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63화 (63/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63화

하지만 시간은 불같이 들끓었던 감정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화가 가라앉고 난 뒤, 휘건은 무엇이 강문을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졌다. ‘너랑 같이 있다간 내가 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서 무서워’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제대로 대화다운 대화도 하지 못한 채 소리만 지르다 끝내버린 것도 신경 쓰였다.

「야. 깡문 요새 뭐 하냐? 내 연락은 안 받아서.」

「와, 드디어 화해하려고? 빨리도 한다. 근데 깡문 자퇴했는데? 아이돌 한다고 어디 회사 들어갔대. 에스티 엔터랬나……. 아. 너네 옆집 살잖아. 그냥 집에서 만나.」

3학년이 되고서는 반이 떨어진 데다 재활을 핑계로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아서 마주치지 않는 거겠거니 했는데, 자퇴한 거였을 줄은 몰랐다. 새삼 강문과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어 했던 과거가 떠올라 헛웃음이 흘러 나왔다.

며칠 동안 고민하던 휘건은 역시 제대로 대화라도 한번 해보고 끝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결론지었다.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는 어렵겠지만, 서로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면 푸는 쪽이 좋으니까.

하지만 강문의 집으로 가, 초인종을 눌러도 강문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예 집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인기척조차 없었다.

뒤늦게 강문이 회사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멤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다. 회사 주소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지만, 숙소 위치는 아무리 수소문해도,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강문의 부모님은 해외에서 장기 출장 중이라 마땅히 물어볼 곳도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참.」

그래서 하는 수 없이 회사 건물 앞에서 죽치고 기다렸다. 그러고 있다 보면 언젠가 한 번은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강문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이상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학생? 오디션 보러 왔어?」

「네? 아니, 그게 아니라…….」

「이런 얼굴을 왜 아직까지도 못 찾고 있었지? 카메라 테스트 필요도 없겠네. 몇 살이야? 혹시 다른 회사에서 캐스팅 받은 적 있어?」

「아니요, 저는…….」

「아저씨 이상한 사람 아니야. 여기 위에 에스티 엔터라고 있는데, 거기 대표거든? 혹시 아이돌 해볼 생각 없어?」

「……안녕히 계세요.」

「잠깐……!」

당황스러움에 슬슬 뒷걸음질을 치다 냅다 달려 도망쳤다.

생긴 건 꼭 사기꾼처럼 반질반질하게 생겨서는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친구인데, 강문이 저 사람에게 속아 이상한 회사에 들어간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게다가 어떻게 알아낸 건지, 제발 한번만 만나서 제대로 얘기를 해 보자며 시도 때도 없이 전화가 왔다. 번호를 차단하면 다음엔 다른 번호로 연락을 해 와 피하기도 힘들었다. 이대로 두면 학교 앞까지 찾아올 기세라, 어디 신고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도 했다.

그러다 문득, 저 대표라는 사람을 이용하면 강문과 제대로 대화해 볼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휘건은 ‘그 회사 연습생인 강문과 만나게 해 준다면 한번 생각해 보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물론 대뜸 숙소로 데려가 ‘같이 데뷔할 새 멤버’라며 소개부터 시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랜만이다?」

「어? 어…….」

얼떨결에 연습생 신분으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원래 목표였던 강문과의 대화는 쉽지 않았다. 어떻게 둘만의 자리를 만들어 보려 해도 늘 미꾸라지처럼 피했다. 그럴수록 더 오기가 생겨 끈질기게 옆에 따라 붙었다. 말을 섞을 기회를 주지 않을 거면 심기라도 불편해지길 바라는 얄팍한 복수심이었다.

처음엔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지냈던 연습생 생활도,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그룹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강문의 행동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다른 멤버들까지 피해를 볼 이유는 없으니까. 그리고 난생 처음 해보는 경험들이 좀 재미있기도 했다. 특히 춤을 출 때면 물살을 가로지르던 때처럼 잡생각이 사라져 좋았다.

「형, 우리 녹음한 거 완성본 나왔는데 들어 봤어?」

「아니, 아직.」

타이틀곡 완성본이 나왔던 날, 휘건은 참 오랜만에 강문의 노래를 들었다. 매번 혼자 따로 녹음하고 다들 잠든 새벽 시간에 나가 연습하는 탓에 연습생으로 들어온 이후로 한 번도 듣지 못했었는데, 여전히 참 청아하고 예쁜 음성이었다. 듣는 이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 정도로.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아, 나는 강문이 아니라 강문의 목소리를 좋아했던 거구나.

어린 날의 자신은 바보 같이 그 감정을 사랑이라 착각했다. 플라토닉한 사랑이 아니라, 정말 친구 이상으로 발전된 적이 없던 것이다. 그러니 관계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겠지. 처음부터 이름이 잘못 새겨진 관계였으니.

