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할 수 없는 그대에게 2권
본편 (2)
나는 ‘외출’ 옷을 처음 입었다. 한 달여 전에 입었던 옷은 ‘야외 공부’ 옷이었지 ‘외출’ 옷은 아니었다. 세련된 감색 투피스를 입으신 관장님 옆에 서 있는 나는 잘 자란 부잣집 도련님 같은 차림새였다. 밝은 아이보리색 티셔츠와 그보다 좀 더 진한 색의 면바지, 그리고 밝은 회색 카디건을 입었다. 관장님께서는 높은 하이힐을 신고 계셨는데 내 눈높이보다 조금 더 높이 올라가 계셨다. 그래서인지 남들이 보기엔 엄마와 같이 나온 어린 막내아들같이 보이는 광경이었다.
“미술관은 처음이니?”
“네.”
또각또각 관장님의 하이힐 소리가 매끈한 미술관 바닥에서 울려 퍼졌다. 저택에선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발걸음이었는데 밖에선 아니었다. 나는 경쾌하고도 도도한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내가 평소에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이 미술관은 지어진 지 1년이 채 안 됐어. 그래서 내가 좀 바빴지.”
“건물이 굉장히 멋있어요.”
관장님과 내가 걷고 있는 곳은 복도였다. 높은 천장은 투명한 유리창으로 막혀 있었고 철로 된 흰색의 골조들이 얽혀 있는 구조였다. 내가 살던 고택은 현대식 한옥이었고, 지금 살고 있는 저택은 앤틱한 서양풍 건축이었다. 그에 반해 미술관은 현대식 건축의 현신 같은 모습이었다.
“운영하고 있는 미술관들이 다 오래되기도 했고, 시 외곽에 있는 농원 안에 있거나 구시가지에 있어서 이번엔 좀 신시가지 근처로 테마를 정해 지었단다.”
“관장님, 안녕하십니까.”
“그래요. 이 실장. 오늘 수고해요.”
미술관 입구부터 미술관 직원들이 관장님을 알아보고 깍듯하게 인사를 해 왔다. 관장님께서는 내게 미술관 소개를 하시면서도 직원들의 인사를 하나하나 다 받아 주셨다. 나는 거침없이 울려 퍼지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들으며 졸졸 쫓아다녔다. 직원들이 관장님 곁에 있는 낯선 나를 발견하면 관장님은 대수롭지 않게 ‘아, 우리 집 막내아들이에요. 지 이사 동생’이라고 직원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셨다. 그러면 직원들은 크게 당황하며 내게 깍듯하게 인사했다. 나는 우물쭈물 관장님 뒤에 숨으며 작은 목소리로 인사에 답했다.
그녀의 당당함에 내가 더 민망해졌다. 나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내 존재로 하여금 내가 좋아하는 관장님이나 그가 곤란해하는 일이 없었으면 했다.
“영우야, 이리 와. 이쪽부터 생성 테마 시작이란다. 이번 전시회 주제는 생성과 소멸이야.”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니 11시 정각이었다. 나와 관장님이 서 있는 입구의 문이 열리고 환한 빛이 쏟아졌다. 내부는 환한 조명 아래 기하학적인 조각상 여러 개가 퍼져 있었다. 벽에는 듬성듬성 검은색 물감으로만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들이었다.
“그림은 한 작가의 그림만 전시되어 있어. 조각상도 마찬가지야.”
광활한 내부에서 또렷한 관장님의 목소리가 퍼졌다. 우리 말고도 개관 시간에 맞추어 온 다른 관람객들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관장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작았는데도 귀에 쏙쏙 박혀 들었다. 나는 그녀가 설명해 주는 귀한 정보를 들으려 바투 서서 경청했다.
“이 작가는 한국에서 입양된 미국인이야. 자신의 탄생에 대한 궁금증으로 낳아 주신 부모님을 찾으려 했지만 찾을 수 없었어. 그래서 자신의 출생을 탄생이라 표현하지 않고 생성이라 표현하는 작가야. 늘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궁금증으로 작품을 만들어 내지. 좀, 특이하지? 그림이나 조각상이.”
“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니 느낌이 다 달라요.”
“보는 눈이 있구나.”
