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波紋(파문) (23/27)

波紋(파문)

아이를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하루를 놓고 볼 때 아이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아침 식사 때 정도였는데 그때마다 마주 앉아 있는 아이가 나를 셀 수 없이 흘긋거리며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온몸으로 나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고 있었다. 참 알기 쉬운 아이였다. 그 관심은 호감의 빛을 띠고 있었는데 그 호감이 불순물 하나 섞이지 않은 맑은 기운을 지니고 있어서 놀라울 정도였다.

일부러 눈이라도 마주칠라치면 어떻게 눈치를 채는 건지 커다란 눈을 어색하게 또르르 굴리며 밥그릇으로 고개를 내렸다. 수저에 수북이 올라간 밥을 몇 알 먹지도 않고 회장님이 올려 주는 소고기 조림만 야금야금 먹는 것이 꼭 새끼 고양이같이 보이기도 했다.

제대로 된 식사 예절을 배우지 못했는지 이따금 수저를 식기에 크게 부딪히며 밥을 먹기도 하고 물을 삼키는 소리도 냈다. 조용한 공간에서 소리를 낸 것이 민망한지 하얀 얼굴을 붉게 물들여 회장님을 보며 눈을 접어 웃곤 했다. 꼭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은 웃음은 평소에 저택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라 왜 아버지가 고택을 잊지 않고 일부러 찾아갔는지 알 것 같았다.

삭막하고 정적이 흐르는 이곳에 해가 되지 않는 무구한 생명체 하나가 자리를 잡아 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때로는 위태롭고 외로워 보이는 그 생명체가 아름답기까지 해서 나는 흥미롭게 관찰하는 입장이 되었다.

이복동생인 아이가 내 울타리 안에 들어왔으니 당연했다. 어려서부터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과 무게 그리고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이복형으로서 적당한 관심을 주는 것이었다.

그 관심은 대체로 나를 이루는 것들 중에 하나가 되어 가는 아이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양새 하나하나 내 방식대로 조금씩 주무르고 싶은 것들이었다.

인사를 하는 모양새, 내가 붙여 준 선생과 공부를 하고, 타인에게 쉽게 내주지 않는 내 공간 아래에 두고 지켜보는 것. 어릴 때부터 남보다 조금은 비틀린 관념을 갖게 된 나에게 아이는 적당한 유희 거리였다.

아이는 내 속내를 여전히 잘 알지 못한다. 때로는 동경의 눈빛으로, 때로는 두려운 눈빛으로 나를 보곤 하는 그 순수함을 집요하게 훑어 내리다 보면 종착엔 그 순수를 움켜잡아 끌어 내리고 싶은 생각마저 들곤 했다. 그때마다 아이가 평생 내 속내를 알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며칠 전 재형과의 통화 내용이 떠올랐다. 아이와의 첫 수업에 대한 그의 보고였다. 평소였으면 무시했을 전화에 귀를 기울였다.

-굉장히 순하고 착하던데요?

‘그런 편이지.’

-그리고 선배랑 하나도 안 닮았어……. 동생 맞아요?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그의 말을 끊어 내자 수화기 너머로 주춤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내 이복동생이 순하고 착한 것도, 나랑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것도 내가 이미 아는 사실이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내 공간에서 그 애가 어떤 수업을 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눈치가 빠른 재형은 더 이상 다른 소리 않고 내가 원하는 첫 수업에 대한 보고를 담담히 늘어놓았다.

-……나이에 비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아요. 기본적인 어휘나 학습 능력은 전혀 문제없어요. 하지만 너무 세상 물정을 몰라요. 선배 동생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면… 이상하다고 오해할 정도로요.

내 대답 없는 침묵의 의미를 아는 재형이 잠깐 쉬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커다란 두 눈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선배 즐겁겠어요.

‘무슨 소리야.’

-예쁘기까지 하잖아요.

재형의 말을 듣고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맹랑한 말을 지껄이는 그가 가소롭다가도 내 유희 거리를 눈치챈 그의 영민함이 재미있기도 했다. 재형은 나의 숨겨진 비틀린 구석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야. 첫 수업에 대한 건 그게 다야?’

-엄마와 유모, 그리고 회장님을 좋아한대요. 살던 곳에서 두고 온 열대어 걱정을 많이 하더라구요. 또 카스텔라와 단지 모양의 우유를 좋아해요.

앵무새처럼 보고하듯 재형이 그 아이에 대해 말했다. 둘이 어떤 수업을 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큰 눈을 올곧게 뜨고 빤히 바라보며 말했겠지. 자연스레 아이의 얼굴을 그리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로 재형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세상을 배우고 싶대요.

세상을 배우고 싶다…….

위험한 생각임을 알면서도 나는 아이가 바라는 세상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었다. 그 아이를 억지로 가둬선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선배, 듣고 있어요?

‘……듣고 있어.’

-다음 수업은 야외 수업으로 하고 싶어요.

허락하지 않으려 했었다. 몸이 약한 아이에게 좋지 못할 환경이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아직 차갑기만 한 봄바람도 우려됐다. 낯선 세계를 맞이할 아이에게 무리가 될 수업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허락하고야 말았다.

점점 그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방해하기 위해 허락한 것이었지만 소용없었다. 아이의 표정, 몸짓, 눈빛까지도 모자라서 야외 수업을 나갔을 지금 시간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쫓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가 후회가 밀려왔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 일어나 내선 버튼을 눌렀다.