「야. 나랑 잠깐 얘기 좀 해.」

「뭐야. 왜 노크도 없이 함부로 들어와?」

「……진짜 잠깐이면 돼.」

「난 할 말 없으니까 나가.」

그 사실을 알려주고 아직 남았을지 모를 오해와 응어리를 풀고 싶어 대화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강문은 적대적이었다.

최소한 강문이 갑자기 변해버린 이유라도 좀 알고 싶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잘못한 게 있다면 말을 해줘야 사과라도 할 텐데, 매번 입을 꾹 다물고 매섭게 노려보기만 하니 답답해 미칠 노릇이었다.

「우리 제대로 얘기도 못 해봤잖아. 오해가 있으면 서로 풀고…….」

「오해? 니가 하고 있는 행동을 봐. 존나 소름끼쳐 죽겠는데, 이게 오해야?」

「내가 뭐 어떻게 했는데?」

「너 수영 못하게 된 거! 그거 복수하려고 옆에서 알짱거리는 거 아니야? 니 꿈 잃었다고, 나도 데뷔 못하게 하려고 이러는 거잖아 지금!」

강문은 마치 휘건이 곧 달려들기라도 할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 몸까지 떨어가며 소리쳤다. 그제야 휘건은 왜 강문이 자신을 볼 때마다 사색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강문의 심기가 불편하길 조금은 바랄 정도로 미움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저렇게 말할 정도로 복수심에 불타오른 적은 없었다. 애초에 얼굴을 마주하고 마지막으로 대화라도 나누고 싶어서 찾아온 거였지, ‘다 망쳐버리겠다’는 무서운 생각은 가진 적도 없었다.

좀 많이 기분이 나빴다, 오랜 시간을 봐 온 강문이 자신을 그런 인간 말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에.

「날 그렇게 쓰레기 새끼로 봤다는 거야?」

「넌 항상 그런 식이야. 뭐든 내가 조금 앞서 있다 싶으면 어느새 뒤에서 불쑥 튀어나와서 내 앞을 가려. 난 존나 노력해서 얻은 건데, 넌 그냥 가만히 있어도 다 가지더라?」

「…….」

「아무것도 모르고 웃는 니 얼굴 볼 때마다 얼마나 비참했는지 알아? 난 너 때문에 생긴 자격지심에 미쳐버릴 것 같은데, 그래도 넌 내가 좋대. 친구보다도 더 좋대. 씨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되는데? 제발 나 좀 내버려 두라고, 내 인생에서 사라져달라고 부탁했잖아!」

악에 받힌 강문의 목소리는 자격지심과 불안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울며 악을 쓰는 얼굴을 보자 이상하게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평생을 함께 할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의 추악한 속마음이 다시 한 번 휘건의 가슴에 생채기를 낸 탓이었다.

「계속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 그나마 내가 너보다 잘날 수 있는 게 딱 이거 하나였는데…… 니가 다 망쳤어. 날 이렇게 끌어내리니까 행복해? 이제 만족스러워?」

「와…… 아하…… 씨발. 존나 배신감 느껴지네?」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감정까지 깡그리 메말라버리니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간 혼자 걱정하며 앓았던 마음이 아까웠다.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새끼인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그 소중한 시간들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너랑 얘기라도 좀 해보고 싶어서 온 건데…… 마음이 바뀌었어.」

「……뭐?」

「어디 끝까지 한번 가 보자. 누가 이기는지.」

그래서 휘건은 집요하게 그룹에 붙어 있기로 마음먹었다. 억울해서라도 꼭 여기서 살아남아서 데뷔인지 뭔지 해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얼른 눈앞에서 사라져 줬으면 하는 것 같은데, 이리저리 휘둘린 과거의 자신이 가여워서라도 원하는 대로 해 주기가 싫었다.

……그랬는데,

「별건 아니고, 그냥…… 기억이 좀 사라졌어.」

다음날 갑자기 강문이 기억을 잃었다. 정말 잃은 건지, 아니면 저를 골탕 먹이기 위해 수를 쓰는 건지 헷갈렸다. 연기를 한다기엔 너무 자연스러운데다, 마치 얼굴만 같을 뿐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낯설어서였다. 이게 다 연기라면 강문은 연기의 신일 것이다.

게다가 강문만 변한 게 아니었다. 강문과 연애 아닌 연애를 하는 중에도 단 한번도 그런 적 없었는데, 오물거리며 열심히 의견을 피력하는 강문의 입술에 저도 모르게 눈이 가, 덜컥 입까지 맞춰 버렸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배신감에 차갑게 식어버렸던 감정이 갑자기 뒤바뀌어버린 게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휘건은 제 나름대로 감정의 방향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 온갖 낯간지러운 말들로 칭찬을 쏟아내는 강문이 낯설고 당황스러워 뇌가 착각한 것일지도 모르니까. 강문이 원하는 대로 따라 주면서 반응을 살펴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너 진짜 뻔뻔하고 귀엽다.」

하지만,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못했다. 오히려 뇌의 착각이 아니었다는 사실만 확인하는 꼴이 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