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4권) (14/19)

File#6. 오수민, 24세, 오메가 (4)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시간? 하루? 사흘? 알 수 없었다.

성교를 하다 까무룩 잠들었다. 눈을 뜨면 언제나 인혁의 품 안이었다. 인혁이 먹여 주는 것을 먹고, 입으로 전해 주는 것을 마셨다. 때론 인혁의 위에 올라타 배 속에 그의 성기를 품은 채로 뭔가를 먹고 마셨다.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 아니 가끔은 화장실을 갈 때도 함께였다. 수민은 인혁의 품에 안겨, 인혁이 조물조물 성기를 누르는 대로 소변을 쌌다.

샤워기 아래에서 인혁에게 키스하고, 타일에 뺨을 댄 채 뒤에서 박아 오는 인혁의 힘에 못 견뎌 울었다.

계속 함께였다. 정신이 있는 동안, 정신이 없을 동안에도 아마, 수민은 계속 배 속에 인혁의 성기를 품고 있었다.

그러니 눈을 떴을 때 배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오히려 불안해졌다.

“으, 흐으…….”

목이 다 쉬어 인혁을 부를 수 없었다. 부은 눈을 억지로 뜨고 더듬더듬 손을 내밀면, 다행히 붙잡아 주는 손길이 있었다. 후욱 밀려오는 냄새 때문에 누군지 착각하지 않았다.

“일어났어?”

“흐으, 네, 네에…….”

“착하다, 우리 수민이.”

“아…….”

인혁이 기다렸다는 듯 수민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수민은 너무 당연하게 다리를 벌리고 그를 맞았다.

인혁은 성기를 두어 번 손으로 주무르고 수민의 구멍에 밀어 넣었다. 어제 잔뜩 싸놔서 축축하고 말랑하게 풀려 있었다.

“으음.”

“흐읏.”

그래도 좁고 빠듯한 건 여전했다. 인혁과 수민은 동시에 신음을 흘렸다.

“왜 이렇게 좁을까.”

“소, 장님이, 큰, 읏, 건데…….”

“쉬이, 아가. 힘 빼고.”

인혁이 허리 짓 하며 수민의 가슴을 빨았다.

“아파, 아파요.”

수민이 인혁의 목을 끌어안고 바짝 기댔다.

정말 아픈 게 아니라 엄살 부리는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인혁은 많이 아프냐고 달래며 마른 허리를 움켜쥐었다.

“흐읏, 아. 으읏.”

수민이 인혁의 허리를 다리로 감싸고 꽉 조였다. 하. 인혁이 신음하며 허리를 돌렸다.

“수민아. 읏, 수민아. 하…….”

“으, 흐…… 네…….”

코알라처럼 매달려 달라붙는 수민은 사랑스럽고 꼴렸다. 다만 이 자세는 마음껏 성기를 박아 넣고 흔들기 힘들었다. 한 번 뺀 다음엔 상관없지만, 수민이 자는 동안 굶주렸던 인혁은 아무래도 감질났다.

“잠깐만, 더 기분 좋게 해줄게. 수민아. 아가. 잠깐만.”

이럴 때 인혁은 수민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인혁은 수민을 살살 달래 팔을 풀게 했다. 그리곤 수민의 몸을 돌렸다.

“앗!”

수민의 목이 꺾였다.

인혁은 수민의 등이 제 가슴에 닿게 하여 허벅지 위에 앉히고는, 수민의 몸을 들어 구멍을 성기 위에 맞추고 천천히 내렸다.

“으음, 음…….”

인혁의 입에서 만족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앗, 아, 흐읏.”

수민은 무릎 꿇은 자세로 엉덩이만 뒤로 내밀었다. 그 자세로 제 허리를 감싼 인혁의 팔을 붙잡았다.

“이, 이거…….”

“기분 좋은 거야, 수민아.”

이미 얼룩덜룩해진 지 오래인 수민의 목덜미를 또 깨물어 자국을 남기며, 인혁이 허리를 아래에서 쳐올렸다. 턱, 턱. 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며 수민의 몸이 인혁의 허벅지 위에서 널뛰듯 흔들렸다.

“하읏, 소장님, 아, 흐, 얼굴, 얼굴 보고…….”

수민은 얼굴을 보며 하는 자세를 좋아했다. 뒤로 안고 박는 자세는 아무래도 불안해했다. 인혁은 그 불안을 안쓰러워하면서도 자세를 바꿔 주지 않았다.

“왜, 뭐가 불안해. 수민아, 나잖아. 나 말고 딴 새끼 꺼 생각나?”

인혁이 수민의 어깨에 이를 박으며 눈을 번뜩였다.

“아니, 아니요. 아닌데…….”

수민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예 목을 뒤로 젖혀 인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착하네.”

수민이 아예 자신에게 기대자 인혁은 좀 더 제멋대로 날뛰었다. 수민의 허리를 잡고 몸을 위아래로 들어 올렸다.

“하읏, 읏!”

수민이 손끝으로 인혁의 허벅지를 긁으며 바들바들 떨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가.”

인혁은 귓불을 빨며 다정히 속삭였다. 괜찮다고 달래 주는 사내의 성기가 흉흉하게 발기하여 수민의 아래를 쉼 없이 드나들었다.

“아, 아파. 아빠, 아파요. 아파아.”

속도가 빨라지자 수민이 훌쩍이며 흐느꼈다. 문득, 인혁이 움직임을 멈췄다.

“흑, 읏, 흐윽.”

흐느끼며 인혁이 들고 박는 대로 흔들리던 수민이 겨우 고개를 들어 인혁을 올려다보았다.

“수민아.”

인혁이 입술을 달싹였다.

조금 선명해진 것 같았던 눈이 다시 흐려졌다. 좀 더 위험하게 바뀐 것 같았다. 그래도 수민은 그가 제 이름을 불러 주었다는 것에 만족하여, 그의 뜻대로 움직였다.

“수민아, 어서. 응?”

“흐으…….”

“수민아, 어서. 응?”

“……네, 네에.”

수민은 고개를 들어 인혁에게 입 맞췄다. 입술이 닿기 무섭게 커다란 손이 뒤통수를 감쌌다.

“으읍, 흡.”

“하아, 하.”

쩝쩝 소리가 날 만큼 격하게 혀가 오가고 얽혔다. 입술이 잠깐 떨어질 때마다 타액이 턱까지 질질 샜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리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싶더니 몸이 앞으로 굴렀다.

“읏.”

수민은 무릎을 꿇고 웅크린 자세가 되었다. 인혁이 수민의 몸을 덮듯 감싸고 성기를 박았다.

“앗, 아…… 으응, 읏…….”

그러고도 성에 안 찼는지 수민의 허리를 들고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듯 박아 댔다.

수민은 이불에 얼굴을 묻은 채 단지 소리일 뿐인, 알아들을 수 없는 신음을 쏟아 냈다.

“얼굴, 흐윽, 얼굴…… 소장님…….”

수민이 손을 뒤로 내저었다. 인혁이 그 손을 붙잡고 수민의 몸을 홱 돌렸다.

눈물범벅인 얼굴이 드러났다.

“하아, 하아…….”

수민은 그제야 숨을 몰아쉬었다. 인혁은 그 얼굴에 키스하며 허리를 잘게 털었다.

성기가 안을 깊게 찔렀을 때. 수민은 허리를 비틀며 저도 모르게 인혁의 혀를 깨물었다.

“아.”

깨물자마자 놀라 입을 크게 벌렸다. 하. 인혁이 웃으며 몸을 살짝 들었다. 수민은 그가 절 떠날까 싶어 다리로 허리를 감쌌다.

인혁은 수민의 허벅지를 손으로 훑으며, 깨물린 혀로 입술을 핥았다. 혀에서 피가 났다. 아랫입술에 그 피가 묻었다.

“소장님.”

“괜찮아. 수민아.”

인혁이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민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두 손을 뻗었다. 인혁은 기꺼이 고개를 숙여 주었다.

“흐읍.”

수민은 인혁의 목을 껴안고 먼저 입을 맞췄다.

피 맛이 났다. 그래도 인혁의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진해졌다.

숨이 막혔다. 그래서 더 좋았다. 수민은 안심하며 눈을 감았다.

배 속에 든 게 요동쳤다.

인혁은 수민의 배 속에 다시 성기를 박아 넣었다. 빼냈다 박아 넣고, 다시 박아 넣었다.

이제 수민이 어딜 좋아하는지 알았다. 일부러 거기까지 박지 않아 수민의 앙탈을 유도해 내고는, 실컷 수민을 울린 뒤엔 제가 몸이 달아서 그 부위만 집요하게 성기로 찍어 올렸다.

“앗, 아……! 흑, 그, 그…… 아…….”

극점을 찌를 때마다 수민의 발가락이 오므라들었다. 인혁은 그 발가락을 입에 넣고 씹었다. 조금만 세게 씹으면 잘라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만으로도 뒷골이 저릿했다.

정말이지, 다 씹어 먹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아…… 흣!”

수민은 고개를 내저으며 사정했다. 묽은 정액이 툭, 투툭. 사방으로 흩어졌다.

인혁이 시들해진 성기를 귀엽다는 듯 움켜쥐고 주물러 댔다. 방금 사정한 상태라 자극이 너무 심했다. 수민은 저도 모르게 뒷구멍을 오물거리며 인혁의 성기를 물어 댔다.

“읏.”

이번엔 인혁도 견디지 못했다. 인혁은 낮게 신음하며 수민의 배 속에 사정했다.

하아. 인혁은 거칠게 숨을 내쉬며 성기를 빼냈다.

“아…….”

수민의 몸이 작게 들썩였다.

“하, 수민아. 아가.”

인혁은 수민을 안아 제 위에 올리고는 천천히 등과 허리를 쓸어내렸다.

“하, 아…… 으…….”

수민은 줄 끊긴 인형처럼 멍하니 인혁의 몸 위에 늘어져 숨만 쉬었다. 거칠다 못해 드문드문 끊기기까지 했던 숨이 원래대로 돌아오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제, 이번에야말로 끝난 걸까? 수민은 눈물로 덮인 눈을 깜박이며 인혁을 올려다보았다.

성교와 성교 사이, 잠들지 않았는데도 박고 싸지 않고 서로의 몸이 닿은 채 흘려보내는 시간. 이때마다 수민은 긴장했다.

수민은 인혁의 상태가 원래대로 돌아왔는지 살폈다. 인혁이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라는 한편, 인혁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인혁은 수민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수민이 나른한 후희 때마다 긴장하여 제 눈치를 살피는 건 알았다.

“왜?”

인혁이 자상하게 물었다.

“…….”

수민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인혁의 눈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아니요.”

수민이 망설이며 고개를 내젓자 인혁이 키스했다.

“으응…….”

수민은 눈을 감고 그를 끌어안았다. 허리를 쓸어내리는 손길이 여전히 뜨거웠다.

“아직 부족하지?”

인혁이 몸을 뒤집었다. 인혁의 밑에 깔린 수민은 역시,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혁을 밀어 내지 않았다. 성교 중엔 종종 버거워 도망치려 했지만, 제정신일 때의 수민은 결코 인혁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걸 알기에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인혁이 종종 후희 시간을 길게 가졌다. 인혁이 수민의 몸을 속속들이 탐구하는 만큼, 수민도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인혁을 조금씩 탐색해 갔다.

“수민아, 다리 벌려 봐. 기분 좋은 거 해줄게.”

인혁이 수민의 무릎을 문지르며 다정히 말했다. 수민은 아랫입술을 깨물고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잘했어.”

인혁이 수민의 허벅지에 입 맞추고는 수민의 성기를 입에 넣었다.

시켜서 해본 적은 있으나 당해 본 적은 없는 행위였다. 한 시간 전? 어제? 아니면 그제? 인혁의 집에 찾아와 인혁의 품에 안겨 처음 당해 본 행위였다. 그런데도 어느새 수민은 이 행위에 익숙해졌다.

인혁은 혀로 핥고 흡인력 있게 빨았다. 가끔 이를 세워 살짝살짝 깨무는 듯 장난쳤다. 그때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수민은 인혁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보복했다. 인혁은 그게 마음에 드는지 자꾸 수민의 성기에 이를 댔다. 누가 누굴 학습시키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인혁이 성기를 사탕 굴리듯 굴리고 빨았다. 계속 괴롭힘당한 성기는 퉁퉁 부어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쥐어짜 내듯 사정시키니, 이제 나올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인혁은 기어이 성기를 세우고는, 또 기어이 그걸 사정시켰다. 제대로 나오지도 않은 정액을 맛있다는 듯 삼켰다.

