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0/27)

고택에 돌아가는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처리됐다. 원래 내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이 관장님이 뜻이었기에 돌아가는 것도 역시 그녀의 뜻으로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아버지인 회장님께서도 내가 고택을 돌아간다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회장님께 실망을 하거나 서운하다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혼외자인 내 위치와 자리가 원래 그런 것이었다.

그래도 못내 신경이 쓰이셨던 건지 고택을 떠나기 전날 처음으로 회장님께서 내 방에 찾아오셨다. 이 저택에 온 뒤로 한 번도 없던 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아파도, 사경을 헤매도 찾아와 주는 일이 없었던 회장님이었다.

그리고,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 것도 처음이었다.

“바쁘다 보니, 이렇게 둘이 얘기 나눌 기회도 없었구나.”

엄마가 사랑한 회장님은 내 기억 속에선 무심한 남자였다. 엄마가 그리움과 외로움에 사무쳐 위태위태해 보일 때 즈음 찾아오는, 엄마의 생일이나 내 생일과 같이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야 잘 찾아와 주지 않는 무심하고 바쁜 남자였다.

그와 똑 닮은 얼굴을 한 회장님은 차갑고, 무섭고, 때로는 다정한 사람이기도 했다. 엄마와 나를 향한 애정엔 늘 자로 잰 듯한 선이 있었고 그만큼 냉정했다.

지금도 나를 보는 회장님의 인자한 얼굴 속엔 딱 정해진 만큼의 애정이 흐르고 있었다.

“괜찮아요. 제가 아파서 자주 못 뵌걸요.”

그래도 나와 엄마는 그 애정마저도 좋아, 잊힐 때쯤 찾아오시는 회장님을 늘 기쁘게 맞이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고택으로 돌아가기 전이 되고서야 찾아오신 회장님이 반가웠다.

“이제 고택으로 돌아가면 건강부터 챙겨야지.”

“네.”

“고택으로 돌아가는 것 잘 생각했다. 유모도 그대로 너를 돌봐 줄 테니 문제는 없을 게다.”

“…….”

“그리고, 네 형은 잊거라.”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회장님이 내게 당부하는 말씀들 중에서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네 형은 외국으로 내보낼 거다. 새로운 아이 옆에 붙이고 몇 년 고생시키고 돌리다 보면 정신 차릴 테지.”

“…….”

“영우 너도, 마냥 어리지 않으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지.”

차마 회장님의 얼굴을 볼 수 없어 고개를 숙이자 바들바들 떨리는 두 손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이불 아래로 떨리는 손을 감추었다.

“네 형 지금 정신이 나갔어. 그러니 그랬던 거야. 제정신을 가진 놈이라면 순진한 제 동생을 두고 그런 짓거리는 안 했을 거다.”

나와 그의 부정을 알았음에도 평정을 보이는 회장님이 모습이 기이했다. 그 냉정한 모습 앞에서 그게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어찌 된 영문인자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제정신을 갖지 못한 사람은 나였다. 형을 두고 그런 짓을 한 사람도 나였다.

“다 내 허물이다. 내가 그놈 대신 사과하마. 그러니 너도 돌아가서 다 잊거라.”

“…….”

“네 생활은 책임지고 봐줄 테니 다시는 학영이 앞에 나타나지 말거라.”

완고한 음성이 내게 경고했다. 나는 손에 힘을 주어 떨리는 손을 멈추려 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강한 떨림이 전신으로 퍼져 머릿속까지 엉망이 되었다. 정신마저 뒤죽박죽인 상황에서도 회장님의 진심 하나는 알 수 있었다. 회장님 자식 중엔 나는 없었다. 회장님이 자식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다. 바로 그였다.

자식의 허물을 인정하고 자식에게 해가 되는 존재는 저 멀리 치워 버리는 결단력이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나와 엄마는 회장님의 쓸모없는 아름다운 수집품이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래도 이렇게 눈앞에서 부정당하는 기분은 참으로 끔찍했다.

그의 탓이 아니고 전부 내 탓이라 전하려고 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만약 내 탓이라고 사실대로 말하면 아무것도 갖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다.

회장님의 경고에 대답을 하지도 못했고,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했다. 그저 내 방을 나가시는 회장님의 뒷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뻐끔뻐끔,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이 입을 벌려 내가 준 먹이들을 먹고 있었다. 수면 위로 떠오른 작은 먹이들로 모여드는 열대어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없었던 시간 동안 죽지 않고 잘 지낸 모습을 보자니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영우 군, 밥 먹어요.”