나는 어느새 관장님에게 잠시 떨어져 그림 가까이 다가갔다. 나는 미술관에서 차려야 할 예의범절 따위는 잘 몰랐다. 내 코가 그림에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관장님은 이런 나를 제지하지 않으시고 지켜봐 주셨다. 흰 캔버스에 검은 물감이 휘몰아치듯 그어져 있었다. 역동적인 모양이었다. 곡선인데 부드럽지 않고 딱딱한 느낌을 주었다.
“흰 바탕에 검은 물감으로만 자신의 생성을 표현해 냈어. 검은 물감으로만 표현해 낸 것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때 묻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생성 자체가 가장 어두움으로 시작했다는 걸 은유적으로 말하지. 이 작가는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이야.”
관장님의 설명을 들으며 그림들을 보니 흰 바탕의 검은색들이 색다르게 와닿았다. 이 그림의 작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늘 나의 탄생에 대해 궁금했었다. 나는 회장님과 우리 엄마의 아들인데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니었다. 부부가 아닌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하지만 사회에서 인정받는 탄생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만약 나보고 나의 생성에 대해 그림을 그리라고 한다면 아마도 난 흰 바탕에 아무것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야말로 이 작가보다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었다.
“미술관 관람은 어때?”
“처음인데 정말 재밌어요.”
“그럼 컨디션은? 다음 테마도 볼 수 있겠어?”
“네. 괜찮아요.”
처음 대답보다 조금 더 목소리를 크게 냈다. 한 시간째 서서 천천히 관을 둘러보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관장님은 조금 앉았다 가자며 관 중앙에 놓인 스톨에 나를 앉히셨다. 그리고 관 입구에 있는 직원을 손짓해서 부르셨다.
“민아 씨, 따듯한 박하차 테이크 아웃 해서 가져다줄래?”
“관장님, 내부 관람하실 때 음료나 음식물 반입이…….”
관장님의 요청에 직원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나는 직원의 말을 인지하고 관람객들의 손을 보았다. 관람객들은 팸플릿만 쥐고 있었지 음료나 음식물을 들고 있지 않았다. 아픈 나 때문에 관장님이 부러 난감한 요청을 하시는 듯했다. 직원만큼이나 나도 당황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수고스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 막내한테만 예외.”
“네,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도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듯 관장님께서는 담백한 말투로 예외를 말하셨다. ‘우리 막내’라는 단어가 내 마음에 콕 하니 들어찼다.
“관람객이 가져야 할 매너도 중요하지만 어느 순간에나 예외는 있지.”
“저 때문에 괜히…….”
“이럴 땐 그냥 감사합니다.”
“네?”
“해 봐.”
아무래도 관장님 모자가 하는 말대로 하는 주문이 걸린 것이 틀림없다.
“감사합니다.”
내 인사에 관장님의 얼굴에 화려한 미소가 떠올랐다. 참 아름다운 미소였다. 나도 덩달아 같이 웃을 수밖에 없는 미소.
“관장님, 아드님 차 가져왔습니다.”
요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직원이 따듯한 박하차가 담긴 테이크 아웃 잔을 관장님에게 가져다주었다. 관장님께서는 다시 내게로 전달해 주셨다. 두 손바닥에 따듯한 종이의 질감이 닿았다. 추운 것은 아니었으나 몸과 마음이 따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기운을 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움직이자 관장님이 다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우리가 둘러본 테마관을 나섰다. 나는 졸졸 그녀의 뒤를 쫓으며 따듯한 박하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벌써 시간이 12시가 넘었네? 아직 학영이한테 연락은 없으니 계속 둘러볼까 하는데 어떠니?”
“저는 좋아요. 계속 볼래요.”
“그래.”
생성과 소멸을 잇는 복도는 꽤나 길었다. 가는 길에 설치된 조명의 밝기와 개수가 현저히 줄어들며 소멸을 주제로 한 테마관을 향하는 길이 점점 어두워졌다. 생성을 주제로 한 테마관은 눈부신 조명이 함께였던 것이 떠올랐다. 두 관의 분위기는 주제에 알맞게 조성되어 있는 듯했다.
“이번 전시회는 늦은 폐관 시간에 맞춰서 관람객이 몰리고 있어. 바로 소멸 때문이지.”
“왜요?”
긴 복도를 지나고 소멸 테마관에 도착했다. 내 손안에 든 박하차는 다 마셔 버리고 빈 잔이었다. 관장님은 들어가기 전 내 잔을 가져가시곤 입구에 서 있는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소멸이 전시된 관은 조명이 없단다. 골조 사이로 보이는 유리창을 통해서만 자연광이 들어와. 그 자연광으로만 작품을 볼 수 있지.”
