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59화 (59/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59화

ALN 청평 @ALN_CHPY

직접 대기실까지 찾아와 인사해 준 귀여운 W.A.IN 후배님들! 반가웠어요~ 앞으로 더더더 친해지고 싶다ㅋㅋㅋ

알림 창을 타고 들어가 보니 청평이 조금 전 함께 찍었던 사진에 강문의 계정을 태그한 게시글이 보였다.

다른 연예인이랑 친목을 쌓을 계획은 없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호감을 표하는 데다 직접 먼저 팔로우까지 걸어 줬는데 무시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강문 역시 청평을 맞팔해 주었다. 고작 SNS 맞팔 정도로 무슨 큰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테니까. 인지도에도 꽤 도움이 될 테고.

“뭐야. 왜 그 사람만 맞팔해 줘?”

옆에서 조용히 훔쳐보고 있었는지 휘건이 잔뜩 배신감에 절은 표정으로 강문을 쳐다보았다. 얘는 또 언제부터 보고 있다가 이러나 싶어 강문은 어이없어졌다.

“뭐라는 거야? 너네 다 계정 없잖아.”

“있는데.”

“그럴 줄 알았다.”

첫 라방을 하기 전 샤워하러 들어갔을 때 계정을 만들었을 것 같다고 짐작하고 있기는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렇게 청개구리 같은 미소를 지어놓고는 아무 짓도 안 했을 리 없지. 그보다, 그마저도 지독하게 귀여워 보이는 자신이 더 문제였다.

“나도 맞팔해 줘.”

“아, 됐어. 제대로 활동할 것도 아니면서.”

“누가 그래? 존나 열심히 할 거야.”

강문은 휘건이 살갑게 ‘^^’ 이나 ‘:)’ 같은 이모티콘을 사용하며 SNS에 게시물을 올리는 모습이 잘 상상되지 않았다. 무뚝뚝한 성격은 아니지만 SNS로 팬들과 활발히 소통할 정도로 살가운 것도 아니라서,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나 제 할 말만 하고 사라져 팬들과 기싸움 한다는 말이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다 같이 소통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정도라 개인적으로 소통을 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 없어 보였는데, 왜 이렇게 졸라대는지 의문이었다.

아. 혹시 계기가 있다면 딱 하나 짐작 가는 게 있기는 했다.

“설마, 너…… 질투하냐?”

키워드를 잘못 선택해 예한 앞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던 날, 휘건은 그마저도 거슬려 하며 화장실까지 쫓아와 질투심을 내비쳤었다. 그러니 이 계정의 유일한 팔로잉이 휘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에 질투할 가능성도 충분했다.

“어. 질투해. 여기 이 유일한 숫자 1이 그 새…… 아니, 그 선배라는 게 존나 거슬려서 미치겠으니까 빨리 나도 맞팔해 줘.”

“……허.”

정곡을 찔려 얼버무릴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당당한 대답에 강문은 말문이 턱 막혔다. 매번 휘건이 자신에게 건네던 ‘참 뻔뻔하고 귀엽다’는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나도 해줘. 빨리. 나도 관심 많아.”

“그 관심이 아니라니까?”

“쟤는 되고 난 왜 안 돼? 너 설마…… 좋아해?”

“미쳤냐고, 진짜!”

강문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휘건의 팔뚝을 찰싹 내리쳤다. 휘건이 맞은 부위를 손바닥으로 슬슬 문지르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게 너무 귀여워 순간적으로 쪽하고 입을 맞출 뻔한 걸 겨우 정신을 붙들어 참았다.

“아니면 나도 해줘. 안 그럼 내 마음대로 오해해버릴 거야.”

“와, 이제 협박까지 하네.”

“뻔뻔하고 귀엽다고? 나도 알아.”

늘 제 입에서 나오던 말이 휘건의 입에서 나오니 어이없으면서도 기분이 새로웠다. 장난스레 낄낄 웃는 모습에 결국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못살아.”

저런 귀여운 협박이라면 언제든 환영이었지만, 정말 맞팔 해줄 때까지 온종일 옆에서 염불을 욀 것 같아 결국 원하는 대로 해 주었다. 청평이 업로드한 게시물 덕에 강문의 계정을 지켜보고 있던 팬들은 팔로잉의 숫자가 1에서 2로 바뀌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았다.

빠쉐 @dabbushow

칭구들아!!!!!!11 바키건 슨스만듬!!!!!!1

훌라리오 @gnffkfldh00

우리 청평이 또 누구 망태기에 담았니

곰차 @bearchachaa

헐 휘건이 별스타……! 나중에 다른애들도 만들어주면 좋겠다

곰털바닥 @gomgomtultul

아 얘들아…… 제발 친목은 너네끼리만……ㅠ

풀딱 @ddackpullddack

ㄱㅊㄱ랑 친목하는것도 맘에안드는데 제발 눈치좀ㅋㅋㅋ 이럴때마다 현타 오지네 하

곰털바닥 @gomgomtultul

팬들 다 흐린눈하는거 ㅊㅍ만 모름ㅋㅋㅋㅋ 할말 존많인데…… 뎀드릴게여ㅠ

휘파람총 @gnlqkfkachd

휘건아 점 하나만 찍어줘

산삼뿌리 @healthy_ssbr

얘들아 이제 공개연애 하기로 한 거야?

