왔다. 설마 거래 신청을 할 줄은 몰랐기에 조금 의아하게 죽으러온놈의 캐릭터를 바라보았다. 강화 중에는 거래가 불가능해서 일부러 일어나라고 했던 건가. 뭐야, 나한테 빚을 얼마나 지우려고 또 거래를?
“헐.”
[귓속말/죽으러온놈>나한테명령하지마: 님을 향한 제 마음이에요]
[죽으러온놈 님이 나한테명령하지마 님에게 애정을 표합니다.]
귀찮은 티 내서 미안합니다. 아니, 짜증 내서 죄송합니다. 죽으러온놈이 거래 창에 올린 아이템은 무려 광전사 전용 무기인 ‘+15 각성 격변의 발할라의 집념’과 강화석 꾸러미였다. 무려 15강에 각성까지 시키고 소켓도 박은 무기라니. 없어서 못 사는 물건을 그냥 준다고?
“격변 각성까지…? 돈을 얼마나 처바른 거야….”
나는 쉽사리 거래 수락을 누르지 못했다. 지금 처분할 수 있는 걸 다 판다고 해도 저만한 무기는 못 맞춘다. 가지고 싶다는 욕망과 받아도 되나 싶은 걱정이 합쳐졌고 그것은 이내 부담으로 돌아왔다. 짧은 고민 끝에 결국 거절을 누른 나는 좌절 모션을 사용하며 드러누운 죽으러온놈을 향해 채팅을 쳤다.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죽으러온놈: 제가 받을 건 아닌 것 같네요]
[귓속말/죽으러온놈>나한테명령하지마: 님 드리려고 가져온 건데요ㅠ]
[귓속말/나한테명령하지마>죽으러온놈: 저 비싼걸 어떻게 받아요; 그냥 팔아서 님 장비 맞추세요]
내가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저런 걸 받아. 솔직히 발할라 풀세트를 선물받았을 때도 심장이 덜컹거렸단 말이다. 이래 봬도 나는 양심이 뭔지 잘 아는 사람이거든. 죽으러온놈은 계속해서 내게 거래를 걸어왔고 나는 그것을 모두 거절하며 다시 강화에 들어갔다. 도로 거래 신청이 불가능해지자 죽으러온놈은 떼를 쓰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모션을 총동원해 가며 옆에서 요란을 떨기 시작했다.
솔직히… 놓치기 너무 아까운 아이템이긴 하다. 내가 언제 또 15강 무기를 써 보겠는가. 저거 시세가 얼만데. 달라고도 안 했는데 먼저 준다고 하니 냉큼 받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미 발할라 세트를 받으며 절반은 코가 꿰인 거나 다름이 없는데, 이것까지 받으면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징징거리고 있는 죽으러온놈을 꿋꿋하게 무시한 채로 강화를 계속했다. 그렇게 강화석을 모두 털어 넣어 10강 두 파츠, 7강 세 파츠를 맞출 수 있었다. 이제 무기랑 악세 파밍을 하러 가야 하는데.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악세 파밍하러 갈 사람]
[길드/죽으러온놈: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데]
[길드/죽으러온놈: 이거만 받아주시면 진짜 악세 나올 때까지 돌아드릴 수 있는데]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님 뭐 저한테 빚지셨어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왜 이렇게 퍼줘]
굳이 따지면 빚진 건 난데 왜 님이 쩔 해 주려고 하는 거예요. 겜창 마음 설레게. 솔직히 이렇게까지 밀어붙이니 얘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러는 건지 궁금해졌다. 처음에는 최종 장비 풀세트를 쥐여 주더니 이번에는 매물도 별로 없는 광전사 무기를 준다고 하지를 않나. 그러다가 또 내가 원하는 장비 나올 때까지 같이 레이드 돌아 준다고 그러고. 누가 보면 겜창식 고백하는 줄 알겠다.
[길드/죽으러온놈: 님이 좋아서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네다씹]
[길드/죽으러온놈: ㅠㅠ]
죽으러온놈의 반응에 콧방귀를 뀌며 파티 모집 창을 확인했다. 지금 스펙이면 웬만한 레이드는 다 받아 줄 테니까 트롤 없을 만한 곳으로 골라야지. 그때 뚝배기장인과 베타 누나가 호들갑을 떨며 채팅을 올렸다.
