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화 (11/27)

나의 두 번째 외출은 소란스러웠다. 그는 회사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나를 안은 채 집에 돌아왔다. 내가 경기를 일으키듯 기침하는 모습을 재목격한 관장님은 매우 놀라셨다. 그러고 보니 이 집에 온 뒤로 크게 경기하듯 아팠던 것이 두 번이었는데 그 두 번을 관장님이 전부 목격하신 거였다. 나는 그녀에게 면목이 없어졌다.

병원에 가지 않은 나는 다시 내 방 침대에 누워 의사의 진찰을 받았다. 딱히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주사를 맞고, 호흡기를 다시 쓰고, 약을 처방받는 것이 다였다. 알고 있었다. 내 병은 딱히 방법이 없다는 걸.

지금 내 곁에는 사용인이 지키고 서 있었다. 많이 놀라신 관장님도 안정이 필요했다. 거머리 같았던 한 실장은 관장님 곁에 있는 것 같았다. 내 곁을 내내 지키던 그는 회사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 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내가 쏟은 피로 검붉게 물든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 피가 꼭 죽음을 연상케 해서 내 숨을 죄이는 것 같았는데 그가 이 방을 나가 다행이었다.

“저기요.”

“네, 도련님.”

“이제 자가 호흡 가능한데, 마스크 벗으면 안 될까요?”

“박사님께서 계속 하고 계시랬어요. 죄송합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분노나, 화를 내는 아이가 아니었다. 나의 무딘 감정을 늘 흘러가는 상황대로 맡겨 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의 무력함이 나를 화나게 했다. 하지만 죽음이 무서운 나는 비겁하게도 내 분노의 행동을 표출할 수 없었다. 나의 숨통을 쥐고 있는 호흡기에 의지한 채 가쁜 숨만 내뱉을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이거 벗으면 죽는대요?”

내 말투는 못나게도 비뚤어진 말투였다. 화를 잘못된 방향으로 쏟아 냈다. 나는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도련님…….”

“지금 몇 시예요?”

“저녁 9시입니다.”

사용인은 내 비뚤어진 반항에 대답을 못하고 말을 흐렸지만 시간을 묻는 곤란하지 않은 질문에는 바로 대답해 주었다. 벌써 저녁 9시였다. 커튼으로 꽉꽉 닫힌 창밖 너머는 어둠이 가득 내려앉았을 것이다. 나는 이제 그 어둠조차 허락되지 않은 방 안에서 조용히 소멸되어 가고 있다.

눈이라도 조금 붙이면 좋으련만 잠은 오지 않았다. 차라리 뭐라도 먹어 신경을 돌리고 싶었지만 배고프지 않았다. 지루했다.

고택에서는 창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유모가 사다 주는 책을 읽으며 낮을 이겨 내고 밤을 지새웠다. 이제 내 집인 이 저택에선 세상 공부와, 그를 생각하고 그리는 것만이 나의 지루함을 달래 줄 수 있었다.

“뭐라도 읽게 책 좀 갖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나의 부탁에 사용인이 방문으로 향했다. 그녀는 내 곁에서 뭐라도 할 수 있음에 감사해하는 것 같았다.

“……이사님.”

사용인이 나가기도 전에 먼저 문이 열렸다. 그였다. 몇 시간 만에 다시 본 그는 슈트가 아닌 집에서 입는 편한 옷차림이었다.

“내가 여기 있을게. 나가 있어.”

“네, 알겠습니다. 영우 도련님께서 책 갖다 달라고 하셨는데 그 책만 다시 가져오겠습니다.”

“책?”

사용인의 말에 반문하는 그에게 내가 대신 대답했다.

“지루해요.”

그는 나를 한번 보고 사용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용인이 나간 내 방은 그와 나의 침묵으로 고요했다. 나는 내 침대 맡에 앉은 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는 어딘가 피로해 보였다. 하루가 저무는 시간답게 그의 턱은 푸르스름했고 표정도 어두웠다.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나 때문 이길 바랐다. 그가 나로 인해 영향받길 원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었다.

“목은 좀 어때.”

