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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54화 (54/82)

내 아이돌의 해체를 막는 방법 54화

“뭐야, 왜 웃는…….”

“죄송합니다!”

휘건이 살짝 삐진 어투로 이유를 물으려는데, 다른 테이블에서 어울리고 있던 이상상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당 안의 모든 시선이 벌떡 일어나 90도로 허리를 숙이고 있는 이상상에게로 쏠렸다.

“뭐야? 갑자기 왜 저래?”

“헐…… 아까 이상한 질문해서 혼나나 봐.”

“솔직히 좀 비호감이긴 하더라.”

“근데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

“모르지. 나한테도 막 반말하던데, 존나 싫어.”

이상상에 대해 수군거리는 목소리들이 멀찍이 떨어진 멤버들의 테이블에까지 들렸다. 단 한번의 스케줄로 이렇게까지 평판이 안 좋아지다니, 그것도 나름대로 신기하긴 했다. 앞으로 더 조심해야겠다는 경각심도 들고.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재밌게 진행해 보려고…….”

“혼자만 재밌으면 그거 유머 아니고 폭력이에요. 이제 좀 알아 들었으려나? 응?”

소리가 들리는 쪽을 슬쩍 살펴보니 대표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이상상에게 가시돋힌 말을 내뱉고 있었다. 대표 성격에 대뜸 화부터 낼 리 없으니, 대충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고 있는지 알만 했다.

아마 조금 전 인터뷰 때 질문이 좀 과했다고 말하며 웃으며 좋게 넘어가려던 대표에게 이상상이 되려 뻔뻔하게 반응해 대표를 살살 긁어 결국 터져버린 거겠지. 저런 타입은 정도를 모르는 게 흠이다.

“체기가 들 것 같소…….”

입을 와앙 벌리고 새로운 상추쌈을 넣으려던 차율이 눈치를 보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내려놓았다. 강문이 괜찮으니 계속 먹으라고 손짓했지만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만 도리도리 젓는 게, 갑작스러운 소란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시찬은 이미 몸을 한계까지 쭉 빼고 구체적인 대화를 듣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거의 옆 테이블에 가서 합류한 수준이라, 강문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시찬아, 똑바로 앉아야지.”

“그치만 궁금한데…….”

“나중에 성수 형한테 물어보자. 지금은 그냥 모르는 척 해.”

좋은 말로 어르고 달래자 시찬이 마지못해 바로 앉았다. 강문이 그런 시찬에게 제 앞접시에 수북하게 쌓여 있던 고기 몇 점을 덜어 주었다. 입맛이 없다고 칭얼대더니, 고기를 보고 마음이 달라진 모양인지 헤헤 웃으며 잘 받아먹는 모습이 귀여웠다.

“너 먹으라고 준 걸 왜 쟤한테 줘?”

휘건이 못마땅한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손에 쥐고 있던 집게를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놨다. 신나게 고기를 입으로 가져가던 시찬이 그대로 멈추고 상처 받은 표정을 지었다.

“형! 내가 먹는 게 아까워?”

“어, 아까워.”

대충 대답한 휘건이 시찬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싱싱한 상추와 깻잎을 잘 펴서 손바닥에 겹쳐 올렸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눈을 가늘게 뜨며 씨익 웃은 시찬이 젓가락으로 강문의 앞접시에 있던 고기를 한번에 쓸어갔다. 그리고는 그 많던 고기를 입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모습을 보며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휘건이 강문의 입 앞으로 예쁘게 싼 쌈을 들이밀었다.

“……뭐야?”

설마 먹으라는 건가 싶어 얼굴을 살짝 뒤로 물리며 커다란 쌈과 휘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긴, 자랑하려고 쌌겠냐? 먹어.”

“나? 갑자기?”

“네, 너요. 너무 안 먹어서 이렇게라도 먹여야겠어.”

눈을 두어 번 깜빡인 강문이 슬쩍 주변 눈치를 살폈다. 시찬은 조금 전 한꺼번에 우겨 넣은 고기가 버거웠는지 켁켁거리다 물을 들이켜고 있었고, 호재는 그런 시찬의 등을 두드려 주고 있었다. 조금 전의 소란으로 체할 것 같다며 젓가락을 내린 차율은 일찍이 식사를 마치고 혼자 게임에 몰두하는 중이었다.

참 이럴 때마다 타이밍이 좋다고 생각하며 슬그머니 입을 벌렸다. 어떻게 해도 각이 나오지 않아 베어 먹기라도 해야 하나 싶던 찰나, 가만히 보고 있던 휘건이 피식 웃었다.

“그렇게 벌려서 잘도 들어가겠다.”

“이게 너무 큰 거라고는 생각 안 해?”

“딱히.”

휘건이 얄미운 표정으로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 얼굴에 오히려 더 오기가 생겨 턱이 아리도록 최대한 입을 크게 벌려서 쌈을 쥐고 있는 손가락까지 전부 먹어치울 기세로 욱여넣었다.

“거 봐. 먹을 수 있잖아.”

하지만 입에 넣는다고 다가 아니었다. 남는 공간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입안이 꽉꽉 차서, 씹기 위해 턱을 움직이면 내용물이 밖으로 다 튀어나와버릴 것 같았다.

“……어이에어.”

“풉…… 푸흐…….”