-네, 이사님.

“지금 잠시 나갔다 옵니다. 회의는 돌아와서 시작하죠.”

매일 밤. 조용한 방문 너머로 들리던 작은 기침 소리가 사무실 안에서 환청처럼 들려와 나를 채근했다. 어리석은 행동임을 알면서도 바깥세상에 처음 나가 있을 아이 걱정에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우려대로 아이는 내가 허락해 준 야외 수업을 마치고 크게 병이 나고 말았다. 연약한 화초처럼 조심스러운 환경에서 보살펴 주어야 하는 아이는 생각보다 더 쇠약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서문희를 닮아 폐가 선천적으로 좋지 않은 아이에게 사람들로 붐비던 학생 식당이 폐에 부담을 준 모양이었다. 폐렴의 초기 증세를 보이며 의식을 잃은 아이를 위해 저택에 온 주치의가 약 처방과 링거를 놓고 호흡기 치료를 하고 돌아갔다.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치료였다.

아이를 위한 뚜렷한 처방은 없었다. 평생 기관지를 조심하며 몸을 보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아이가 아버지의 호적에 오르지도 못하고 숨겨진 이유 중에, 자책감을 갖고 있는 서문희의 선택도 있었지만 워낙 좋지 않은 건강을 가졌다는 점도 있었다. 아버지에게 온전하고 완벽하지 않은 자식은 필요 없었다. 그랬기에 아이는 자의가 아닌 타의로 세월이 멈춘 듯한 그곳에서 세상과 떨어져 살아왔다.

‘싫어요. 여기서 치즈돈가스 먹고 싶어요.’

야무진 목소리로 고집을 피우며 나를 올려다보던 큰 눈망울이 떠오른다. 남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아이는 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것을 아는 이상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그 순수한 갈망이 나를 설득했다.

내 안에 가두고 싶다가도,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지켜보고 싶기도 했다. 예민한 초식 동물처럼 한없이 조심스럽게 행동하다가도 가끔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기 주장을 펼치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약을 먹고 나면 입이 너무 써서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고 싶어요.’

오늘 아침 식사 자리에 나온 말이었다. 어머니에게 큰 죄책감을 갖고 있는 아이는 이 저택에 적응을 하면서도 위축된 모습을 곧잘 보였다. 알약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도 말하지 못하고 꾸역꾸역 쓴 알약을 녹여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화가 날 정도로.

“평택 신규 공장 부지 출발이 6시입니까?”

“네, 이사님. 그리고 평택 도착하신 후 공장 부지 둘러보시며 임원들과 간담회 일정 예정되어 있습니다.”

공장 부지로 출발하기 전이었다. 일하는 내내 신경이 쓰여 고민하던 문제를 결정지어야 했다. 시간을 보니 아이가 공부를 막 시작하고 있을 시각이었다.

“이 팀장, 전에 비서실 팀이 주었던 초콜릿. 어디서 산 겁니까?”

“밸런타인데이 때 드린 초콜릿이요?”

지난 2월 비서실 팀이 내게 준 초콜릿의 출처를 물었다. 먹진 않았지만 성의를 생각해 열어 본 상자 안의 초콜릿은 꽤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모양이었다. 그 초콜릿을 아이에게 가져다줄 생각이었다. 내 질문이 의외의 것이었는지 이 팀장은 잠시 눈이 커지며 주춤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 초콜릿의 출처를 알려 주었다.

“강남이라 멀진 않습니다. 선물로 필요하신 거면 평택으로 출발하시기 전에 제가 대신 다녀오겠습니다.”

“괜찮아요. 상호명만 알려 주면 됩니다. 공장 부지는 내 개인 차량으로 직접 출발할 테니 이 팀장은 따로 와요. 평택에서 봅시다.”

평택에 늦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초콜릿을 사고 저택에 들러야 했다. 내일 아침 아이에게 전해 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오늘 저녁 식사엔 사탕이나 초콜릿 없이 쓴 약을 미련하게 삼킬 것이 분명했기에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 팀장이 알려 준 곳은 수제 초콜릿 가게였다. 주변에 마땅히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해 도로변에 차를 정차해 놓고 급하게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씁쓸하고 달콤한 초콜릿 향이 풍겼다. 조용한 내부를 살펴보며 쇼케이스가 늘어서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작고 아기자기한 먹을거리는 처음 사 보는 것이라 무엇을 사야 할지 고민하자 점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물어 왔다.

“선물용으로 보세요?”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오른쪽에서 보시면 돼요. 원하시면 선물 포장도 해 드려요.”

점원이 손짓한 쇼케이스를 둘러보니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모양의 초콜릿들이 트레이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 기다랗고 네모난 초콜릿에 시선을 주고 있는데 점원이 부가 설명을 해 주었다.

“그건 위스키가 들어간 초콜릿이에요. 인기가 좋아요.”

“알코올 없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아이가 성인일지라도 알코올이 들어간 것을 선물할 순 없었다. 무해한 것들만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선물 받으시는 분이 어린가 봐요.”

“동생입니다.”

내 모호하고 간결한 대답에 점원은 미소와 함께 알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작은 바구니를 집어 들며 물었다.

“제가 추천해서 담아 드려도 될까요?”

무엇을 추측하며 미소를 지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점원의 추천을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내 허락에 점원은 쇼케이스를 열고 초콜릿을 담기 시작했다. 작고 섬세한 모양의 초콜릿들이 바구니에 하나둘씩 포개어지지 않고 담기기 시작했다.