그가 내 목을 보며 말했다. 그가 말한 내 목은 아까 잔뜩 할퀴고 그어 버린 상처를 묻는 것이었다. 얇은 붕대가 둘둘 말린 목은 연고를 발랐음에도 통증으로 따가웠다. 괴기스러웠을 나의 행동에 관장님과 그가 아마도 놀랐을 것이다.

“괜찮아요.”

“흉이 남을 수도 있다고 하더군.”

“괜찮아요.”

“앞으로 그런 짓 절대로 하지 마.”

“…….”

그가 미간을 주무르며 말했다.

“지영우, 대답.”

“네…….”

그의 주문에 나는 또 대답을 하고 만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아까와 같은 기침이 터진다면 또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가 내게 대답을 원했고 나는 그가 원하는 대로 대답을 했을 뿐이었다.

“다음번에도 또 그러한 행동하면…….”

“……하면요?”

“가만두지 않아. 묶어 놓든 기절시키든 어떻게든 못하게 할 테니.”

“…….”

“하지 마.”

그의 무서운 협박이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호흡기 안의 내 입술이 웃음으로 흐물흐물 풀어졌다. 내 숨으로 뿌예진 호흡기 속에서 웃음을 보았는지 그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웃어? 웃음이 나와?”

그의 타박에도 웃음이 계속 나왔다. 쌕쌕거리는 숨을 내뱉으면서도 기분 좋은 웃음이 흘렀다. 나도 내가 왜 이렇게 웃음이 나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우려하는 그의 마음을 보아서일까? 그의 협박과 타박에 기분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내 머릿속에선 엉큼한 욕심이 떠올랐다.

“그럼…….”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였다. 나름 번뜩하고 떠오른 술수였지만 내 입 밖으로 꺼내기 차마 민망했기 때문이다. 내 작은 목소리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시했다. 용기를 내고 다시 한번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그럼, 제가 그런 행동 안 하는 대신…….”

나의 부탁은 사용인의 노크 소리에 묻혔다. 부탁한 책을 가져온 모양이었다. 그가 들어오라 대답하자 문이 열렸다. 사용인은 책 두 권을 내 침대 옆 협탁 위에 올려놓고 인사를 하며 조용히 나갔다. 그가 사용인이 가져온 책을 들어 올리며 표지를 살펴보았다. 나는 누워 있었기 때문에 어떤 책인지 볼 수 없었지만 중단된 말을 하고 싶어 안절부절못한 마음이었기에 책에는 관심이 없어 괜찮았다.

“다시 말해 봐. 안 하는 대신 뭐?”

뒷말을 들어 주길 바라는 나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그가 다시 물어봐 주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그 고고한 시선을 눈으로 좇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기침으로 상한 목구멍이 조금 따가웠다.

“대신에…… 저랑 같이 있어 주세요.”

꺼질 듯한 작은 목소리였다. 그가 듣지 못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같이…… 있어 주세요.”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또박또박 말을 꺼냈다. 한 번 내뱉고 나니 두 번째 말하는 것은 매우 쉬웠다.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그가 보던 책을 내려놓고 팔짱을 끼었다. 깊은 호수와도 같은 눈이 나를 파헤치듯 살펴보고 있었다.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공부하는 거 말고도, 오늘 저랑 같이 있어 주시면 안 돼요?”

“…….”

엉큼한 내 계획이, 생각이, 또한 바람이 그에게 닿기를 소망했다. 세상에 무지한 내가 탐욕과 욕망을 깨닫고 그 욕심들을 실현하기 위해 약은 수를 쓰고 있었다.

“무서워요.”

“뭐가.”

“이대로 죽어 버릴까 봐…… 무서워요. 같이 있고 싶어요.”

겁 없이 죽음을 말하는 나를 보며 그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탄식과 같은 숨을 내뱉었다. 어지간해서 표정을 드러내지 않는 서늘한 그의 얼굴에 언뜻 흔들리는 표정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나의 담담한 고백에도 그는 대답이 없었다. 흔들리는 표정을 지어 놓고서도 선뜻 나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거면 돼?”

수 분의 시간이 지나고, 그가 입을 열었다.

