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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61화 (61/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61화

“나랑 둘이 있고 싶어서 꼬신 거잖아.”

겉으로는 담담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끈적하게 색이 묻어 있었다. 맑은 날인데도 꼭 비에 흠뻑 젖은 것처럼 공기가 축축하고 무거워졌다. 주변을 의식한 듯 속삭이듯 나온 말에 사방이 뚫린 실외인데도 둘만의 작은 공간에 숨 막히게 들어차 있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이, 딱 둘이서만.

사실 휘건이 제 속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냥 혼자 연습실에 앉아 생각이나 좀 정리할 참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휘건은 제 행동 하나만으로도 모든 걸 눈치챘다. 모든 신경이 다 저에게 쏠려 있는 것 같았다.

“들켰어?”

실없이 헤헤 웃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휘건이 헛웃음을 흘리며 강문의 이마를 툭 밀었다. 뒤로 넘어간 고개를 오뚝이처럼 다시 벌떡 일으키는 모습에 조금 더 크게 웃음이 터졌다.

“방법이 너무 고전적이야.”

“Classic is the best, 몰라? 그리고 너도 존나 고전적이었거든?”

“내가?”

강문은 유명한 영화의 삽입곡을 작게 흥얼거리며 이어폰을 나눠 끼는 시늉을 했다. 뭘 하는 건지 쳐다만 보고 있던 휘건이 강문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함께 피아노 의자에 앉아 노래를 들었던 날, 스피커로 틀어도 될 것을 일부러 이어폰 한 쪽을 나눠줬던 걸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 고전적 수법에 넘어와서 키스한 게 누군데.”

“헐. 키스는 니가 먼저 하자고 했거든? 그리고 분명히 내가 다 잊어버리라고 했었는데, 이 사기꾼!”

강문이 꾹 말아 쥔 주먹으로 휘건의 복부를 아프지 않게 툭 치고는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뒤통수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더니, 다시 보폭을 나란히 붙여 왔다.

“셀카는 마음에 들어?”

“어어. 근데 역시 실물이 훨씬 낫네.”

“그래. 실컷 봐 둬.”

“어우, 재수 없어. 너 니가 잘생긴 거 알지?”

“어떻게 몰라? 나도 눈이 있는데.”

“뻔뻔하기까지 하네?”

“누구한테 배웠나 보지.”

이쯤 되면 휘건이 늘 입에 달고 사는 ‘뻔뻔하고 귀엽다’는 말은 이제 자신이 아니라 휘건을 향한 것으로 바꿔야겠다 싶었다. 초반의 그 예민하고 경계심 가득하던 모습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본래의 장난기 많은 성격만 남으니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다. 같이 있으면 잡담만 나눠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시시콜콜하게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문득 조금 전 밴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휘건이 분명 무어라 말을 했었는데, 경적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근데 아까 차에서 무슨 말 했어?”

“차에서? 아아…….”

휘건은 시선을 비스듬히 올리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몰라. 기억 안 나.”

“거짓말 하고 있네.”

“알면 좀 넘어가주지 그래?”

역시나 휘건은 시원하게 말해줄 생각이 없었고, 저 역시 굳이 캐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꺼냈지만, 다시 주워 담고 싶은 말도 있는 법이니. 차라리 못 들은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매번 이렇게 궁금증만 유발하고는 뒤로 빠지는 게 괘씸해서, 괜히 나란히 걷고 있는 발을 슬쩍 가볍게 밟았다.

“넌 비밀이 너무 많아.”

“비밀 많은 미남도 매력적이라며?”

강문은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었는지 기억을 더듬다 뮤직 비디오 촬영 전 헤어샵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신호등 염색에 대해 이야기하다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난 다 기억해.”

“기억력 좋아서 좋겠네. 공부 잘 했겠다.”

자연스레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았지만 강문은 딱히 남들보다 특출난 점이 없었다. 노는 걸 좋아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를 완전히 뒷전으로 두고 놀기만 했던 건 또 아니었다. 뭐든 다 애매하고 평범해서, 제 자리에 저 대신 다른 누군가를 데려다 두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이렇게 혼자 여기로 불쑥 떨어져 버린 걸까. 그러고 보니 오늘은 당연히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던 퀘스트가 이상하게 잠잠했다. ‘첫 음악 방송 녹화를 무사히 마무리 하세요’ 라든가, ‘출연진들에게 눈도장을 찍으세요’같은 퀘스트가 주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넌 꼭 숨기는 게 없는 것처럼 얘기하네.”

잠시 딴생각으로 빠져들려던 강문을 휘건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 현실로 잡아끌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잠깐 멈춰 선 휘건보다 몇 걸음 앞서 있었다. 강문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내가 뭘?”

고민하듯 신발 앞코로 바닥을 툭툭 차던 휘건이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겨 다가왔다.

“……아니다. 그냥 말하지 마, 아무것도.”

“뭐래.”

휘건이 아하하 웃으며 큼지막한 손으로 강문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렸다. 메이크업을 지우고 씻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물기가 축축하게 남아 있었다.