“달아, 수민아.”

수민과 눈을 마주치곤 보란 듯이 입가에 묻은 걸 혀로 핥았다.

수민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성교 중에 눈물이 자꾸 나왔다. 참아야 한다거나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었다. 침대 위에서 맨살을 맞대고 있었다. 무엇을 숨길 수 있을까.

인혁이 수민의 뒤에 성기를 넣고 박아 대다 사정하지도 않고 빼냈다.

“읏…….”

수민은 배 속에 여전한 이물감을 견디지 못하고 나지막이 신음했다. 벌어진 구멍에서 인혁이 아까 잔뜩 싸댄 정액이 흘러내렸다. 인혁은 안타깝다는 듯 한숨 쉬고는 손을 뻗어 수민의 눈가를 문질렀다.

“자꾸 우는구나, 우리 수민이.”

“흐, 읏…… 소장님…….”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해달라는 대로 해줄게. 네가 원하는 건 뭐든.”

인혁이 다정하게 속삭였다. 수민은 또 인혁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아직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인혁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아 줘요. 으읏…… 안아, 줘요.”

알면서도 결국 수민은 제가 원하는 걸 말했다.

제정신이 아닌 인혁은 상냥하지 않지만 상냥하고, 제멋대로지만 다정했다.

우리 수민이, 아가라고 불러 주었다. 얼굴을 보여 달라면 보여 주었고. 안아 달라고 하면 안아 주었다.

“그래, 수민아. 네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줄게.”

인혁은 수민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수민의 머리를 제 어깨에 기대게 하고, 제 페로몬을 맡으며 숨 쉬도록 했다.

그리곤 제가 싸준 정액을 질질 흘리는 귀여운 구멍에 다시 제 성기를 밀어 넣었다. 길든 구멍은 잘도 물어 삼켰다. 이젠 무리 없이, 한 번에 뿌리 끝까지 삼켰다.

“아, 읏…….”

여전히 버거웠지만.

“수민아.”

“네, 으, 응…….”

“예쁘다. 착해.”

인혁은 수민을 꼭 끌어안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이미 제 잇자국으로 빼곡한 어깨를 또 깨물었다. 먹어도 먹어도 다니까. 이것을 찾아 삶의 대부분을 헤매어 왔던 인혁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수민은 인혁의 등을 손끝으로 긁었다. 손톱이 없어 제대로 긁지도 못했다. 인혁이 웃으며 고개를 들자 수민이 혀를 내밀었다. 인혁이 바로 입을 맞댔다.

인혁의 입 안에서 두 혀가 얽혔다. 작은 혀가 두툼한 혀에 사정없이 눌리고 빨렸다.

“우응, 으응, 흣.”

수민은 숨 막혀 정신을 잃을 때까지 인혁을 끌어안은 팔을 풀지 않았다. 인혁은 기절한 수민을 안고서 계속 수민의 배 속에 성기를 쳐올리고, 다시 한번 제 정액을 채워 넣었다.

그러고도 모자란다는 듯, 늘어진 수민의 몸을 붙잡고 허리를 쳐올렸다.

수민의 몸이 쉼 없이 흔들렸다.

아무리 해도 부족했다.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으려면, 제 것이라고 확실히 낙인을 찍어 놓아야만 했으니까.

***

아무리 페로몬을 쏟아도 흐물해지기는커녕 젖지도 않던 구멍이 이젠 마를 날이 없었다. 그런데도 인혁은 왜 자꾸 마르냐며 시도 때도 없이 구멍을 핥았다.

아무리 덤덤한 성격이라고는 하나 수치심은 있었다. 수민은 매번 하지 말라고 밀어 냈지만, 인혁은 끄떡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민이 울며 부끄러워하는 걸 즐겼다. 성기를 빨 때도 그렇고, 구멍을 빨 때마다 일부러 소리를 내며 수민의 반응을 살폈다.

견디다 못한 수민이 베개로 귀를 틀어막으면 베개를 치우고 귓구멍에 혀를 넣어 빨았다.

인혁은 잘 때도 수민의 몸에 성기를 넣은 채로 잤다. 매번 안에 싸고, 노팅도 서슴지 않았다. 수민의 몸은 그런 인혁의 행위를 모두 받아 냈다.

수민은 때때로 인혁과의 성교를 감당해 내는 제 몸이 신기했다. 왜 사람들이 알파와 오메가를 발정 난 짐승이라고 부르는지, 베타 중 일부 사람들이 알파와 오메가를 상대로 섹스 판타지를 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 오메가라는 것도.

베타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오메가는 오메가니까. 새 신분증을 건네주던 공무원의 말을 이해할 것도 같았다.

“딴생각하지 마.”

“아? 아, 아니요, 으…….”

“수민아, 나로 부족해?”

“아니요, 흐읏, 그, 런거 아닌, 아!”

인혁은 집요하게 수민의 구멍을 적시는 데 집착했다. 제 성기 모양대로 길을 내야 한다면서, 정말 배 속에 길을 낼 듯 박아 대기도 했다. 배 속이 미끈거릴 때까지 정액을 쏟아부었다.

때론 자는 중에도 잠결에 허리를 털어 성기를 박으며 수민을 깨웠다.

“흐읏, 소, 소장님?”

자다 깬 수민이 끙끙거려도, 곤히 잠든 인혁은 깨지 않았다. 그런 주제에 왜 아랫도리는 그리도 왕성한지. 꿈속에서도 수민에게 박고 있는 듯했다.

수민은 인혁의 품에 갇혀 끙끙대며 잠결의 허리 짓을 견뎌야 했다. 잠든 인혁은 쉽사리 사정하지 않았다. 수민이 견디다 못해 힘을 줘 구멍을 조이면, 눈을 떴다.

“으음…….”

“소, 장니임…….”

수민이 흐느끼며 이제 빼달라고 말하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가 옅게 미소 지었다.

“자면서까지?”

잠긴 목소리가 섹시했다.

“그렇게 내 걸 더 먹고 싶었어?”

목덜미에 입술을 대고 속삭이는 목소리는 아직 잠에 취해 있었다. 그러면서 기특하다는 듯 성기 모양대로 볼록 튀어나온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앗!”

절정에 이르기 전에 깨면 앞선 노력이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혼자서만 즐기면 쓰나.”

“그게, 아니라…….”

“다음부터는 나 깨워, 무조건.”

잠을 깨도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잠에서 깬 인혁은 언제 사정할 뻔했냐는 듯 힘있게 허리를 쳐올렸다.

다시 시작이었다.

인혁은 옆으로 누운 채로 수민의 골반을 움켜잡고 성기를 크게 빼냈다 박기를 반복했다.

씻겨 준다고 욕실에 데리고 가선 다른 곳은 다 씻겨 주고 아래는 제일 마지막에, 한참 동안 지분거렸다.

물이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서 인혁에게 기대면, 인혁이 아래에 손을 넣어 정액을 빼주었다. 그 손길이 이상야릇하여 신음을 흘리면 즐겁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그게 얄미워 어깨나 팔을 때리면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키스해 주었다.

다리 사이로 정액이 흘러내리는 느낌은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전처럼 끔찍하지는 않았다. 꼭 껴안아 주는 온기가 있었다. 조심조심 만져 주는 손길이 있었다. 장난을 쳐도, 인혁이니까 괜찮았다.

수민이 키스에 정신이 팔려 있으면, 인혁은 당연하게 제 성기를 구멍에 밀어 넣었다.

“또, 또…… 아, 안 한다, 읏, 고…….”

“허전할까 봐. 수민아.”

“그게 무슨…….”

수민은 인혁의 입에서 나온 말에 경악하면서도 인혁을 밀어 내지 않았다. 그렇게 비운 속을 다시 채우고 나면, 인혁이 면도를 했다.

체모가 적어 수염이 안 나는 수민과 달리 인혁은 하루만 되어도 수염이 올라왔다. 수민은 인혁의 턱이 따가워지면 시간이 그만큼 지났구나 셈했다.

“제가 해볼게요.”

인혁이 수염을 밀려고 하면 수민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 인혁은 면도날을 도로 집어넣었다.

“원래 저걸로 하시는 거…… 아녜요?”

묻는 목소리가 잔뜩 쉬어 있었다. 그런데도 인혁은 사랑스럽다는 듯 입 맞추고 혀를 널어 질척하게 빨아 주었다.

“너 다칠까 봐.”

인혁은 수민의 입술을 빨며 아이에게 장난감 주듯 전기면도기를 건넸다.

수민은 전기면도기를 켜고 인혁의 턱과 목을 문질렀다. 으음. 인혁이 낮게 신음했다. 기분 좋은 걸까? 수민은 궁금했다.

턱이 말끔해지면, 수민은 인혁의 턱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 인혁의 눈 색이 다시 짙어졌다.

수민은 그가 다시 절 타일 벽에 밀어붙이기 전, 먼저 매달리며 침대로 가자고 졸랐다. 면도를 마친 인혁은 퍽 너그러워져서 그런 부탁 정도는 들어주었다.

침대에 누우면 인혁은 제 흔적으로 가득한 수민의 몸을 집요하게 눈으로 훑으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댔다.

수민의 유두와 성기는 하도 빨려서 이젠 손만 닿아도 쓰리고 아플 지경이 되었다. 인혁은 미안해하면서도 거침없이 혀를 가져다 댔다. 낫게 해준다면서 빨아 주었다. 혀가 까끌해서 아프다고 해도 안 됐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줄 뿐, 봐주지 않았다.

수민은 인혁의 애무를 받으며, 인혁이 이제 몇 번이나 면도했는지를 셌다. 두 번인가, 세 번이었던 거 같은데. 그러다 까무룩 잠들 뻔했으나.

“아가, 벌써 자면 안 되지.”

“읏!”

인혁이 허벅지 안쪽을 깨물어 잠을 쫓아냈다.

“소, 장님.”

“응. 아가.”

인혁이 방금 제가 문 자리를 혀로 핥으며 수민을 올려다보았다. 수민은 그의 눈을 확인하고는 두 손을 뻗어 인혁의 뺨을 감싸 끌어당겼다.

“으응, 읏.”

“하아. 수민아.”

다시 입을 맞췄다. 언제 몸을 겹친 적 있냐는 듯 처음처럼 달려드는 인혁을 껴안았다. 또 눈물이 났다.

***

인혁은 깜빡 잠에서 깼다.

정신이 몽롱했다. ‘여긴 어디지? 난 누구?’까지는 아니어도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생각이 날 듯 말 듯 했다.

의사를 불렀다. 의사가 돌아갔다. 서 여사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수민이가 왔다.

‘수민이? 걔가 왜 와, 여길?’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민이가 누구지?’

혼란스러웠다.

하나는 분명했다. 목이 마르다는 것.

인혁은 몸을 일으켰다. 침실인 것 같은데, 침대는 몇 날 며칠 섹스라도 한 것처럼 축축했다. 옆에는 얼룩덜룩한 살갗을 그대로 드러낸 채로 곤히 잠든 청년이 보였다. 마른 어깨에 멍 자국 같은 키스마크와 잇자국이 가득했다. 어떤 짐승 같은 놈이 애를 이렇게 만들었나, 불쌍하기도 하지.

인혁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이불을 끌어모아 청년에게 잔뜩 덮어 주었다.

일어나니 휘청, 어지러웠다. 한 사나흘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침대에 처박혀 섹스만 한 사람 같았다. 인혁은 벽을 짚고 몸을 지탱한 다음 어지러움이 가시길 기다렸다.

그리고 곧 자신이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맨몸이라는 걸 깨달았다. 다리 사이의 성기가 열 받은 것처럼 발기해 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은 원래 일어나자마자 이렇게 발기하나?

가만 생각하니, 침실 안의 공기 때문인 것 같았다.

페로몬이 눈에 보이지 않아 다행이었다. 만약 눈에 보이는 재질이었다면, 지금 침실은 산업 혁명 시대 런던의 스모그 현상 저리 가라 할 만큼 페로몬으로 자욱했을 테니까.