“응.”

유모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손에 들고 있던 먹이통의 뚜껑을 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소리가 나는 마룻바닥을 조심조심 걸으며 밥상이 차려져 있을 내 방으로 향했다. 그 길목엔 엄마의 방이 있었지만 나는 그곳에 시선 주지 않고 걸었다. 꼭 원래 자리하지 않았던 무의 존재인 것처럼.

내 방에 들어가 차려진 상 앞에 앉자 유모가 수저를 내 손에 들려주며 말했다. 그녀는 하루 종일 열대어 앞에 앉아 있는 내가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열대어 밥 너무 많이 주지 말아요.”

“응. 알아, 근데 쟤들이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아.”

앉은뱅이 상 앞에 앉아 유모가 준 수저를 들며 내가 말했다. 유모는 내 앞에 차려진 죽 그릇의 뚜껑을 열어 주며 가만히 내 얘기를 들어 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내가 좋은지 밥을 주면 더 달려들어서 먹어. 유모가 줄 때하고 달라.”

“제가 줘도 잘 먹던데요?”

“아냐, 심지어 쟤들 내가 온 뒤로 살이 올랐어.”

너무 뜨겁지도 않고 먹기 좋게 미지근한 죽을 떠먹었다. 아직 한가로운 낮임에도 오늘 세 번째 먹는 식사였다. 바짝 마른 몸으로 고택에 돌아온 나를 위해 유모는 하루에도 여러 번 상을 차렸다. 내가 입맛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어떻게든 먹이려고 애를 쓰는 그녀를 위해 군말하지 않고 죽을 넘겼다.

“영우 군이야말로 살쪄야 해요.”

“알겠어.”

“이 정도까지 마르진 않았었는데…….”

“원래 말랐는걸, 뭐…….”

내가 고택에 돌아오게 된 이유를 유모는 알고 있었다. 비록 진짜가 아닌 표면적이더라도 그 이유가 유모의 근심을 늘게 만든 것은 사실이었다.

엄마와 살던 고택을 그리워하다 자살 기도를 한 나를 회장님이 어쩔 수 없이 다시 돌려보냈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유모가 알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복형을 사랑하는 동생이 그 사랑을 견디지 못해 도망쳐 온 것.

“이거 먹고 마당에 나갈까요? 며칠 있으면 기온이 뚝 떨어진대요. 추워지기 전에 나가 봐요.”

“응. 알겠어.”

항상 집 안에서만 지내는 내가 답답해하는 걸 아는 유모는 조금이라도 날씨가 좋고, 조금이라도 내 컨디션이 좋으면 바깥마당의 지붕 달린 마루에 나를 데리고 나갔다.

곧 가을도 지나고 겨울이 올 터였다. 창밖으로 보이는 빨갛게 물든 이파리마저도 팔락팔락 떨어지는 계절이었다. 내가 사는 낡은 고택은 아무래도 웃풍이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그 기운을 느낀 유모는 벌써부터 창틀에 문풍지를 바르기 시작했다. 내 질병은 겨울에 특히 취약했기에 월동 준비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유모, 나 오늘은 그거 먹고 싶어.”

“어떤 거요?”

조금씩 죽을 떠먹으며 유모에게 오늘 저녁 반찬을 요청했다. 유모는 입이 짧은 내가 무언가를 먹고 싶다 말하는 걸 굉장히 반가워했다. 병색이 완연한 모습으로 고택에 돌아온 뒤부터 내가 원하는 음식은 건강에 썩 좋지 않은 것이라도 예전과 달리 어떻게든 해 주려고 했었다.

“돈가스.”

“이틀 전에 먹었는데 또 먹고 싶어요?”

“응, 치즈돈가스 먹고 싶어.”

“너무 기름져서 소화가 잘 안 되는데, 그거 먹고 고생했잖아요.”

“그래도 맛있어. 오늘 해 줘.”

이곳에 와서도 그를 그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와 함께 있었던 순간순간들이 내게는 각인처럼 남겨져 있기에.

돈가스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지난봄에 먹었던 눅눅한 튀김옷에다 누린내가 나던 치즈돈가스가 아닐지라도 먹고 싶었다.

“크림 수프도 같이.”

“알겠어요. 죽은 그만 먹을 거예요?”

“응. 토할 것 같아.”