“양은 이 정도면 될까요?”

“네.”

“선물 포장 해 드릴까요?”

“그렇게 해 주십시오.”

입맛에 맞는다고 하면 또 사다 줄 생각이었다. 점원은 내 요청에 따라 하얀 리본을 이용해 상자를 꼼꼼한 손놀림으로 포장해 주었다. 계산을 마치고 마무리된 포장을 건네주는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동생분께서는 좋으시겠어요. 이렇게 자상한 오빠가 있어서요.”

“……남자아이입니다.”

예의상 칭찬으로 한 말을 흘려 버릴 수 있었지만 아이는 여자가 아니라 남자이기에 내 여동생으로 만들어 버릴 순 없었다. 나의 지적에 점원은 당황한 표정을 띄우고 말을 정정했다.

“아… 죄송합니다. 좋은 형님이시네요.”

초콜릿 포장을 받아 들고 짧게 인사를 하며 나왔다. 차를 도로변에 두었기에 서두른다고 움직였으나 아이에게 줄 초콜릿을 고르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니 곧 공부가 끝날 시간이었다. 차에 올라 초콜릿 포장을 옆 좌석에 내려놓고 저택으로 향했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 저택에 도착하니 한 실장은 내게 다른 특별한 일이 있나 생각이 든 모양이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내가 왔다는 연락을 받았는지 한 실장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이사님, 오늘 평택으로 출장 가신다고 들었는데 필요한 것 있으세요?”

“챙길 서류가 있어서.”

사람을 보내도록 연락을 주지 그랬냐는 그녀의 말을 뒤로하고 진짜 목적을 위해 걸음을 급하게 옮겼다. 그리 여유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이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초콜릿을 주고 바로 평택으로 출발해야 했다.

한 손에 포장된 초콜릿을 들고 서재 앞에 도착했다. 마침 수업이 끝났는지 안에서 두런두런 인사 소리가 들렸다. 손으로 문을 두 번 두드리자 안에서 정적이 흘렀다. 대답은 없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인사를 하고 있었는지 두 사람은 마주 서 있었다. 불쑥 나타난 내가 의외였는지 두 사람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입을 살짝 벌린 채 뺨을 붉히고 있는 표정을 보아하니 아이는 내가 반가운 모양이었다. 재형은 그런 아이를 뒤로하고 내게 다가왔다. 그의 표정 역시 반가움이 넘치고 있었다.

“선배!”

“다 끝났나?”

내게 다가오는 재형이 아닌 아이를 보며 물었다. 내 시선에도 아이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물거리며 나와 재형을 바라보기만 했다. 반가운 마음에 대답을 하고 싶은데 선뜻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 망설임이 못내 안쓰러웠다.

“수업할 때마다 감시하러 올 거예요?”

“두고 간 것이 있어서 가지러 왔어. 다시 나가 봐야 해.”

지난번 아이의 야외 수업 이후로 오랜만에 만난 재형은 기분이 좋은지 아이가 있는데도 자꾸 가까이 다가와 몸을 붙이려 했다. 몸을 멀찍이 떨어뜨리며 대답하자 그가 재차 채근했다.

“사람 시켜도 되는 거잖아요. 감시하러 온 거 맞죠?”

“후…….”

최근 들어 부쩍 줄어든 연락과 만남이 그를 초조하게 만들었는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서랍을 열어 서류 봉투를 꺼냈다. 굳이 필요한 서류는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해야 할 행동으로는 적당했다.

서류를 꺼내니 아이가 밖으로 나가려 서재 중앙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대로 내보내면 손에 든 초콜릿을 줄 수 없었기에 불러 세웠다.

“지영우.”

내 부름에 아이는 멈칫 몸을 세우며 대답했다.

“네.”

대답을 하는 아이의 표정에 한가득 설렘이 밀려오는 것이 내 두 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저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위험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이리 와 봐.”

손짓을 해 부르니 쪼르르 내게 다가왔다. 느릿느릿 다가오는 것 같으면서도 빠르고 조용한 걸음걸이였다. 아이가 다가오자 재형이 잠시 몸을 뗐다. 코앞에 와 있는 아이를 내려보며 손에 쥐고 있던 초콜릿을 건넸다.

“가져가.”

내 얼굴과 초콜릿 포장을 번갈아 보는 아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순수한 감정들이 멍울멍울하게 엉켜지는 것이 훤히 보일 만큼이었다. 아이는 멍하니 있다가 공중에 떠 있는 내 손과 초콜릿을 보더니 급하게 손을 내밀어 가져갔다. 그러고도 어안이 벙벙한지 소중한 보물인 듯 두 손으로 끌어안고만 서 있었다.

“그만 나가 봐.”

“아…… 네.”

발갛게 상기된 아이의 뺨과 목덜미를 눈치챈 재형이 나와 아이를 긴밀히 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랬기에 나는 서둘러 아이를 내보냈다. 머뭇거리던 아까의 걸음과는 달리 도망치듯 재빠른 걸음이었다. 아이가 나가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재형이 나직이 말을 꺼냈다.

“동생한테 초콜릿 주러 온 거예요?”

“수업 끝난 것 같은데 나가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의 물음에 대답해 줄 용의가 없는 나는 챙겼던 서류를 다시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내려놓은 서류를 가만히 내려 보던 재형의 표정이 우울해지는 것이 보였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관계를 확실히 끝맺어야 할 필요성을 최근 들어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내가 원했던 애정 없는 관계를 지속해 나갈 수 없는 상태였다.