지금은 12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5월로 접어드는 햇살은 꽤나 밝았다. 어두운 동굴 안에 햇빛이 비집고 들어오는 것처럼 빛이 여러 갈래 나뉘어 바닥을 비추었다. 그 빛들 사이로 소멸의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성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검었다. 검은 기하학 모양의 조각상, 그리고 검은 바탕에 희미한 흰 선들이 무수히 그려져 있는 그림들, 나는 저런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아까 본 생성의 그림이 낯익었던 이유가 있었다. 지금 보고 있는 그림은 몰래 들어간 그의 방에 걸려 있던 그림과 비슷했다.
“폐관 시간이 가까울수록 늦은 저녁이라 빛이 들어오지 않아. 캄캄함뿐이지. 어둠 속에서 관람객들은 작품들과 소멸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
“우와…….”
블랙홀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소용돌이와 같은 모양의 조각상이 우뚝 서 있었고 검은 캔버스들이 사방에 걸려 있었다. 새하얀 물감이 검은 캔버스에 흩뿌려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퍼지는 것이 아니라 쪼그라드는 듯한 모양새라 신기했다. 말 그대로 어둠 속으로 소멸하는 것 같았다. 흑과 백으로 이렇게 표현될 수 있음에 감탄했다. 자연광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에서 이곳에 다시 와 보고 싶었다. 아쉬워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관장님이 작게 웃으시며 말하셨다.
“폐관 시간엔 관람객들이 넘쳐 난단다. 너를 데려오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어서 이른 시간에 온 거야.”
“아, 괜찮아요. 데리고 와 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해요.”
폐가 좋지 않은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쥐약이었다. 호흡으로 인한 감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저번 학교 구경을 하고 폐렴이 온 건 아마 사람 많은 학생 식당이 문제가 됐을 가능성이 컸다.
“네가 늦은 밤 와 보고 싶다면 전시회가 끝나고 정리하기 전 데리고 와 줄게.”
“감사합니다.”
나는 다시 관장님 곁에서 떨어져 그림들을 살펴보았다. 그의 방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한 그림들은 생성과 같이 생동감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 똑같은 흑과 백인데도 느낌이 달랐다. 꼭 죽어 가는 것 같았다. 타올라 없어지는 것 같았다. 마음이 선득해졌다.
“재미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 작가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줄까?”
“네. 해 주세요.”
“이 작가는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아까 말해 줬지?”
“네.”
관장님은 가장 커다란 그림 앞에 서 있는 내 곁으로 다가오셨다. 또각또각 즐거운 소리가 울렸다. 나를 내려 보시는 그를 닮은 관장님의 눈을 바라보았다. 선득한 마음이 조금은 우그러들었다.
“이 작가는 사랑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 자존감이 없어서 늘 슬픈 사랑을 했지.”
“…….”
“작가는 사랑을 할 때마다 마음이 하나둘씩 소멸됨을 느끼고 그림을 그렸대. 이 그림들이 다 그 증거들이거든?”
이 관에는 그림이 열 점 정도 있었다. 그림이 열 점이라는 것은 아픈 마음을 열 번이나 죽여 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선득했던 기분이 다시 살아나다 못해 콱 막힌 것처럼 아파 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연인과는 아주 지독할 정도로 사랑을 했는데 결국 그 낮은 자존감 때문에 헤어졌어. 그리고 유명한 작품 하나를 세상에 탄생시켰지. 아니, 생성시켰지.”
“…….”
“……그리고 자살을 했어.”
그림을 보다 놀라서 관장님을 바라보았다. 관장님은 그 기척을 느꼈는지 나를 마주 보아 주셨다. 관장님은 슬퍼 보였다. 아마 나도 그녀와 같은 얼굴일 것이다.
“슬픈 얼굴이네.”
“……네. 너무요.”
“나도 그랬어. 그 이야기를 듣고 마지막 작품을 너무 갖고 싶었지. 작가의 마음을 보듬어 주고 싶었어.”
관장님께서는 다시금 활짝 웃으며 그림을 보셨다. 나도 그녀처럼 슬픔을 떨치려 노력하며 그림을 보았다. 그 그림을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그린 것일까?
“마지막 작품은 어떤 거예요? 이곳에 있어요?”
“아니.”
“그럼 못 구하신 거예요?”