스모그처럼 진하고 독한 알파 페로몬만 있다면 ‘누구야? 이렇게 제 페로몬도 간수 못 하는 새끼는?’ 욕을 한 사발 했을 텐데. 사이사이에 단 향이 배여 있어 격해진 마음을 달래 주었다.

함빡 익은 자두 향이었다. 한입 베어 물면 과육이 팍 터질 것 같은.

그 향이 미약하게나마 느껴져서 그나마 숨 쉴 만했다. 인혁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 향을 맡으니 기분이 더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기운도 좀 나는 것 같았다.

목이 더 탔다.

인혁은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꺼내 마셨다. 입 안이 시원해졌다. 그래도 머리에 낀 몽롱한 기운은 가시질 않았다.

갈증도 사라지지 않았다. 인혁은 여전히 목이 탔다. 물을 마시고 싶어서 목이 마른 게 아니었던 걸까?

‘이상하네.’

그럼 뭐가 문제일까? 인혁은 고개를 기울였다.

타박, 타박.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비틀대면서 급히 걸어오는데. 들리는 소리가 영 불안했다. 저러다 발을 헛디뎌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인혁은 걱정되어 물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아니, 돌아서려고 했다.

그 발소리가 한발 빨랐다. 마른 팔이 인혁의 허리를 감쌌다. 가벼운 무게가 등에 더해졌다. 뛰듯 다가와 끌어안은 것이었다. 자기를 두고 가지 말라는 듯 매달려 오는 온기가 안쓰러웠다.

“소장님.”

그가 인혁을 불렀다. 침실에서 맡았던 달달한 향이 느껴졌다.

모든 게 기억났다.

“수민아.”

인혁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수민이 답했다.

그 순한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갈증이 가셨다. 인혁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었다.

“더 자지 않고.”

“……소장님은요?”

“난 목이 말라서.”

인혁은 수민의 팔을 풀고 몸을 돌렸다.

눈이 마주쳤다. 인혁은 수민이 제 눈을 유심히 바라보는 걸 알았다.

“왜?”

인혁이 수민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었다.

“……아니요.”

수민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스스럼없이 두 팔을 내밀었다.

“안아, 주세요.”

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응석이었다. 인혁은 그 응석을 계속 받아 주며, 이 아이가 제게 달아나지 못하도록 했다.

“그래, 아가.”

그러니까 수민을 끌어안았다. 그새 몸이 식었는지 살갗이 미지근했다. 그래도 기분 좋았다.

인혁은 다리를 수민의 다리 사이에 집어넣고 비볐다. 수민의 허벅지는 탄력 있고 부드러웠다. 아직 말랑한 성기가 허벅지에 쓸리는 것도 만족스러웠다.

“아, 읏. 소장님.”

참는 듯한 신음도 듣기 좋았다.

인혁의 성기가 발기했다. 수민의 허벅지에 닿았다. 인혁은 당연하게 비벼 댔다.

“하아, 좋다.”

인혁은 솔직하게 말했다.

“소장님.”

“응.”

수민의 허리를 더듬으며, 정수리에 입 맞췄다.

“수민아, 목마르니?”

“아니요, 읏.”

“그래도 물 마셔야지. 지칠라.”

인혁은 물병에 남은 물을 머금고 수민의 턱을 들어 올렸다. 수민이 순순히 고개를 들었다. 인혁은 입을 맞추고 물을 흘려보냈다. 수민이 조금씩 받아 삼켰다.

물을 다 마시고도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인혁은 수민을 들어 식탁 위에 올렸다. 식탁 위에 거추장스럽게 약통 같은 것들이 늘어져 있었다. 인혁은 한 손으로 쓸어 내 바닥에 떨어뜨렸다. 수민이 다리를 벌리고 인혁의 허리를 감쌌다.

“소, 장님.”

“그래, 수민아.”

수민의 혀를 실컷 핥아 준 뒤, 목선을 타고 내려왔다. 내려가는 길마다 견딜 수 없이 달아 빨고 깨물었다. 자국 위에 자국을 덧그렸다.

인혁은 무릎 꿇고 앉아 수민의 두 다리를 어깨에 얹었다. 그리고 수민의 성기를 빨았다.

“읏, 흡.”

수민은 등 뒤로 팔을 뻗으며 허리를 크게 휘었다. 인혁이 고개를 움직여 성기를 빨아 주자 어깨에 걸친 발이 오그라들었다.

“소, 소장님. 소장님.”

수민이 손을 뻗어 인혁의 머리를, 어깨를 붙잡았다.

“저, 저, 나와요.”

“응, 응.”

“아, 안 되는데.”

“돼, 수민아. 얼른. 착하지.”

인혁이 수민의 허벅지를 잡고 성기를 세게 빨았다. 수민은 버티지 못하고 바로 사정했다.

인혁은 그것을 삼키고 수민의 배를 손으로 눌렀다. 수민은 인혁의 손길대로 식탁에 누웠다. 인혁은 엉덩이를 벌리고 수민의 구멍을 핥았다.

“너, 넣어 주세요. 이제 그만.”

식탁 위에서 잡을 게 없어 몸만 뒤틀던 수민이 빌 듯 말했다. 모두 인혁이 가르쳐 준 대로였다. 잔뜩 흥분해 눈가가 발개져서는 허벅지를 바들바들 떨었다.

인혁은 제게 매달려 오는 수민을 안으며 구멍에 성기를 맞췄다.

“아.”

귀두가 입구에 닿기만 했는데도 수민은 허리를 떨었다. 이후에 일어날 일을 예감하고 기대하는 것이었다. 착하다, 착해. 인혁은 수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성기를 삽입했다.

뿌리 끝까지 밀어 넣자 만족감에 신음이 나왔다. 아, 이거였구나. 목이 탈 것 같았던 갈증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제 더는 목마르지 않았다. 아니, 더 갈급했다.

매달리는 수민을 안고 허리를 쳐올렸다.

“으읏, 읏.”

“우리 수민이는, 빠르게 하는 거 싫어하지.”

생각해 주는 척하며 일부러 얕게 찔렀다.

“그러고 보니 처음에, 반만 넣어 달라고 했는데.”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인혁은 정말 성기를 반만 넣은 채로 두세 번 박았다.

수민이 느끼는 곳은 깊숙한 곳에 있었다. 세게 콱콱 박아 줘야 느끼고 몸을 덜덜 떨었다. 그걸 알면서도 인혁은 일부러 심술을 부렸다.

“마음에 들어?”

인혁이 수민의 목에 쪽쪽 입을 맞추며 상냥하게 물었다.

“아, 흐…….”

수민은 목을 끌어안은 손을 풀고, 물기 어린 눈으로 인혁을 올려다보았다. 눈에 원망이 그득했다.

이 아이의 표정이 이렇게 다채로웠었나? 인혁은 갑자기 유쾌해졌다.

갈증이 가셔서 그런가.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인혁은 이제 수민이 딱딱한 식탁에 누워 있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인혁은 움직임을 멈췄다. 귀두 끝만 구멍에 걸친 상태였다.

“여기 딱딱해서 힘들지?”

인혁이 퍽 걱정된다는 말투로 물었다.

“괘, 괜찮아요. 읏. 그러니까, 어서.”

수민은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구멍이 성기를 잡아당기듯 오물거렸다.

“아니야, 힘들 거야. 우리 침대로 가자.”

인혁은 수민을 안아 들었다. 수민의 몸이 성기 위에 푹 꽂혔다.

“아…… 으!”

수민이 갑작스러운 삽입에 놀라 엉덩이를 들었다. 인혁의 목에 바짝 매달려 인혁의 성기로부터 도망치려 했다.

방금 전엔 반만 넣었다고 불만스러워했으면서. 이제는 다 넣어 줘도 싫단다.

인혁은 일부러 천천히, 잔걸음으로 걸었다. 걸을 때마다 수민의 몸이 들썩였다. 성기가 푹푹 구멍을 쑤셨다.

“읏…… 으, 하, 하지, 흐, 소장……니임, 제, 제발…….”

수민은 견디지 못하고 인혁의 어깨를 물었다. 인혁은 가소롭다는 듯, 아니, 잘했다는 듯 수민의 등을 두드렸다. 수민은 배 속을 긁어 대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수민이 무사히 침대에 누울 수 있었던 건 인혁이 두 번 사정하고 난 다음이었다.

목이 물리니 흥분된다며, 인혁이 거실 한 가운데 멈춰 선 채로 수민을 들고 성기를 박아 댔다. 기어코 수민을 울리고는 바로 앞의 소파에 눕혀 소파에 올린 채 다시 격하게 박아 댔다.

지칠 대로 지친 수민을 안아 올려 침실로 돌아간 인혁은 수민을 뒤에서 끌어안고 모로 누워 느긋이 허리를 쳐올렸다. 수민은 물을 마신 만큼 눈물을 쏟아 내고 기절하듯 잠들었다.

인혁은 잠든 수민을 붙들고 한 번 더 정액을 쏟아 낸 다음, 수민을 꼭 끌어안고 잠들었다. 아주 만족스러웠다.

비로소 푹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인혁은 눈을 떴다. 그리고 차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다시 눈을 감았다.

몸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개운했다. 장마가 한차례 쏟아붓고 지나간 뒤 하늘 같았다. 이렇게 상쾌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억제제를 씹으며 두통과 열기에 시달렸던 주말과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하지만 몸과 달리 정신은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었다.

수민이 오고 나서 지금 눈을 뜰 때까지 모든 과정이 다 생생히 기억났다. 자신이 어떻게 수민을 집어삼켰는지 더는 못 한다 우는 수민을 어떻게 달래고 꾀어 기어이 성기를 박아 댔었는지.

제 발로 찾아온 수민의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아프다는 말만 듣고 죽을 들고 찾아온 아이 아닌가. 결코 수민의 잘못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설득시키고, 옷을 다시 입혀 내보냈어야 했다.

‘그래야 했는데…….’

인혁은 끝없이 자책했다.

다리를 벌리라면 벌리고, 혀를 내밀라면 내밀고. 시키는 대로 따르던 수민의 모습이 생각나 정신이 아득해졌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빌어먹을 오메가 페로몬 거부증은 왜 갑자기 나았단 말인가. 하필이면 그때, 수민에게 발정해 덤벼들 건 또 뭐란 말인가.

차라리 기억나지 않았다면 좀 나았을까? 아니, 그건 그거대로 지옥이리라.

“으음.”

수민이 뒤척이다 인혁에게 돌아누웠다.

세상모르고 잠든 수민의 얼굴을 보자니 새삼 아찔했다. 그 와중에도 수민의 아래에 성기를 박고 있지는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든 수민이 깨지 않도록 주의하며 수민에게서 제 성기를 빼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니, 인혁은 다시 자살 충동을 느꼈다.

인혁은 덮은 이불을 살짝 들춰 보았다. 당연히 둘 다 나신이었다.

수민의 몸은 원래 피부색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얼룩덜룩했다. 온통 빨리고 물린 자국이었다.

그리고 정액과 땀으로 끈적했다. 자신이야 그렇다 치고, 수민은 씻겨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인혁은 어제까지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알 것 같았다. 아는 것과 이해는 전혀 다른 문제니까. 개쓰레기 김인혁은 일부러 그런 것이었다. 몸에 제 냄새가 배라고.

‘김인혁, 미친 새끼.’

인혁은 다시 이불을 내리고 수민의 어깨까지 덮이도록 꼭꼭 싸맸다.

수민의 얼굴에도 지난 정사의 고단함이 남아 있었다. 붓다 못해 찢어진 입술, 아직도 불긋한 눈가라니.

인혁은 할 말을 잃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계속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수민이 깨어나기 전, 생각을 정리하고 움직여야 했다.

일단 씻기고 약을 먹이고, 아니, 병원부터 데려가고, 아니, 힘들어할 수 있으니 의사를 불러 진찰을 받게 하고. 아니, 그 전에 경찰에 신고하는 게 먼저겠지.

성폭력을 당했을 시 끔찍하지만, 몸을 씻지 않고 그대로 병원이나 경찰서에 가야 한다. 그래야 빌어먹을 범죄자의 범죄를 증명할 증거를 남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자수하는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고민 끝에 씻기고 일단 깨끗한 곳으로 수민을 옮겨 놓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대로 놔두기엔 수민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였다.