겨우 다문 입을 양손으로 가린 강문이 눈썹을 축 늘어트리고 어정쩡한 발음으로 말하자 휘건이 한쪽 눈썹을 찡그리며 겨우 참고 있던 웃음을 터트렸다. 덩달아 웃음이 터져 전부 뱉을 뻔한 강문이 눈으로 욕을 하며 휘건의 등을 주먹으로 퍽퍽 내리쳤다. 그러자 휘건은 이제 아주 대놓고 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아르바이트생들 중 하나가 망붕 렌즈를 두껍게 끼고 SNS에 게시글을 올렸다. 어쩌다 운 좋게 얻어 걸린 알바 자리에서 계를 탄 것도 모자라 자신이 미는 메인 커플의 애정행각까지 목격해 황홀해 미칠 것 같은 표정이었다.

건문영사해 @gun_4ever_moon

회식자리에서 바키걵이 강묹한테 계속 고기 구워주다가 이제 쌈도 싸주고 둘이서만 비밀얘기 속닥거리고 꺄르륵거리는데 이래도 사랑이 아님? 소고기보다 건문이 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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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하아…… 피곤하다.”

길고 길었던 하루가 드디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말끔하게 씻은 강문이 피곤이 덕지덕지 붙은 눈을 겨우 깜빡이며 침대 위로 풀썩 쓰러졌다. 온몸에 고기 냄새만 배지 않았더라면, 대기실에서 대충 샤워하고 나왔던 걸 씻은 셈 치고 바로 잠들었을 것이다.

“생각보다 더 정신없네.”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일이 지나간 건지, 공연장에서 일주일은 보낸 것처럼 시간 감각이 무뎌졌다. 고작 하루로도 이런데, 나중에 이런 하루하루가 스케줄이라는 이름으로 쌓이면 정말 더 정신없을 것 같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끔 보이던, 오늘 날짜도 가물가물해 하던 연예인들의 모습이 이제야 이해되었다. 뭐든 직접 겪어 보아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발밑에 있는 이불을 끌어올려 덮으며 옆으로 돌아눕는데, 고단했던 하루를 보상하듯 퀘스트 완료 창이 나타났다.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끔뻑이며 확인하니 평소보다 어째 단위가 컸다.

<나의 첫 쇼케이스!> 퀘스트 성공!

사용 횟수 초기화 이용권 1장

인기도 +1000

인지도 +1000

화제성 +1000

[확인]

“1000이나 올라? 미니 게임 열심히 한 보람이 있기는 하네.”

5나 10 정도로 소소하게 주다가 갑자기 단위가 확 뛰어버린 보상도 놀라웠지만, 더 신기한 건 따로 있었다.

“사용 횟수 초기화? 이건 또 뭐야?”

처음 보는 보상에 어떤 용도인지 확인하기 위해 메인 메뉴로 돌아갔다. 초반엔 보유 카드 목록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언제 생겼는지 메뉴 하단에 [보유 아이템 목록]이라는 탭이 새로 추가되어 있었다.

보유 아이템 목록엔 지난번에 받고 아직 사용하지 않은 뽑기 이용권 10장과 대기실에서 받은 위기 탈출권, 그리고 조금 전에 얻은 사용 횟수 초기화 이용권이 있었다. 그 중 ‘사용 횟수 초기화 이용권’의 상단에 있는 가운데 i라고 적힌 동그란 아이콘을 누르자 아이템 설명 창이 떴다.

[사용 횟수 초기화 이용권]

한 번 사용한 키워드를 동일한 조건 또는 동일인에게 재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이용권은 사용 즉시 소진됩니다.

[닫기]

“역시…… 두 번 못 쓰는 거 맞았네.”

강문은 ‘비비드’와 ‘파스텔’ 키워드 카드를 두고 고민했던 첫 촬영 날을 떠올렸다. 혹시 중복 사용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 뒤로 빼뒀었는데, 제 예상이 맞았다.

“근데 동일인은 확실히 알겠는데, 동일한 조건이 좀 애매하네.”

다만 ‘동일한 조건’의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지 않아 의미가 모호했다. 하나의 퀘스트 내에서의 사용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첫 촬영 때나 오늘처럼 파생되는 퀘스트가 있는 경우를 말하는 건지 조금 헷갈렸다. 하여튼 게임이 참 친절한 듯하다 가도 불친절했다.

“에이, 모르겠다. 나중에 생각할래.”

금세 다시 피곤해진 강문이 메인 메뉴를 끄고 반대쪽으로 돌아누웠다. 분명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싶었던 것들이 많았는데, 야속하게도 졸음이 순식간에 몰려온다.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혼자 씨름해봤자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고단했던 하루를 보상하듯 폭신하고 부드러운 이불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렇게 까무룩 잠에 빠져들려는데, 방안 어딘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종이를 갉아먹는 듯한 소리에 귀가 간지러웠다. 강문은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거렸다.

“……잘못 들었나.”

숨을 고르고 다시 잠드려는 순간, 이번엔 더욱 명확하게 사각거리는 소리가 귀에 박혔다. 쥐가 종이를 갉아먹기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이건 분명히 연필로 뭔가를 필기하는 소리였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기에는 너무 가깝게 느껴지는 걸 보니 방 안에서 들리는 게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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