그렇지만 아이가 있는 저택에서 그리고 내 공간인 서재에서 그런 사실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이곳은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즐겁게 공부했을 공간이었다.

“나랑 잠깐 얘기 좀 해요.”

하지만 재형은 쉽게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의 마음을 알고서도 가벼운 만남을 지속한 내 실수였다. 더 가깝게 다가오는 그를 내려보며 말했다.

“다음에 따로 만나서 해.”

“우리 언제 만나요? 안 한 지 오래됐잖아요.”

“나가 봐야 해.”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재차 말했다. 실랑이하기 싫어 몸을 비키려 움직였지만 재형은 고집스럽게 몸을 맞대어 왔다. 이 상황이 몹시 피곤했다.

“바쁘면 지금 나가는 길에 해요. 저번처럼 차 안에서 하면 되잖아요.”

“왜 그래, 발정이라도 났어?”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가 나를 재촉했다. 점점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개인적인 공간에서 허용하고 싶지 않은 행위였다. 짜증이 절로 묻어나는 내 목소리가 재형을 더 자극했는지 그가 내게 퍼붓기 시작했다.

“하고 싶어서 그래요. 내가 지금 하고 싶어요, 선배 거 빨고, 물고, 질질 싸고 싶다고.”

그의 목소리가 점점 격앙되었다. 아이가 나갈 때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았는지 서재의 문이 닫히지 않고 조금 열려 있는 것이 보였다. 혹여 소리가 새어 나갈까 재형에게 주의를 주었다.

“목소리 낮춰.”

짜증을 넘어서 화가 서린 내 목소리를 들은 재형이 잠시 움찔 주춤하나 싶었지만 이내 자세를 낮춰 내 허리 벨트를 붙잡고 풀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행위를 멈추기 위해 손으로 그의 양손을 강하게 붙잡았다. 생각보다 곁을 오래 주었더니 그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만둬.”

손을 잡혀 움직일 수 없는 재형은 결국 하던 행위를 멈추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에 커다란 상처와 울분이 보였다.

“왜 안 하는 건데요? 나랑 하는 거 만족해 했잖아요.”

상처받은 얼굴을 보니 미련이라는 감정을 갖게 한 나의 행동에 후회가 밀려왔다. 이제라도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김재형, 파트너답게 깔끔하게 굴어. 피곤하게 하지 말고.”

자신에 대한 위치를 다시 상기시켜 주자 결국 그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동안 지나쳤던 상대들에게서 보아 왔던 반응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애정 없이 대했던 만남의 끝은 항상 같았다. 상처와 같은 아픔은 없었지만 늘 공허함과 허무함이 내 곁을 맴돌았다.

늦지 않게 도착한 평택에서 신규 공장 부지를 둘러보고 주요 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차후 10년 앞을 바라보고 진행하는 숙원 사업이었기에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다.

마지막 일정으로 임원들의 사기 증진을 위한 식사를 빙자한 술자리가 남아 있었으나 참여하고 싶지 않아 같이 가자는 임원들을 달래어 이 팀장에게 부탁하고 평택을 떠났다.

도로에 차가 많지 않아 저택에 도착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실장에게 따로 나오지 말라고 연락을 해 두었기에 맞이하는 사용인은 없었다.

덕분에 늘 정적을 유지하고 있는 저택이 더욱 무거운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작은 기척 하나 없는 공간을 미약한 등이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뚜벅뚜벅 걸으며 침묵을 깨트리고 있자니 두통이 밀려왔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빼곡한 일정이 오늘은 몹시 고단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4시. 아침 식사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방 안에 들어와 재킷과 타이를 내려놓고 샤워 가운을 집어 들어 욕실로 향했다. 바로 씻고 조금이라도 수면을 취할 생각이었다. 방에서 나와 복도를 거닐자 아이의 방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기침 소리가 들리질 않는 걸 보니 곤하게 자는 모양이었다.

저녁을 먹고 초콜릿은 잘 먹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발걸음이 아이의 방문 앞에 멈춰 섰다.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문을 열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픈 충동이 일었다. 머릿속이 순간 새카맣게 변하는 것 같았다. 내가 하고 하는 행동이 점점 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방문에서 시선을 거두고 발길을 빠르게 옮겼다. 며칠 동안의 강행군으로 잠이 부족한 것 같았다. 어서 빨리 씻고 잠을 자야 했다. 도착한 욕실의 문고리를 손가락에 걸어 잡아 내려 문을 열었다.

“…….”

피곤함에 보이는 환상일까, 순간 착각이 일었지만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환상도 아니고 착각도 아니었다. 바로, 아래를 발가벗고 있는 아이였다. 팔짱을 끼고 문가에 몸을 기대어 아이의 아래를 보았다. 하얀 엉덩이, 그리고 뽀얀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노골적이었던 시선을 거울 속의 아이의 얼굴로 옮기자마자 눈이 마주쳤다. 내 면도기로 면도를 하고 있었는지 인중 부분이 하얀 쉐이빙 크림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

나의 등장에 놀란 아이는 서툰 손짓에 생채기를 입고 말았다. 하얀 크림에 빨간 피가 배어 나왔다. 그리고 하얀 몸도 피만큼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이는 나를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였다. 소리를 쫓아 바라보니 얕게 받아 놓은 물 안에 흥건히 젖은 아이의 속옷이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눈치챈 나는 빠르게 아이의 전신을 훑어 내렸다. 뽀얀 엉덩이 그리고 허벅지 사이로 늘어진 성기가 보였다. 눈이 가늘어졌다. 분홍빛으로 빛나는 성기 끝이 유난히도 눈에 띄었다. 눈을 감고 있는 아이가 내 집요한 시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척이나 다행이라 생각했다.