어느새 연습실 앞에 다다른 두 사람은 고층에 올라가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대신 계단으로 향했다. 타닥타닥 내려가는 발소리가 아무도 없는 건물 지하에 조용히 울렸다.

“이리와 봐.”

도어락을 열고 들어선 강문이 휘건의 손을 잡아끌었다. 목적지로 거침없이 향하는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가장 끝에 있는 연습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불을 켤 틈도 없이 휘건을 피아노 의자에 앉혔다.

“야, 잠깐…….”

휘건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며 차에서 상상했던 것처럼 양 볼을 세게 쥐고 입술을 부딪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에 등줄기를 타고 짜릿하게 소름이 돋았다. 혀를 내미는 대신 입술만 부비적거리다 쪽 소리를 내며 떨어트렸다. 휘건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 입술을 가볍게 핥았다.

“아까부터 뽀뽀해주고 싶어서 죽는 줄 알았네. 잘생겼으면 됐지, 귀엽기까지 하고 말이야. 날 너무 괴롭게 만들어.”

차라리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다른 장르의 게임이었다면 이렇게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남들 시선을 신경 쓰며 참고 또 참아내야 하는 이 상황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작게 꿍얼거리며 귀여운 투정을 하는 얼굴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던 휘건이 푸스스 웃으며 강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키스야 여러 번 했다지만, 이런 스킨십은 또 처음이라 강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침을 꼴깍 삼켰다.

“누가 하고 싶은 소린데. 난 니가 웃을 때마다 설 것 같아.”

“와아. 난 그렇게까진 말 안 했는데.”

생각보다 더 적나라한 말에 강문이 질색하듯 눈썹을 찌푸리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이렇게 욕망에 솔직한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 색달랐다. 휘건 역시 저 못지않게 많이 인내하고 있구나 싶었다. 마시멜로 두 개를 먹기 위해 꾹 참고 기다리는 아이처럼.

“그래서, 싫다고?”

이번엔 손이 조금 더 과감하게 허리를 쓸어내렸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온기에 저도 모르게 흠칫 어깨가 떨렸다.

평소라면 아직은 안 된다며 밀어냈겠지만, 오늘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음악 방송으로 정식 데뷔까지 무사히 마쳤으니, 원래 살던 현실로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왔다. 이제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게 돌아가고 나면, 현실보다 더 현실 같았던 지금을 그리워하겠지. 이렇게 살을 맞대며 나눈 온기도.

“아니, 좋아.”

짧은 대답과 함께 한 번 더 입술을 맞대었다. 조심스레 열린 입술 사이로 뜨겁게 달아오른 혀가 얽혔다. 이 세상에 오로지 둘만 남은 사람처럼 서로를 빨고 또 삼켜댔다. 고작 한 평의 공간이 금세 더운 숨으로 가득 차올랐다. 어깨를 붙들고 있던 손을 돌려 휘건의 목덜미를 끌어안자 호흡이 더욱 깊어졌다. 점점 숨이 가빠지며 머릿속이 뿌옇게 흐려졌다.

“하아…… 휘건아.”

“응. 나중에.”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도 금세 다시 입술이 잡아먹혀 여의치 않았다. 결국 그냥 다 포기하고 휘건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어느새 옷 속으로 들어온 손이 마른 허리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흣…….”

살짝 벌어진 입술 틈으로 가느다란 비음이 저항 없이 흘러 나왔다. 휘건의 입술이 턱끝을 지나 점점 아래로 향했다. 쪽, 쪽 입을 맞추며 내려가다 목덜미 언저리에서 멈추고는 이를 세워 깨물었다. 강문이 몸을 파르르 떨며 휘건의 뒷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렇게 한참을 깨물고 핥으며 괴롭히더니, 별안간 움직임이 멈추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어 표정을 살피려는데, 휘건이 강문의 몸을 꼭 끌어안고 놔주지 않았다. 이마를 기대고 있는 가슴팍에서 낮게 한숨 쉬는 듯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야…… 왜 그래?”

휘건은 대답 없이 색색 숨만 가다듬었다. 알 수 없는 행동에 강문은 답답하기만 했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 지라도 좀 보고 싶어 꿈지럭대는데, 휘건이 강문을 끌어안은 채로 벌떡 일어서더니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 주었다. 강문은 발바닥이 땅에 닿기 무섭게 휘건의 얼굴을 살폈다.

화가 난 건 아닌 것 같고, 기분이 상한 것도 아닌 것 같아 보였다. 그보다는, 이상하게 좀 슬퍼 보였다.

“……가자.”

이유를 알 수 없어 아리송해 하고 있는 강문에게 휘건이 나지막하게 말하자 강문은 자신이 지금 제대로 들은 건지 귀를 의심했다.

“뭐?”

“천천히 나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휘건이 팔뚝으로 입가를 슥슥 문질러 닦고는 연습실 밖으로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졸지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버린 강문의 머리통 옆으로 물음표 백만 개가 둥둥 떠올랐다.

“씨발, 뭐지? 뭐지……?”

당황스러워 멀뚱히 서 있다 보니 점점 어이가 없어졌다. 한창 달아오르던 분위기가 갑자기 식어버린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변덕스럽다는 봄 날씨도 저것 보다는 덜 지랄 맞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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