누나는 찬성

베스트타임 @mybesttime_cg

둘다 뭔가 느낌 비슷하네 ㅋㅋ 역시 채이더

채인지 @chaeingee

약간 저런 토끼상 좋아하는거같죠ㅋㅋㅋ

그렇게 조금 쉬고 있고 있으니 어느덧 본방이 시작되었다. W.A.IN의 순서는 중후반부라 대기실에서 다른 선배 가수들의 무대를 모니터링하며 기다렸다.

초반부 무대는 보통 데뷔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신인이나 인지도가 떨어지는 가수의 몫이라서, 원래는 W.A.IN의 순서도 앞쪽에 있어야 하는 게 맞았다. 그걸 모두 뒤집어엎을 만 한 화제성이 참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대기실 투어를 하며 연차로 따지면 몇 개월이나마 선배인 저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비칠까 싶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성공적인 데뷔’의 뒤에 그러지 못한 자들의 그늘이 따라오리라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더 열심히 해야…….”

운 좋게 주어진 과분한 기회를 헛되이 하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어차피 곧 돌아갈 건데 왜 그렇게까지 신경 써야 하냐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공존했다.

새벽에 숙소를 나설 때까지만 해도 돌아갈 준비에만 집중하자고 다짐했는데, 자꾸만 이곳에서의 미래를 그리게 되는 자신이 낯설었다.

꼭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 같아서, 스스로 느끼기에도 이상했다.

* * *

무사히 첫 음악 방송 데뷔를 마치고, 메이크업을 지우기 전 대기실에 모여 앉아 라이브 방송을 준비했다. 무대 전 짧은 인터뷰에서 포인트 안무를 설명할 때 조금 뚝딱거리기는 했지만, 처음 치고 그 정도면 상당히 잘 넘어간 편 같다. 라이브도 쇼케이스 때보다 좀 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만 장난치고 제대로 좀 앉아 봐.”

호재의 무릎에 앉겠다며 엉덩이를 들이미는 시찬과 고양이 발톱 모양으로 손가락을 세워 막고 있는 호재에게 성수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 틈을 타 잽싸게 허벅지 위에 앉는 데 성공했지만, 호재가 망설임 없이 옆으로 밀어버렸다.

“옆에 편한 자리 놔두고 왜 자꾸 들러붙어?”

“재밌잖아.”

시찬이 여전히 다리 한 짝을 호재의 허벅지 위에 올린 채로 낄낄 웃었다. 제발 똑바로 앉아서 라이브 좀 시작하자며 성수가 이젠 거의 애원 섞인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네엡, 하고 대답한 시찬이 다리를 내려 똑바로 앉았다.

W.A.IN 채널에서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라이브 화면이 켜지자 시찬, 호재, 강문, 휘건, 차율 순서대로 앉은 멤버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비쳤다.

“We Are Insane! 안녕하세요, 와인입니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들어온 것을 확인한 후 발랄한 인사와 함께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었다. 지난번 숙소에서 편하게 켰던 때와는 분위기가 또 달라 조금 긴장되기도 했다.

“오늘 드디어 저희가 데뷔 무대를 가졌습니다! 잘 보셨나요?”

강문이 형식적인 질문을 던지자 채팅창이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공식 채널에서 진행되는 라이브는 별스타와 달리 채팅창 저속모드가 있었지만, 그래도 순식간에 치고 올라오는 속도에 눈이 익숙해지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다.

“오늘 여러분께서 저희 도시락도 준비해 주셔서, 덕분에 식사 아주 맛있게 했어요.”

“진짜 감사해요. 뭔가 더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 그리고 저희 공식 홈페이지 생긴 거 아시죠?”

“자주 서신 남기겠…… 남길게요!”

“이제 곧 공식 팬클럽 모집도 시작할 건데, 그 전에 팬 네임 공모전을 한다고 해요. 선정되신 분께는 선물도 드린다고 하니까 많이많이 참여해 주세요.”

라이브 방송은 미리 성수가 계획했던 대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첫 서포트에 대한 감사 인사와 팬 네임 공모전 안내도 빼먹지 않았고, 갑자기 어디로 튀지도 않았다. 이렇게 쭉, 논란이 되거나 시끄러워질 여지없이 즐겁게 소통하며 잘 마무리될 것 같다.

“아, 청평 선배님이요?”

조금 전 청평이 개인 SNS에 남긴 게시글 때문인지, 채팅방에서도 그와 관련한 질문이 꽤 많았다. 계속 못 본 척 넘어가다간 선배를 무시한다며 안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있기에, 라이브 막바지쯤 이제야 채팅을 확인한 척 청평을 입에 올렸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하죠. 먼저 선뜻 친근하게 대해 주시고…… 시찬이가 에이엘엔 선배님들 완전 팬이거든요.”

강문은 이정도면 적당히 예의를 차리며 잘 넘어갔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시찬이 그들의 팬인 것도 사실이고, 직접 만나 보니 대외적인 성격도 괜찮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모든 일이 다 생각대로 흘러가기만 하는 건 아니었다.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아주 작은 변수가 커다란 나비 효과를 불러오기도 하는 법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