몇 수저를 먹다가 입에 넣지 못하고 구역질을 하며 수저를 내려놓자 유모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상을 들고 나갔다. 나는 잠시 이부자리에 비스듬히 누워 옆을 바라보았다. 네모난 쟁반 위에 놓인 약그릇과 수저가 보였지만 먹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결국 수저 옆에 놓인 작은 사탕 하나만 집어 입에 넣었다. 달콤함이 혀를 타고 입 안에 퍼졌다.

약을 먹지 않은 걸 유모가 알기 전에 창문을 열어 그릇에 담긴 약을 흘려 버렸다. 잠깐 열린 창 사이로 쌀쌀한 가을바람 냄새가 들어왔다.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좋아 눈을 감고 코를 창가로 내밀었다. 스쳐 가는 쌀쌀한 냄새에 코끝이 조금씩 시려 올 때쯤 미닫이문 너머에서 마당으로 나가자는 유모의 외침이 들렸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 외투를 걸치고 방문을 나섰다. 양말을 신은 발이 넓은 저택의 서늘한 대리석 바닥이 아닌 고택의 낡은 복도 마룻바닥을 딛는다.

끼익끼익. 변하지 않은 익숙한 소리에 웃음이 났다.

내가 그의 곁에 없어도, 시간은 흘렀다. 서늘했던 날씨는 쌀쌀해졌고, 쌀쌀한 날씨는 추워져 간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 아직도 사랑하고 있으며…… 지금도, 그가 보고 싶다.

따끈한 손난로와 두툼한 담요를 두르고 유모와 함께 마당 마루에 앉아 붉고 노란 예쁜 단풍잎을 구경했다. 모처럼 바깥바람을 쐰 나들이는 내게 생기를 가져다주어 덕분에 저녁 식사로 유모가 신경 써서 만든 치즈돈가스를 반이나 먹을 수 있었다. 크림수프도 그릇 바닥이 보일 만큼 잘 먹자 유모가 무척이나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30분도 채 안 된 나들이가 내 몸에 무리였는지 늦은 밤이 되자 고열이 치솟았다. 어지러운 머리, 울렁거리는 속 때문에 저녁에 맛있게 먹은 돈가스와 수프를 모조리 토해 버렸다.

유모가 곱게 갈아 준 해열제를 먹고 자리에 누우니 정신이 혼몽했다. 높은 고열 탓이었다. 내 곁에 앉아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 주는 유모의 손길을 느끼고 있자니 꿈만 같았다.

아프거나 혹은 체력적으로 한계가 올 땐 이렇게 비몽사몽과도 같은 정신일 때가 많았다. 지치고 너무 힘들다 보니 내가 정신을 놓는 것이었다. 물론 일부러는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그러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런 상태였다. 떨어진 체력과 높은 고열로 눈앞에 유모가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그녀는 비상사태를 대비하여 전화기를 바로 옆에 두고 내 곁을 지키고 있었다.

종종 있는 상황이었다. 아파서 잠 못 이루는 외롭고, 적적한, 깊고 늦은 밤.

저택에 머무르던 마지막 날 밤이 떠오른다. 오늘과 비슷한 날이었다. 최저치로 떨어진 체력과 회장님과의 대화가 나를 극한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이 상태로 내일 고택에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시름시름 정신을 놓고 있을 때 고요함을 비집고 그가 나타났었다.

늦고 깊은 어두운 시간, 내가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보는 그의 얼굴을 제대로 눈에 담고 싶었으나 자꾸 시야가 흐려져 볼 수 없었다. 예민해진 청각과 촉각만으로 다가오는 그를 느끼며 뜨거운 숨만 쌕쌕 내뱉기를 수차례, 서늘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내 이마에 내려앉았다.

닿는 손길이 너무나도 좋아 속눈썹을 바들바들 떨었다. 더 이상 당신을 사랑 못 하겠다고 말한 주제에 너무나도 좋아서, 흐느끼듯 숨을 쉬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그가 천천히 쓰다듬으며 품에 안아 주었다. 힘없이 늘어진 몸은 그를 마주 안지 못했지만 그가 내게 속삭이는 말은 또렷이 들을 수 있었다.

‘너는 내가 내 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게 하고, 또 그렇지 않게 만들기도 해.’

그는 언제나 내게 멋진 사람이었다. 때때로 다정하며, 상냥하고, 따듯했다. 내게 멋지지 않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영우야.’

그가 나를 부르는 소리를 좋아했다.

‘사랑해 줘.’

그를 사랑했다.

‘나를, 사랑해 줘.’

