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55화
귀신이라도 든 건가 싶어 소름이 쫙 돋는 몸과는 별개로 호기심이 발동됐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강문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조금 더 귀를 기울였다. 좁은 방이라 짐작 가는 곳이라고는 책상과 그 옆의 작은 옷장이 전부였다.
……잠깐.
슬그머니 침대에서 내려와 선 강문의 머릿속에 이것도 시스템 에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보이면 안 되는 노트도 두 번이나 나타났으니, 들리면 안 되는 소리도 충분히 날 수 있다. 억지로라도 그렇게 생각하니 무서움이 한결 나아졌다.
“…….”
어느새 잠이 전부 달아나버린 강문은 불을 켜고 좀 더 과감히 소리가 나는 위치를 찾아 나섰다. 너무 작은 소리라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렸다. 마침내 책상 의자에 올려둔 가방 속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낸 강문이 조심스레 지퍼를 쥐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정말…… 쥐 같은 게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강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쥐와 바퀴벌레가 세상에서 제일 싫었다. 예전에 학교 과방에서 동기들과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거의 새끼고양이 크기만 한 커다란 쥐가 몸을 밟고 지나간 뒤로는 바퀴벌레보다 쥐가 더 싫어졌다.
열까 말까 잠깐 고민하던 강문이 코로 숨을 크게 내쉬고 가방을 확 열어젖혔다. 다행히 쥐가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생각치도 못한 물건을 마주했다.
“이게 왜…… 여기……?”
강문이 가방 속에 뜬금없이 들어있는 낯익은 노트를 꺼냈다. 조금 전 대기실에서 보았던 그 노트였다. 분명 시스템 에러로 롤백 되며 사라졌는데, 별안간 가방 속에서 나타나는 게 이상했다. 심지어 사각거리는 소리는 분명 이 노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영문은 모르겠지만, 노트가 여기까지 온 건 자신이 읽기를 원해서인 것 같다. 숨을 한번 고르고, 천천히 노트를 펼쳤다. 비어 있던 노트에 빼곡히 글자가 들어차 있어, 자연스레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201X년 X월 X일
박휘건이 고백했다.
요즘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는데, 뜬금없이 내가 좋단다.
왜지? 딱히 더 잘해준 것도 없는데.
누구한테 맞고 다니고 코 찔찔 흘리면서 울기나 하던 게 나한테 고백이라니.
솔직히 좀 얼떨떨하다 ㅋㅋㅋ 웃기기도 하고.
당황해서 일단 알겠다고 하기는 했는데 사실 잘 모르겠다.
요즘은 그냥 다 싫고 불편하다.
이유 없이 불쑥 짜증이 난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그래도 내가 좋다니 신기하다.
얼마나 갈까? 그 감정이.
나도 내가 싫은데…….
주인공의 일기였다. 그리고 그 속의 내용은 강문을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일기의 첫 장은 휘건이 고백하던 날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문제는, 척 봐도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아 보인다는 것이다. 헤어지면서 사이가 틀어지기 전까지는 쭉 둘의 사이가 좋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퍽 당황스러웠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얼떨떨하게 노트의 뒷장을 살펴보았지만 일기는 딱 첫 페이지만 채워져 있었다. 뜬금없이 가방 속에서 나타난 노트보다도 일기의 내용이 더 충격적이었다. 물론 갑작스러운 친구의 고백에 당황스러움이 컸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서로 비슷한 감정을 가졌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한참이나 책상 앞을 떠나지 못하다 겨우 다시 잠든 강문은 과거 주인공 시점의 꿈을 꾸었다. 깨어나면 흐릿하게 날아가 버리는 그런 꿈이 아니라, 꼭 기억을 일부러 로딩 시키는 것 같은 선명하고 강렬한 꿈이었다.
강문은 꿈속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함께 느꼈다. 휘건을 향해 웃어주는 순간 가슴에 들어찬 감정은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색으로 표현하자면 짙은 파랑과 먹색이 섞인 듯한 무거운 감정에 숨이 막혀 잠에서 깼다. 그냥 평범하게 두 사람이 이야기하며 길을 걷는 꿈이었을 뿐인데, 순간 느껴진 감정은 평범하지 않았다.
평소같으면 그저 나쁜 꿈을 꾸었겠거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강문은 그럴 수 없었다. 굳이 지금 이 시점에서 주인공과 관련된 꿈을 꾼다는 건, 역시 시스템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강문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시스템의 의도와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감정에 밤잠을 설쳤다. 어차피 곧 돌아갈 사람인데, 자꾸 주인공에 관련된 기억과 정보를 주입시키는 게 영 석연치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주인공의 일기, 그리고 꿈까지.
아무래도 이 모든 게 휘건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무언가 숨기고 있다고 암시하는 것 같아 찜찜했다. 그리고 시스템이 굳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아서 더욱 답답하기만 했다.
* * *
드디어 다가온 앨범 발매일, 예상대로 반응은 엄청났다. 예약 판매 기간 없이 바로 상시 판매 시작이라 조금 걱정했는데, 수록곡 퀄리티가 좋은 덕인지 판매량이 쭉쭉 치솟았다. 배송 오는 기간을 기다리기 힘들어 오프라인에서 직접 구매하는 팬들도 많아 금세 품절 대란까지 이르렀기에 물량도 많이 모자랐다.