“네가 원하는 것이 그거야?”

어딘가 억눌린 듯한 그의 음성이 재차 터졌다. 늘 무심하고 건조했던 그의 변화였다. 고요한 호수와 같던 그의 눈이 바람을 맞이한 풍랑처럼 휘몰아쳤다. 나는 그런 그의 변화가 기껍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네…….”

“…….”

링거 바늘이 꽂힌 팔을 들어 호흡기를 잠시 떼어 냈다. 나는 내 마음을 명확하고 뚜렷하게 그에게 표현하고 싶었다. 나를 병자로 정의하는 호흡기를 떼고 잠긴 목을 가다듬었다.

“맞아요. 제가 원해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삼키고 내 귀와 눈을, 내 정신을 멀게 했다. 가져서는 안 될 마음에 대한 죄책감도 잠시 제쳐 두고, 관장님을 향한 죄스러움을 뒤로하고 그를 붙잡았다. 이기적인 나를 그가 용서하길 바랐다. 세상이 용서하길 바랐다.

“그래. 그렇게 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요해진 그의 눈이 나를 보며 말했다. 무심하게 아무런 일이 아닌 것처럼 그가 담담히 내뱉었다. 원하는 답을 받아 낸 나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내 웃는 얼굴을 오래 바라보다 내가 벗어 낸 호흡기를 다시 씌워 주었다.

다시 병자 신세가 된 나는 호흡기가 답답하지 않았다. 내 곁엔 그가 있기에 괜찮았다. 나는 시트 위로 늘어진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커다란 손이 내 손을 그러쥐었다. 단단하고 따듯하게 감겨 오는 체온이 눈물 날 정도로 좋았다.

나와 그의 집, 그리고 내 공간에서 그와 함께하는 이 순간이 가슴 벅찰 정도로 설렜다. 그는 이런 내 마음을 모를 것이다. 사랑이란 가장 소중한 감정을 깨닫고 있는 나의 세상이 반짝반짝 눈부시도록 빛나 보였다. 그가 내게 찬란한 빛을 선물해 주었다.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전부인 방은 사물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만 밝았다. 나는 그가 밤새 잡아 주었던 내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체온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말없이 내 손을 잡고 곁에 같이 있어 주었다. 내가 까무룩 잠들 때까지 말이다. 잠이 오려는 것을 참아 보려 애썼지만 그의 따뜻한 온기에 불면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달콤한 잠이 쏟아졌다. 흐릿한 눈을 애써 떠 가며 그의 섬세하고 수려한 얼굴을 본 것이 어젯밤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는 내가 잠이 들자마자 떠났는지 아니면 내도록 같이 있다가 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가 내 곁에 밤새 같이 있었다고 믿고 싶었다. 그가 그렇게 하겠다고 내게 말해 주었기에.

“도련님, 깨셨어요?”

목이 마른 탓에 잘게 기침이 나오자 문 앞에 앉아 잠시 졸고 있던 사용인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눈을 비비며 거칠한 목소리로 사용인에게 청했다.

“목이 말라요. 물 좀 주세요.”

내 코와 입을 막고 있던 호흡기는 제거되어 있었다. 아침에 의사 선생님이 다녀간 흔적이었다. 나의 병을 진찰하는 의사 선생님은 한 번도 내 앞에서 병에 대해 얘기해 주지 않았다. 고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진찰을 하고 늘 괜찮다고 말하며 내게 인자한 웃음을 보이곤 밖에 나갔다. 내가 추측하기론 아마 회장님이나 유모에게 내 병의 진도에 대해서 말했으리라. 지금 이 저택에서도 마찬가지다 병의 상황은 그나 회장님 또 관장님만이 알고 계실 것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명목하에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이 세상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로 만들었다. 나 자신에 대해서 모른다는 것, 알지 못한다는 것은 얼마나 그 자신에게 커다란 공포를 주는지 과연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도련님, 배는 안 고프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사용인이 가져다준 따듯한 물을 조금씩 나누어 마셨다. 물이 내 위장을 지나가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속이 비어 있었다. 하지만 딱히 배고픔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저으며 밥 생각이 없다고 표현했다.