“아니, 구했단다. 네가 저택에 왔을 쯤 그때 나가서 구해 왔어. 운 좋게 가질 수 있었어. 하지만 그 작가의 소멸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지가 않더구나.”
마지막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나는 궁금했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관장님이 만천하에 공개하고 싶지 않게 만든 슬픔을 느껴 보고 싶었다.
“그림은 어디에 있어요?”
“그러고 보니, 소멸을 느껴 보고 싶다면 이 미술관에 다시 안 와도 되겠구나.”
“……?”
“작가의 진정한 마지막 소멸은 집에 있단다.”
예전에 한 실장이 얘기해 주었던 근처도 가지 말라던 관장님의 아틀리에인가? 집에 있다는 소리에 내 나름대로 추리를 하고 있는데 관장님께서는 개구진 표정으로 나를 보셨다. 그녀의 얼굴이 화사했다.
“궁금하지?”
“네. 어디에 있어요?”
“학영이 방.”
“아…….”
“학영이 방에 있어.”
그의 방에 있던 그림이었다. 내가 몰래 들어가 보았던 그림. 한쪽 벽면을 전부 차지한.
“나중에 학영이한테 보여 달라고 하렴. 너라면 방 안으로 들여 보여 줄 것 같구나.”
“그럴까요?”
그는 내게 상냥하다. 나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내가 말했잖아. 학영이는 귀엽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고.”
“…….”
“그러니 네가 보여 달라고 하면 보여 줄 거야.”
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 관장님의 말은 꼭 그가 나를 귀애한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행복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슬펐던 내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네 형이 양반은 못 되는구나. 저기 오고 있어.”
관장님 얼굴에 반가움이 스쳤다. 나는 관장님께서 보시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소멸 테마관 출입구 쪽에서 그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미술관 직원들이 그를 알아보고 황급히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관장님과는 달리 하나하나 인사를 받아 주지 않고 고개만 살짝 끄덕이곤 성큼성큼 걸어왔다.
“다 보셨어요?”
“응, 영우가 보는 눈이 있어서 데리고 온 보람이 있구나. 생각보다 일찍 왔네?”
“지금 시간이 1시인데, 저는 늦었다고 한 소리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가 손목에 찬 시계를 흘긋 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점심 식사를 하러 온 것치고는 조금 늦은 시간이었다. 지금 출발해서 식사를 해도 2시가 돼서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영우야. 배 안 고프니? 힘들진 않고?”
“네, 괜찮아요.”
나는 그녀가 걱정하는 것이 싫어서 목소리를 크게 내어 대답했다. 다리는 조금 아팠지만 배가 고프진 않았다. 나는 그냥 이 상황 자체를 다 견딜 수 있었다. 처음 관람한 미술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점심 식사. 그 무엇 하나 놓치기 싫었다.
“우선 여기서 나가요. 차는 제 차 타시고요.”
그의 말에 우리는 테마관을 나섰다. 나는 관장님과 그의 사이에서 걷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은 관장님과 키가 큰 그의 사이에 있다 보니 어른들과 같이 나들이를 나온 아이 같아지는 기분이 들었으나 아무래도 괜찮았다.
“메뉴는 정하고 우릴 데려가는 거니?”
“네, 예약했어요.”
그의 차는 미술관의 직원이 로비 앞에 대기 시켜 놓은 상태였다. 직원이 뒷좌석 문을 열어 주자 관장님께서 올라타셨다. 나는 아까 미술관에 올 때처럼 관장님 옆에 타려고 고개를 숙이고 차에 타려 했지만 누군가 내 팔뚝을 부드럽게 잡아챘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관장님께서 타신 뒷좌석 문을 부드럽게 닫고 있는 그가 있었다.
“너는 내 옆에 타.”
“네?”
“너한테까지 기사 노릇 할 생각 없어. 타.”
그가 조수석 문을 열어 주었다. 내가 관장님 옆에 타게 되면 그가 왜 내 기사 노릇을 하게 되는 건지 이해가 안 됐으나 그가 타라는 대로 얌전히 그가 운전할 차의 조수석에 탔다. 내가 앉는 것을 확인한 그가 소리 나지 않게 부드럽게 문을 닫아 주었다.
“네가 운전하는 차 오랜만에 타는구나.”
