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냐 내 최애를 죽인 게-4화 (4/88)

#4

죽으러온놈한테 채팅으로 두들겨 맞은 투명이 야마가 처돌았는지 키보드 워리어인 양 욕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게임 내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채 튀어나온 욕설은 캡처 후 신고가 가능하기에 나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녀석의 욕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캡처했다. 스크린샷 폴더에 쌓여 가는 욕설들을 보니 조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딱히 좋은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도와준 의리가 있으니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전체/곧죽을놈: 근데 저한테 용무 있어서 오신 거 아니었음?]

[전체/곧죽을놈: 주객전도가 이런 건가]

[전체/투명: ** 드디어 나왔네ㅋ;; 잠수 끝났냐 ****야;]

[전체/곧죽을놈: 아까부터 계속 있었는데?]

[전체/곧죽을놈: 죽으러온놈한테 멘탈 뚜띠맞고 나랑도 싸울 수 있으신지?]

[전체/곧죽을놈: 멘탈이 투명해서 투명인가요?]

[전체/투명: 넌 내가 ** 제발 그만하라고 빌 때까지 피케하고 다닌다]

[전체/곧죽을놈: 그러든가]

어차피 처음 PK 시작할 때부터 예상했던 상황이라 딱히 놀랍지는 않은걸? 한순간에 채팅 창이 투명의 욕설로 도배가 되었다. 저렇게 많이 쳤으면 슬슬 채팅 금지에 걸릴 때가 됐을 텐데. 나는 하나둘 나타나 주변에 포진하는 유저들을 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관종은 아니라서 이런 어그로는 싫은데 말이다.

[귓속말/곧죽을놈>죽으러온놈: 님 저거 걍 무시하세요 건드려봐야 좋을 거 하나 없음]

[귓속말/곧죽을놈>죽으러온놈: 여기서 한마디 뱉는 순간 저거 더 날뛰어요 무시가 답이에요]

[귓속말/곧죽을놈>죽으러온놈: 도와준건 고맙지만 애초에 내 일인데 왜 님이 끼어들어요]

제삼자가 끼면 번거로워지니 이 양반도 슬슬 빠져 줬으면 했다. 죽으러온놈은 내 귓속말에 한참 답이 없더니 이내 연달아 모션을 사용하며 답을 하기 시작했다.

[죽으러온놈 님이 곧죽을놈 님에게 윙크를 날립니다.]

[죽으러온놈 님이 곧죽을놈 님에게 애정을 표합니다.]

[귓속말/죽으러온놈>곧죽을놈: 와 지금 저한테 귓말 보내신거에요? 대박]

[귓속말/죽으러온놈>곧죽을놈: 오늘 무슨 기념일인가요?]

컨셉 한번 골때리네. 나는 연달아 울리는 귓속말을 반쯤 무시한 채 귀를 후벼 팠다. 오늘도 영 게임할 날은 아닌 모양이다. 들어온 지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이런 일이 터지다니 말이다. 듣보 새끼가 자꾸 시비 거는 것도 귀찮고 그걸 또 못 참고 같이 싸움박질하는 죽으러온놈의 맞다이도 귀찮다.

뻐근한 어깨를 풀며 컴퓨터를 방치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별것도 아닌 일에 신경 썼더니 배고파졌다. 적당히 냉장고에 들어 있던 빵을 들고나온 나는 여전히 지랄하고 있는 투명을 보며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보면 답해 주려나.

[전체/곧죽을놈: 님아 진심으로 궁금해서 그런데 왜 채팅만 그렇게 치세요?]

[전체/투명: 니가 빡치게 하잖아 ****야]

[전체/곧죽을놈: 아니 편하고 깔끔한 PK두고 왜 챗만 치고 있냐고]

[전체/곧죽을놈: 아니면 그냥 결장 가?]

