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죽으러온놈 님이 곧죽을놈 님에게 애정을 표합니다.]
[전체/곧죽을놈: 모션 치우고;]
[전체/곧죽을놈: 왜 쫓아오냐고]
[전체/곧죽을놈: 그렇게 죽고 싶ㅍ으면 몹어글끌고 가만히잇든가 **아]
[전체/죽으러온놈: 궁금하십니까?]
[전체/죽으러온놈: 궁금하면 오백원]
“아, 개빡쳐!”
치솟는 짜증에 울분을 토하며 있는 스킬을 다 처박아 놈을 죽였다. 그나저나 그사이 레벨 업을 한 건가? 놈은 전보다 단단해져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필드에 나올 때만 죽여 달라고 시비를 터는 것 같으니 한동안 마을에 짱박혀서 지내야 할 것 같았다. 마을에서도 지랄하면 그냥 새 계정의 창고 캐릭터나 키워야지. 짜증을 냈더니 머리에 열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두통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나는 심호흡을 하며 마을로 이동했다.
화면이 검게 물들며 전환되었다. 잠시 마우스에서 손을 뗀 나는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내가 거너 유저들을 하도 죽이고 다녀서 정의 구현을 하기 위해 나타난 놈인 걸까. 지금으로서는 생각나는 게 이것밖에 없다.
그런 이유라면 차라리 이런 거지 같은 방법이 아니라 본캐를 끌고 와서 PVP를 하든 PK를 하든 해 줬으면 좋겠다. 쪼렙 새끼가 죽여 달라고 자꾸 알짱거리니까 짜증 난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효율적으로 엿 먹이는 게 맞긴 하네. 양손에 얼굴을 묻으며 마른세수를 한 나는 몸을 일으켜 모니터를 확인했다. 그리고 치솟는 혈압에 뒷목을 붙잡았다.
[죽으러온놈 님이 곧죽을놈 님에게 애정을 표합니다.]
[죽으러온놈 님이 곧죽을놈 님에게 애정을 표합니다.]
[죽으러온놈 님이 곧죽을놈 님에게 포옹을 합니다.]
[죽으러온놈 님이 곧죽을놈 님에게 애정을 표합니다.]
[죽으러온놈 님이 곧죽을놈 님에게 윙크를 날립니다.]
“이…! 아! X발! 내가 졌다! 졌어!”
더는 못 하겠다. 쌍욕은 버틸 수 있을지언정 이런 유의 정신 공격은 도무지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깊은 빡침에 분노를 담아 키보드를 두드렸다.
[전체/곧죽을놈: 님 대체 목적이 뭐예요]
[전체/죽으러온놈: 죽으러 왔습니다]
[전체/곧죽을놈: 아니 그거 말고 나한테 왜 그러냐고 ****야]
[전체/죽으러온놈: 궁금합니까?]
[전체/곧죽을놈: 네 존12나 궁금해요]
[전체/죽으러온놈: 님의 사랑을 원해요]
“이… 으윽… 윽…!”
혈압. 내 혈압. 이 젊은 나이에 고혈압으로 돌아가시겠다.
[전체/곧죽을놈: 아니 ***야 ** 말같지도않은 소리를 말이라고 지껄이네 이거]
[전체/죽으러온놈: 진짭니다]
[전체/곧죽을놈: 시12발 내가 졌다 안녕해 안녕; 안녕~~;;;]
[전체/죽으러온놈: 안돼; 가지마요;]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왜 네 말을 들어야 하죠? 죽으러온놈의 채팅을 무시하고 재빠르게 게임을 종료한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베개를 두들겨 팼다. 다음에 만나면 ‘결코 다시 무시다. 결코 다시 무시!’
(2)
핸드폰을 꺼내 SNS를 열어 동물 사진과 영상을 훑어보았다. 역시 고양이가 최고다. 이 도도하고 깜찍한 모습을 좀 봐라. 흰냥이, 깜냥이, 치즈냥이, 점박냥이, 아깽이가 장난감을 쫓아가며 푸드덕거리는 영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이거 보니 우리 집 막내가 보고 싶어지네.
흐뭇한 미소와 함께 핸드폰을 내려놓은 나는 미소를 지우고 떨떠름하게 컴퓨터를 켰다. 프리지아에 접속하지 않은 지 어언 이틀. 고작 이틀에 불과했으나 평소 게임 플레이 시간을 생각하면 꽤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워낙 둔감하게 살기도 했고, 스팸 문자나 전화 같은 것도 꼬박꼬박 받으며 그 반응을 즐기던 나인지라 욕먹는 것 자체는 상관없었다. 이미 자게에 내 욕이 다발로 쏟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그러나 저렇게 또라이같이 주구장창 쫓아와서 죽여 달라는 놈은 살다 살다 처음인지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한숨을 내쉰 나는 프리지아를 켜고 곧바로 곧죽을놈으로 접속했다.
“신규 직업은 밸망으로 X나 셉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 밥이죠. 로딩이 끝나자마자 보이는 거너 캐릭터를 그 자리에서 죽이고, 유유히 자리를 벗어나며 필드로 나가 다시금 거너 유저를 두들겨 잡았다. 이 손맛! 예부터 처음 시작하는 게 어렵다고, 한번 제대로 PK를 하기 시작하니 도무지 손에서 뗄 수가 없다. 이래서 PK만 하는 유저들이 생겨나는 건가? 여유롭게 거너들을 죽이고 장비 수리를 위해 마을로 돌아온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 이 새끼 또 왔어.”
[죽으러온놈 님이 곧죽을놈 님에게 애정을 표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찾아오는 거야.”