그가 운전석으로 돌아와 차에 타자 관장님이 새삼스러운 말투로 말씀하셨다. 나는 처음 타 보는 조수석에 새로운 기분을 느끼며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고택에서 그가 나를 데리러 왔을 때도 기사가 몰고 온 리무진의 뒷좌석에 앉아 그와 함께 나란히 왔었다. 처음 타 보는 조 수석은 앞이 훤히 보여 답답하지 않아 좋았다.
“출발할게요.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어디로 가는 거니? 영우가 먹고 싶은 거 먹자고 하려 했는데.”
“……장충동 예약했어요.”
“아, 중식 먹으러 가는 거구나. 영우 중식 좋아하니?”
모자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는데 관장님께서 물으셨다. 나는 솔직히 상관없었다. 어떠한 것을 먹어도 좋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고택에서 지냈을 때는 유모가 해 주는 자극적이지 않은 한식만 먹었었고 가끔 회장님과 나가서 먹었던 식사는 한정식 요릿집이 전부였다. 그러니 학교에서 먹었던 그가 혀를 차며 싫어한 치즈돈가스조차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잘라 줘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말이다.
“먹어 보고 싶어요. 한 번도 못 먹어 봤어요.”
나는 고개를 관장님 쪽으로 돌려 대답했다. 못 해 본 것이 너무나도 많아서 약간 부끄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관장님과 그라면 괜찮았다.
“아, 중식이 처음이니? 향신료가 강하지 않은 요리를 조금씩 먹자꾸나. 마음에 들 거야.”
한 번도 못 먹어 본 건 흠이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그런 그녀의 얼굴과 말투를 보고 안심이 되었다.
고개를 바로 하고 앞을 보았다. 한낮의 대로에 따스한 봄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눈을 찡긋거릴지언정 감고 싶지는 않았다. 차들이 가득한 복잡한 대로마저도 내게는 즐거운 흥밋거리였기 때문이다. 그와 관장님과 함께하는 이 순간이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호텔의 중식당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관장님과 그를 에스코트한 직원이 방 안까지 따라왔다. 내가 키가 큰 두 사람 사이에서 뒤처져 우왕좌왕하지 않도록 그가 내 어깨를 살며시 끌어와 걸었다. 그의 손이 닿는 내 어깨에 찌릿찌릿 진동이 이는 것 같았다. 불쑥불쑥 다가오는 접촉이 못내 좋았다.
“요리는 주문해 둔 코스로 주세요. 그중에 1인은 좀 더 간을 약하고 부드럽게.”
“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직원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둥그런 원탁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커다란 테이블 덕분인지 관장님과 그와 나는 좀 멀찍이 떨어져 앉아 있었다. 조용한 침묵이 조금 어색한 나는 방 안 내부를 둘러보았다. 낮임에도 어두운 방 안은 은은한 조명뿐이었는데 우리가 앉은 흰 테이블보가 둘러진 상이 조명을 받아 환히 빛나 보였다. 더욱이 상 위에는 투명한 유리로 된 동그란 원판이 있었다. 상 위에 또 다른 유리로 된 상 같았다.
궁금해하는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그가 투명한 유리로 된 상에 직원이 따라 준 차가 담긴 사기 찻잔을 올렸다. 그리고 검지, 중지, 약지 세 손가락으로 상을 지그시 힘을 주어 밀었다. 유리상이 빙글 돌더니 그가 올린 찻잔이 내 앞에 다가왔다. 그가 다시 손으로 상을 지그시 눌러 내 앞에서 멈추게 했다.
“손이 닿지 않을 때 이렇게 돌려서 제 앞에 요리를 놓고 먹으면 돼.”
“와…….”
나는 작은 감탄을 했다. 조금 바보 같았다는 걸 눈치채고 입을 얼른 다물었지만 이미 소리는 새어 나간 뒤였다. 관장님이 내 모습을 보고 작게 웃으셨기 때문이었다.
“코스라 따로 요리가 나오지만, 메인 하나 정도는 여기에 올려놓고 먹어 보자.”
“그래도 돼요?”
“그럼, 안 될 게 뭐가 있겠니.”
유리를 돌려 보고 싶은 내 마음을 아셨는지 관장님께서 흔쾌히 그러라고 해 주셨다. 코스 요리는 한정식집에서 먹어 봐서 안다. 요리가 각자 앞에 따로따로 나와 손을 멀리 뻗을 일이 없었다. 고로 오늘 중식 코스도 내가 저 유리를 돌리지 않아도 되게끔 주변에 요리들이 놓일 것이다.