인혁은 수민이 깨지 않도록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진 옷을 대충 주워 입고 침실을 나서는데 문 옆에 떨어져 있는 쇼핑백이 눈에 들어왔다. 수민이 사 온 죽이 아직 거기에 있었다.

벌어진 안을 보니, 웬 케이블 타이가 한 뭉치 들어 있었다. 뭐지 싶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플라스틱 통에 든 죽은 상해 있었다.

인혁은 그냥 지나치려다가 혹시나 수민이 보고 섭섭해할까 봐, 쇼핑백을 주방에 가져다 놨다.

주방은 소소하게 난장판이었다. 식탁 위에 올려 두었던 약통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알약들이 죄다 쏟아져 있었다. 알약 중 상당수가 으스러져 있었다.

인혁은 욕실로 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았다. 그리고 다시 침실로 갔다.

자다가 인혁이 없어진 걸 알고 찾은 걸까? 수민은 여전히 잠들어 있었으나 자세가 약간 바뀌었다. 인혁의 베개를 베고,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새근새근 잠든 곤한 얼굴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벅차오르는 한편, 간담이 서늘해졌다.

인혁은 여러 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수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맨살이 닿지 않도록 이불 위로 손을 댔다.

“수민아, 일어나 봐. 일단 씻자.”

“조금만, 더 잘게요. 더는, 아직은 힘든데…….”

수민이 잠결에 투정 부리며 베개에 뺨을 비볐다. 인혁은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굳었다.

그 채로 얼마나 굳어 있었을까. 다시 깨우지도 않았는데 수민이 반짝 눈을 떴다.

눈이 마주쳤다.

수민이 인혁을 보았다. 정확하게는 눈을 보았다.

“…….”

그리곤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러트가 끝난 걸 알아차린 듯했다.

인혁은 저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수민을 보며 왼쪽 가슴이 뻐근해져 오는 걸 느꼈다. 이유는 몰랐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수민은 눈만 마주치면 안심하는 기색을 내보이곤 안아 달라고 투정을 부렸다. 두 팔을 벌려 목을 껴안고, 수줍게 먼저 입 맞추는 게 사랑스러워서. 그래서…….

인혁은 더 생각하기를 멈췄다.

“일단 씻자, 괜찮겠니?”

“…….”

수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일어나려고 하였다.

걸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수민의 몸은 척 보기에도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수민은 제 몸 상태를 저만 모른다는 듯 협탁을 잡고 일어서려 하였다. 그러다 기우뚱- 몸이 침대 쪽으로 기울었다.

인혁은 자신이 손을 대면 수민이 거북스러워할까 봐 지켜만 보았다. 하지만 수민이 침대로 쓰러지는 것까진 가만 두고 보지 못했다. 인혁은 수민을 붙잡고 이불로 둘둘 감아 안았다.

“혹시 불편하고 싫어도, 조금만 참아.”

“싫지 않아요.”

수민이 인혁의 가슴에 기대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인혁은 알아들었으나 못 들은 척했다. 수민의 뺨이 닿은 가슴이 도려내고 싶을 만큼 뻐근해졌다.

인혁은 욕실로 가 수민을 씻겨 주었다. 수민은 혼자 씻을 수 있다고 했으나 인혁은 수민이 욕조 물에 빠져 죽을까 봐 걱정이었다. 정 싫으면 장갑을 끼고 도와주겠다고 하니 얌전해졌다.

인혁은 수민의 몸에 물을 끼얹고 머리를 살살 감겨 주었다. 그는 자신이 꽤 익숙하게, 또 당연하게 수민을 씻기고 있다는 걸 의식하지 못했다. 수민은 인혁에게 몸을 맡긴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씻겨 놓으니 수민의 몸 상태는 더 심각했다.

“…….”

인혁은 차마 미안하다는 말조차 못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욕실 서랍장을 뒤지니 용케 커다란 타월이 하나 나왔다. 내 집에 이런 게 있었나. 인혁은 찾고도 믿기지 않았으나, 일단 써먹었다. 그걸로 수민의 몸을 감싸고 안아 들었다.

수민은 머뭇거리다가 인혁의 가슴에 뺨을 가져다 댔다. 수민에게서는 러트 때 인혁을 미치게 만들었던 그 달달한 향이 아직 나고 있었다.

인혁은 제가 그 페로몬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에 놀라는 대신, 수민이 제게 닿는 걸 조심스러워한다는 것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어제까지처럼 스스럼없이 자신에게 매달려 올 줄 알았다.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조르고 안아 달라고…….

기억은 사고를 지배한다. 지금 인혁을 지배하는 건 지난 며칠 간의 기억이었다. 스무 살이나 어린 아이를 벗겨 내 품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물고 빨았던 기억.

다리 사이가 바로 묵직해졌다. 인혁은 당황했다.

수민에게 닿지 않게 하려고, 수민을 안은 팔을 좀 더 높이 들었다. 얼굴이 좀 더 가까워지자 작게 내쉬는 숨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미약한 페로몬, 그 달달한 향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 아래쪽에 좀 더 열기가 모였다.

어째서 이렇게 쉽게 반응할 수 있단 말인가. 인혁은 믿기지 않았다.

‘설마 본딩한 건 아니겠지.’

순간,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쫙 돋았다. 인혁의 몸이 굳는 걸 느꼈는지 수민이 얼굴을 뗐다.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야. 편하게 기대, 괜찮으니까.”

인혁은 수민의 정수리를 보다가 변명하는 걸 포기했다.

인혁은 무심코 침실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안은 정사의 흔적이 가득했다. 페로몬도 공기 중에 진하게 남아 있었다. 수민에게도 침실로 다시 가는 건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닐 것이다. 인혁은 거실 소파로 가려다가 거기서도 몇 번이나 거하게 붙어먹었던 걸 기억하곤 걸음을 멈췄다. 소파에 정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인혁은 차라리 침실로 갔다. 급한 대로 침대 시트를 벗겨 둘둘 말아 문밖으로 집어 던지고, 새 시트를 대충 깔았다. 그 위에 수민을 앉혔다. 그리고 바로 창문을 활짝 열어 안의 공기를 환기시켰다.

인혁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동안 수민은 가만히 그를 지켜보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죽이 담겨 있는 쇼핑백을 찾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문 옆에 놓여 있었는데, 이젠 보이지 않았다.

이미 상해 버렸을 죽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안에 든 케이블 타이, 여전히 쓸모 있는 그걸 원했다. 수민은 아쉬워하며 다른 대체품을 찾아보았다.

바닥에 흩어진 알약, 여기저기 벗어 던진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가 보였다.

수민은 인혁의 구겨진 재킷 옆에 삐져나온 넥타이를 발견했다. 수민이 선물한 것이었다.

수민은 손을 뻗어 그것을 주웠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인혁이 뒤를 돌아보았다. 수민은 등 뒤로 손을 숨겼다. 인혁에게는 수민이 움직이려다가 도로 몸을 웅크린 것처럼 보였다.

“치우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넌 가만히 있어.”

인혁이 주섬주섬 바닥에 떨어진 걸 치웠다. 수민의 셔츠와 바지를 주워 팔에 걸치고는, 돌돌 말린 양말을 마저 주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양말을 벗기며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생각나서였다.

수민은 그 한숨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였다. 인혁이 자신과 성교한 것을 후회한다든가 하는.

“…….”

수민은 등 뒤로 숨긴 넥타이를 꼭 움켜쥐었다.

인혁은 옷가지를 주워 세탁물을 모아 놓는 곳에 던져 넣었다. 그리곤 굳이 포장도 안 뜯은 새 셔츠와 바지를 들고 와 수민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이거라도 걸치자. 내가 한 번도 안 쓴 거니까…….”

수민은 인혁이 내미는 옷을 쳐냈다. 바스락. 비닐 포장된 옷가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인혁의 눈이 그쪽을 향했다. 수민은 인혁의 손목을 붙잡았다.

“이거 놔.”

“싫어요.”

“수민아.”

“저 버리지 마세요.”

“…….”

손을 빼내려던 인혁이 멈칫, 했다. 수민은 그의 손을 더 세게 움켜잡았다.

수민은 보기보다 악력이 셌다. 작정하고 잡으면 누구도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인혁은 그래서 손을 못 빼낸 게 아니었다.

인혁은 붙잡힌 손을 놔두고, 다른 손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리고 수민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이 마주쳤다. 수민은 피하지 않았다.

“이건 버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인혁이 말했다.

“그러면요?”

수민이 물었다.

“사법적 처리의 문제지.”

버린다는 말이었다. 수민은 그렇게 생각했다.

“넌 명백한 피해자고, 난 널 강간하고 며칠씩이나 집에 가둬 둔…… 범죄자야. 일단, 의사를 불러와서 치료받고, 소견서를 받자.”

“소장님은 절 강간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같이 경찰서 가자. 내가 자수할게. 그걸로 내가 너한테 저지른 일을 다 속죄할 수는 없겠지만.”

속죄.

수민은 그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제가 소장님을 강간했죠.”

수민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오수민!”

인혁이 발끈했다.

“특례법이 있죠. 제때 억제제를 복용한 알파나 오메가를 강간했을 시 가중 처벌의 대상이 된다.”

10시간짜리 성교육이 이제야 도움이 되었다.

“약은 충분히 복용하셨겠네요.”

수민은 아직 바닥에 흩어져 있는 알약을 눈으로 훑었다.

“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수민은 혼란스러워하는 인혁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는 자신을 스톡홀름 증후군의 피해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수민은 생각했다.

그저 며칠 집에 가둬 두고 성교하기만 한다고 범죄자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수민은 인혁의 안일한 회피가 싫었다. 자신을 버리기 위해 애써 변명거리를 만들고, 자기 합리화하는 걸 테니까.

“너를 탓하려는 게 아니야. 너는 지금 혼란스럽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분간이 안 갈 거야. 알아. 이해해. 아니, 내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 일단, 의사한테, 아니, 경찰서에 연락을…….”

“절 책임지기 싫어서 도망치는 건가요?”

“뭐?”

“제가 망가진 오메가라, 소장님을 만족시키지 못해서. 그래서 더는 필요 없으니까.”

진심이었다. 또한 인혁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둘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따지는 건 의미 없는 일이었다.

“너, 지금 무슨 말을…… 아니, 아니야.”

인혁이 수민에게서 더 떨어지려고 했다.

“아.”

수민은 일부러 신음하며 몸을 앞으로 숙였다. 침대 아래로 몸이 굴러떨어질 것 같았다. 수민은 당연히 다가올 충격을 대비해 몸을 웅크린다거나 머리를 감싸지 않았다.

“수민아!”

여전히 수민아, 하고 불러 주는 인혁이 붙잡아 줄 테니까.

“가만있어,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왜 움직여!”

절 걱정하는 인혁이 보였다. 수민은 이걸, 이제 와 놓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허우적대던 두 팔로 인혁의 목을 감쌌다. 인혁은 수민을 부축하고자 몸을 굽혔다.

수민이 인혁을 잡아당겨 입 맞췄다.

“읍!”

입술이 닿았다.

인혁이 놀라 몸을 뒤로 물렸다. 수민은 따라붙어 계속 입술을 맞댔다.

인혁은 입술을 열지 않았다. 수민의 작은 혀가 아무리 그 사이를 가르려고 해도 요지부동이었다.

“오, 수, 흡.”

이름을 부르고 떼어 내려 할 때가 기회였다. 수민은 인혁의 입 안으로 혀를 넣는 데 성공했다. 인혁이 제 혀를 씹을 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아프게 하지 않는다고, 기분 좋게만 해줄 거라고 약속했었으니까.

거봐.

역시나. 인혁은 수민의 혀를 씹지도, 깨물지도 않았다. 차마 입을 닫을 생각을 못 하고 굳어 있다가, 수민이 배운 대로 혀를 간지럽히자 혀를 밀어 내려 안간힘 썼다.

수민은 인혁이 키스에 정신이 쏠려 있는 사이, 그의 멱살을 쥐고 몸을 침대로 내리꽂았다.

“윽.”

인혁과 수민의 몸이 침대 위로 다이빙했다. 매트리스가 출렁였다. 인혁은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 위에 올라탄 수민이 떨어질까 봐 손을 뻗었다. 수민은 그의 두 손을 붙들어 재빨리 넥타이로 묶고 침대 헤드에 고정했다.

