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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12화 (12/88)

#12

중간에 한 번 마을에 들러 인벤토리를 정리한 나는 어느새 90을 찍은 레벨에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이제 정말 레벨링은 끝물이구나. 똑같은 던전 반복하는 거 세상에서 제일 귀찮아. 차라리 레벨 점핑권을 캐시로 팔아 줬으면 좋겠다. 게임사는 돈 벌어서 좋고, 유저는 뺑이 안 돌아서 좋고. 일석이조일 텐데 말이다. 한숨을 푹 내쉬고 있는 사이 친화력이 뛰어난 베타 누나는 어느새 죽으러온놈에게 길드를 영업하고 있었다.

[파티/베타: 곧죽이 조만간 저희 길드로 들어올 건데]

[파티/베타: 님도 저희 길드 들오실래요??]

[파티/죽으러온놈: 제가 그렇게 과분한 길드에 들어가도 되나요?]

[파티/베타: 과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신생길드인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티/베타: 곧죽이가 있어섴ㅋㅋㅋ과분하게 느껴지셨나봐욬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건 예상 못 해서 나도 좀 웃겼다. 흘러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아직 들어간다고 안 정했음]

[파티/베타: 헐 지금 배신하는 거임?;;]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내 닉을 보셈]

[파티/베타: 닉 잘지엇내....ㅋ 명령하면 큰일날거 같자너...ㅎ]

[파티/베타: 그래서 안 들어올 거?]

글쎄다. 부러 뜸을 들이며 고민하는 시늉을 했다. 사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베타 누나의 길드에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따로 지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입장에서도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랑 놀면 편하니까 말이다.

딱 하나 문제가 있다면, 전에 다른 길드에 있었을 때도 느낀 거지만 길드의 존재 의미를 모르겠다는 거다. 예전에는 공대에 들어가려면 레이드를 주로 뛰는 길드에 들어가는 게 빨라서 그랬던 건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장비 맞춰야 하니 돌긴 할 건데….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길드 대체 뭐땜에 있는 거임?]

[파티/베타: 버프 먹을라고? 길드 버프 은근 낭낭함]

[파티/베타: 솔까말 겸치 증가 버프도 있어서 렙링에 쬐깐큼 도움도 되고]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차피 금방이니까 만렙찍고 드감]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가자 렙링하러]

[파티/베타: ㄱㄱㄱㄱㄱ]

다음 사냥터로 이동을 하며 내내 머릿속으로 길드에 대한 생각을 했다. 프리지아는 길드 관련 컨텐츠가 타 게임에 비해 부족한 편이었다. 베타 누나가 말했듯이 기껏해야 길드 버프 정도? 길드쟁 같은 게 나오면 재밌을 텐데 아직까지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생각을 하며 습관적으로 스킬을 누르고 있던 나는 레벨 업을 알리는 이펙트와 함께 올라오는 채팅을 보고 손을 멈췄다.

[나한테명령하지마 님께서 100 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파티/베타: 만렙 ㅊㅊㅊㅊㅊ]

그사이에 벌써 만렙을 찍었구나. 하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서 레벨이 오른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스킬 창을 열어 사용하기 편하게 세팅을 한 후 베타 누나에게 길드 초대를 요청했다. 곧바로 날아오는 초대 창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나한테명령하지마 님이 폭주기관차 길드에 가입했습니다.]

[파티/나한테명령하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길드 이름이 뭐 왜 이럼?]

[길드/베타: 자게의 감초 피케이의 신성!! 곧죽을놈이 왔습니다!!! 워ㅓ후후후후~~!!]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안녕하세요]

[길드/주님한놈갑니다: 나한테명령하지마님 어서 오세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한놈님ㅋㅋㅋㅋ저 곧죽이에요]

[길드/주님한놈갑니다: ? 곧죽을놈님이세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심심해서 부캐 키우고 있었어요]

[길드/뚝배기장인: 헐 안녕하세요!!!!]

[길드/뚝배기장인: 와앀ㅋㅋㅋㅋㅋㅋㅋ진짜 오랜만이에요!!!!]

[길드/퇴사기원: 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제 저희 PK로 필드쟁하러 다니나요?? 꾸르잼!!!]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저 핔케 이제 안해요 노ㅡㅡㅡ잼]

[길드/퇴사기원: 왜째서ㅠㅠㅠㅠ같이 죽이고 다님 잼쓸텐데ㅠㅠㅠ아쉽네요ㅠㅠ]

지금은 손 털었어도 나중 일은 모르는 거니 혹시라도 시비가 걸리면 말하라는 둥, 같이 싸워줄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둥, 그러지 말고 거너나 죽이러 가자는 둥, 길드 이름 그대로 폭주 기관차 같은 길드원들의 모습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편들어 주는 사람이 늘었으니 좋아해야 하나, 아니면 나보다 과격한 길드원들을 보고 겁나야 하나. 다른 건 모르겠어도 혼자 게임하는 동안 심심하긴 했었다는 것 하나만큼은 알겠다.