마을은 PK 비활성화 지역인데 여기까지 쫓아오냐. 질기다, 질겨. 내가 아무 반응 없이 가만히 잠수인 척을 하자 죽으러온놈이 온갖 모션을 보내며 어그로를 끌었다. 그러자 텅 비어 있던 주변에 순식간에 유저들이 나타나며 전체 채팅과 귓속말로 내게 욕설을 보내왔다. 개중에는 서로 같은 길드 이름을 달고 있는 유저들도 있었다. 때마침 잘 만났다 이건가. 아무리 봐도 나한테 용건이 있는 거 같은데?
[전체/투명: 곧죽을놈님ㅋ잠수에요?ㅋ]
[전체/투명: 잠수 좀 풀어봐요ㅋ]
저 새끼는 ㅋ을 안 쓰면 죽는 병에 걸렸나. 왜 말끝마다 ㅋㅋ거리지?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 그들의 닉네임을 천천히 훑으며 팔짱을 낀 채 모니터를 응시하던 나는, 죽으러온놈의 돌발 행동에 키보드를 붙잡았다.
[전체/죽으러온놈: 넌 뭔데 시비세요]
[전체/투명: ? 뭐임ㅋ]
[전체/투명: 쪼렙이 나대네?ㅋ]
[전체/투명: 네가 곧죽을놈 대변인이세요?ㅋ]
[전체/죽으러온놈: 똥은 너나 싸시고요]
순식간에 채팅 창이 개판으로 변했다. 투명과 같은 길드 소속의 유저들이 풀발하며 죽으러온놈과 나를 싸잡아 욕하기 시작했다. 아니, 나 쟤랑 연관 없는데? 나 쟤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함께 엮어? 난 저런 또라이는 아닌데?
[전체/곧죽을놈: 아니 왜 나랑 쟤를 엮어]
[전체/곧죽을놈: 모르는 사람임;;]
그 순간이었다. 죽으러온놈의 캐릭터와 투명의 길드원 캐릭터가 사라진 것은. 아무래도 말로 해결할 마음이 없어 결투장으로 넘어간 모양이었다. 황당함에 멍하니 두 캐릭터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몇 분 지나지도 않아 두 캐릭터가 다시 나타났다.
[전체/죽으러온놈: 배메 망신 혼자 다 시키네]
[전체/죽으러온놈: 쓸 줄도 모르는 직업 왜 들고 다님?]
[전체/죽으러온놈: 개1줫2밥인 거 티내나?]
[전체/투명: 뭐임ㅋ?;;]
[전체/죽으러온놈: 뭐긴 뭐야]
[전체/죽으러온놈: 너네 배메 길원이 개1줫2밥이라 쪼렙 거너한테 개1처2발렷다는 거지]
“…진짜?”
이겼다고? 나는 황급히 죽으러온놈의 레벨을 확인했다. 프리지아의 만렙은 100레벨이다. 그리고 현재 죽으러온놈은… 76레벨.
[전체/곧죽을놈: 님 저번에 1렙 아니엇어요?]
[전체/곧죽을놈: 언제 글케 렙업을 했대;;]
[전체/죽으러온놈: 곧죽을놈님을 향한 사랑으로 폭렙했어요!]
[전체/곧죽을놈: 지1랄이 심하시네]
76따리한테 발린 만렙도 참…. 얼마나 게임을 못하면 만렙 캐릭터를 들고 76렙한테 발리냐. 그때, 길드원에게 뭐라 들은 건지 투명이 다시금 시비를 걸어왔다. 아, 너무 놀라서 투명의 존재감을 잊어버렸네. 닉값 오져 버렸고.
[전체/투명: 님ㅋ뉴비아니죠?ㅋ 뉴비 컨이 아닌데?ㅋ]
[전체/투명: 끼리끼리 논다고 쌍으로 핔케하고 난리네요ㅋ]
[전체/죽으러온놈: 핔케...?ㅋ 나는 결장을 갔는데...??ㅋ]
[전체/죽으러온놈: 핔케와 결장을 헷갈리다니 우와 대다나다!]
[전체/죽으러온놈: 능지 수준 머박이자나!]
[전체/투명: 아ㅋㅋㅋ진짜 곧죽 치기 전에 너부터 닉값시켜줘야겠네ㅋ;;;]
어떻게든 서로 한마디도 안 지겠다고 으르렁거리는 걸 보니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당사자인 나를 두고 너희끼리 싸우는 이유가?
[전체/죽으러온놈: 아아 우리 고인물 투명님은 쪼오오렙이 나대는 게 싫으셨구나]
[전체/죽으러온놈: 가아아앙암히 쪼렙 주제에 만렙 고인물 투명님의 길드원들을 죽여서 쪼송합니다ㅎ (쪼렙이 죄송하다는 뜻ㅎ)
[전체/죽으러온놈: 근데 쪼렙한테 디ㅣ질 정도면 그냥 겜 접는 게 낳지 안아요?ㅠㅠ]
[전체/죽으러온놈: 겜 하는 의미가???ㅠ 쪼렙한테 발렷자나ㅠㅠ]
[전체/죽으러온놈: 그냥 발린 것도 아니고 개1처1발렷쥬???]
[전체/투명: 이 **가]
[전체/죽으러온놈: 내가 너네 길드원이었으면 쪽팔려서 길탈할듯ㅠㅠ]
“푸흡-!”
나는 툭 튀어나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입을 틀어막았다. 아, 진짜 웃겨 죽겠다. 입을 막았음에도 새어 나오는 웃음에 어깨가 잘게 떨렸다. 미친, 이게 뭐야. 쟤 말을 왜 저렇게 해. 내 안에서 죽여 달라고 쫓아오는 또라이에서 말빨 오지는 또라이로 급부상한 녀석은 이 구역의 진정한 미친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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