“뭐 하는 짓이야. 이거 안 풀어?”

인혁이 손을 흔들었다. 묶인 걸 풀거나 끊어 내려는 것 같은데. 수민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허투루 묶지도 않았을뿐더러 넥타이가 점원 말대로 질 좋고 질긴 것이라서 쉽게 끊어질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그래서 수민은 달리 다른 수단을 더하지 않고 지켜만 보았다. 손가락을 부러뜨리거나 손목 관절을 상하게 한다거나 탈골 시키는 건 최악의 상황이 아니면 하고 싶지 않았다.

“이거 풀어. 오수민!”

다행히 인혁은 그런 수단을 동원하지 않아도 될 만큼만 저항했다.

제 위에 올라탄 수민이 혹여 다칠까 봐 손만 버둥거리는 이 배려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수민은 잠시 고민했으나 그 다정함에 취해 망설이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았다.

수민은 인혁의 다정함이 저를 선택하지 않았던 걸 알고 있었다. 이대로 놔둔다면 다른 아이들에게 이 다정함을 쏟아 내리라는 것 역시, 모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 다정함에 넘어가면 안 된다.

이 다정함에 속아 풀어 주면 어떻게 될지, 수민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바로 인혁에게 버림받을 것이다. 돌봄 센터로 인계될 테고. 버림받고서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애먼 노력을 할 것이다. 다시 인혁의 눈에 들어 보겠다고 검정고시 준비를 열심히 하겠지. 하지만 합격해도 인혁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을 것이다.

수능도 봐서 대학 입학이 결정된 뒤에 용기를 내어 인혁을 찾아가면? 보게 될 장면이야 뻔하지 않은가. 사무실에는 셋이 아니라 넷이 있을 것이다.

‘아, 오수민. 왔구나. 인사할까? 여기는 이번에 찾은 내 아들.’

인혁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그 아이는 그 상냥함이 오직 제 것이라는 듯 으스대리라. 서 여사와 박 씨는 참 잘된 일이라고 손뼉 치고 좋아하면서 돌아서선 수민을 껄끄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볼 테고.

넷과 하나 사이에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이 그어질 것이다. 선 밖으로 밀려난 수민에게 남은 길은 하나뿐.

‘너도 나랑 똑같아.’

영정 사진 속 정승원이 입을 길게 찢어 웃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그 얼굴은 히죽 웃는 박 장로의 얼굴이 되었다가.

‘너는 나를 결코 벗어날 수 없어. 넌 내 거야. 날 위해 만들어진 거라고.’

헉헉대며 몽롱하게 웃던 선생님의 얼굴이 되었다.

“…….”

수민은 인혁의 가슴에 손을 얹고 고개를 숙였다. 인혁은 수민이 제게 키스하려는 줄 알고 고개를 돌렸다.

“제가 준 선물, 망가뜨리실 건가요?”

수민이 담담히 물었다.

“……뭐?”

인혁은 그제야 제 손을 묶은 게 무엇인지 올려다보았다. 그게 수민이 선물한 넥타이라는 걸 확인하고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화난 걸까, 짜증 내는 걸까. 아니면 다른 감정인 걸까.

“아, 이미 망가졌네요.”

수민이 알 수 있는 건 하나였다. 결국 넥타이가 망가져 버렸다는 것.

튼튼하다고 했는데. 끊어지지 않을 뿐이지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수민은 인혁의 손이 빠질 정도로 늘어나진 않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이미 망가진 건 어쩔 수 없는 거니까.

“망가졌으니까 버리실 건가요?”

수민이 다시 물었다.

“너…….”

인혁의 눈이 흔들렸다.

수민은 기다렸다.

“……안 버려.”

그가 겨우 내놓은 답은 이것이었다.

“안 버릴 거야. 그러니까 일단, 이거 풀고. 이야기하자, 수민아.”

“이야기요.”

수민이 작게 웃었다. 어쩜 이 사람은 한결같을까.

“수민아?”

“버릴 거면서.”

일단 대화를 하자, 이야기를 나누자. 인혁이 현장에서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는 겁에 질려 있는 피해자들을 그 말로 달래고는, 제 아들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뒤 곧장 돌봄 센터로 보냈다.

그 모습을 보고 또 봤다. 숱하게 지켜봤다.

그 순간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 누구도 인혁의 아들이 아니라서.

“그 말을 할 거였으면, 예전에 했었어야죠.”

나를 구해 주고 나서.

나를 버리지 않고 나서.

수민은 몸을 내려 인혁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너, 뭐 하는…….”

인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지를 벗겼다. 다 벗길 필요도 없었다. 허벅지까지만 내렸다.

팬츠 위로 불룩 튀어나온 성기가 보였다. 완전히 발기하진 않았지만 제법 두둑해져 있었다.

팬츠를 내리자 성기가 툭 튀어나왔다. 무척 컸다. 이게 내 안에 들어왔었던 건가. 수민은 제 아랫배를 손으로 문질러 보았다. 아직 그 감각이 몸에 남아 있었다.

인혁의 것은 두께도 길이도 생긴 모양도 선생님의 것과 전혀 달랐다. 그리고 냄새도. 인혁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그래서 빨아도 구역질이 안 날 것 같았다. 인혁의 말대로 단맛이 날까 궁금하기도 했다.

“저 잘은 못하지만 할 줄은 알아요.”

못한다고 늘 혼났지만 거의 매번 시켰으니까. 그래도 형편없는 정도는 아니겠지.

“뭐?”

“기분 좋게 해드릴게요.”

인혁에게 줄곧 들어 온 말이었다. 수민은 앵무새처럼 따라 하며 고개를 숙여 성기를 물려고 했다.

“하지 마! 오수민!”

굳어 있던 인혁의 몸이 요동쳤다. 그 바람에 원하던 대로 성기를 입에 넣지 못했다. 수민은 난감했다.

두 발도 묶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안타깝게도 이 방 안에는 그럴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인혁이 케이블 타이를 어디에 가져다 두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쉬웠다.

인혁만 침실에 두고 찾아다닐 수도 없었다. 안 보는 사이에 인혁이 넥타이를 끊고 달아나기라도 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그래서 수민은 그냥, 인혁의 발에 한 대 맞았다. 퍽 소리가 나며 얼굴이 돌아갔다.

“……!”

인혁은 바로 반항을 멈췄다. 예상대로였다.

“너, 너…….”

인혁은 제가 발로 차 놓고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수민을 바라보았다.

“아파요.”

턱이 정말 얼얼했다.

“아, 미, 미안…… 괜찮아?”

“아니요.”

“미, 미안하다. 아니, 그러니까…… 그러니까, 왜!”

사과하다 울컥한 걸까. 인혁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니까 빨게 해주세요.”

수민은 바로 인혁의 것을 물었다.

“……!”

인혁의 몸이 크게 들썩였다.

수민은 인혁이 제게 그랬던 것처럼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숨을 급하게 들이켜는 바람에 탄탄한 복근이 쑥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손에 닿는 온기, 단단한 살갗의 느낌이 좋았다. 이 몸과 맞대, 몇 날 며칠이고 기분 좋은 일을 했다.

그러니 무섭지 않아. 이건 아프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수민은 속으로 되뇌며 성기를 빨았다.

인혁의 것은 크고 길어서 한 번에 다 물 수 없었다. 처음엔 귀두와 그 아랫부분을 조금 물고 혀로 빨아 보았다.

“하지 마!”

인혁의 몸이 들썩였다.

말과 달리 성기는 바로 발기했다.

“윽…….”

수민은 조금 당황했다. 입 안에서 성기가 쑥 늘어났다. 아니 일어섰다. 예고 없이 목구멍을 찔러서 하마터면 뱉어낼 뻔했다.

“아냐. 안돼! 수민아, 하지 마.”

인혁이 팔을 빼내려 손을 흔들어 댔다. 수민을 또 칠까 봐 무서운지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묶지 않았는데도 얌전하게 만들 수 있다니. 한 대 맞은 값치곤 효율이 높았다.

수민은 목구멍을 찔러 대는 성기를 꼼꼼히 핥았다. 살 기둥을 핥으니 표면에 핏줄 선 모양이 혓바닥에 느껴졌다. 귀두에서 미끈거리는 액이 나왔다. 침에 섞여 삼켜 보았는데 인혁이 말했던 것처럼 달거나 하진 않았다.

“그만. 그만. 수민아, 하지 마. 제발. 제발!”

인혁은 아직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버둥댔다. 침대 헤드가 덜컹덜컹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수민은 성기를 문 채로 눈을 들어 올려다보았다.

인혁과 눈이 마주쳤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눈을 마주친 채로 성기를 힘껏 빨게 되었다. 후릅, 혀로 쭉 빨자 입 안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인혁의 얼굴이 하얘졌다가 시뻘게졌다.

수민은 인혁의 머리 위, 묶어 놓은 손을 살폈다. 넥타이가 조금 더 늘어났지만, 아직 잘 버텨 주고 있었다. 넥타이가 어느 정도 늘어날 걸 예상해서 묶었기 때문에 아직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넥타이로 다시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인혁은 버리지 않겠다고 했지만 맬 수 없는 넥타이를 버리지 않고 간직해 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수민은 성기를 빠는 데 집중했다. 힘 있게 빨며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자 안 그래도 큰 성기가 더 커졌다. 좀 더 단단해진 것 같기도 했다. 좀 더 입을 벌리고 목구멍 안쪽까지 넣으려고 해봤지만, 그래도 다 삼킬 수 없었다.

“하아.”

숨 쉬는 것도 버거워지던 차 수민은 잠깐 성기를 입에서 뺐다. 그것만으로도 인혁의 몸이 긴장을 푸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끝난 거라고 생각한 걸까? 수민은 인혁이 순진하다고 생각하며, 성기를 손에 쥐고 제가 미처 빨지 못한 부분, 기둥 아래와 고환을 혀로 살짝 핥아 보았다.

인혁의 허벅지가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수민은 손으로 인혁의 성기 윗부분을 흔들며 아랫부분을 혀로 핥았다. 쪼옥, 쪽. 키스할 때 나는 소리가 났다.

“제발, 그만해. 수민아. 이건 아니야, 그만.”

성기는 당장이라도 쌀 듯 잔뜩 발기해 있는데. 인혁은 자꾸 안 된다고, 그만하라고 말했다. 기분이 안 좋은 걸까?

인혁의 숨은 거칠었다. 몸도 자꾸 들썩였다. 성기를 박아 대던 몸짓과 비슷했다. 수민은 인혁의 몸짓에 흥분하는 자신의 몸 상태를 느꼈다.

허공에 붕 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인혁의 성기에서 진하게 나오는 이 냄새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예전에요. 선생님의 성기를 몸속에 넣을 때, 저는 그게 정말 싫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말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기분이 좋으니까 그냥 튀어나왔다.

“뭐?”

“하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참고 했어요.”

맞아. 지금이랑은 달랐어. 수민은 생각했다.

“……참고, 했다고?”

“네.”

수민이 인혁의 귀두 끝을 혀로 날름 핥아 보았다. 분명 달지 않은데, 단 것 같기도 했다. 수민은 제 정액을 매번 삼키며 인혁이 했던 말을 알 것도, 여전히 모를 것도 같았다.

“윽. 그게 무슨, 너…….”

인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팔을 빼내려 흔들던 움직임이 멈췄다. 인혁은 이런 걸 좋아하는 걸까. 수민은 그의 취향대로 그를 기분 좋게 만들고 싶어 혀로 귀두 부분을 핥았다.

“그래도 아프고 싫어서, 저도 모르게 아프다고, 싫다고 말했어요.”

“흐, 너…….”

“그런데, 그러면 선생님은 좋아했어요. 넌 그래야 하는 게 맞는 거라고. 아파야 하는 거라고.”

수민은 인혁의 성기를 다시 입에 넣고 쪽 핥듯 빨아 올렸다.

“음.”

인혁이 신음했다. 말하면서 빨아 주는 걸 좋아하는 걸까. 수민은 머릿속에 인혁의 취향을 잘 입력해 두었다.

“소장님이랑 할 때는 달랐어요. 하다 보면 힘들어서 그만하라고, 싫다고, 안 된다고, 아프다고 말하긴 했는데.”

