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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57화 (57/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57화

“……이걸 전부?”

상자 속 내용물을 확인한 휘건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리고 놀란 건 강문도 마찬가지였다. 쇼케이스 후 앨범이 발매되고 음방 스케줄이 잡히기까지 텀이 짧았는데 언제 이런 준비를 한 건지 신기했다.

아무리 주목 받는 신인이기는 하나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다. 방송국에서 봐주는 편의와 더불어 팬들의 실행력마저도 신인 아이돌의 것이라기엔 퍽 과했다.

자신이야 이게 게임 속이고 자신이 주인공이니 이상할 게 없지만, 이쪽 세계의 연예계도 굴러가는 시스템이 비슷하다면 평범한 사람들의 눈엔 충분히 이상하게 비칠 만 했다. 당연히 고맙기는 하지만, 주말에 집에서 음악방송을 보다보면 데뷔 후 엄청난 인기를 끌던 그룹이 어느 순간 소리 소문 없이 나오지 않게 되는 것을 자주 느끼게 된다.

행여 처음부터 너무 무리한 탓에 팬들이 금방 지치지는 않을지, 이런 과분한 응원들이 거품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리지는 않을지 조금 걱정되었다. 팬들의 사랑 없이는 그룹도 존재할 수 없으니까.

“진짜 정성이네. 언제 이런 걸 또 준비했대.”

강문 혼자 심란한 가운데, 시찬과 차율은 감탄하고 휘건은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느라 바빴다. 성수가 흔들어 깨워 끌고 온 호재 역시 도시락을 보고 놀란 듯 눈이 두 배는 커졌다. 제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빤히 내려다보는 걸 보니 꽤 기분 좋은 모양이다.

눈을 굴리며 생각을 정리한 강문이 후우, 하고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보니 저답지 않게 자꾸만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혼자 땅을 파고 들어간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은 지금부터 고민해봤자 소용없고, 필연적으로 일어날 사건들은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그땐 또 그 나름의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듯이.

“형. 우리 사진 하나만 찍어 줘.”

불안한 생각들을 휘휘 떨쳐버리고, 성수에게 단체 사진을 부탁했다. 각자 자기 이름이 적힌 도시락을 들고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꾸며낸 비즈니스 미소가 아니라, 정말로 행복하고 고마운 마음에 절로 우러나오는 미소였다. 든든한 내 편이 생긴다는 건 참 경이로운 일이었다. 언제 또 이런 감사한 경험을 해 보겠는가. 누릴 수 있을 때 누려야지.

“아, 그리고 너네 공식 홈페이지 생겼으니까 프롬 게시판에 글 자주 써.”

“와, 드디어!”

강문의 자체 SNS 금지령 때문에 소통에 목말라 있던 차율이 반색하며 가볍게 폴짝 뛰었다. 차율은 쇼케이스 이후 그 반짝이던 눈빛들을 평생 잊지 못할 거라며 어떻게든 빨리 팬들과 소통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특히 차율은 어디로 튈지 몰라서, 섣불리 계정을 만들게 할 수 없었다. 행여 실수라도 하면 수습하기 쉽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차율은 공식 홈페이지와 프롬 게시판이 생기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대는 통에 성수에게 ‘한 번만 더 물어보면 입을 꿰매 버린다’는 말까지 들었다. ‘어떻게 그런 무서운 말을 할 수가 있소!’하며 찡찡거리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했다.

“지금 당장 서신을 남겨도 될까?”

“나중에 해. 본방 끝나고 라방으로 서포트 감사 인사 할 건데, 그 전에 너 혼자 먼저 후기 남기면 좀 그렇잖아. 그렇다고 뻔히 서포트 들어온 거 아는데 말 안하고 있는 것도 영 이상하고.”

“그건 그렇소만…….”

신이 나서 휴대폰을 찾던 차율이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일단 밥부터 먹으라며 옆에서 달래주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배가 고프던 참이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제 몫의 도시락을 풀었다.

도시락은 겉포장만큼이나 내용물도 정성으로 가득했다. 성수도 나름 신경 써서 맛있는 것들로 사 오는 거겠지만, 그렇게 사 먹는 도시락과는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팬들이 고민해서 준비해준 것인데다 각종 제철 과일부터 샐러드, 메인 요리 등이 예쁘게 담겨 있어 먹기 아까울 정도였다.

“헐……. 나 꼬막 진짜 좋아하는데. 요즘 철 아니지 않아?”

그 중 꼬막 무침을 발견한 호재가 눈을 반짝이며 입맛을 다셨다. 어떻게 알았지, 하고 연신 감탄하는 호재의 머리를 성수가 웃으며 툭툭 두드렸다.

“서포트 문의하면서 니들 뭐 좋아하냐고 물어보길래 내가 얘기했어. 다른 애들이야 뭐, 고기면 다 잘 먹으니까.”

“형,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뭐가 돼?”

호재의 취향에 비해 너무 뭉뚱그려진 제 취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시찬이 음료 뚜껑을 열다 말고 투덜거렸다.

“고기 좋아하는 아이돌 되겠지.”

“그렇겠…… 아니, 그게 아니지!”

무심하게 툭 치고 들어오는 휘건의 말에 저도 모르게 수긍하던 시찬이 퍼뜩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휘건의 팔뚝을 퍽퍽 때렸다. 아프지도 않은지 휘건은 맞으면서도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로 낄낄거렸다.