폭력이라는 좋은 수단을 두고 왜 말만 나불거리시는지? 이해가 영 안 가는걸? 길드원 우르르 데리고 온 걸 보면 말싸움하러 온 건 아닐 거 아냐. 물론 결투장에 들어가게 되면 기본적으로 일대일이나 다수 대 다수로 붙어야 하지만 투명과 나 둘이서 싸우면 조건이 간단하게 성립되지 않는가. 투명이 아무런 대꾸가 없자 나는 여유롭게 빵을 씹으며 채팅을 쳤다.

[전체/곧죽을놈: 쫄?ㅋ]

[전체/곧죽을놈: 만렙 고인물 투ㅡ명님께서 결장가는 건 쫄리신다고 합니다 글 내려주세요]

[전체/투명: 이 ****가 *같이구네 ** ***가]

[전체/투명: 결장 가 ***야]

[전체/곧죽을놈: 근데 아까부터 생각한건데 님.......]

잠시 채팅에 뜸을 들인 나는 이어서 채팅을 친 후 투명에게 결투 신청을 걸었다.

[전체/곧죽을놈: 욕설이 매우 저렴하네요 지능이 투명해서 그런가?]

[전체/곧죽을놈: 특보! <투명좌> 지능 수준이 ‘닉값 오지는 것’으로 밝혀져...]

(3)

결투장에 들어오자마자 투명이 쌍욕을 내뱉었다. 아무래도 평소에 쌍시옷이나 지읒으로 시작하는 욕 외에는 제대로 써 본 게 없는 모양이다. 나는 투명의 시비를 대충 흘려넘기며 장비를 점검했다. 가지고 있는 장비 중 공속 옵션이 붙어 있는 장비로 세팅을 바꾼 후 준비 완료 버튼을 눌렀다.

투명의 준비가 끝나기 전에 빵을 한 입 더 베어 물며 게임 내에 자체적으로 들어 있는 영상 프로그램을 돌렸다. 져 놓고 증거 없으니까 지가 이겼다며 나대는 꼴은 못 보지. 녀석의 직업은 공속이 빠르기로 유명한 듀얼 블레이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투명의 준비가 끝났다는 메시지가 뜨고 결투가 시작되었다.

[전체/투명: ****]

[전체/곧죽을놈: 조각조각 투명하게 땃땃따]

귀찮으니까 최대한 빠르게 끝내야지. 들어오자마자 시비가 걸려 아직 한 놈밖에 못 죽였단 말이야. 타닥타닥, 투명의 캐릭터를 향해 타겟팅을 조절한 후 키보드를 연타하며 콤보 연계를 이어 나갔다.

광전사가 비록 방어력도 낮고 이번에 주력 스킬도 너프 먹었다고는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중대형 몬스터에게는 안 통하지만 소형 몬스터나 유저에게는 통하는 단순한 기술이 있다. 단축키를 눌러 넉백 스킬을 쓴 나는 투명의 캐릭터가 경직된 사이 1평을 반복했다.

본래 광전사의 평타는 3평으로 총 세 번을 때리게 되어 있는데, 중간에 특정 행동을 취하면 세 번 나갈 것을 한 번만 나가게 할 수 있었다. 보통 세 번 때리는 게 타격 횟수가 더 많으니 좋은 게 아니냐고 많이들 그러지만, 광전사는 첫 타에 약한 경직이 붙어 있기 때문에 예외였다. 1초도 안 되는 경직이었으나 공속에 옵션을 꼬라박으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전체/투명: 야 ** 너 핵쓰냐 무너ㅓ 콤보가 끈나지를ㄹ 안아;;]

이른바 무한 1평 되시겠다.

곧죽을놈이 투명을 한 대씩 툭툭 때렸다. 화려한 스킬도 날아다니는 콤보도 필요 없었다. 듀얼 블레이드의 공속이 광전사보다 빠르다고? 그렇다면 공격할 틈을 주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나는 투명의 HP가 0이 될 때까지 오로지 1평만 사용하며 녀석을 농락했다.