“수민아.”

“사실 더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오수민, 너, 도대체 무슨 말을…….”

“기분 좋았으니까.”

그래서 비록 강제로 하는 거지만 인혁도 자신처럼 똑같이 기분 좋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자꾸 싫다고만 하니까, 수민은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소장님은 어느 쪽이에요? 정말 싫어요? 아니면 좋은데 싫다고 말하는 건가요?”

“…….”

“제가 망가진 오메가라서, 그래서 싫은 건가요?”

“…….”

인혁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수민은 그 표정을 해석할 수 없었다.

“소장님도 어제 저처럼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는데.”

수민은 대답 듣는 걸 포기하고 다시 성기를 빠는데 몰두했다.

위에서 나직한 신음이 들렸다. 이를 악물고 신음을 내지 않으려 참는 거 같은데, 그래도 숨소리에 섞여 새어 나왔다. 수민은 무척 듣기 좋다고 생각했다.

턱이 얼얼할 정도로 성기를 빨았다. 선생님 것처럼 물렁하고 기분 나쁘지 않았다. 단단하고, 뜨거웠다. 너무 커서 입에 다 넣을 순 없지만, 인혁의 것이라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더 입에 담고 싶어져서 열심히 애썼다.

정신없이 빠는데, 인혁의 허벅지가 단단하게 굳는 게 느껴졌다. 아랫배도 딱딱해졌다. 뭔가를 참는 듯 억눌린 신음도 들렸다. 수민은 끝이 가까워져 왔음을 느꼈다.

“빼, 비켜. 수민아, 오수민.”

인혁이 목울대를 울렸다. 수민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혀로 길게 빼 인혁의 성기를 감싸 더 깊게 입 안에 넣고 오물거렸다.

윽. 인혁이 낮게 신음하며 사정했다. 의식적으로 한 행동은 아니겠지만 허리를 크게 들썩였다. 성기가 목 끝을 찔렀다. 캑캑, 수민이 작게 기침하자 움직임은 바로 멈췄다. 하지만 수민은 그 움직임 때문에 인혁이 싼 걸 다 삼키지 못했다.

“흘렸어요…….”

수민은 고개를 들고 입가에 흐르는 정액을 손으로 훑어 혀로 핥았다.

인혁은 인상을 찡그리며 수민을 내려다보았다.

“안 달아.”

아까는 단 것도 같았는데 역시 달지 않았다. 나쁘진 않았다. 인혁의 냄새가 진하게 났으니까.

“너…….”

인혁은 제 정액을 핥는 수민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반항의 의지를 상실한 듯 손이 축 늘어졌다. 넥타이에 묶인 손목이 발갛게 부어 있었다.

인혁의 성기는 한 번 사정하고서도 여전히 꼿꼿했다. 인혁이 다시 눈을 뜨기 전, 수민은 인혁의 배 위에 올라탔다. 그리곤 엉덩이로 성기를 문질렀다.

맨 엉덩이에 딱딱하고 울퉁불퉁하고 뜨거운 것이 닿았다. 쓸렸다. 오싹 소름이 돋았다.

“수민아, 그만. 이제 됐잖아. 그만해.”

“안 끝났는데요.”

“수민아…….”

“안 끝났잖아요, 소장님.”

수민은 인혁이 가르쳐 준 대로 했다.

러트 내내 인혁은 수민의 성기를 빨아 정액을 삼켰다. 그 뒤 수민의 다리 사이에 자리 잡고 제 성기를 수민의 아래에 밀어 넣었다. 성교는 그런 것이라는 듯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시간을 들여 몸에 새겨 주었다.

그 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건 수민만이 아니었다. 인혁의 몸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직도 성교가 끝나지 않았다는 듯 이리 꼿꼿이 서 있는 거겠지.

수민은 두 손으로 인혁의 배를 잡고 허리를 들었다. 발기한 성기 위에 구멍을 맞췄다.

“으음…….”

그것만으로도 찔리는 느낌이 들었다. 며칠이나 이걸 넣고 있었던 배 속이 알아서 꿈틀댔다. 어서 넣어 달라는 듯이.

수민은 천천히 허리를 내렸다. 두 사람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나왔다.

“젠장, 오수민!”

인혁이 손을 주먹 쥐고 흔들었다. 손을 풀기 위해서인지 아래에서 몰려오는 자극을 견디지 못해서인지는, 본인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수민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바로 어제까지 배 속에 넣고 있었던 거라고 해도 다시 집어삼키는 게 쉽지 않았다. 겨우 반만 넣었는데 배 속이 또 가득 찬 것 같았다. 끝까지 다 넣을 수 있다는 걸 알아도, 제 의지로 넣는 건 아직 무리였다.

수민은 저도 모르게 인혁을 바라보았다. 인혁 역시 힘든지 이를 악물고 있었다.

“수민아, 너 힘드니까, 읏. 알았어, 뭘 원하는지, 알았으니까. 제발. 응?”

끝까지 집어삼키라는 걸까. 아니면 빼라는 걸까. 인혁의 말은 분명치 않았다. 그래서 수민은 제가 알아서 해석하고 움직였다.

이를 깨물고 한 번에 주저앉았다.

“윽!”

눈물이 핑 돌았다.

“너, 읏.”

인혁의 허벅지가 돌처럼 단단해졌다.

“너무, 깊어요…….”

예전에도 이만큼 깊게 들어 왔었나? 수민은 제 배를 더듬었다. 아랫배가 볼록해진 것 같았다.

“여기, 아.”

배 속에 든 게 불끈, 커졌다.

“왜, 왜, 더…….”

커지는 거지? 수민은 믿을 수 없어 인혁을 바라보았다.

“아직, 러트세요?”

“아니, 아니야.”

인혁이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다행이다…….”

수민은 마른침을 삼키고 자세를 잡았다. 무릎을 매트리스에 대고, 두 손으로 인혁의 배를 다시 짚었다. 몸을 살짝 앞으로 숙이자 안엔 든 게 조금 빠져나갔다. 그것만으로도 숨 쉬는 게 한결 나아졌다.

하아. 수민이 내쉰 숨이 인혁의 가슴에 닿았다. 수민은 그 가슴 위에 엎드려 뺨을 비비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뚝, 뚝. 얼굴에 맺힌 땀이 대신 떨어졌다.

수민은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이 버거운 것이 절 어떻게 기분 좋게 해주었는지 떠올렸다. 안쪽을 이렇게 쿡, 누르듯 박아 주면 기분이 좋았는데. 기억을 쫓아 허리를 살짝 들었다가 주저앉았다.

“읏.”

“윽.”

두 사람은 함께 신음했다.

“소장님, 기분 좋아요?”

“너, 그만하라…….”

“아…… 흐, 앗.”

수민이 다시 허리를 들었다가 내렸다. 속살이 성기에 들러붙어 딸려 나갈 것처럼 굴었다. 다시 찌르고 들어오는 성기가 그 뻑뻑한 내벽을 긁어 댔다.

“아, 으.”

성기가 안쪽으로 쑤시고 들어올 때마다 눈물이 났다.

수민은 쏟아지는 감각을 견디지 못하고 허리를 비틀었다.

더 찌르고 싶고, 도망치고 싶고, 인혁이 절 꽉 붙들고 어제처럼 푹푹 쑤셔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러지 않을 걸 아니까. 수민은 맺힌 눈물을 털어 내며 스스로 허리를 들었다 내렸다.

“젠장, 오수민!”

“소, 소장, 니임…….”

수민은 좀 더 높이 허리를 들었다가 내렸다. 하아. 또 동시에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턱, 턱. 살과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성기가 뜨겁게 안으로 치고 올라와 내벽을 찔렀다. 수민은 그때마다 신음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눈이 핑 돌았다. 안쪽 깊이 인혁의 성기가 닿을 때마다 몸속에서 작게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몸속에서 불꽃이 터지고, 또 터져서 손끝, 발끝까지 짜릿하게 저려 왔다.

자극이 너무 심해 그곳을 피해 찌르려 해도, 인혁의 것이 너무 크고 깊게 들어와 있어서 피할 수 없었다. 아니, 설령 피할 수 있다 해도 피하고 싶지 않았다. 막상 조금 얕게 찔리면 아쉬움에 한숨이 나왔다.

좀 더, 조금만 더. 좀 더. 수민은 인혁의 배를 손끝으로 긁으며 몸서리쳤다.

“아, 읏.”

딱히 만지지도 않았는데, 수민의 것이 알아서 발기했다가 사정했다. 인혁의 배에 정액이 튀었다. 하아, 인혁이 더운 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다. 수민은 인혁이 불쾌해하는 거라 생각했다.

“죄송, 해요.”

수민은 손으로 인혁의 배를 문질렀다. 정액을 닦아 내려는 거였는데, 오히려 미끄러져 지지대를 잃었다. 수민은 그대로 인혁의 몸 위에 엎어졌다.

안에 든 성기가 다른 각도로 속을 긁었다.

“아, 으, 으…….”

수민은 인혁의 배 위에서 바르작거렸다. 저도 모르게 아랫배를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그 바람에 아래에 힘이 들어갔다.

“너무, 조이잖아.”

인혁이 이를 악물고 중얼거렸다. 화난 목소리는 아니었다. 수민은 눈을 들어 인혁을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인혁이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앉았다. 여전히 두 손은 묶여 있지만, 누워서 수민에게 깔려 있을 때보다는 좀 더 여유 있어 보였다.

수민은 바로 인혁의 손목을 살폈다. 아직 넥타이로 묶여 있었다. 넥타이가 좀 더, 꽤 많이 늘어나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무튼 인혁의 손목은 여전히 넥타이에 감겨 있었다.

“수민아.”

인혁이 수민의 시선을 눈치채고 다시 제게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

“수민아, 부르면 대답해야지.”

“네.”

“언제까지, 이럴 거야.”

“소장님이 제 안에 쌀 때까지요.”

그래야 성교니까.

“…….”

물어봐 놓고선. 인혁은 못 들을 말을 들었다는 양 눈을 감았다. 수민은 그에게 입 맞추고 싶었다. 인혁의 입술에 닿고 싶었다. 어제, 그제, 그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인혁이 혀를 빨아 주고 입천장을 혀로 긁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해주면 되겠어?”

수민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인혁이 물었다. 힘 빠진 목소리였지만 수민은 상관없었다.

“키스해 주세요.”

사실은 안아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안고, 키스하고, 안에 싸고. 어제까지 하고 또 했던 일을 계속해 달라고. 아가, 라고 부르면서 이 세상에 단둘만 있는 것처럼 몸을 맞대고 허리를 흔들어 박고 싸고 안고 핥고 깨물어 달라고.

하지만 두 손을 묶어 놓고 그런 걸 해달라고 해선 안 되는 줄 아니까. 손이 풀려 있어도 안 해줄 걸 아니까.

“그걸 원해?”

“네.”

인혁이 고개를 숙였다. 손이 자유로웠으면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이리 와.”

인혁이 턱을 치켜들었다. 그의 눈은 여전히 메마르고 삭막했다. 그리고 수민이 알지 못하는 색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수민은 그 눈을 바라보며 두 손으로 인혁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내밀었다.

입술이 닿았다.

“아. 흐으…….”

자세 때문에 배 속에 든 게 조금 빠져나왔다. 아쉬워 아래에 힘을 주었다. 하. 이번엔 인혁이 거친 숨을 내쉬었다. 수민은 그것을 받아먹으며 인혁의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쪽, 쪽, 짧게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수민이 용기를 내 다시 입술을 맞댔다. 혀로 인혁의 입술을 갈랐다. 인혁은 순순히 입을 열어 주었다. 더운 열기, 인혁의 냄새가 화악 몰려들었다.

숨 쉬는 걸 멈춘 적 없는데 이제야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아, 으읍, 흡.”

수민은 정신없이 인혁의 혀를 핥았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아니, 밀어 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혁의 혀는 느릿하게 수민의 혀를 핥아 주었다.

수민은 인혁의 목을 두 팔로 껴안았다. 인혁은 좀 더 몸을 앞으로 숙여 깊게 키스했다. 혀를 비비고, 수민의 입술을 핥았다.

“입, 더 벌려 봐.”