“이사님이 도련님 일어나면 미음이라도 꼭 챙기라고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의 얘기가 나오자 귀가 솔깃했다. 나는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애였다.

“그럼 먹을게요.”

“네, 지금 가져다 드릴게요. 뭐 따로 드시고 싶은 건 없으세요?”

“바나나 우유가 먹고 싶어요.”

“네, 알겠습니다.”

사용인이 나가고 나 혼자 남았다. 익숙한 일이었다. 나는 무릎을 세워 몸 쪽으로 끌어와 고개를 묻어 팔로 종아리를 끌어안았다. 방 안은 수증기를 뿜어내는 가습기 소리,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 그리고 나의 간헐적인 기침 소리가 반복됐다.

기침을 하면서도 피가 또 쏟아질까 두려웠다. 침을 삼킬 때마다 피 맛이 나는지 확인하려 몇 번이고 혀를 움직였다. 나의 구차한 걱정과 행동이 문득 마음을 외롭게 만들었다. 그가 보고 싶었다. 나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에게 나의 세상 전부를 주고 가고 싶었다.

그는 나와 같이 있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로 퇴근하고 내 방으로 와 내가 잠이 들 때까지 손을 잡아 주었다. 나는 그의 따듯한 손을 잡기도 하고 내 뺨에 가져와 부비기도 하며 체온을 느끼다 잠이 들었다. 그러다 기침이 나거나 열이 나면 잠이 깨곤 했는데 내 곁에 그는 없고 사용인이 문 앞에 앉아 있었다. 그가 없음에 마음이 사무쳐서 잠을 다시 청해 보려 해도 잠을 이룰 수 없는 날이 더 많았다.

새벽 내내 기침과 열로 지새우고 싶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는 그와 함께 있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계획을 세웠다. 그의 방에 들어가기로, 그에 품에 안기기로 말이다.

늦은 새벽, 12시 자정을 넘긴 시간. 나를 돌보는 사용인은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내가 먹지 않고 따로 모아 둔 수면제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못된 장난질을 당한 사용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의 방으로 숨어 들어갈 수 없었다.

아까 퇴근한 그가 식사를 마치고 올라와 내 손을 잡아 주자 꿍꿍이가 있는 나는 군말 없이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너무 빨리 자 버리면 의심할 테니 조금 뒤척이다가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든 척을 했다. 내가 잠이 든 걸 확인한 그가 내 방을 나가고 그가 부른 사용인이 들어왔다.

나의 상태가 어떤지 숨소리를 확인한 사용인이 스탠드의 조도를 낮추고 문 앞 의자에 앉아 있길 한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커다란 기침을 하며 잠에서 깨어난 척을 했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깨어난 나를 걱정하는 사용인이 어쩔 줄 몰라 했다. 또다시 내가 잠에 들지 못할 걸 알기에 그런 것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내 앞에 있는 따듯한 차를 따라 마시며 사용인에게도 권했다. 찻물엔 내겐 효과가 돌지 않는 수면제가 녹아들어 있었다.

효과는 빨랐다. 차를 마신 지 30분 만에 졸다 못해 잠이 들어 고개가 푹 꺾인 사용인의 눈앞에서 나는 손바닥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미동도 없이 고른 숨소리를 내는 사용인을 확인한 뒤 내 몸에 두른 가운 끈을 여미고 내 방을 나섰다.

서늘한 기운을 뿜는 복도에 발을 디뎠다. 어두운 복도는 간접 미등만 켜 있었다.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발을 놀려 걸었다. 맨발에 닿는 서늘함이 소름 끼쳤으나 참을 만했다. 이번엔 그가 없는 방에 몰래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있는 방에 가는 것이었다.