그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흩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간절한 음성이 내 귓가에, 머리에 또 가슴에 깊이 파고들었다. 자신을 사랑해 달라는 나에게는 제일 쉬운 그의 부탁을 어찌 들어주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혼몽한 정신 속에서도 나는 그를 그리고, 그를 원한다. 그의 부탁이 삶의 전부라.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의 전부여서 어제도, 지금도, 내일도 내 가슴 안의 그를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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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으로 보이는 나뭇가지에 꽃눈이 솟아 있었다. 며칠 전부터 뾰족뾰족하게 솟을 기미가 보이더니 오늘 그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내 유년 시절 기억의 시작부터 늘 같이한 나무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어두울 때나 화창할 때나 언제나 같은 자리, 내 창가 앞에서 곁을 지키던 나무였기에 평소보다 더 유심히 바라보았다.

봄이 한 걸음 다가왔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였다. 꽃눈을 자세히 보고 싶어 유모 몰래 창문을 열어 한동안 지켜보았다.

매해 보는 모습이지만 언제나 새롭게 다가왔다. 추운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워 내는 저 나무를 보고 있자면 내가 다시 새로이 견디어 낼 수 있는 시간을 선물 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살아갈 힘을 얻었다.

흐르는 시간을 견디며, 외로움을 견디며, 사랑을 하다 보면 언젠가 저 꽃눈처럼 결국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꿈같은 생각을 한다.

나는 여전히 아프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고택에서 세상과 떨어져 살고 있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나 자신을 아끼려 노력하고 나 스스로를 사랑하려 애쓰고 있다. 간절한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라도…….

“영우 군! 마루에 나와 보세요!”

“응!”

유모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서둘러 창문을 조용히 닫고 방 밖으로 나갔다. 좁고 긴 복도를 살금살금 걷던 습관을 버리고 누군가처럼 거침없이 저벅저벅 걷는다.

“이것 보세요. 알에서 새끼가 나왔어요.”

“와…….”

마루에 나가니 유모가 허리를 숙인 채로 어항을 들여다보며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지난주 열대어가 임신을 하고 알을 낳자 따로 부화시키는 어항에 옮겨 놓았었다. 새끼 물고기가 태어나길 기다리길 며칠째 오늘 드디어 알들에서 새끼들이 태어난 것이다. 나는 내가 기르던 열대어와 태어난 새끼들을 구경하기 위해 무릎을 꿇고 어항 앞에 바짝 다가가 앉았다.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 코끝이 부화 어항에 닿았다.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물속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생동감 있는 그 모습을 보자 마음이 뻐근해져 왔다.

오늘은 꽃눈부터 열대어 새끼까지,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로 가득한 날이었다.

“새 식구가 늘었네요.”

“응. 잘 자라 주었으면 좋겠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치즈돈가스 만들어 줄까요?”

내 곁에서 열대어들을 같이 지켜보던 유모가 허리를 세우며 물었다. 기름진 음식이라 잘 안 해 주려고 하는 돈가스인데 선뜻 해 주겠다는 걸 보니 오늘은 그녀의 기분도 좋은 것 같았다. 나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크림수프도 같이 만들게요.”

서둘러 주방으로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어항으로 향하는 내 시선이 낯선 기척에 마루 쪽 큰 창에 멈춰 섰다. 창 너머 정원 마당에 깔린 자갈이 바퀴에 짓이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 자갈밭을 거침없이 걸어오는 소리.

낯설고도 익숙한 소리에 가슴이 쿵쾅거렸다.

곧이어 똑똑, 둔탁한 나무 소리가 두 번 정확하게 울리자 나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빠르게 현관을 향했다. 쿵쿵! 내 마음의 울림인 양 마룻바닥이 소리를 냈다.

유모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과 함께 현관으로 다가왔다. ‘올 사람이 없는데……’ 걱정스러운 중얼거림을 한 그녀는 다시 한번 똑똑, 울리는 소리에 방문자를 확인했다.

“누구세요?”

세상과 단절된 이곳을 찾아올 이가 없음을 아는 유모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뜻밖의 방문자는 약간의 침묵 후에 답을 해 왔다.

“지학영입니다.”

“…….”

“……영우를 만나러 왔습니다.”

대답을 들은 내 가슴은 뛰고 있는 걸까. 설레고 있는 걸까.

나의 세상. 지학영.

나의 전부. 지학영.

그리고, 지영우의…… 나 지영우의…….

지학영.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그대에게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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