“메인 요리 하나는 따로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방 안 문 앞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에게 그가 주문함과 동시에 문이 열리고 요리가 준비되기 시작했다. 내 앞에 하얀 사기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허여멀건 미음 같은 것이 놓였다. 일반 수저가 아닌 넙적하면서도 타원형인 작은 국자 같은 수저가 접시에 있었다. 아무래도 이거로 먹는 음식 같았다.
“영우야, 자연 송이가 들어간 죽이야. 맛있게 먹으렴. 학영아, 잘 먹을게.”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내 인사를 마지막으로 관장님께서 수저를 드셨다. 그도 수저를 들자 나도 따라 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죽을 한 수저 떠서 후후 불었다. 뜨거운 것을 잘 못 먹는 내 버릇 중에 하나인 행동이었다. 조용한 방 안에 내 숨소리가 퍼졌다. 어느 정도 식었을 것 같아 수저를 한입 머금었다. 부드럽고 짭조름한 죽이 내 입에 미끄러져 들어왔다.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똑같은 죽인데도 이렇게나 맛이 달랐다. 아파서 먹는 죽과 식사로 먹는 죽의 차이가 이 정도였다니. 죽을 한입 가득 물고 우물거리며 행복해하는 내 표정을 본 관장님께서 물으셨다.
“맛있니?”
“네! 죽이란 죽은 다 먹어 봤다고 생각했는데 여태까지 먹었던 죽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
“어머, 여기 주방장에게 최고의 찬사구나.”
나는 다시 한 수저 떠올려 후후 김을 불었다. 얼른 한 입 더 먹고 싶었다. 꼭 전에 돈가스를 먹었을 때와 같이 식욕이 마구마구 도는 것 같았다. 입이 원체 짧은 나에게 드문 일이었다. 호로록 소리를 내어 죽을 먹었다. 우아하게 식사를 하는 두 사람 앞에서 실례되는 행동을 한 것 같아 얼굴이 붉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뜨거운 음식을 빨리 먹고 싶었다. 한 입, 두 입 수저가 바쁘게 움직였다.
“적당히 먹어, 다음 요리 먹어야 하니까.”
평소보다 급하게 먹는 내가 걱정되는지 그가 말렸다.
“그냥 두렴, 입맛 돌 때라도 많이 먹으면 좋잖니.”
관장님 말이 맞았다. 나는 입맛이 막 돌다가도 어느 순간 뚝 떨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엄마와 유모는 내가 조금이라도 입맛이 돌 때 뭐든 더 먹이려고 했었다. 관장님의 너그러운 말씀이 나를 사랑으로 키워 주신 두 여자들을 보고 싶게 만들었다. 날카로운 조각이 내 비겁한 양심을 찔러 댔다.
아직 반이나 남은 죽이 갑자기 먹기 싫어졌다. 입 안에 남은 죽을 삼키기가 싫어졌다. 느려진 내 손과 슬퍼진 표정을 보며 그가 무심히 말했다.
“어머니 말씀이 맞네요.”
“영우야, 무슨 일 있니?”
당황한 목소리로 관장님께서 물으셨다.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냥 슬퍼졌고, 입맛이 없어졌을 뿐이었다. 즐겁고 신나는 나들이에 찬물을 끼얹는 내 감정에 자신이 미워졌다. 죽이 담긴 그릇에 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내가 울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릇에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서야 내가 운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송해요.”
“어디 아프니? 그런 거야?”
두 손을 들어 양 뺨을 닦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에게 죽을 끓여 주던 유모가 생각나고 자꾸만 죽은 엄마가 떠올랐다. 눈물이 길을 트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들을 떠난 2개월 동안 나는 생각보다 잘 지냈고, 고택에서의 삶을 잊고 있기도 했다. 사랑이란 감정에 허덕이느라 그녀들의 존재도 잊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게 아파 왔다. 죄책감과 함께 내 고질적인 기침이 터졌다.
방 안에 거칠고 마른기침 소리가 쏟아졌다. 처음에는 약하게 시작했으나 그 정도의 부피를 점점 키우더니 사정없이 터졌다. 관장님께서는 놀란 얼굴로 내게 다가오셨다. 그는 직원들에게 뭐라 지시를 내리고 내게 왔다.
나는 정신없이 쏟아지는 기침에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려웠다. 간질간질한 더러운 느낌과 함께 폐가 조이는 듯한 아픔. 심한 기침으로 인한 시야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눈물이 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짧은 손톱이 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영우야, 괜찮니? 학영아! 병원!”