무슨 상상으로, 무슨 생각으로 아이는 이 새벽에 몽정을 하고 만 것일까. 스무 살 혈기 왕성한 남자아이의 이상할 것 없는 현상이었지만 나는 집요한 시선과 의심으로 비겁하게 아이를 내 마음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어른이라는 보기 좋은 허울을 뒤집어쓰고 저 말랑한 성기 끝에서 나왔을 정을, 끙끙거리며 잠에서 깨어났을 아이의 열띤 얼굴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를 쫓던 열띤 시선의 의미를 헤아려 보자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행동은 정해져 있었다. 못 본 척 문을 닫고 나가는 것. 그것이 아이의 이복형이 해야 할 행동이었다. 그러나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상냥하고 다정한 어른 행세를 하고 싶었다.

훤히 드러난 엉덩이에서 시선을 떼고 한 걸음씩 다가가자 아이의 기다란 속눈썹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안아 주고 싶을 정도였다. 세면대를 꽉 그러잡은 손등을 쓸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었다.

떨고 있는 아이의 수치를 가운으로 가려 주고, 아파하는 상처를 어르고 달래 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형이었다.

“뒤돌아봐.”

“…….”

떠나지 않고 다가온 내 행동에 아이가 긴장하는 것이 보였다. 가운 아래의 어깨가 잠시 흔들렸다. 이대로 아이를 두고 가기 싫은 나는 다시 어르고 달랜다.

“상처가 났어.”

“제…… 제가 할…… 할게요.”

기특하게도 아이는 내가 가르친 대로 자기 주장을 내세운다.

“고집 피우지 마.”

그렇지만 아이의 주장을 들어 줄 생각이 없는 나는 떨고 있는 어깨를 잡아 내 앞으로 몸을 돌려세웠다. 세면대를 꽉 부여잡고 있던 힘은 얼마 버티지 못했고 손쉽게 내 앞으로 끌려왔다. 그러자 아이는 벗고 있는 아래가 떠올랐는지 허둥대며 앞섶을 가리려 끈을 찾았다.

끈은 내 손에 있었다. 가운의 앞섶을 직접 여며 주자 아이는 어쩔 줄 모르고 내 가슴팍만 바라보면서 쌕쌕 숨만 내쉬었다. 눈가가 붉은 것이 울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고개 들어.”

이 상황이 부끄러운 상황이 아님을 일깨워 주고 싶었다. 열망을 그리다 정을 쏟아 내는 행위가 결코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고개 들어.”

나지막한 경고에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역시나 떨리는 눈망울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용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아이는 코 밑에 하얀 크림을 묻히고 눈망울을 움직이며 내 얼굴을 좇았다.

내 눈썹에서 시작된 아이의 시선은 눈, 코 순서대로 향하다가 마지막엔 입술에 멈추더니 어느 때보다 오래 머물렀다. 그 시선은 속내가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간절했다. 다시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통이 조여 왔다. 이복동생에게 느끼지 말아야 하는 감정이 다시 스멀거리며 올라오기 시작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올려 아이의 입술을 훑어 내렸다. 하얀 크림을 닦아 주는 척, 내 욕심을 내비쳤다. 말랑한 입술을 손끝으로 만지자 아이가 몸을 떨며 입을 벌렸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아이의 속살을 보자 맘껏 탐하고 짓누르고 싶어졌다.

“물 들어가니까 입 닫아.”

“…….”

그럴 수 없는 나는 한심한 핑계로 아이를 다그친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랑하고 부드러운 입술을 거침없이 쓸어내려 탐하고, 기어코 정직한 탈을 뒤집어쓴다.

나를 담고 있는 눈동자를 바라보며, 아이에게 면도하는 법을 알려 준다는 이유로 탐해 보고 싶은 입술을 마음껏 만지고, 아이의 떨림을 만끽했다. 나의 진득한 손길을 느꼈는지 아이의 눈이 감기는 것이 보였다.

눈 감은 얼굴을 마음껏 쫓았다. 찰나와 같은 시간이 흐르고 더 이상 핑계 댈 수 없는 손길을 거두었다. 천천히 눈을 뜨는 아이의 얼굴에 아쉬움이 흐르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아직 안 씻은 것 같은데, 씻어.”

내 표정에 아이와 같은 감정이 드러날까 두려웠다. 무언가에 홀린 듯 동생을 탐했던 시간을 잊어야 했다. 멀어져야 했다. 서둘러 이 환상 같은 공간을 떠나고 싶었다.

“저기요.”

부름에 나는 떠나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아이가 눈망울에 눈물을 가득 담고 천천히 내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다시 환상 같은 공간 속에 머무르게 되었다. 천천히 다가온 아이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고 강한 목소리로 내게 속삭였다.

초콜릿이 달콤했다는 감사의 말과 나를 붙잡은 떨리는 손끝, 발간 목덜미까지도 분명하게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것이라. 결국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닿을 듯 말 듯 아이의 머리를 살며시 쓸어 줄 수밖에 없었다.