[전체/죽으러온놈: 만렙 찍으셨으니 이제 죽여주시는 건가요?]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 뭐를요?]

[전체/죽으러온놈: 저를요]

[죽으러온놈 님이 나한테명령하지마 님에게 무릎을 꿇습니다.]

“진짜… 질긴 사람이네.”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저 사람 왜 저러는지 아시는 분?]

[길드/뚝배기장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느 마을에요? 저 보러가도 되나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저 페란트 지역인데.... 손 털었다는데도 죽여달래요....;;]

[길드/베타: 참사랑이다 진짴ㅋㅋㅋㅋㅋㅋㅋ]

[길드/퇴사기원: 손 털엇다니까 범죄자 같잖앜ㅋㅋㅋㅋㅋㅋㅋ]

순식간에 페란트 지역으로 이동해 온 길드원들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어그로를 끌어 보겠다고 내 캐릭터 앞에서 모션을 쓰며 방방 뛰고 있는 죽으러온놈의 모습에 날 찾아온 길드원들이 길드 채팅으로 연신 자음을 남발했다.

[길드/뚝배기장인: 저 저분한테 말 걸어봐도 돼요?]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그걸ㅋㅋㅋㅋ왜 저한테 물어봐욬ㅋㅋㅋㅋㅋㅋ]

[길드/뚝배기장인: 에이 그래도,,,저분 그거잖아요 곧죽을놈님 뒤에 붙어다니는,,,그,,,금붕어똥,,,,,,,,?]

[길드/베타: ㅋㅋㅋㅋ금ㅋ붕ㅋ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똥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뚝배기장인: ㅋㅋㅋㅋㅋㅋㅋ죄송,,,단어가 기억이 안 났어요 아 뭐였더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 위해 길드 채팅을 치려던 나는 순식간에 올라오는 전체 채팅에 두 눈을 크게 떴다.

[전체/베타: 님 곧죽 들어왔으니까 님도 이제 저희 길드 들와요 아까 제의 아직 유효함^^]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아니 왜;]

[길드/베타: 재밌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드/나한테명령하지마: 미1쳤나봐;;]

[길드/베타: 맞아 난 미1쳤어 너한테 미1쳤지!!!!]

[길드/퇴사기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나 저겈ㅋㅋㅋㅋㅋㅋㅋ우리 곧죽님의 유우우우우우명한 명대사 아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으로 나한테 왜 그러느냐 물어보고 싶어졌다. 말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결국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말린다고 들을 것 같지도 않고 남이 게임하는 데 참견할 권리가 나한테 있을 리 없다.

[전체/죽으러온놈: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오.”

[전체/베타: 엥 님 곧죽을놈 조아하는 거 아녓어요?]

[전체/죽으러온놈: 그건 맞는데 불편하실 거 같아서요]

[전체/죽으러온놈: 저는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전체/죽으러온놈: 너무 가까워지면 설렘으로 죽을거에요]

[전체/죽으러온놈: 솔직히 지금 파티하고 있는 것도 꿈같아요]

[길드/퇴사기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짐 무슨 얘기 나누고 잇는거에요??]

[길드/베타: 곧죽을놈 사랑하는 컨셉 보는 중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이 자음으로 도배가 되었다. 아까보다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채팅 창을 보며 나직하게 한탄을 흘린 나는 볼살을 부들부들 떨며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여기서 불편하다고 하면 프로불편러가 되겠지? 짧은 고민 끝에 뭐라 말할지 정했다. 역시 이 상황에선 이것밖에 없다.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전 빼고 얘기해주세요]

그냥 제삼자 할래요. 당사자 싫어요.

[길드/뚝배기장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칼같이 자르시넼ㅋㅋ]

[길드/퇴사기원: ㅋㅋㅋㅋㅋㅋㅋ미치겠닼ㅋㅋㅋㅋㅋㅋㅋ]

[전체/죽으러온놈: 괜찮습니다 그래도 님을 사랑하는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테니까요]

[죽으러온놈 님이 나한테명령하지마 님에게 애정을 표합니다.]

[죽으러온놈 님이 나한테명령하지마 님에게 하트를 날립니다.]

[전체/나한테명령하지마: 어우....]

[전체/주님한놈갑니다: 곧죽을놈님과 죽으러온놈님의 사랑을 주의 이름으로 응원합니다.]

그런 응원 필요 없다. 놀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불타오르는 채팅 창을 보며 이마를 부여잡았다. 재밌으려고 한 대꾸이긴 하지만 막상 주변의 반응을 보니 잘못 택했나 싶다. 그냥 들어오면 안 되냐고 할 걸 그랬나. 죽으러온놈의 컨트롤을 생각하면, 공대원으로 좋을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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