관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내 귓가에 들렸다.
“어머니, 잠시만요.”
그가 나의 팔을 들어 올려 품에 안았다. 쓸모없는 몸뚱이를 가진 나 하나로 이곳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자괴감과 무기력함에 그 어느 때보다 기침을 멈추고 싶었다. 혼란한 정신에도 막힌 것 같은 목을 뚫어 버리고 싶었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내 목을 마구마구 할퀴었다.
“영우…… 학영아! 얘 손 좀!”
“지영우!”
그가 사납게 내 이름을 외쳤으나 무섭지 않았다. 아무리 할퀴고 긁어도 기침이 멈추질 않아 나는 울고 있는데도 울고 싶었다. 어느새 내 손을 옭아맨 그가 직원들이 가져온 호흡기로 코와 입을 막았다. 헉헉거리는 내 거친 숨과 기침이 아주 조금씩 천천히 멎어 갔다.
정상적인 호흡을 할 수 있을 때쯤에서야 시야가 들어왔다. 눈물을 가득 머금고 계신 관장님의 얼굴이 제일 먼저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 동정이 가득한 직원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개를 들어 그의 턱을 보았다. 오늘도 깨끗하게 면도를 했는지 매끄럽고 단단해 보였다.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 손을 들어 올렸다.
아까 내 목을 너무 세게 할퀴었었나 보다. 손톱 끝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나는 차마 내 피를 그에게 묻히지 못하고 손을 내렸다.
“식사 중에…… 죄송…해요.”
버석버석하게 갈라진 내 목소리가 흉했다.
“그래.”
“…….”
“괜찮아.”
그가 괜찮다고 한다. 그의 말엔 정말 주문이 걸려 있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작게 기침을 했다. 작은 소리에도 관장님께서 깜짝 놀라 나를 살폈다. 기침은 한 번뿐이었다. 작은 기침이 내가 즐겁게 먹었던 것을 게워 내는 시발점이 되었다.
나는 그의 흰 셔츠에 얼마 먹지 못한 것을 게워 냈다. 게워 내고 또 게워 내고. 하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나를 더 단단히 안아 주었다. 투명한 위액까지 나오는 걸 확인하고서야 직원이 건네준 수건으로 나를 닦아 주었다.
위액까지 다 쏟아 냈는데도 목 안에 울컥하니 무언가 치밀어 올랐다. 뜨끈한 액체가 목을 타고 올라와 입가에 넘쳤다. 내 입 주변을 닦아 주던 그의 차분한 눈이 사납게 번뜩였다. 이어서 미약하고 날카로운 관장님의 비명이 들렸다.
내 입가를 닦아 주는 수건을 보자 관장님의 비명이 납득이 됐다. 수건과 그의 새하얀 셔츠가 검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내가 피를 토한 것이었다.
“어……? 피다.”
코피는 종종 쏟았었다. 피곤할 때나 건조한 환절기 때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피를 토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새빨갛고 진득한 피는 본 적이 없었다. 나는 무서워졌다. 결코 좋은 예후는 아니었다. 마지막 엄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고운 엄마를 물들였던 검붉은 핏자국.
“나…… 죽어요?”
내가 내 입으로 뱉어 놓고서 가슴이 철렁했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영우야…….”
밑도 끝도 없는 내 물음에 관장님께서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눈물을 가득 담고 있는 그녀의 눈이 흔들리고 결국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머니, 가요.”
그는 내 물음에 대한 답을 해 주지 않고 관장님과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관장님께서는 그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시고 소지품을 챙기셨다. 나는 대답을 듣고 싶어 참을 수 없었다. 나를 데리고 이곳을 떠나려는 두 사람에게 다시금 물었다.
“저…… 죽어요?”
“아니, 안 죽어.”
나를 편히 고쳐 안으며 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도의 감정이 물밀 듯이 번졌다.
“다행이다.”
“……집에 가자.”
그가 집이라 말했다. 나와 그가 사는 곳을 집이라 부른다. 그 거대하고 삭막한 곳이 내겐 이제 집이었다. 나는 그 집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그 집에 있는 그의 방 안에 걸린 소멸을 보고 싶었다. 내가 만약 소멸을 하게 된다면 그곳에서 하고 싶었다. 염치없는 바람이지만 그의 품에서, 그의 공간에서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