차가운 금속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부드럽게 열리는 방문을 밀고 들어갔다. 어둡고 넓은 방 안이 한눈에 들어왔다. 내 방과는 다르게 활짝 걷힌 커튼이 창 가장자리에 얌전히 묶여 있었다. 빛이라곤 하늘에 떠 있는 달빛뿐인데 내 눈엔 침대에 누워 있는 그가 또렷이 박혀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방 한쪽 벽면을 차지한 매우 커다란 그림은 저번에 관장님께서 설명해 주신 ‘소멸’ 그림 중에 하나인 작가의 유작이었다. 보고 싶었던 그 그림을 나는 애써 외면했다. 나는 아직 소멸의 기분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문을 닫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갑자기 등장한 나 때문에 놀라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숨 쉬는 것조차 의식됐다. 그는 침대 한가운데에 누워서 한쪽으로 몸을 돌려 자고 있었다. 두꺼운 내 이불과는 달리 얇은 차렵이불을 다리 사이에 휘감은 상태였다. 덕분에 그의 벗은 상체가 드러나 있었다. 내 몸 혈관 곳곳에 자극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포가 도는 듯했다. 그에게 가까워질수록 손발이 저릿저릿했다.

펄떡펄떡 심장이 뛰고 긴장한 나머지 눈가가 묵직해졌다. 어슴푸레한 공간 속에서 그가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내 발걸음은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었다. 잘못된 일을 하는 양, 아주 큰일 날 일을 하는 양 겁이 났지만 멈추어지지 않았다.

그와 점점 더 가까워졌다. 바닥에 닿은 발을 떼고 무릎을 들어 그의 넓은 침대에 올라갔다. 기울지 않는 푹신한 매트리스에 무릎을 묻고 살금살금 다가갔다. 달빛이 드리운 그의 얼굴 위로 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두 발, 두 무릎이 침대 위로 올라왔다. 엉덩이가 조심스럽게 매트리스에 닿았다. 서늘하고 건조한 그의 침대 시트 때문인지 괜스레 발이 시려 두 발을 꼼지락거리며 모았다. 그의 방 안은 흔한 백색 소음조차 없이 조용했다. 그래서인지 펄떡거리는 내 심장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렸다.

심장 소리가 그의 단잠을 깨우진 않을까 걱정하며 그가 베고 있는 베개 아래에 내 머리를 뉘이자 그의 쇄골 부근이 눈에 들어왔다. 모로 누운 채 두 손을 포개어 뺨을 기댔다. 자연스레 무릎을 끌어 올려 태아처럼 웅크렸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새까만 어둠이 내려앉자 ‘그’라는 거대한 우주 안에 동동 떠다니는 것 같았다. 최대한 숨을 옅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그의 호흡을 쫓았다. 온 신경을 그에게 쏟으며 그를 조금이나마 느끼려 노력했다.

긴장으로 가빴던 호흡이 점차 차분해지고 그의 숨결이 귀로 정확하게 꽂혀 들었다. 나는 지금 그와 함께 있는 것이다. 야심한 시각, 그의 공간에 내가 있는 것이다. 가슴이 뻐근할 만큼 충족감이 피어올랐다. 분명 내 입가엔 미소가 걸렸으리라. 이 순간이 꼭 꿈인 것만 같아 꿈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어 살짝 눈을 떴다. 속눈썹이 바들바들 흔들리도록 천천히.

“…….”

“……이젠 대놓고 들어왔네.”

잠에서 깬 그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로 누운 채로 피하지 않고 또, 불청객 취급하지 않았다. 나의 방문이 그의 잠을 깨울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나랑 같이 있어 주기로 하셨잖아요.”

이곳에 찾아온 것이 그의 탓인 양 투정을 부렸다. 뺨을 받치고 있던 손으로 그의 손을 찾았다. 그의 가슴팍 부근 아래 있던 커다란 손을 보물을 찾듯 잡아 쥐었다. 그는 자신의 손안으로 들어온 내 손을 힘주어 꽉 잡아 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 이불을 들어 올려 내 몸 위로 덮어 주었다. 그의 몸에 포개어 있던 이불은 그의 따듯한 온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나는 몸을 엉금엉금 움직여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차마 그를 끌어안기 부끄러운 손은 그와 내 가슴 사이에 갈 길을 잃고 얌전히 놓여 있었다. 곧 단단하고 매끈한 그의 따듯한 가슴팍이 내 손등에 꽉 눌려 맞닿았다. 내 코는 그의 쇄골 근처에 묻혀 있었다. 웅크린 다리는 어느새 그의 다리와 포개어졌다.