인혁이 잠깐 입술을 떼고 말했다. 수민은 말로 대답하는 대신 입을 열었다. 인혁이 혀로 입천장을 긁어내렸다. 인혁의 혀는 뜨겁고 까슬했다. 수민은 그 감각에 등허리가 찌르르하게 울리는 것 같았다.

“읏!”

수민의 입에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아, 으, 소, 자, 흐읍.”

수민이 뭐라 말할 새 없이 인혁이 계속 혀를 얽었다. 그리고 인혁이 허리를 쳐올렸다.

“아……!”

수민의 몸이 따라 들썩였다. 빠져나갔던 성기가 다시 속살을 가르며 안에 깊숙이 박혔다. 수민의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하아.”

“소, 장, 흐으, 으, 응.”

수민은 인혁을 쫓아 허리를 흔들었다. 배 속에 든 걸 잔뜩 조였다.

인혁이 수민의 안에 사정했다.

“아, 읏.”

수민은 고개를 뒤로 크게 젖히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이 뒤로 넘어가려는데, 인혁이 늘어질 대로 늘어진 넥타이에서 손을 빼내 수민의 허리를 감쌌다. 수민을 다시 제 쪽으로 끌어당기고, 다른 손으로 수민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흐읍, 읍.”

뭐라 말하려는 수민을 무시하고, 인혁이 수민의 턱을 잡아 올려 다시 키스했다. 수민은 인혁의 손을 더듬더듬 타고 올라가다가 이내 눈을 감고 순응했다.

인혁은 꿈틀대며 허벅지에 엉덩이를 비벼 대는 수민을 끌어안고, 몸의 열기가 식을 때까지 계속 입 맞췄다.

“흑, 읏. 흐으…….”

수민이 인혁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늘어졌다. 입은 떨어졌지만 아래는 아직 붙어 있었다.

수민은 손으로 더듬더듬 제 아랫배를 문지르며, 그 안에 있는 인혁의 것을 덧그렸다. 아. 작게 신음했다. 수민은 안도감을 느꼈다.

“소장님하고, 저, 제정신이에요.”

러트 사이클에 휘말려 일어난 사고, 범죄 같은 게 아니었다.

“저희는 지금 성교한 거예요.”

“…….”

“소장님이 제 안에 쌌어요.”

배 속이 아직도 뜨거웠다. 구멍 밖으로 정액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그대로 빠져나가는 게 아까워 조였다.

인혁이 낮게 신음하며 그만, 하고 속삭였다. 그리고 다정히 등을 토닥였다. 수민은 그 손길에 녹아 힘을 뺐다.

“…….”

“…….”

한동안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

수민은 지금 인혁이 어떤 표정일지 궁금하지 않았다. 싫어하고 질색하고 절망하는 표정이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배 속에 품고 있는 인혁의 성기는 아직도 단단하고 뜨거웠다. 러트 사이클이 끝났다지만, 아직 그 여운이 남아 있어 이렇게 발기한 거라 해도 상관없었다. 인혁이 맨정신으로 제게 흥분하고 제 안에 정액을 싸질렀다는 게 중요했다.

수민이 인혁의 어깨에 뺨을 대보았다. 땀이 나서, 뺨을 대면 살갗이 찰싹 달라붙는 느낌이 났다. 기분 좋았다.

“절 책임지기 싫으면, 경찰, 부르고 싶으면 부르세요. 제가 자수할게요.”

수민은 느리게 눈을 감았다 떴다.

등을 다독이던 손길이 멈추는 게 느껴졌다. 이제 손을 떼겠지. 수민은 미리 아쉬워했다.

범죄의 흔적은 명확하게 남아 있었다. 늘어날 대로 늘어난 넥타이, 발갛게 부어오른 손목. 그리고 수민이 들고 온 쇼핑백에 들어 있는 케이블 타이. 인혁이 뭐라 하든 경찰은 인혁 말고 수민을 용의자로 판단할 터였다.

“설마, 그거 작정하고 가져온 거니?”

인혁은 쇼핑백에 죽과 함께 들어 있던 케이블 타이 뭉치를 생각해 내곤 나직이 신음했다.

“그냥, 감기 몸살이신 줄 알았어요.”

“그래서, 가져왔다고?”

“네.”

“맙소사.”

“그런데 어디다 치우셨어요, 그거 있었으면 넥타이는 무사했을 텐데.”

처음 선물한 물건이다. 나름 의미가 있는 물건인데. 저처럼 망가졌으니, 버려지겠지. 수민은 그게 아쉬웠다.

“애초부터 네가 넥타이를 이런 데 쓰지 않았으면 됐지.”

‘이런 데’ 쓰인 넥타이는 아직 침대 헤드에 묶여 있었다.

“망가졌으니까 버리실 건가요?”

수민이 그 넥타이를 보며 물었다. 뺨을 대고 있던 어깨가 작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안 버려. 안 버린다고 했잖아.”

인혁이 답했다. 수민은 믿지 않았다.

“수민아.”

인혁이 수민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인혁이 몸을 좀 더 뒤로 젖히자, 침대 헤드에서 삐걱, 소리가 났다.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데, 아무래도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가 부서진 듯했다.

계속 넥타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인혁이 수민의 어깨를 잡았다. 수민은 순순히 인혁의 어깨에서 얼굴을 뗐다.

눈이 마주쳤다.

인혁은 눈가를 찡그리는가 싶더니 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 절대 안 버려.”

“그래도 버리면요?”

“안 버린다니까.”

“그래도 버릴 거면요.”

“수민아, 나는 절대 너 안 버릴 거야. 그러니까.”

인혁이 망설이다가 엄지손가락으로 수민의 눈가를 문질렀다.

“제발 이렇게 울지 마.”

“…….”

언제부터 제가 울고 있었던 건지, 수민은 알지 못했다.

늘 그랬다. 인혁과의 관계에서는 알지 못하는 것 투성이였다. 버려 놓고, 버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인혁을 믿고 싶어지는 마음마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수민은 인혁을 믿을 수 없었다.

“그래도 버리면요?”

알지 못하는 건 믿어선 안 된다. 알지 못하는 새 또 버려질지 모르니까.

“절대 그럴 일은 없지만.”

“그래도.”

“그러면, 네가 돌아오면 되잖아. 내가 있는 곳으로. 우리가 어디에서 어떻게 헤어지든.”

“…….”

수민이 눈을 깜빡였다. 눈물이 뚝뚝, 인혁의 손으로 떨어졌다. 인혁은 계속 그 눈물을 닦아 주었다.

“찾아와. 나한테. 계속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계속 내 자리 지키고 있을 테니까. 언제든지, 얼마든지 돌아와.”

그게 인혁이 살아온 방법이었다.

“돌아, 와도 돼요?”

“그래.”

“찾아와도, 돼요?”

“그래.”

“날 버리면…….”

“안 버려. 그러니까 헤어져도 다시 찾아오면 돼. 돌아와, 수민아.”

인혁이 한숨 쉬며 수민을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아이는 여전히 소리 내 울지 않았다. 어깨가 뜨겁게 젖고 또 젖었다.

이 관계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인혁은 암담한 한편, 마음 저 깊숙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안도감 비스무리한 것을 느꼈다. 안도감. 그 포장을 벗기면 안에 들어 있는 건 충만한 만족감이리라.

이 감정은 단지 러트 사이클을 함께 보낸 오메가를 향한 집착일 뿐일까? 고작 떡정에 흔들려 널 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수십 번, 수백 번 하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너한테만 계속 물러지는 걸까. 응? 수민아.

인혁은 제 마음속에 무언가 툭, 돌부리처럼 걸리는 걸 느꼈다. 그걸 파내 열어 보면 수민에게 느끼는 이 감정이 무언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은데. 감히 끄집어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두렵고 무서웠다. 지치고 피곤했다.

그런 주제에.

인혁은 수민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리며, 수민이 소리 내 울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껏 유치장에 처넣었던 범죄자, 개쓰레기들과 제가 뭐가 다를까 자괴감을 느끼는 한편. 제 품 안에서 우는 수민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럽고, 애틋했다.

그래서 인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렇게 그냥, 외면했다.

***

사무실 소장과 신입 병아리가 나흘째 연락 두절이었다.

소장은 몸이 아프다고 월요일에 문자 하나 보내고 끝. 어찌나 성실한지 출근 첫날부터 이번 주 월요일까지 지각은커녕 남들보다 30분씩 일찍 오던 신입 병아리는 월요일에 칼퇴근한 뒤 쭉 무단결근.

소장이야 그렇다 쳐도 신입 병아리의 무단결근은 아무래도 걱정스러웠다. 때문에 두 사람은 계속 전화도 해보고 메시지도 보내 봤지만 도통 연락이 닿지 않았다. 목요일쯤부터는 핸드폰이 꺼져 있어 연결이 어렵다는 안내음만 들렸다.

답답한 마음에 수민의 집까지 찾아가 보았지만,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안에선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매주 배달된다는 반찬통은 문 앞에 방치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이상해. 여사님. 내 촉, 알잖아요? 이거 꼭 우리 덕구가 일주일 동안 집에 안 돌아와서, 개 찾는다는 전단지 동네방네 3천 장을 뿌렸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야.”

“그래서 덕구는 어떻게 됐는데? 영영 못 찾았어?”

“여사님, 어떻게 그렇게 끔찍한 말을 하십니까? 당연히 찾았죠!”

“그래?”

“옆 동네 장군이랑 살림을 차렸더라구요. 젠장.”

“그래서, 수민 학생이 뭐? 무단 퇴사하고 살림이라도 차리러 갔다는 거야 뭐야?”

“왜 자꾸 끔찍한 말씀만 하시지? 여사님. 수민이가 김 소장 좋아하는 걸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우리가 아는데.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제가 걱정하는 건요, 우리 권투 천재 수민이가 김 소장을 노리고 사무실 근처에 매복한 개새끼들이랑 시비가 붙어 23 대 1로 싸우다가 22명을 KO 시키고 마지막 한 명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 어디 끌려가 시멘트에 발릴 위기에 처해 있는 건 아닌지, 그런 거란 말입니다. 썅, 김 소장도 자리를 비운 이때에 감히 우리 수민이를 노리다니. 어떤 새끼야. 잡히기만 해봐.”

박 씨는 분연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탐문을 시작했다. 월요일 저녁 6시 이후. 수민이는 퇴근하고 무얼 했는가.

일단 사무실 건물 1층 백반집 사장, 미현이 아빠의 증언을 토대로 철물점 사장과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다행히 요즘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철물점 사장은 매출이 바닥을 기는 요즘 상황에서도 자신이 김 소장의 은혜를 잊지 않고 선행을 베풀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수민이 들고 있던 쇼핑백의 마크마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죽집 사장 역시 며칠 전 곱게 생긴 청년이 와서 아픈 사람이 먹기 편한 죽이 뭐냐고 물어 사간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곱게 생긴 청년을 어떻게 까먹어.”

박 씨는 백번 동의했다.

박 씨는 채 한 시간도 안 되어 중요한 정보를 모두 손에 넣었다.

“그러니까 수민 학생이 퇴근하고 죽집에 가서 아픈 사람이 먹기 좋은 죽을 사고, 철물점에 들러 케이블 타이를 샀다는 거야?”

“수민이 교통 카드 기록을 조회해 보니 자기 집 가는 정류장 말고 김 소장네 집 근처에서 내렸더라구요.”

박 씨가 예의 그 독수리 타법으로 키보드를 타닥타닥 누르며 말했다.

“요즘 그런 게 나와? 교통 카드 찍으면 어디서 내려서 어디서 타는지?”

“아, 혹시나 해서 제가 수민이 거에 따로 붙여 놨거든요.”

“왜? 납치당하면서 교통 카드 찍고 대중교통 이용할까 봐?”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혹시나 해서 버스 CCTV 해킹해 봤는데, 정말 수민이가 거기서 내리더라구요. 죽 포장한 거 들고, 혼자.”

“……박 씨, 그거 범죄 아냐?”

“참고로 말하지만 김 소장도 오케이한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일 중 어디까지가 범죄가 아닌데요?”

박 씨가 되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너무 범죄자 같잖아.”

“뭐, 범죄자 잡는 범죄자. 좋네. 서 여사님은 몰라도 난 태생이 그런 놈이니까, 그러려니 해주십쇼.”