나를 향한 아이의 사랑을 발견한 지난 새벽 이후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내가 그 순수한 뜻을 같이 따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내 생각이고 결정이었다. 결혼이라는 비겁한 도피를 진행해야 할 만큼 나 또한 아이에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결정을 하게끔 만든 감정의 발화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아이를 데리러 갔던 날부터였는지, 식사 시간 나를 흘끔거리던 모습을 본 뒤인지, 아니면 나를 보는 눈빛에 열렬함이 담긴 것을 알고 나서인지, 그리고 그 수많은 모습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시작한 순간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한 사소한 모습까지 신경 쓰는 나 자신을 눈치채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 단순한 유희가 아님을 깨달았을 때 절망스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내가 가진 비틀린 세상이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갖지 못할 아름다움을 탐하고 있다는 것도, 그렇기에 나는 비틀린 세상을 애써 부정하고 회피하고 싶었다.

나는 주어진 위치에서 세상이 정의한 올바른 것들을 처리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이성을 만나 결혼해 아이를 낳는, 내 부모님들이 해 왔던 것들을 나 또한 해야 했다. 가진 것들은 매우 많았고 그것들을 짊어지는 것이 내가 살아야 할 삶이었다.

가지고 싶도록 욕심나는 것들은 없었다. 욕심내지 않아도 내 손아귀에 있었고 늘 곁에 머물렀다. 당연한 이치인 것처럼 말이다. 단조롭고 지루한, 어찌 보면 완벽한 삶에 존재하는 내 비틀린 관념은 작은 일탈 같은 것이었다. 그 숨구멍 같은 일탈 속에 있는 아이는 점점 커져 내 삶을 차지하려 했다. 나는 그것을 막고 싶었다.

나는 일탈들을 하나씩 정리할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아이의 수업을 마치고 저택에서 나오는 재형을 차 안에서 기다렸다. 그와의 관련된 것들을 끝내기 위해서였다.

“왜 오늘은 수업 내용 안 물어봐요?”

내 연락을 받고 차에 탄 재형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내가 오늘 자신을 부른 이유가 저와의 관계를 정리하기 위함인 것을 이미 눈치챘을 것이다. 그동안 수업을 하면서 감출 수 없는 아이의 순수함과 간절함을 봤다면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내게 사랑에 빠졌다는 걸,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을 것이다.

“내가 선배를 만날 일도, 또 선배 동생의 수업을 할 일도 이제 없는 거죠?”

이미 정한 사실을 그에게 되새기고 싶지 않아 침묵을 유지했다. 내 옆에 앉은 재형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성에 관해 수업했어요. 마지막 수업인 줄 알았다면 더 자세히 알려 줄 걸 그랬어요.”

“…….”

“남자도 남자를 보며 흥분할 수 있다고 말예요.”

나를 자극시키려 부러 말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유지하던 평정을 거두고 고개를 돌려 재형을 보았다. 그 역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마주해 왔다.

“이제야 나를 봐 주네요.”

“애하고 어떤 수업을 한 거야.”

기억이 불현듯 지난 새벽으로 거슬러 갔다. 면도를 하던 아이의 앞에 놓여 있던 속옷, 그리고 말라붙어 있던 하체. 아이가 왜 그 시간에 욕실에 있어야 했는지 이제야 납득이 갔다.

“스무 살 청년이 사랑에 빠진 눈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알려 주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선배도 모르고 있는 거 아니잖아요.”

들으라고 떠드는 말을 무시하려 했다. 듣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덮어 두고 싶었지만.

“피를 나눈 형제에게 발정한다는 것은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요”

“말조심해. 정신 차리고 앞뒤 생각하고 떠들어.”

적나라한 그의 발언이 불쾌했다. 나에 대한 발언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불쾌하지 않았으리라. 아이의 대한 발언이기에 더욱 그랬다. 잠잠하게 감춰져 있던 분노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내 경고에도 재형은 멈출 생각이 없는지 말을 이었다.

“선배.”

“그만 떠들어. 네 건방짐이 도를 넘어간다고 생각이 안 드나?”

“…….”

“그 똑똑한 머리로 지금 네가 해야 할 행동을 모르겠어?”

어쭙잖은 동정심을 갖고 있는 타인이 참견하며 떠들게 둘 수 없었다. 용납할 수 없었다. 피를 나눈 형에게 발정하는 동생을 신경 쓰고 관리해야 하는 사람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아이에 대한 내 감정의 결정을 내린 것이 무색하게 나는 다시 아이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고 싶었고, 더 이상 관심을 주고 싶지 않았지만 마음과 다르게 나는 아이를 또 쫓고 있었다.

재형과 대화를 마친 나는 바로 저택으로 들어가지 않고 한동안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생각을 정리하려 한 행동이었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했다. 머리가 아프도록 생각을 해 보아도 도돌이표와 같은 감정만 머릿속을 떠다녔다.

무거운 한숨과 함께 발걸음을 저택으로 옮겼다. 내가 벌인 일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그토록 원하고 좋아했던 수업을 이제 할 수 없게 됐다는 말을 전해야 했다. 수업이 미뤄질 때마다 종종거리는 마음을 내보였던 아이에게 실망이 될 만한 말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고민됐다.

평소와 다르게 2층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소리 없이 조용하고 더디기만 했다.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야 하는 불편한 마음과, 나 스스로 아이를 찾아간다는 생경한 기쁨이 마구 뒤섞인 채였다.