“사용인은 어떻게 하고 왔어.”

그가 나를 단단히 품 안에 끌어안으며 물었다. 나는 웅얼웅얼 입술만 달싹거렸다. 갑자기 물밀 듯이 밀려오는 그와의 스킨십에 어쩔 줄 몰랐다. 내가 먼저 찾아온 주제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응? 어떻게 하고 왔어.”

“…….”

그가 낮게 읊조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 너무 가까이 몸을 밀착한 탓에 그의 목소리가 동굴에서 울리는 것처럼 귓가에 들렸다. 몸이 움찔거렸다. 눈가에 닿은 그의 목울대가 진동했다. 내 속눈썹도 같이 파르르 떨렸다. 정당치 못한 방법으로 사용인을 재우고 온 나는 그에게 혼이 날까 무서웠다.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가 다시 한번 나를 달래듯 채근했다.

“말해 봐. 혼내지 않을게.”

나는 또 그에게 함락되고 만다.

“……잠이 들었어요.”

“…….”

“……제가 먹는 수면제를 탄 차를 같이 나눠 마셨어요. 저는 잠이 안 들고, 사용인은 잠이 들었어요.”

웅얼웅얼 말을 내뱉는 나의 입술이 그의 쇄골을 간질였다. 그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귓가에 살랑살랑 그의 숨이 훅 불어왔다. 눈시울이, 귓가가, 코끝이…… 아니, 온몸이 뜨거워졌다.

“당신 때문이에요.”

“…….”

눈물이 떨어졌다. 사용인에게 수면제를 먹인 행동이 이제야 무섭기 시작했다. 내가 한 행동은 나쁜 짓이었다. 그와 같이 있고 싶은 이기심이 만든 어리석은 행동.

물기 어린 목소리가 터졌다.

“무섭지만 내가 나쁜 짓을 한 건, 사라지는 당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고 싶어서, 같이 있고 싶어서’라는 뒷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의 쇄골에 묻고 있던 고개가 강한 손아귀 힘으로 들어 올려졌다. 깜짝 놀란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마주친 그의 눈빛이 검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호수는 바다가 되어 있었고, 그 안에 넘실거리는 파도는 방향을 못 잡고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슬픈 마음에 볼 수 없어 그만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러자 뜨거운 숨이 내 입 안에 거칠게 쏟아졌다. 매끄럽고 부드러운 혀가 집어삼킬 듯이 내 입 안을 휘저었다. 불빛이 번쩍번쩍 터지며 머릿속이 아득해졌다가 또렷해졌다.

아아!

나는 그와 입을 맞추고 있었다. 아니, 그가 내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행위에 몸이 흥분으로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강한 압력이 내 입술을 빨아들였다. 매끄러운 그의 혀가 내 입 안을 짓이기고 파괴하듯이 움직였다.

할딱할딱 넘어갈 듯 숨을 쉬며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 까칠한 그의 턱을, 입술 주변을 급하게 핥았다. 찌릿찌릿, 혀끝에 자극이 퍼졌다. 그가 자신의 턱을 핥아 내리는 혀를 다시 입 안에 가두고 쭉쭉 빨아올렸다. 혀뿌리까지 뽑힐 듯한 압력에 입을 벌리자 입 안에 고인 타액이 입가로 흘러내렸다.

내 얼굴은 흐르는 눈물과 타액으로 흥건히 젖어 축축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였다. 까만 어둠 속에서 입술과 입술이 부딪치고 빨아올리는 소리를 쫓았다. 한껏 예민해진 귓가에서 질척거리는 소리가 오랫동안 맴돌고, 내 입술 주변과 눈가를 배회하는 그의 입술이 열꽃처럼 뜨겁게 번져 갔다. 감격스러운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늘 상상만 하던 미지의 세상이 내게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내 두 손은 아직도 그와 내 가슴 사이에 딱 붙어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묵직한 무게로 그의 가슴팍이 나를 눌렀다. 모로 누워 있던 자세였는데 어느새 내 뒤통수가 매트리스에 똑바로 닿았다. 감고 있던 눈을 뜨자 나를 팔 안에 가둔 그가 보였다.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그가 다시 내 입술을 헤집기 시작했다.