두들겨 맞고 있는 와중에도 채팅으로 욕을 쓰는 투명을 보며 허허롭게 웃었다. 사실 광전사를 어느 정도 상대할 줄 아는 유저라면 1평을 파훼하는 방법이야 어렵지 않다. 구르기 타이밍만 잘 맞춰서 튀면 되거든.

그러나 처음 나올 때부터 너프 제대로 먹고 들어간 광전사를 사용하는 유저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PVP만 뛰는 유저가 아닌 이상에야 1평에 경직이 들어 있다는 것도 잘 몰랐다. 광전사가 워낙 관짝 캐릭이라 쓰는 놈이 있어야 말이지.

HP가 완전히 0이 되어 드러누운 투명의 캐릭터와 상반되게 대검을 치켜들며 승리의 포즈를 취하는 곧죽을놈을 보며 뿌듯함에 코를 매만졌다.

[전체/투명: 너 ** 내가 영상 다 찍어뒀어 너 이 ** 핵유저로 신고한다]

[전체/곧죽을놈: 누구 물어본 사람?]

핵은커녕 게임 내 버그를 이용한 것도 아니고 있는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했을 뿐이기에 아쉬울 게 없었다. 오히려 아무 문제 없다는 답변만 받겠지. 심드렁하게 결투장을 나와 마을에 돌아온 나는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죽으러온놈을 보고 웃음을 흘렸다.

설마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결투장이 비공개가 아니라 관전 모드가 가능했다면 좋았을 텐데. 신규 맵이나 던전은 꼬박꼬박 업데이트하면서 유독 결투장은 업데이트를 안 한단 말이야. 운영자들 욕 있을까 봐 일부러 자게 안 보고 사나?

[전체/투명: 야ㅋ 핵써서 이기니까 좋냐?ㅋ]

[전체/투명: 내일이면 영정먹고 영원히 못보겠다?ㅋ 찌질하게 새캐릭파서 돌아오지 말고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접어라ㅋ]

이럴 줄 알았으면 캐삭빵이라도 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나 졌소 하면서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을 텐데. 한심함을 가득 담은 눈으로 채팅을 훑어본 나는 깐죽거리며 시비를 걸어오는 투명을 대충 무시했다. 나만 무시했다.

[전체/죽으러온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만렙 고인물 투명님 결국 지셨어요? 심지어 졌다고 자랑을 하고 다니네 져서 행복하신가봐요ㅋㅋㅋㅋㅋㅋ]

[전체/죽으러온놈: 고ㅡ인물 투ㅡ명님께서 지셨다고 합니다 글 내려주세요]

저 인간은 끼어들지 말라니까 또 끼어드네. 저러다가 투명 울겠다. 왜 남의 일에 발 벗고 나서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무시하라고 귓말을 또 보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띠링 하고 울리는 귓속말 알람 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귓속말/베타>곧죽을놈: 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 자게 떴더라]

[귓속말/곧죽을놈>베타: ㅇㅇ 앎]

[귓속말/베타>곧죽을놈: ㅋㅋㅋㅋㅋㅋㅋㅋ아 ㄱㅐ처욱겨 그래서 핔케는 왜 하고 다닌 거임?]

[귓속말/곧죽을놈>베타: 알타니아를 죽인 게 거너니까]

[귓속말/베타>곧죽을놈: 첟도른놈ㅋㅋㅋㅋㅋㅋㅋㅋ]

베타 누나는 한때 레이드 공대를 뛰면서 알게 된 사이로, 내 기준으로 깊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관계였다. 그 밖의 공대원들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워낙 널널하고 털털한 편이라 게임에 접속했다 하면 같이 던전을 돌기도 하고 PVP를 하기도 하는 등, 아무튼 나랑 잘 놀아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베타 누나가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귓속말/베타>곧죽을놈: 우리 길드 들어올래? 우리 공대원들 모아서 길드 하나 맹글엇거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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