회사 측도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기에 당황하며 얼른 공장에 요청해 추가 생산을 돌렸다. 그 때문에 품절 대란이 시작됐을 땐 ‘이렇게 일하는 회사가 어디 있냐’, ‘아무리 신생이지만 너무 모르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돈을 쏟아 부은 티가 폴폴 나는, 굉장히 호화스러운 특전들이 공개되자 여론이 한번에 뒤집어졌다. 두 가지 버전의 앨범 커버와 10가지 종류의 랜덤 포토카드에는 상술이 조금 묻어 있었지만, 그 외의 기본 구성이 아주 좋았다. 굿즈로 제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앨범 특전으로 넣은 겪이라 ‘MD샵을 갈아 넣었다’는 밈이 생겨나기도 했다.
빠쉐 @dabbushow
도대체 스트는 일을 잘하는거임 못하는거임;;; 내가 아무리 육아덕질을 한다지만 회사까지 육아해야할줄은 몰랐고요?
문토끼 @moonlight_rabbit
W.A.IN 와인 마그넷 포카 교환
모스카토
나 : 깐휘건, 덮휘건, 츄러스율, 캠호재
너 : 모든 강문
샹그리아
나 : 삐죽시찬2, 리본휘건
너 : 모든 강문
같은 버전끼리 교환 원해요!
일괄우대 준등기 가능 디엠주세요
휘파람총 @gnlqkfkachd
리본휘건 있는대로 다 구해요 리본휘건으로 이불 만들어 덮을거이뮤ㅠㅠㅠㅠㅠ
|
율무주전자 @yoolintheteapot
파람님 혹시 츄리닝율 있으시면 제 리본휘건이랑 바꾸실래요?
|
휘파람총 @gnlqkfkachd
헐 저 있어요!!!!!!! 뎀드릴게요우어ㅠㅠㅠㅠㅠ
도람도람 @dohram22
실트 보고 우리나라 갑자기 프랑스된줄
산삼뿌리 @healthy_ssbr
이걸 다 준다고? 이 가격에? 와우내
욕한거 미…… 미…… 미친놈아 니가 먼저 잘못했잖아ㅠ
음원은 발매 당일 바로 국내 최대 음원 사이트의 실시간 차트 10위권 대에 진입했고, 해외 차트에서도 상위권에 머무르며 최근 5년간 발매된 남자 아이돌 데뷔곡 중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팬 사인회 응모까지 진행되면 초동 순위 신기록도 노려볼 만한 기세라, 덕후들은 물론이고 대중의 관심까지 쏠렸다.
그리고 그 사이 첫 음악 방송 출연일이 다가왔다. 본래 신인 가수는 출연진들 중 가장 앞 순서로 배치되어 한 곡만 겨우 하고 내려오는 게 대부분인데, W.A.IN은 ‘슈퍼 루키’ 타이틀을 붙이고 사전 녹화를 포함해 2곡을 선보이게 되었다. 인지도 없는 작은 회사 소속 신인 아이돌에겐 이례적인 혜택이었다.
“이거 챙겨.”
사전 녹화를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차에 오른 멤버들에게 강문이 마스크를 하나씩 나눠 주었다. 아직 잠에서 덜 깨 어영부영 받아 든 시찬이 손에 들린 마스크를 내려다보며 눈을 끔뻑였다.
“마스크는 왜?”
역시 이 순진한 녀석들은 노래하고 춤출 줄만 알았지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 음악 방송 출근길은 대놓고 사진을 찍기 좋은 스케줄이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팬이 아니어도 방송을 보러 온 적극적인 찍덕들까지 포진해 카메라를 들이댈 텐데, 메이크업도 하지 않은 맨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며 들어갈 수는 없었다.
“자고 일어나서 퉁퉁 부은 얼굴 박제되고 싶으면 그대로 들어가든지.”
팔짱을 낀 채로 눈을 감고 있던 휘건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제야 시찬이 강문의 의도를 이해하고 끄덕이며 마스크를 챙겼다. 시찬에게 설명해주려던 강문이 머쓱하게 입을 합 다물고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었다. 옆을 슬쩍 쳐다보니 휘건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로 쪽잠을 자려는 듯했다.
“…….”
주인공의 일기가 나타나고 이상한 꿈을 꿨던 날 이후 강문은 휘건을 대하는 것이 묘하게 껄끄러워졌다. 싫은 건 아닌데,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몰래 키스를 나누고 키득거리던 날들이 거짓말 같았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대하고 싶지만 자꾸 뚝딱거리게 되었다.
사실 그동안은 좀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난 뒤에 이곳에서 일어날 일들은 남은 이들이 해결해야 할 몫이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주인공이 휘건에게 가지고 있었을 감정은 제쳐두고 거리낌 없이 들이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꿈속에서나마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보니 조금 혼란스러워졌다. 자신의 행동이 후에 남겨질 두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혼란을 야기하게 될지 새삼 크게 와닿았다. 자신에겐 여기가 게임 속 가상의 공간이지만, 이들에겐 현실이니까. 무책임한 조물주가 된 것 같은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