“흐으……!”

츄읍, 물기가 어려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내 흐느낌이 터졌다. 황홀한 행위에 눈이 멀어 참고 있었던 음성이 터져 버린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내 흐느낌을 제쳐 두고 입 안의 온갖 곳을 빨고 핥아 올렸다. 오목한 입천장부터 움푹 파인 혀 아래까지 샅샅이.

처음 해 보는 입맞춤에 나는 홀린 듯이 그의 혀를 쫓아가려 애썼지만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사니임.”

그를 부르고 싶었다. 울음이 가득 섞인 애송이 같은 목소리였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그를 내 입에서 부르고, 또 부르고, 부름으로써 나에게서 그를 각인시키고 싶었다. 그를 부를수록 내 가슴 안에 자릴 잡은 사랑의 씨앗이 꿈틀대며 자라나고 있었다.

“……이사님, 하아…….”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계속해서 나를 탐할 뿐이었다. 언제 무심했냐는 듯, 언제 고요했었냐는 듯, 광포한 탐욕의 기운이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그 기운에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전부.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에 코가 멍멍해지고 숨을 쉬는 것이 힘들어졌다. 나는 헉헉거리고 싶지 않아 호흡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하아…… 하악…….”

내 거칠어진 호흡을 듣고 그가 느지막이 입술을 떼었다. 쪽, 하고 젖은 소리가 울렸다. 나를 살펴보려 그가 내 귀 양옆으로 손바닥으로 매트리스를 짚고 고개를 들었다. 사나운 눈매가 내 얼굴 곳곳을 면밀히 살펴보고 있었다.

“……지영우.”

“……하아, 네…….”

나른한 숨이 터져 나왔다. 그가 나를 부르는 말투가 너무도 달콤해서, 내 걱정으로 예민해진 그의 사나운 눈이 상냥해서…….

“……왜 울어.”

“당신이, 좋아서요. 어쩔 줄 모르겠어요.”

나의 말을 들은 그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동생과 혀를 뒤엉키며 입술을 부딪쳤던 그의 얼굴에 후회의 감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괴로운 표정만큼은 감출 수 없어 보였다. 고개를 숙여 내 목덜미에 코를 묻고 그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 목덜미는 얼마 전 스스로 낸 상처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상처를 훑는 듯한 그의 숨에 나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발끝이 곱아들 정도였다. 나의 떨림을 그도 느꼈는지 촘촘히 내 목덜미에 작게 입술을 쪼아 나를 달랬다. 그렇게 한참이나 달래고는…….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없어.”

속삭이듯이 그가 말했다. 나를 사랑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이 아프지 않았다. 괜찮았다. 사랑은 내가 하면 되는 것이니까. 내가 끌어안고 가면 그만인 것이니까. 다만 안타깝고 가슴이 에일 정도로 슬픈 것은.

“알아요. 괜찮아요.”

“너…….”

“사랑해요.”

그의 완전하고 견고한 세상에 ‘나’라는 터럭 같은 존재가 오물처럼 진득하게 들러붙을 거라는 거. 나는 그 사실을 앎에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죽이지 못한다는 거.

이제 더 이상 그가 나를 가벼이 여기지 못하는 버거운 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버거운 짐을 평생 끌어안고 살아야 할 그가 안타깝고 불쌍해서.

“죄송해요.”

나의 사죄에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기적인 나를 향한 표정이 아니었다.

“…….”

“사랑해요.”

나를 사랑할 수 없는 그가 자기 자신에게 쏟아 내는 처절함이었다. 울분을 쏟아 내듯 그가 고개를 내려 다시 한번 내게 입 맞추었다. 모두 담아내고 싶었다. 그가 주는 어떠한 것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입술을 벌리고 혀를 내밀어 거칠고 난폭한 입맞춤을 피하지도 외면하지도 않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 팔을 들어 그를 꼭 끌어안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