지나갈 때마다 의식하며 지켜보던 방문 앞에 섰다. 고작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는 사소한 행위에도 아이의 앞에서 난 늘 망설인다. 셀 수 없이 고민하고 또 생각한다.

우두커니 서서 눈을 감았다. 문 너머에서 전해 오는 아이를 느끼고 싶어서였다. 당당하지 못한 나는 작게 들려오는 기침 소리, 뒤척이는 움직임 따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내 비겁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눈앞이 캄캄했다. 그만큼 내 마음도 어둑해져 갈 때 희미한 아이의 기척이 들렸다.

“읏!”

감고 있던 눈꺼풀이 흔들렸다. 아이의 기척은 분명 흥분이 담긴 음성이었다. 흔들리는 눈꺼풀을 다잡고 아이의 기척에 집중하려 온 신경을 끌어모았다. 방 너머 아이는 무엇을 상상하며 흥분에 떨고 있는 것일까.

작은 흥분이 담긴 음성은 다시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침묵이 계속됐다. 그리고 이어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들……. 나는 내 마음대로 문 너머의 아이를 상상했다. 너저분한 생각과 음심이 동생을 짓밟고 더럽혔다.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을 멈춰야 하는 나는 결국 방문을 두드렸다.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하고 간결하게 소리가 울려 퍼졌다. 머릿속과는 달리 문을 두드리는 내 손은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파렴치한 생각일랑 하지 않은 사람처럼 태연자약했다. 대답 없는 방 안의 반응에도 다시 한번 두드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본래 이곳에 온 이유를 망각하고 안에 있는 아이를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저택의 다른 곳들보다 유난히 따듯한 방 안의 기운이 느껴졌다. 불이 훤히 켜진 채였다. 작지 않은 방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커다란 침대 위로 아이가 이불을 덮고 모로 누워 있었다. 자고 있는 척을 하는 건지 미동이 없었다. 배려심 있게 방에서 나가 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난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이의 곁으로, 조금 전까지 흥분을 간직하고 있었을 아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에 잔잔한 떨림이 심장을 지배했다.

베개에 묻힌 하얀 얼굴 위엔 붉은 홍조가 올라와 있고, 주먹을 쥐고 있는 손은 뼈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이는 잠이 든 것이 아니었다.

“자는 건가?”

알고도 모른 척 흘리듯 말을 건넸지만 당연히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외로 아이는 꿋꿋이 자는 척을 했다. 내 물음에 작은 반응이라도 보일까 싶어 기민하게 시선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얇은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리고 기다란 속눈썹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 안쓰러운 떨림을 만지고 싶고, 느끼고 싶었다. 허리를 숙여, 누워 있는 아이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손을 뻗어 그 얼굴에 가져갔다.

“…….”

아이의 앞에서 나는 또 망설이고, 생각한다. 조금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아이를 만지지 못하고 손을 거두었다. 숙였던 허리도 똑바로 세웠다. 자꾸 선을 넘으려는 나를 다잡아야 했다. 한발자국 떨어져서 눈으로만 담기를 몇 분째, 아이의 눈 밑이 발갛게 물드는 것이 보였다.

여기서 나가야 했다. 발갛게 물든 눈 밑을 당당하게 볼 자신이 없었다. 서둘러 몸을 돌려 나와 닫힌 문에 등을 기대섰다.

좀처럼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얼마나 서 있었을까. 고요했던 침묵 사이로 아이가 내게 숨기고자 했던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탁탁. 마찰이 이루어지는 소리가 규칙적으로 이어진 끝에…….

“아앗! 흐…읏……!”

환희에 찬 아이의 들뜬 음성이 들려왔다.

“하…아……하아.”

절망스러운 기분이 머릿속을 휘몰아쳤다. 이젠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벗어날 수도, 멀어질 수도 없었다. 나를 향한 아이의 열망을 피하지도 못하고 되돌려 줄 수도 없어서, 난 그 어떤 것에도 휩쓸리지 않은 사람인 것처럼 다시 태연한 가면을 쓰고 말았다.

❊ ❊ ❊

올망졸망한 코끝에서 흘러나온 고른 숨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어머니와의 외출 중에 병증을 나타내며 자해를 한 아이는 좋지 않은 상태에 비해 숨 쉬는 것이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잠이 든 아이와 함께 있는 방 안은 스탠드 조명만으로 곁을 밝혔기에 사위가 어둡게 내려앉아 있었다. 꼭 닫은 창문과 작은 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막아 놓은 커튼. 커다란 공간이지만 조여들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아이의 방이었다. 신경 써서 꾸몄을 방일지라도 아이에게는 왠지 갑갑하고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할 것 같았다.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생각됐다.

쌕쌕거리는 연약한 숨 사이로 무겁고 깊은 숨이 내게서 쏟아져 나왔다. 편안하게 눈을 감은 아이의 눈꺼풀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손안에 있는 희고 마른 손을 조금 더 그러잡았다. 미지근한 체온과 부드러운 살결이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뿐이었다. 같이 있어 주는 것, 아이의 마음을 모른 체하지 않고 받아 주는 것, 점점 사랑에 목말라하는 아이를 그저 바라보는 것.

상대방에게 얼마나 잔인한 행동인가 수없이 생각하고 질책했다. 지난날 무의미하게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반복해 온 행위가 아이에게만은 결코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무너지고 있었다.