[길드/뚝배기장인: 뭐지? 커플나오나요?]
[길드/베타: 내가 솔로인데 우리 길드 내에서 커플이라니!!!!]
[길드/베타: 이 커플 찬성이요 ㅎ]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컾시스템도 없는 게임에서 뭔솔을?]
예전 대규모 업데이트 중에 진행한 방송에서 조만간 커플 시스템을 만들 거라고 얘기하긴 했으나 아직 어떤 식인지조차 공개가 안 됐다. 즉, 인게임 내에 커플 관련 시스템이 없다 이 말씀이야.
[길드/죽으러온놈: ㅎㅎㅎㅎ]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
[길드/퇴사기원: 오옼ㅋㅋㅋㅋㅋㅋ찐인가본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누구세요? 저 아세요?]
[길드/베타: 개넘ㅋㅋㅋㅋㅋ]
채팅 창을 대충 흘려 보며 파티를 검색했다. 친분 있는 사람 아니면 딱히 머릿속에 기억해 두지 않는 편인지라 누가 트롤인지 모르겠다. 사사게에서 하나씩 검색하는 건 너무 귀찮고. 역시 길드원들한테 같이 가자 해야 하려나.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그래서 파밍가실 분?]
[길드/죽으러온놈: 저요!]
“쓰읍…….”
저 양반 외에는 없는 건가? 탐탁잖은 눈빛으로 채팅을 흘겨본 나는 죽으러온놈에게 파티를 걸었다. 내가 빚을 지지만 않았더라면…. 싫다고 하기엔 마음의 빚이 커도 너무 컸다.
[파티/죽으러온놈: 이제 저희 둘만 남았군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말을 웨 그럿케 해요?]
죽으러온놈에게서 재차 거래 신청이 들어왔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답답함과 템에 대한 미련이 그득그득 무겁게 얹혔다. 이게 유비가 자길 군사로 만들기 위해 세 번이나 찾아왔을 때 제갈량의 마음인가. 제갈량이 들으면 그거 아니라고 할 법한 생각이었으나 내겐 그게 그거였다.
한숨을 푹 내쉬며 재차 거절을 누르려던 찰나,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 거래를 받았다. 내 장비 창으로 들어온 무기를 그 자리에서 착용하자 죽으러온놈이 펄쩍 뛰며 온갖 모션을 날려 댔다. 소매 넣기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감사히 받겠습니다]
[파티/죽으러온놈: 제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쁘네요]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이제 결투장으로 가죠]
[파티/죽으러온놈: 네?]
죽으러온놈이 의문을 표했으나 그보다 내가 죽으러온놈에게 결투 신청을 보내는 것이 더 빨랐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죽으러왔다면서요]
PK를 하면 악명 지수가 오르니 안전하게 죽이려면 역시 결투장 아니겠는가. 내 채팅이 올라오자마자 수락을 눌렀는지 곧바로 결투장으로 이동되었다. 화면이 바뀌는 것을 응시하며 손목을 돌렸다.
내가 죽으러온놈을 이길 수 있을까. 장비가 아무리 좋아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건데. 그의 컨트롤을 떠올리면, 솔직히 저쪽에서 봐주지 않는 이상 내가 질 것 같다. 기본적인 직업 성능도 있고, 근거리와 원거리라는 특성의 차이도 있다. 그 이상으로 차이가 나는 건 역시 컨트롤이겠지.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서로 봐주지 말고 함 떠보죠]
[파티/죽으러온놈: 제가 어떻게 곧죽님을 상대로 봐드릴 수 있겠어요]
[파티/죽으러온놈: 제대로 해볼게요]
죽으러온놈의 채팅에 주먹을 꽉 쥐었다. 장비 세팅을 확인한 후 준비 확인 버튼을 누르자마자 전투가 시작되었다. 저쪽은 이미 준비를 다 끝냈었구나. 거리를 줄이기 위해 곧바로 죽으러온놈에게 달려간 나는 주력 스킬 콤보를 눌렀다. 타다다닥! 키보드 자판 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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