“아이고, 말이나 못 하면.”

“말이라도 하니까 서 여사님께 밥 한 그릇이라도 얻어먹는 거 아니겠습니까.”

박 씨가 히죽 웃었다.

“수민 학생한테 들키지는 말고. 악용하지도 말고.”

서 여사가 당부했다.

“물론이죠, 이런 경우에나 한번 들여다보는 겁니다, 뭐. 다 수민이 안전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예요.”

박 씨가 머리 뒤에 손을 대고 기지개하듯 몸을 폈다. 의자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튼 둘이 함께 있다는 거네요. 오늘이 금요일이니까 아마도 나흘 내내.”

“그럼 케이블 타이는…….”

서 여사가 차마 말을 잇지 못하자 박 씨가 잽싸게 말을 이었다.

“김 소장의 명치에 잽을 날려서 기절시킨 다음 거사를 치를 수도 있겠지만, 차마 마음 여린 수민이가 그러지는 못하고 나름 도구를 사용하려고 했던 고민의 흔적 같은 거?”

“……박 씨. 내가 예전부터 계속 생각했던 건데. 저번에 수민 학생이랑 복싱장 한 번 다녀온 후로, 굉장히 수민 학생한테 호의적인 거 같아.”

“그건 서 여사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수민이랑 맨날 떡볶이 먹으러 다니시더니 수민이만 보면 아주 예뻐 죽으려 하고. 전 이미 수양아들로 삼으신 줄 알았는데. 아닌가요?”

“내가 수민 학생을 예뻐하긴 하지만 박 씨도 만만치 않다니까.”

“서 여사님만 하려고요. 봐봐요. 이전 같았으면 지금 당장 김 소장 챙겨야 한다고 뛰쳐나가실 분이. 지금은 뭐, 저랑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잖아요?”

“노닥거리긴! 내가 얼마나 바쁜데.”

서 여사가 울컥하여 언성을 높였다가,

“그건 그렇고……. 연락이 안 오니까 그렇지.”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변명하듯 말했다.

“그렇죠, 연락이 없으니까. 저희가 상관할 바 아닐 겁니다. 걱정 마세요.”

박 씨가 태평하게 대꾸했다.

“박 씨는 차암 좋겠어. 생각이 일직선이라서.”

서 여사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가 얼마 안 가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그렇겠지?”

인혁이 아프고 수민이 그를 찾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은 며칠째 연락이 안 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지금 어떤 상태일진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런데 인혁이 연락하지 않았다고 안 찾아가도 될까? 아니, 인혁이 연락하지 않았는데 가도 될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쩌면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예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서 여사는 수민과 함께 있을 인혁을, 인혁과 함께일 수민을 생각하면서도 놀라지 않는 자신을 느끼며 그렇게 생각했다.

유독 수민에게 각별하게 구는 인혁이, 인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수민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러믄요.”

박 씨는 서 여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대답했다.

“아이고. 난 모르겠다.”

서 여사는 복잡한 속내를 어쩌지 못하고 한숨 지었다.

“좋게 좋게 생각하세요. 여사님이 김 소장 엄마도 아니고, 언제까지 뒤꽁무니 쫓아다니면서 뒤처리해 준답니까. 김 소장도 벌써 나이 꽤나 먹었는데. 음, 이제 서른 후반 됐나? 그 정도면 지 아랫도리 관리는 지가 알아서 해야지.”

박 씨는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볼펜을 하나 집어 손가락 사이로 휘휘 돌리며 나름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서른은 무슨, 벌써 마흔셋이라던데.”

“허어, 시간이 빠르긴 빠르네.”

박 씨는 세월이 야속하다고 중얼거리곤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바라보았다. 표정이 제법 진지하여 서 여사는 건드리지 않고 가만 놔두었다.

바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사무실 소장이 아프고 병아리 신입이 무단결근해도 할 일은 해야 했다. 서 여사는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는, 요 며칠 심란한 마음에 미뤄 두었던 서류를 들여다보았다.

잠시 뒤.

“여사님,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드릴까요?”

박 씨가 뜬금없이 말을 걸었다.

마침 떡볶이가 당기기도 하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터라 서 여사는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박 씨의 장단에 응했다.

“재미없으면 알지?”

“그럼 그냥 이야기 하나 해드릴게요. 심심해서 남 걱정하느라 마음고생 중이신 거 같으니까. 연하의 도리로.”

“연하? 박 씨. 민증 까 봐. 진짜 나보다 어린 거 맞아?”

“아, 누님. 그런 말씀 섭합니다. 이렇게 깍듯이 누님으로 모시고 있는데.”

박 씨는 서글프다며 듯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고개를 떨구었다.

“허, 퍽이나.”

서 여사의 비웃음을 받으면서도 꿋꿋하였다.

“아무튼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유머책에 쓰여 있던 거니까 재미있는 얘기가 맞겠죠. 예전에, 기억나시죠. 90년대에 유머책 같은 게 많이 나왔었잖아요.”

“유머 시리즈가 우르르 나오던 게 그즈음이었나? 무슨 배우 이름 딴 시리즈도 나오고 그랬는데. 아무튼, 그게 왜?”

“그때 나온 책 중에서 읽었던 내용인데. 어떤 회사원이 경찰서에서 아내에게 전화를 하더랍니다. 아내가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까, 오늘이 월급날이라서 월급봉투를 받아서 집에 가고 있는 길이었는데.”

으음. 박 씨는 수염이 삐죽삐죽 올라온 턱을 손으로 문지르며 말했다.

“맞아. 예전엔 월급을 봉투에 넣어서 줬지. 수민 학생은 모르겠지?”

“그럼요. 걔 태어나기도 전 이야기 아닌가? 아무튼. 문득 바지 주머니와 가방을 뒤져 보니까 월급봉투가 안 보이더라는 겁니다. 도둑맞았구나 생각해서 바로 신고하려고 경찰서 온 거라고, 아내한테 전화를 한 거죠.”

“그래서? 난 안 들어 본 건데. 박 씨는 잘 기억하고 있네.”

“일단 들어 보세요. 아내는 남편보다는 그래도 차분하고 똑똑한 사람인지, 차근차근 물어보더라구요. 어디는 뒤져 봤냐, 어디는 찾아봤냐. 그런데 남자가 다 찾아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내가 마지막으로 양복 재킷 안쪽 주머니에는 있는지 봤느냐고 하니까, 남자가 거기는 안 찾아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내가 얼른 찾아보라고 하니까, 남자가 뭐라고 그랬게요?”

“퀴즈야? 난센스?”

“상품 없으니까 그냥 편하게 말씀해 보세요.”

“나라면 얼른 양복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봤을 거 같긴 한데. 아니, 근데 다른 곳 다 뒤져 보고 거기만 안 찾아본 게 말이 돼?”

“자자, 화내지 마시고.”

“화낸 거 아니야. 큰 소리로 말한 거라고.”

“네, 네. 근데 이거 진짜 유머책에 실려 있는 내용이었어요. 남자가 뭐라 그랬냐면, 만약 거기에도 없으면 정말 잃어버리거나 도둑맞은 건데. 그 현실을 받아들일 용기가 나지 않아서 거기는 차마 안 뒤져 봤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거기엔 손을 넣어 보지 않을 거라고.”

“뭐? 그게 말이 돼? 그럼 거기 있겠네!”

“웃기죠?”

“아니, 말이 안 된다고. 박 씨는 그게 웃겨?”

“아니요. 하나도 안 웃기더라구요.”

“거봐.”

“그때 연애 좀 해보겠다고 유머집, 개그집 이런 거 엄청 사 보고 그랬는데. 딴 건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이것만 여태 기억하고 있는 거 있죠.”

박 씨가 낄낄댔다. 서 여사는 미친놈 보듯 박 씨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연애를 못 했지.”

“해봤습니다.”

“끝내주는 연애는 못 해봤겠지. 그러니까 아직 그런 찌질한 거나 기억하고 있는 거고.”

“아, 그건 말씀이 좀 과하신 거 같은데.”

“박 씨도 참 어지간하네. 아니, 기억하려면 웃길 걸 기억해서 제대로 사람을 웃기던가. 뭐야, 기분만 베렸어. 수민 학생 없어서 떡볶이도 못 먹으러 가는데.”

서 여사가 투덜댔다. 박 씨는 서 여사의 표정을 살피고는 피식 웃었다.

“저도 처음엔 여사님처럼 생각했어요. 근데, 살면서 가끔 이 이야기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할 일 없을 때 곱씹어 보고 그랬는데.”

“참, 할 일도 없다.”

“그죠?”

삐걱. 박 씨가 의자를 돌려 인혁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김 소장을 만났는데. 김 소장을 보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특히나 요즘엔.”

“뭘 그럴 수도 있어?”

“서 여사님은 그런 적 없으세요? 너무 간절히 바라는 게 있는데,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찾아내고 싶고 손에 넣고 싶은 게 있는데, 그래서 사방팔방 다 뒤졌는데도 찾지 못했을 때. 딱 한 곳, 있을 만한 곳 딱 한 곳만 남겨 두었을 때. 차마 거긴 못 뒤져 보겠는 거.”

굳이 물건 찾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어떤 일을 몇 달 고생해서 다 진행해 놓고서는 마지막 한 걸음, 한 발자국만 남았을 때의 망설임. 잘못되면 어떡하지? 지금까지 노력한 게 다 헛수고가 되면 어떡하지? 갑자기 덜컥 겁이 들어 발을 빼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

애타게 찾고, 찾고 또 찾다가 실패하고 또 실패하기를 반복하고 나서,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어도 ‘설마’라고 고개를 돌리게 되는 망설임, 혹은 두려움.

“……방금 말한 이야기 속 회사원이 김 소장이라는 거야?”

서 여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꼭 그렇다는 건 아니고요. 그냥,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계속 좀 센티해지네요. 가을도 아닌데, 벌써 이러면 어떡하나. 나 어떡하면 좋죠, 여사님?”

박 씨는 반대로 언제 진지했냐는 듯 철없이 투덜댔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이 그 재미없는 이야기 속 회사원이 된 것처럼, 손을 들어 셔츠에 달린 포켓에 손을 올리려다 말기를 반복했다.

“어떤 마음일까나아.”

“박 씨.”

“여사님. 그냥 흘려들으세요, 유머라니까. 유머. 그런 이야기가 유머집에 들어 있다는 게 유머겠지만.”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은 그게 우습게 느껴진다는 의미인 거겠지. 웃기고 실없어 보이고 말도 안 되는 거 같고, 뭐 그런 이야기가 다 있나 싶은.

당사자는 얼마나 절실한지 모르고.

박 씨가 씩 웃으며 서 여사에게 윙크했다. 그 가벼운 행동거지에, 서 여사는 언제 진지해졌냐는 듯 인상을 팍 찌푸렸다. 박 씨는 낄낄대며 삐걱, 의자를 돌려 인혁의 자리를 등졌다.

너무 절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외면하게 되는 일도 있다. 그런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걸 보고도 눈 감아 주는 사람도 있다. 이 세상에는.

그러니까 이렇게 엉망진창이어도 어떻게든 굴러가고 또 굴러가는 거겠지. 이 세상은.

박 씨는 그 회사원을 재미없는 유머로 소비하고 잊는 세상에서, 굳이 그 회사원의 손을 재킷 안으로 밀어 넣게 강요할 의욕도 필요성도 못 느꼈다. 서 여사의 말대로 이만큼이나 나이를 처먹어서도 뭐가 법인지 불법인지 모르는 놈이라 그런 거겠지.

달칵. 박 씨는 핸드폰 위치 추적 데이터를 컴퓨터에서 완전히 지워 버렸다. 이 정도는 독수리 타법으로도 충분했다.

***

금요일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올 즈음, 서 여사의 핸드폰이 울렸다. 인혁이었다.

인혁은 쇳소리 섞인 저음으로 별일 없었냐고 묻고는, 자신과 수민은 월요일부터 출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 여사는 더 묻지 않고, 월요일에 보자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서 여사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박 씨를 쳐다봤다. 박 씨는 그거 보라며 어깨를 으쓱였다.

다행히도 그 주엔 내내 큰일이 없었고, 금요일 역시 심심한 듯 조용하게 지나갔다. 서 여사와 박 씨는 적당히 할 일을 마친 뒤 퇴근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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