“근데 우리 팬클럽은 언제 생겨? 이름은?”

나중에 있을 라이브 방송에 대해 생각하던 강문이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팬 여러분들’은 아무래도 거리감이 좀 느껴지니까 다른 호칭을 사용하면 좋을 텐데, 아직 마땅한 게 없었다.

“아마 오늘부터 공모 시작할걸? 이번 달 안으로 생길 거야.”

성소는 약 일주일간 팬클럽 이름 모집 공고를 하고, 그중 괜찮은 몇 개를 뽑아 내부회의를 거쳐 결정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후 최종 선정된 팬네임 공개와 함께 1기 팬클럽 모집이 시작될 예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얼른 팬분들 말고 제대로 된 이름으로 부르고 싶다…….”

호재의 중얼거림에 다들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강문은 찹스테이크 하나를 입에 쏙 집어넣으며 어떤 이름이 어울릴지 상상해 보았다. 그룹 이름이 와인이니까, 아무래도 마시는 와인과 관련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올 것 같았다.

“먹고 사인 마저 하고 쉬고 있어.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또 어디 가는데? 매니저 없이 우리끼리 있어도 돼?”

“그러게 말이다. 대표님한테 얘기해서 사람을 더 뽑든가 해야지……. 문이 네가 애들 좀 챙겨줘.”

매니저 일만 해도 빠듯할 텐데, 이것저것 도맡아 하는 일이 많은 성수는 멤버들보다도 더 바빠 보였다. 투덜거리는 저 말에 진심이 한가득 담겨 있어서, 강문이 주먹을 꾹 쥐고 ‘화이팅’하고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모습이 귀엽다는 듯 피식 웃으며 성수가 대기실 밖으로 사라졌다. 직장인의 애환이 업혀 있는 등을 보며 강문은 ‘나중에 대표를 만나면 직원을 늘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강력하게 건의해 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앨범 몇 장 남았지?”

“대충 열 장 정도?”

“밥 먹고 얼른 하고 좀 쉬자. 펜을 하도 쥐고 있었더니 젓가락질이 잘 안 돼.”

휘건이 강문에게 젓가락 쥔 손이 파들파들 떨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강문 역시 비슷해서 키득키득 웃으며 휘건을 따라 떨리는 오른손을 보여주었다.

“나 그래서 지금 숟가락으로 퍼먹고 있잖아.”

“실컷 자다가 밥 먹으려고 일어났으면서 은근슬쩍 끼네?”

자연스레 대화에 낀 호재가 휘건의 핀잔에 어깨만 한번 으쓱이고는 숟가락 가득 쌓아 올린 음식을 한입에 와앙 집어넣었다. 조금이나마 자고 일어나서 아마 더 허기가 질 것이다. 시찬은 아예 도시락 통을 들고 숟가락으로 음식을 입 속에 마구 쓸어 넣고 있었다.

“천천히 먹어. 체할라.”

“웅.”

차율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을 건네자 한번에 쭉 들이키고는 푸하- 하고 숨을 내쉰다. 어찌나 복스럽게 먹는지, 서포트를 준비한 팬들이 봤다면 분명 뿌듯해 할 것 같았다.

지켜보던 강문이 작게 웃고는 다시 밥을 먹기 위해 도시락 통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볶음밥 위에 버터구이새우가 떡하니 올라가 있었다.

“엥?”

혹시 자신이 먹으려고 올려뒀었나 싶어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좋아하는 반찬을 먼저 먹는 타입이라 진작에 다 먹어버렸던 게 기억났다. 그렇다면 이 귀여운 범행의 용의자는 한 명뿐이었다.

“이거 니가 올려놨어?”

“너 새우 좋아하잖아.”

눈만 흘겨 슬쩍 바라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휘건의 모습에 다시금 가슴께가 간지러워졌다. 저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와 헤실거리며 새우를 한입에 넣고 씹었다. 그렇게 맛있냐며 신기해하는 휘건의 물음에도 입꼬리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새우보다 챙겨주는 그 마음이 좋은 거라는 말은 목구멍으로 삼켜 버렸다.

“Fertig1)! 드디어!”

식사 후 남은 앨범에 다시 열심히 사인을 하고 PS를 적었다. 그러다 마침내 마지막 앨범까지 마무리한 차율이 양팔을 하늘로 길게 뻗어 기지개를 켰다.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하도 목을 쭉 빼고 있어서 거북목이 되다 못해 바다로 갈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어 다들 웃음이 터졌다.

본방 리허설은 사복 차림으로 진행되었고, 잠시간의 휴식 뒤 생방송 무대를 위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와 헤어와 메이크업을 다시 다듬었다. 생방송용 의상은 지금까지 입었던 마린 룩과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달랐다. 네이비 대신 연한 베이지 컬러가 포인트로 들어가서 꼭 스카우트 단원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귀엽고 잘 어울린다. 역시 잘생긴 게 최고야.”

예한은 멤버들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듯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낯부끄러운 칭찬에 다들 뭐라 대답은 하지 못하고 어색한 얼굴로 하하 웃기만 했다. 특히 칭찬에 약한 휘건은 더 못 견뎌 하며 표정을 굳혔다. 그마저도 분위기 있다며 칭찬세례를 퍼붓자 종래엔 넋이 나가 보여 강문은 옆에서 혼자 킥킥 웃었다.

1)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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