손을 잡는 것 외에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시선으로만 아이를 좇았다. 곱게 뻗은 눈썹, 그 아래에 감긴 투명하리만큼 얇은 눈꺼풀, 숱 많은 길고 짙은 속눈썹. 20년 전 처음 보았었던 아기일 때 모습과 겹쳐 보여 흐릿하게 웃음이 나왔다.

내 시선이 아직까지도 앙증맞은 모양을 하고 있는 코끝에 조금 더 오래 머물렀다. 그리고 혈색이 사라진 입술을 스쳐 흰 목에 감긴 거즈까지 내려왔을 때 비로소 멈추었다.

손끝이 핏물로 붉게 물들 정도로 목을 자해하던 아이가 도대체 어떠한 마음으로 그리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다시 그러한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지만 아이는 그저 나를 보고 빙긋 웃기만 했다. 내 마음이 어떻게 타들어 가는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곤 낭자한 상처를 가린 거즈 위를 살짝 쓸어내렸다. 오늘의 병증으로 인한 행동이 흉터로 남지 않길 바랐다. 또한 마음에도 상처 입지 않길 바랐다.

이 공간에서 도망치고 싶음 마음 반, 머무르고 싶은 마음 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미동 없이 곤히 자고 있는 아이를 좀 더 지켜보다 방 안을 나왔다.

내 방 안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손안에 따듯한 온기가 머무르는 것 같았다. 염원과 사랑을 담아 용기 내어 뻗었을 하얗고 마른손이 눈앞에 잔상처럼 떠올랐다. 털어 내려 여러 번 눈을 감았다 떠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암전을 거듭할수록 더 선명하게 떠오를 뿐이었다.

아이의 곁을 지키다 도망치듯 들어온 방 안이었다. 하지만 내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갈 길을 잃은 사람처럼 안주하지 못하며 눈앞에 있는 그림을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새카만 지면에 빨려 들어가듯이 흩뿌려진 새하얌이 나를 꾸짖는 것 같았다. 나는 이 아름다움에 반해 어머니의 그림을 내 방 안으로 옮겨 놓았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대신하여 한 행동이었다. 소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그림에서 나는 아이를 떠올렸다.

손안에 쥘 수조차 없어 덧없이 빠져나가 새카만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마는 저 새하얀 아름다움이 꼭 아이와 같아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비틀어진 내 세상의 한없이 포근하고 따듯한 유희가 어느새 마음이 되어 버린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그림의 소멸처럼 아이가 내 곁을 떠나 버리면 어쩌나 하는 졸렬한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붉은빛의 핏물을 울컥 토해 내던 창백한 얼굴이 내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아직은 아니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 하더라도 아직은 아이가 내 곁을 떠나선 안 되었다. 자꾸만 몸과 마음이 위축되어 사라지려 하는 아이를 나는 붙잡고 싶었다.

그림에 시선을 거두려 눈을 감고 침대 위로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다. 조용한 침묵과 아득한 어둠이 내 몸을 타고 내렸다. 선득하리만치 외로운 기분이 들었다. 또다시 나는 아이를 생각하며 흔적을 그리기 시작한다.

나를 올려다보던 애달픈 눈동자, 미세하게 떨리던 속눈썹, 꾹 다문 붉은 입술. 손안의 온기로 시작된 작은 흔적은 어느덧 아이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같이 있어 달라는 자신의 부탁이 거절당할까 두려움에 떠는 눈빛이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대신에…… 저랑 같이 있어 주세요.’

꺼질 듯한 목소리를 겨우 내어 부탁하던 아이가 안타까웠다.

‘이대로 죽어 버릴까 봐……. 무서워요. 같이 있고 싶어요.’

죽음의 무서움을 토로할 곳 없는 외로운 아이의 속삭임이었다. 그 순간에 나는 숨이 가빠지는 것을 애써 참아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어도 내 마음속 흔들림을 숨기는 것은 매우 고약하고 어려운 일이었다.

담담하게 고백하는 그 연약한 마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눈에 띄게 다가왔다. 공포처럼 커다랗게 밀려오는 아이의 감정에 숨을 크게 들이마셔야 했다. 나도 모르게 아이의 앞에서 탄식과 같은 쓴 숨을 쏟았다. 초조한 눈빛으로 내 모든 것 하나하나를 좇는 아이의 기민함이 느껴졌다. 내 마음을 아이가 눈치챘을까?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수분의 짧은 시간 동안 말없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정말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다 해 주고 싶었다. 비록, 내가 아이를 사랑할 수 없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사랑마저 주고 싶을 정도로.

점점 시들어 가는 모습이 보일 때마다, 혹은 사랑의 열병에 절여지는 것 같은 녹녹한 모습을 볼 때마다 수없이 다짐해 왔던 내 기준들이 허물어졌다. 나는 결국 아이에게 함락되고 마는 것이었다.

‘네가 원하는 것이 그거야?’

비겁한 마음과 책임은 아이에게로 넘겨 버리고.

‘그래, 그렇게 하자.’

누구보다 원했던 이기를 취하고 말았다. 말을 내뱉고 나니 생각보다 머릿속이 차분했다. 얼마 전 아이에게 고백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나를 좋아한다는, 처음부터 좋았다는 그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들려서, 상상하지 못할 만큼 어처구니없는 사실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바람에 내가 어딘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를 좋아하는 것과 곁에 같이 있어 달라는 마음이 잘못된 것이라도, 잘못되지 않은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아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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